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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서울입니다.”

50년 산 고향집을 떠나지 못해 서울 한복판에 지은 전원주택,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는 은퇴 후 도시에서의 노후생활
ⒸWonseok Lee
글. <브리크 brique>  사진. 이원석

 

ⒸWonseok Lee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옛 집 앞마당과 텃밭을 살리고 50년된 담벼락 그대로 옆집과 이웃하며 살아요.”

 

집은 서울 구도심의 중심, 광화문과 멀지 않았다. 집주인은 50년째 그 땅에서 살고 있었고, 은퇴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대다수 노후주택이 그렇듯 이 집도 춥고 불편하고 여기저기 손볼데 투성이었다. 비나 눈이 많이 오면 혹시 무너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됐다. 사용연한이 다한 집에서 그대로 살 수도, 그렇다고 떠나기에는 추억이 너무 많았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도 애환이 많다. 개발에 밀려 고향집이 사라지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겪기 일쑤다. 이 동네 집들이 그나마 유지됐던 것은 문화제 보호 등을 이유로 개발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들께 감사해야할지, 원망해야할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겠지만 이 집주인은 성장기 추억과 자신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곳에 애착이 무척 컸다.

차량운행이 끊이질 않는 큰 도로 사이, 차 한대 겨우 들어갈 좁은 골목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골목에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집들과 새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지만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TV뉴스에 종종 나오는 복잡하고 큰 길이었는데, 골목 안은 고즈넉한 옛 정취를 품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옛 집은 2층 양옥이었다. 50년이 됐지만 한옥처럼 보존해야할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장에 와 보니, 이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건축주의 마음이 십분 헤아려졌다. 풍수지리를 몰라도 얼핏 보기만해도 북악산과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말그대로 ‘명당’이었다.

 

ⒸWonseok Lee
ⒸWonseok Lee
ⒸWonseok Lee

 

“마당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그리고 저 아름다운 풍광을 두고 떠난다는게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형제들은 편안한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수 없이 권했지만 저라도 고향집을 지키기로 했어요.”

 

건축주는 당초 증개축으로 옛 집을 보완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건축가와의 상담을 통해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됐고, 결국 집을 헐고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오랜시간 한 곳에 살았다는 것은 해당 장소와 공간에 대한 의미도 배가 되죠. 고향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건축주의 마음을 살펴보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바람과 계획을 잘 녹여내야하죠.”

 

김현대 건축가가 이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건축주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층별로 나눠 나름의 손그림 평면도를 보여줬다. 1층엔 큰 거실이 있고 마당의 목련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데크, 겨울이면 화분을 들일 수 있는 온실, 그리고 손님방을 포함한 방 3개. 2층에도 역시 거실이 있고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베란다와 열린공간이 있다. 3층은 창이 많은 간이부엌을 그려놓았다. 앞마당과 넓은 거실, 인근의 풍광을 보는 조망공간이라는 세가지 키워드가 건축주 마음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Wonseok Lee

 

새로 지은 집은 앞 뒤가 크게 다르다. 좁은 골목길로 몇 걸음만 들어오면 만나게 되는 이 집의 정면은 마치 중세 어느 수도원의 담벼락 같다. 고벽돌로 마감한 외장, 사선의 담벼락, 작은 창문, 꼭대기엔 종탑같은 조형물이 보인다. 집이 맞을까 몇 번 둘러볼 수 밖에 없는 외관이다.

 

ⒸWonseok Lee

반면 집 안에 들어서면 전혀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현관을 거쳐 거실을 지나면 옛 느낌 그대로의 마당이 나온다.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 쪽파가 자라고 있고, 한쪽에는 나무 그네가 흔들거린다. 시멘트를 겹겹이 바르고 쇠창살을 삐죽삐죽 꽂아둔 담벼락은 옆집과 50년째 함께 쓰고 있다. 마당을 돌아 대문으로 나가는 짧은 산책로는 주차장을 겸해 쓰지만 땅을 밟고 걷는 행복감을 준다.

이 집의 뒷모습은 또다른 세계다. 둥그런 원을 절반씩 잘라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아치(arch)형의 파사드(facad)는 장엄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정문쪽이 폐쇄적인 수도원같다면 뒷모습은 너른 가슴으로 둥그렇게 품어주는 성당의 느낌이다.

김현대 건축가는 이를 두고 ‘아홉 개의 정사각형 격자(nine-square grid)’라는 잘 알려진 건축 유형을 적용했다고 한다. 가로와 세로의 공간을 3칸으로 나눠 층마다 9개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집은 이 개념을 변형해 1층 응접실과 3층 천청까지 열린공간으로 연결해 중심형 공간으로 만들고 나머지를 대칭적으로 배치했다. 덕분에 응접실 소파에 기대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됐다.

2층 왼쪽 침실과 오른쪽 서재 겸 작업실을 연결하는 복도에서 응접실을 내려다보며 음악을 들을 때면 집 전체가 울림통이 돼 마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서있는 느낌이다. 서재에서 앞마당을 내다보는 창 역시, 1층 온실과 이어져 아치형 구조로 돼 있어 해가 지나가는 시간마다 달라지는 형형색색의 빛과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Wonse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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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계단실을 따라 3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다보면 정면 대문에서 바라봤을 때 종탑처럼 느꼈던 아치형 창문을 만날 수 있다. 북쪽의 풍광을 볼 수 있도록 창을 내면서 여기에도 아치형 곡선을 적용한 것이다.
다락방은 3면이 모두 창문이다. 옛 집에서 철계단으로 옥상을 오르내리던 불편함을 없애고 사계절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실내 전망대처럼 바꾼 것이다.
여기에다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해 창너머 풍광을 감상하며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실 수 있도록 빈 백(bean back) 쇼파와 간이 주방도 마련해뒀다. 자고 갈 사람들을 위해 침구도 넉넉히 준비해뒀다. 루프탑이 있는 옥상층 게스트하우스 못지 않았다.

 

ⒸWonse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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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공간을 만든데 대해 건축주는 “이 아름다움을 혼자 즐기기가 너무 미안했다. 제가 받은 혜택이지만 여럿과 나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고 건축가가 훨씬 더 멋지게 풀어내줬다”면서 “덕분에 제 남은 인생을 사람들과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개발차익을 생각해 옛 집을 팔고 편리한 아파트나 넓은 전원주택으로 이사갈 수도 있었고, 층마다 방을 빼곡히 넣고 임대수익을 올리는 다가구 주택을 만들 수도 있다. 반면 이 집주인은 옛 추억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마당과 일생 매진했던 연구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는 서재,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응접실과 손님용 공간을 만드는데 그동안 모아둔 재원을 투입했다.

 

ⒸWonse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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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건축주가 언제 준비했는지 간식을 내놓았다. 깔끔한 접시 위에 먹음직한 샌드위치, 고구마를 곁들여 빠르게 내놓은 솜씨를 보니 손님을 치른 경험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맛도 아주 좋았다.
“인생 후반기를 보낼 방법은 각자의 선택일 수 밖에 없지만 저는 제 나름의 결정을 한 것입니다. 건강이 허락해서 좀 더 많이 나눌 기회를 만들기 바랄 뿐입니다.”

은퇴 후의 삶, 인생 2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과 형편에 달렸다. 비단 어디서, 어떤 공간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중심을 두며 사느냐가 지역도, 공간도 달라질 것이다. 남다른 생각으로 서울 한복판에 이런 기록할만한 주거공간을 만들어낸 건축주에게 새삼 존경심이 느껴졌다.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는 해가 앞마당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인왕산과 북악산 위 하늘로 반짝반짝 별이 떠올랐다.

 

ⒸWonse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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