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주택에 관한, 알아두면 쓸모있을지도 모를 지식들②

걸리버들이 산다: 대형주택의 축소판이 아니다
글_MAGAZINE BRIQUE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여행기The Gulliver’s Travel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여행기The Gulliver’s Travels>에서 걸리버가 처음 방문하게 되는 곳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소인국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문이 아닌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지만 어쨌건 그곳은 모든 것이 다 작은 공간이다. 국왕이 거주하는 대정원이 있는 왕궁도 걸리버가 거주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공간이다.

이렇게 보면 공간이란 것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대저택을 작게 축소하면 소형주택이 될까? 반대로 소형주택을 크게 확대해 놓으면 대저택, 즉 대형주택이 될까? 양쪽 모두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또는 인체 비례도Canon of Proportions에 맞는 공간이 우리같은 걸리버들에게는 필요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또는 인체 비례도Canon of Proportions ⓒGettyImagesBank

 

단어는 대상을 한정한다. ‘꽃이라고 불렀을 때 의미가 된다’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김춘수 시인의 시를 소환해보자면, 대상을 책으로 불렀을 때 양피지에 적힌 글도 책이 되고, CD 또는 USB에 담긴 텍스트도 책이 된다. 아마존에서는 전자책이, 어도비에서는 PDF파일이 책이 된다.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종이책이 아닌 책을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낯설었다.

용도에 따라 책의 범주도 확장된다. 라면냄비의 받침으로 사용되는 대학 동기의 논문도, 절대 펼쳐볼 일이 없이 서재 한쪽을 장식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영화 <제이슨 본>의 격투기에서 무기로 사용된 양장본도 책의 테두리에서 그 용도로 사용됐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또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특성이나 의미가 일방적으로 정의되고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버리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문제는 그러한 일반적인 카테고리에 하나의 대상이 묶여버리는 경우, 그것만이 가진 특성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집 또는 주택,  또는 주거건축물로 불리는 공간이 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 건축에 큰 공헌을 했다.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연구의 선구자이며 밀집 도시의 거주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했다. -편집자주)의 4평짜리 작은 오두막집이 집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걸리버들이 살 수 있을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방 한 칸 남짓한 크기지만 사람이 거주하는데 꼭 필요한 기능들을 갖췄기 때문에 이 오두막도 집의 범주에 들어온다.

 

르 코르뷔지에 오두막집(카바뇽) Cabanon de Le Corbusier By Tangopaso (Own work)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소형주택이 소인국의 사람들을 위한 집이 아닌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소형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걸리버들이다. 크기를 일괄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결국 소형주택이 갖는 특징이 된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부합하는 주택이란 불필요한 기능을 줄이고 필요한 기능을 단순화한 주택이란 의미다. 사적인 공간, 공적인 공간,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들이 주거건축물에 필요하고, 흔히 구분하듯이 거실, 침실, 욕실, 주방의 기능을 갖는 공간들이 소형주택에도 당연히 필요하다.

국내에서 원룸이라고 불리는 스튜디오Studio 형태의 주거는 하나의 공간을 구획으로 나누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공간은 전통적으로 벽으로 분리될 수도 있고, 파티션이나 가구, 조명의 위치 또는 밝기로 구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형주택도 ‘주택’이란 사실이며, 그 기능은 주택이 갖는 일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기능에 부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글 싣는 순서 : 소형주택에 관한, 알아두면 쓸모있을지도 모를 지식들

1. 저렴하지 않다: 설계, 공간을 위한 출발점
2. 걸리버들이 산다: 대형주택의 축소판이 아니다
3. 낯선 외관과 공간에 익숙해지기까지: 당신의 삶을 살 준비가 됐습니까?
4. 은퇴한 이들을 위한 주택: 쉐어하우스, 그리고 공간의 교집합
5. 시장은 변화할 것인가: 삶의 질을 위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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