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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기능의 삭제는 가장 게으른 방식

작은 공간도 건축적 아이디어를 보탠다면 충분히 살만해진다.
ⓒGettyImagesBank
글. 박태상, 조수영 수상건축 책임건축가

 

수상건축 박태상 소장(왼쪽)과 조수영 소장 ⓒInkeun Ryoo

 

한국 사회의 주거문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부동산 시장과 끝없는 경쟁의 연속인 도시의 삶에 지쳐 많은 이들이 귀농의 꿈을 갖지만 이와는 별개로 모두가 동의하는 한가지, 어쨌거나 집의 평면은 아파트를 닮아야 한다. 도시의 경쟁과 고스란히 닮아 있는 아파트를 거부하고 싶지만, 대안을 모른다. 왜냐하면 아파트 외의 주거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본 적도 없다.

아파트를 아파트답게 만드는 계획의 핵심은 거실에 있다. 부부와 두 자녀, 4인 가족이 표준이 되는 한국사회 가족주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보통 거실의 평면 구성은 TV의 위치에서 큰 결정이 난다. 효과적으로 TV시청을 하려면 한쪽 벽면에 TV를 놓고 반대편에 소파를 놓는다. 극장형 평면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TV 브라운관이 LCD로 변하면서 가시거리 기준이 바뀌자 그나마 평면의 깊이가 늘어났다. 결국 거실의 가로세로는 가족이 나란히 앉아, 가장 대중적인 크기의 TV를 적당히 떨어져 보는 것으로 결정된다. TV가 거실의 평면을 지배하는 셈이다.

변화가 좀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TV의 지배력이 위협을 받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거실에 모일 필요가 없게 됐다. 각자 방에서 각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즐기면 된다. 지상파가 아니어도 볼거리가 많다. 거실 한 가운데서 TV 채널 선택권을 갖고 가족에게 존경을 요구하던 가장의 위상이 약해진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거실은 여전히 집의 기능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가족 구성원이 여럿이어도, 1인 가구여도 마찬가지다. 현관에서부터 집의 각 공간으로 동선을 이어주고, 사람이 집에서 하고자 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수용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사는 원룸형 스튜디오는 거실이 곧 침실이고, 주방이고, 작업공간이다. 그런데 이 다목적 공간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7평이었던 것이 요즘은 4평까지 줄었다. 쪼갤수록 돈이 되니 더욱 쪼갠다. 부동산 경제 논리 탓에 이 작은 공간에 살아야할 이들의 주거 권리는 점점 퇴보하고 있다.

작은 집에서 사는 삶이 비참한 이유는 사실 별 게 아니다. 침대에 누워 멍하게 쉬고 싶은 순간에도 며칠째 묵혀 놓은 설거지가 눈 앞에 거슬린다. 공간효율성을 높인다며 싱크대와 침대의 거리를 극적으로 줄인 탓에 정작 거주자의 삶의 질은 뒤로 밀려났다. 난장판인 방 곳곳을 택배 배달원이 훑고 가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민망하다. 현관에서 방 전체가 훤히 보이도록 친절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햇볕을 쬐기 위해 조금이라도 열고 싶지만 앞 집 시선이 무섭다. 발코니라도 있으면 바람도 쐬고 냄새나는 쓰레기봉투라도 내어놓겠지만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임계를 지나 아예 공간의 종류와 구획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거실과 주방이 합쳐지는 것은 당연하고, 주방이 없는 곳도 많다. 화장실은 유리벽으로 구획된다. 창문이 없는 방도 부지기수다.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될 정도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고 비혼율이 늘면서 1인 가구는 급속히 늘고 있는데, 1인 가구를 수용할 공간의 질은 더욱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대안이 없을까. 이는 공간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건축적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인들이 거주하는 우주왕복선이나 요즘 유행하는 캡슐호텔은 공간은 작지만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기능들을 상당수 갖췄다. 벽걸이 세탁기와 벽걸이 냉장고 같은 원룸형 가전도 이미 출시돼 있다. 원룸 스튜디오라도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가구를 활용해 기능에 맞춰 공간을 나눌 수 있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 쪽창이나 작은 발코니라도 내 바깥 공기를 들이고, 수납할 수 있는 다용도실을 넣을 수도 있다.

기능의 삭제는 작은 공간을 다루는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삭제가 아닌, 그 기능의 작은 버전을 고민하는 게 맞다. 작지만 살만한 공간을 만드는 일, 1인 가구 시대를 맞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MAGAZINE B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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