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옥의 변천사

재래식 단층한옥에서 쓰리베이 고층아파트로 진화, 대청마루처럼 완충공간 있는 현대식 한옥 등장
ⓒYoungchae Park
글. 유현준 홍익대 교수,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MAGAZINE BRIQUE
 

벼농사 vs 밀농사
보통 한옥이라고 하면 단층건물에 주춧돌이 있고 그 위에 3미터가 안 되는 길이의 나무로 지어진 집을 상상한다. 가운데에는 중정형 마당이 있는데, 꾸미지 않은 그냥 흙바닥이다. 있다. 처마는 길게 뻗어 나왔고 지붕 끝부분인 추녀는 들리워져 완만한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한옥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한옥은 왜 이런 형태를 띠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건축디자인이 여타 다른 디자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디자인은 패션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이 수용하지 못하는 다른 점이 있다. 사람보다 훨씬 큰 디자인을 하며 안전도 생각해야한다. 또 밖에서 바라보는 외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는 사람이 보는 내부의 모습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옥은 우리나라 기후의 영향 때문에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세계 문화권은 주식을 기준으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벼농사를 지어 수확한 쌀로 지은 밥을 먹는 문화권과 밀농사로 거둔 밀로 만든 빵을 먹는 문화권이다. 이 두 농작물을 나누는 기준은 강수량이다. 1년에 강수량이 1000mm 이상이 오면 벼농사가 가능하고, 밀은 그 이하 강수량 850mm 정도의 지역에서 농사가 가능하다.

이런 기후의 차이가 건축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다.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는 주로 벽돌 같은 재료를 이용해서 건물을 짓는다. 그러다보니 벽이 구조체이다. 벽에 창문을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때문에 창문은 좁고 길게 뚫고 크게 만들려면 세로로 뚫었다. 유리가 없을 경우에는 나무를 덧대 창문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주변경관은 별 볼 일 없다.

밀 농사지역이 주를 이루고 있는 서양의 건축이 건물 외형과 창문 간의 황금 비율을 찾아 창문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방법을 찾는데 초점에 맞춰진 이유다.

반면에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같은 기후에서는 벽돌로 집을 지었다가는 장마철에 땅이 물러져 무거운 벽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무를 주로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 문제는 나무는 물에 오래 노출되면 썩는다. 그래서 땅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를 그 위에 세워서 집을 지었다. 비에 노출되기 쉬운 대청마루는 땅으로부터 띄워서 습기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나무로 집을 짓다보니 기둥 중심의 건축이 된다. 이는 벽 중심의 건축인 유럽의 건축과는 상반되는 특징이다. 기둥중심의 건축에서는 벽이 필요 없다. 벽은 창문을 크게 만들 때나 필요하다. 더욱이 우리는 창의 가림막으로 창호지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안에서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중요한 가치판단 기준이 됐다.

 

달구지와 건축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으려면 기둥과 기둥 사이에 ‘보’가 들어가야 한다. 보가 클수록 방의 크기도 커질 수 있다.

문제는 교통수단이다. 선조들이 주로 사용했던 교통수단은 소달구지로 이걸로 운반가능한 나무의 크기가 정해져 있었다. 약 3미터 남짓. 그래서 우리나라 한옥은 방 한 칸은 소달구지로 이동할 수 있는 나무 기둥의 크기로 정해졌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집을 크게 지으려면 작은 방을 옆으로 연결한다. 결국 좁고 긴 건물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ㅁ’자 ‘ㄱ’자 같은 형태의 집이 나오게 되고 그 안은 건물이나 담장으로 구획된 마당이 들어가게 된다. 즉, 우리가 가진 건축 재료와 기술로는 대형 실내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전통 한옥에서 작은 마당은 추수한 곡식을 탈곡하는 작업장의 기능도 겸했다. 그러다보니 더욱 더 마당을 중심으로 방이 배치가 되는 구조를 띠게 됐다. 그리고 마당에서 여러 일을 해야하다보니 정원이 아니라 흙바닥이 된 것이다.

 

쓰리베이 거실과 마당
한옥의 또다른 특징은 단층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온돌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난방시스템인 온돌은 아주 효율적이고 편리하다. 반면에 구들장이 무거운 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2층으로 방을 쌓아올릴 수가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유독 우리나라에 오래된 전통건축 양식이 없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나무로 만들어져서 각종 전쟁에 소실되었다. 둘째는 고밀도화가 필요하는 근대 도시사회에서 단층주택은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만약 서울 인구가 모두 한옥에 산다면 아마도 충청도까지 수도권이 확장돼야할 것이다.

 

ⓒMAGAZINE BRIQUE

 

전통 한옥과 근대식 한옥
앞서 설명한 기후, 재료, 경제, 기술적 제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주거의 표준이 한옥이었다. 이 환경적 기반들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한옥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급속히 진행된 근대화, 산업화는 한옥디자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변화의 불을 지핀 것은 ‘석유 곤로’였다. 이 에너지원이 나오면서 취사를 하는 불과 난방을 하는 불이 나눠지게 된다. 한옥 아궁이의 분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석유곤로는 가스레인지가 되었고, 연탄아궁이는 연탄보일러를 거쳐서 가스보일러가 되었다. 보일러가 자리잡으면서 우리나라 주거는 역사상 처음으로 2층 형태로 바뀌게 됐다. 여기에 1970년대 들어서는 2층 양옥집이 생겨났고, 곧이어 12층짜리 아파트가 등장했다. 현대식 공동주택의 주된 재료인 철근콘크리트에 보일러, 엘리베이터라는 신발명품이 접목됐다. 고밀도 주거형식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아파트는 다른 나라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쓰리베이(three-bay) 평면’이다. 우리나라는 집의 남향 배치를 워낙 강조하기 때문에 아파트에서도 이같은 요구가 반영됐다. 모두가 남향을 선호하니 최대한 남향의 공간을 뽑아내야 집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평면이 쓰리베이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보통 거실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방을 배치한다. 그런데 이같은 평면도는 한옥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옛 한옥 마당에 지붕을 씌워서 실내 공간을 만든 것이 바로 거실이다. 우리나라의 중산층의 상징이 된 30평형대 쓰리베이 아파트는 마당을 거실로 바꾼 한옥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좁고 긴 발코니는 툇마루의 변형이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유럽이나 미국과 크게 다른 이유다.

방에서 방을 보는 창
쓰리베이 아파트의 평면은 한옥과 비슷하지만 공간구조는 방과 방 사이의 관계적 측면에서 아주 다르다. 한옥에서는 안방에서 창문을 열면 마당 건너편에 사랑채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내 방에서 다른 방의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에 현대식 아파트는 방에 들어가면 다른 공간과 차단되고 창문을 통해 밖을 보게 돼 있다. 방에서 방을 바라보는 창문이 없다. 마당의 역할이 변형된 거실에서도 가족 구성원 모두 한 쪽 벽면의 TV만 쳐다본다. 상호 소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철근콘크리트의 경제적인 벽식 구조로 고층 아파트를 만들다보니 공간 간 단절이 당연하게 됐다.

ⓒMAGAZINE BRIQUE

 

한옥의 발전적 계승
우리나라 주거는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해 한옥이라는 건축디자인을 만들었고, 보일러와 콘크리트가 나오면서 한옥의 평면 체계를 응용한 쓰리베이 고층 아파트로 변모해왔다. 하지만 벽체 중심의 공간 분할이 이뤄지면서 방들 간 소통이 단절되고 가족 간 불통으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낳았다.
최근 들어 한옥의 가치를 깨닫고 재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한옥은 옛 시대 산물이다. 그 시대에 역할을 다한 건축양식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맞는 재료와 기술로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만들어야한다. 그것이 건축가의 책무이다. 한옥의 본질적 장점을 찾아 새로운 시대와 땅에 적용해야한다.
이 시대에 단층짜리 한옥을 짓는 것은 어쩌면 조선시대 도공이 백자를 만들 생각은 안하고 고려시대 청자만 만들려는 것과도 같다. 한옥을 바라보는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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