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일상을 판매하는 곳

[Story] ‘키친툴 & 툴스 빌딩’ 공간 이야기
©Kyung Roh
에디터. 박지일  사진. 노경, 윤현기  자료. 리툴스디자인사무소
 

① 더나은 일상을 판매하는 곳 — ‘키친툴 & 툴스 빌딩’ 공간 이야기
[Architects] 리툴스디자인사무소가 말하는 ‘키친툴’ – ‘키친툴 & 툴스 빌딩’의 운영과 전략에 관한 모든 것

 



소비의 새로운 기준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물가 고공 행진이 계속되면서 소비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 대비 효용 가치가 높은 가성비 제품을 찾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이 높은 가심비 제품을 더욱 선호한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 계층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결이 비슷하거나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라면 지갑 열기를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데서부터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이제 소비의 새로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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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의 성지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키친툴’은 주방용품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곳이다. 그릇부터 조리기구, 패브릭 등 국내외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품질 좋은 살림 도구를 판매하는 큐레이션숍이다. 일본 제품을 시작으로 현재는 독일과 영국, 미국 제품까지 아우르는 이곳의 큐레이션 기준은 자신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영역을 빛내주는 물건을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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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매장에서 복합 공간으로
코로나19는 일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식문화의 경우 외식은 줄이고 배달이나 간편식,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추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나를 위한 자기만족적 수요로 달라진 식문화와 더불어 좋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키친툴 성장의 큰 동력이 됐다. 작은 지하 매장이었던 키친툴은 카페로 영역을 확장하고 전국적인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했으며, 얼마 전 사옥을 갖춰 새로운 쇼룸 오픈을 앞두고 있다.

 

지역 리빙숍의 진화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동네
키친툴은 대구 현충로의 명소인 앞산 카페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다. 이곳의 행정구역인 대명동은 1970년대 국회의원이나 기업 총수 등 사회지도층이 주로 거주하던 대구의 주요 부촌 중 하나다. 당시 새로 지은 건축물은 유럽식 적벽돌에 작은 마당 딸린 양옥이 대부분으로, 이는 1970년대 정부가 추진한 산림녹화정책에 의해 한옥 신축이 제한되면서 유행처럼 확산한 건축 양식이다. 현재도 이 지역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고유한 건축 양식의 주택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일부는 리노베이션을 거쳐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변모했다.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오래된 주택과 이를 리노베이션한 카페, 듬성듬성 새롭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뒤섞여 독특한 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Kyung Roh

 

새로운 쓰임을 입은 주택
키친툴이 자리한 건물 역시 1979년에 지어진 주택을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주택을 통으로 매입해 지하층에 매장을, 나머지 층은 카페와 사무실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리툴스디자인사무소는 설계부터 시공, 운영 전반을 담당했다. 기존 주택의 형태는 최대한 유지한 채, 간결하지만 볼륨감이 느껴지는 회벽돌 직사각형 건물로 재구성했다. 답답한 지하층에는 경사지의 특성을 이용해 개방감 있는 전면 유리 파사드를 계획하고, 드라이 에어리어dry area는 선큰 공간까지 적극적으로 확장해 쇼룸의 일부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지하층에서도 1층과 같은 채광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지하층은 쇼룸, 1층은 카페, 2층은 사무실 및 스튜디오로 계획됐다. 두 곳의 이면도로와 맞닿아 있는 점을 활용해 양방향에서 쇼룸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배치하고 1층은 외부 공간과 연계해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다. 날씨가 좋으면 출입구 계단이나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이웃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테라스의 큰 창문을 활짝 개방해 실내에서도 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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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된 변화를 위한 새단장
2016년 리노베이션을 마친 키친툴은 쉽게 구할 수 없는 품질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입소문을 타며 순식간에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윽고 2021년, 공간은 사업 확장을 위해 또 한 번의 변화를 마주해야 했다. 지하 1층의 쇼룸은 공간이 협소해 더는 물류를 보관할 수 없었고, 제품과 연계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1층 카페는 관리 문제로 운영이 무의미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기존의 양옥을 리노베이션했던 만큼, 2층의 업무공간 역시 업무용으로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이에 쇼룸의 확장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 전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하 1층의 쇼룸을 1층까지 확장해 판매 제품의 범위를 넓혔고, 쿠킹 스튜디오나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오픈 스튜디오를 1층에 추가로 마련했다. 새로운 쇼룸은 방문객이 오롯이 제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별도의 칸막이를 계획하지 않고 백색의 심플한 공간에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목재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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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을 넘어선 신축
점진적 사업 확장에 따라 키친툴은 더 나은 물류 시스템을 위한 사옥도 마련했다. ‘툴스 컴퍼니Tools Company’로 이름 지은 새 건물은 계획한 용도에 더해 임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설계로 진행했다. 홀로 돋보이기보다는 골목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동시에 사업 운영을 뒷받침할 여러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Kyung Roh

 

1층은 물류의 원활한 진출입이 가능하도록 진입로의 레벨을 도로보다 높이고 윙바디 차량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끔 필로티의 높이를 키웠다. 가로에서 셋백된 입면은 볼륨감 있게 구현해 한층 인상적인 외관을 만들었다. 물류창고 및 업무공간으로 사용되는 2~4층에는 층별로 기다란 수평의 창을 내어 주변 경관과 햇빛을 내부로 적극 끌어들이고, 충분한 개방감이 느껴지도록 구성했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4층과 옥상에서는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중심부에 높게 솟은 붉은색 타일은 동네의 풍경을 이루는 적벽돌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나름의 차별화 요소다. 입면 콘크리트 덩어리에는 향후 조경이 더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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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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