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주)지아이피건축사사무소 GIP Architecture
아레나(Arena)는 둘러싸인 무대를 말한다. 일반적인 주택이 그런 모습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모든 공간이 거실을 둘러싸도록 계획하고 무대가 되는 공간을 중심으로 계단식 객석이 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하면 2층에서도 내려다 보이고 발코니 객석 느낌도 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모든 공간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불필요한 공간이 되지 않도록, 즉 군더더기가 없도록 힘을 기울였다.
전문 무대의 아레나는 아니지만 홈 웨딩이나 홈 콘서트가 갖는 장점처럼 공간적 특징을 갖길 원했고, 그같은 공간은 마당과 정원이 실마리였다. 즉, 정원과 마당이 양쪽으로 둘러싸인 아레나가 되도록 계획한 것이다. 앞 마당에서 내부 아레나(거실)를 바라보면 건너편 후정까지 시선이 뻥 뚫린다. 이는 아레나에서 공연을 하는 느낌으로 문을 모두 열면 정원과 마당까지 무대가 된다.
이런 배치의 시행은 단순히 공간 연출을 위함이 아니였다. 집이 입지한 대지는 북향 경사면을 깎아 만든 마을의 일부였는데, 남쪽과 서쪽이 접한 땅이 1개 층만큼 높고, 동쪽에 입지한 경사도로로 전망이 트였다. 그래서 다른 집과 달리 대지의 중앙에 건물을 남북으로 길게 놓아 정원을 둘로 가르는 계획이 나온 것이다. 처음엔 남과 다른 배치에 어색해 하던 어르신도 직접 가꿀 수 있는 뒷마당이 생겼고, 햇볕을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만족해 하셨다.
이 집의 외관은 검정색 육중한 건물을 날렵한 흰 벽이 양 쪽에서 감싼 방식인데, 본래 날렵하게 위로 솟아 올라간 옷 깃 같은 디자인이 일부 이웃의 반대로 끝이 꺾이고 말았다. 끝이 날카로워 불안하다는 주장이였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사건이였고, 결론적으로 건물은 타협과 부드러움으로 마무리 됐다. 본래 디자인의 의도는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가 어우러지는 성악을 표현하고 싶었다.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클래식 음악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집이 거실이 중심이긴 하지만, 다른 공간들도 하나하나 의미있고 잘 다듬어져 있다. 1층 어르신 방과 화장실은 어두운 색감으로 문과 벽을 통일해 눈에 띄지 않게 했고, 거실과 완전히 분리된 부엌은 깔끔하게 숨어 있으면서도 부엌 일에 불편함이 없도록 규모가 크다. 이 둘을 이어주는 식당은 넓고 시원한 전망을 갖고 있는데 거실에서 보더라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으며 앞마당과 바로 연결된다. 멀리 전망도 잘 보여 가족의 휴식 공간이 된다. 다용도실 남쪽 벽은 모서리 전창이 있는데, 덕분에 비를 피해 빨래를 널어도 되고 밝고 시원하고 뒷마당과 바로 연결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둘로 갈라지는데 레슨실과 가족공간이다. 레슨실은 밖에서도 출입가능한 작은 테라스가 있다.
가족 공간은 아이방과 안방이 드레스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사이 공간에는 서재 등으로 사용하는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도 있어 공용 공간을 공유한다.
딸 방은 전망이 좋은 동쪽에 위치해 복층으로 설계됐고, 남북으로 긴 건물이기에 동서로 조금씩 돌출된 방은 남쪽을 향한 모서리 창으로 각각 남동향, 남서향 빛을 고루 받는다.
거실에서 올려다 보면 무게감 있는 목재마감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욕실이다. 세면실로 들어가면 욕실과 화장실을 따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아레나는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각 공간의 기능은 살아있는 알찬 집으로 마무리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