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자료.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구기동 공동주택은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외국인 학교 교사들의 집이다. 집터는 남동쪽으로 도로를 면하고 북한산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다. 계획은 주거 공간에서 직장 동료이자 이웃인 거주자들 간의 관계가 어떠한 사회적 관계로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였다. 전용면적 기준으로 설명되는 부동산 가치만이 중시되는, 지극히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내외부의 풍부한 사이 공간으로 도시에 대응하며 이웃 간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하고자 했다.
공동주택 특히 아파트에서 발코니는 바깥 공기를 접하는 곳으로, 1960년대 아파트가 보급되면서부터 환기와 채광, 비상 대피뿐만 아니라 장독 보관, 세탁물 건조를 위한 생활 보조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확장형 발코니라는 이름으로 발코니의 실내 공간 전용이 허용되고 건설사의 분양가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 된 현재,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발코니를 확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발코니 공간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다. 발코니를 아랫집 차양이자 각 세대가 점유할 수 있는 실외 공간,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마당으로 돌려주고자 했다. 안쪽으로 깊숙이 놓여 내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ㄱ자의 발코니는 일정 폭으로 다양한 활동을 유도한다. 실내와의 경계는 투명 창으로 연결해 더욱 넓은 공간감과 깊이감을 주고자 했다.
구기동 공동주택은 사방으로 열린 집터에 순응하며 여러 개의 유닛이 모여 이루어진 ㄱ자 형상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담는 내향적인 1층 마당과 층별 가든을 갖추고 있다. 마당을 향해 열린 복도, 층별 가든 등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자연스럽게 교류와 소통이 일어나는 골목길 같은 공간을 의도하였다. 조금은 길고 느린 진입 동선은 주택 안에서의 풍부한 여정을 가능케 한다.
‘세대 내로 관입된 발코니 – 거실 – 바람과 빛을 내부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이는 보이드 – 복도 – 마당’으로 연결되는 공간의 연속성과 시각적 투명성으로 이웃 간 삶의 공유를 유도하였다.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 시선, 구수한 밥 짓는 냄새, 정겨운 소리. 거주자들은 건축 안에서 동료이자 이웃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며 좀 더 친밀하고 정겨운 이웃사촌이 되어갈 것이다.
자그마한 화단이 있는 모서리의 출입구와 로비를 지나 1층 로비로 연결되는 진입 공간은 동선 흐름과 천장고에 다양한 변화를 준 전이 공간이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
15세대의 싱글 유닛과 10세대의 더블 유닛. 총 25세대가 거주하는 구기동 공동주택은 위치별로 세분화된 8개 타입의 다양한 유닛을 갖고 있다. 기본 유닛이 모여 건물의 형상과 정체성을 형성하고 위치에 따라 각 유닛의 레이아웃을 부분 변경하여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도시 전망을 담고자 했다. 가까운 동네 풍경부터 북한산 자락까지 담기도록 창의 위치와 크기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조적벽을 유닛 내부까지 연장시켜 거주자가 재료의 연속성과 질감을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게끔 하였다.
대지경계선에 맞춰 대로변 공공보도를 확장해 버스 정류장이 있는 담장 밖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었다. 도시와 마을, 자연 속 열린 모서리 대지의 특성을 고려하여 담장은 콘크리트 U블록으로 구축하였다. 벽의 질감과 빛에 따른 변화, 로켓향나무 등의 식재를 통해 담장 너머 동네 풍경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