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 하이브리드 시대, 사람과 자동차를 함께 채우다

주유소 부지를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 ‘길동 채움’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사진. 이동웅  자료. 길동 채움

 

차에 연료를 채우는 시간은 일상이 잠시 정지되는 순간이다. 주유라는 목적을 갖고 방문할 뿐, 지금껏 누구도 주유소를 향유하는 공간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당시 직영 주유소 사업을 진행하던 SK네트웍스는 변화하는 모빌리티 환경에서 새로운 콘셉트의 공간을 만들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연기관을 탑재한 일반적인 자동차의 주유 장소가 아닌,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충전되는 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1월 말 문을 연 ‘길동 채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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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가진 공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길동 채움이 가진 성격은 독특하다. 우선 서울의 주요 상권이 위치한 도심에서 벗어나 강동구 길동에 자리 잡았고, 현대자동차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지상 1층에는 국내 최초의 전용 전기차 충전소를 들여놓았다. 전기차 누적 대수 10만 시대가 열렸지만,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우려 속에서 이들이 선보인 충전소는 어떤 해법을 가진 곳일지 더욱 주목해볼 만하다. 전기차 충전소뿐만 아니라 두 개 층 규모의 ‘테라로사’, SK매직의 브랜드샵 ‘잇츠 매직It’s magic’, SK네트웍스의 ‘채움 라운지’ 역시 충전과 휴식이라는 일관된 콘셉트 아래 조화롭게 구성됐다.

SK네트웍스는 왜 20년을 넘게 운영하던 주유소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걸까. 길동 채움 프로젝트 박종덕 책임 매니저에게 이곳이 문을 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테라로사 1층 ⓒBRIQUE Magazine
전기차 충전소 EV스테이션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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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동차를 충전시키는 두 가지 역할

길동 채움은 그 이름에서부터 공간의 역할과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과 자동차가 이곳에 머물며 에너지를 채우고, 다양한 사람이 드나들며 공간의 여백을 함께 채워간다는 의미까지 담았다. 공간을 기획한 SK네트웍스가 ‘채움’이라는 콘셉트를 잡은 것은 2017년 진행하던 직영 주유소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공간 조성에 앞서 초기 단계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를 위한 복합 주유소를 계획했다. 이에 국내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현대자동차와 파트너 관계가 시작됐는데, 아이디어를 전개하던 중 ‘충전’의 기능에 집중한 공간을 조성해보자는 기획으로 갈피를 잡았다.

그들이 기존 사업을 통해 들려주는 목소리가 그저 자동차의 충전 기능이었다면, 이 공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충전하고 채워가는 공간의 문화적 역할이다. 사람이 머물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공간과 재미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에 하나둘씩 파트너들과 협업 관계를 맺어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길동 채움이 완성됐다.

 

테라로사 1층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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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외곽에서 사람을 불러모은 비결

이곳에는 지난 20년간 SK네트웍스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길동 주유소’가 있었다. 강동구 길동은 경기도로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한 서울 최동단 지역에 속한다. 복합문화공간이 주로 들어서던 강남권과 마포, 성수 일대 등 핵심 상업 지구가 아닌 주거 지역으로 입지를 선정한 것은 그들이 목표로 삼은 공간의 역할이 반영된 결과다.

일반적으로 서울 도심의 주유소가 300평대라면, 이곳은 508평에 달해 상대적으로 넓은 평수에 속한다. 주변 도로가 넓고, 주거 환경이 밀집된 곳으로 복잡한 상업 지구에서 벗어나 휴식이라는 콘셉트로 공간이 들어서기에도 알맞다. 넓은 도로로 서울과 경기 각 지역에서 자동차의 유입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도보로도 누구든 접근 가능해 원도심에서 벗어나 모빌리티 환경 변화를 이끌 상징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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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BRIQUE Magazine

 

길동 채움의 한쪽 벽면에서는 아직 주유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주유소를 철거한 뒤 일반적인 상업 시설이 아닌 문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에 많은 공을 기울였는데, 특히 2층 카페에서 앉아 1층 전기차 충전소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는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재미다. 높은 층고와 노출 콘크리트, 독특한 카페 공간 구성은 웅장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1층과 2층은 마감을 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라면, 3층과 4층은 따뜻한 색상과 소재를 활용해 층별로 다른 내부 콘셉트를 보여준다.

 

테라로사 2층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기차 충전소 ⓒBRIQUE Magazine
테라로사 2층 ⓒBRIQUE Magazine

 

건축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홍익대 교수와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가 설계와 자문으로 각각 참여했다. 테라로사 국립현대미술관점과 포스코센터점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인연을 맺었던 팀이 이곳에서 다시 뜻을 모은 것. 카페 브랜드가 들어서기 위해서 입지와 주변 상권을 살피는 것이 관례인 것에 반해 김 대표는 입지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한다.

 

테라로사 2층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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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대표와는 첫 만남부터 인상 깊었습니다. 입지를 바라보는 관점이 기존 만나봤던 리테일 사업들의 기준과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완벽하게 구축된 상권이 아니더라도 직접 선택한 곳으로 들어가 주변 지역 문화를 테라로사가 만든다는 마인드를 갖고 계셨습니다. 멀리서도 테라로사를 보고 찾아오게 만드는 거죠. 저희가 말하는 ‘채워간다’는 공간의 의미와도 잘 맞았어요. 김 대표는 테라로사의 건축 설계를 직접 진행한 경험도 있으시고, 건축과 인문학에 조예가 깊으셔서 길동 채움의 자문 역할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 박종덕 길동 채움 책임 매니저

이로써 테라로사 길동점은 서울에서 일곱 번째로 선보이는 매장이 됐다. 기하학적인 추상과 강렬한 색채를 담아 매력적으로 탄생한 테라로사는 자동차 충전소인 1층 ‘EV스테이션’과 대비되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역할이 된 셈이다.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 충전소와 카페가 함께 자리 잡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3층 ‘잇츠 매직’의 미디어 월 ⓒBRIQUE Magazine

 

문화 공간이 가진 힘

길동 채움은 층마다 모두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이 들어섰다. 지상 1층에는 전기차 충전소 현대 EV스테이션, 1층 실내 일부와 2층에 카페 테라로사가 자리 잡았고, 3층에는 SK매직의 브랜드샵 잇츠 매직, 4층에는 SK네트웍스 구성원들의 원격 오피스이자 세미나 장소인 채움 라운지가 조성되어 있다. 전혀 다른 역할을 가진 기업들이 한 곳에 들어섰지만, 그들은 모두 일관된 메시지를 지닌다.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는 것. 그리고 ‘사회·지역과 상생한다’는 것이다.

EV스테이션에는 최신형 초고속 충전기 ‘하이 차저’를 설치해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부 공간을 향유하며 즐길 수 있어 오랜 시간 충전을 기다리던 사용자의 불편함 또한 해소했다. ‘하이 차저’는 신형 전기차의 경우 20분이면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할 수 있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기다리면 되는 수준이다. 기존 전기차 충전 시설의 경우 급속 충전시 1시간 내외, 완속 충전 6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어 전기차 보급 속도보다 충전 성능과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우려는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유지 관리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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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환경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실질적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길동 채움 ‘EV스테이션’은 주유소에 비해 몇 배의 시간을 머물러야 했던 전기차 충전소가 복합문화공간의 일부가 됨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공간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1분기에 새로운 모델의 전기자동차 출시 예정을 앞두고 있으며, 전기차 충전소 ‘EV스테이션’을 늘릴 계획이다.

 

3층 ‘잇츠 매직’ 행복정원 ⓒBRIQUE Magazine

 

3층에 자리 잡은 ‘잇츠 매직’은 SK매직의 첫 번째 체험형 브랜드샵이다. 물건 판매보다는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공간을 통해 나타내고, 브랜드 제품과 함께 더 나은 일상을 영위하도록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있다. 국내 음식 다큐멘터리 개척자로 꼽히는 이욱정 PD와 함께 쿠킹 클래스 ‘쿡얼롱cook along’을 진행하고, 공유 주방 ‘길동 키친’을 마련해 공간을 대여해 SK매직의 주요 상품군인 정수기,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 등 주요 제품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쿠킹 클래스 ‘쿡얼롱’이 진행되는 잇츠 매직 ⓒBRIQUE Magazine
잇츠 매직에서는 SK매직의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 ⓒBRIQUE Magazine

 

대형가전매장에서 주로 만나볼 수 있던 SK매직이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체험형 브랜드샵을 연 것은 소비자가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경험하고, 공간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적인 가치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특히 SK그룹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ESG* 경영 방침을 기저에 두고 있어 브랜드샵 내 ‘길동 라운지’ 카페는 친환경 제품만을 사용해 운영되며, 지역 베이커리의 빵을 함께 소개하는 상생 구조를 택했다. 렌털 사업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해오던 SK매직이 자체 브랜드샵을 조성함으로써 제품 경험 기회를 만들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ESG :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과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4층 SK네트웍스 채움 라운지 ⓒBRIQUE Magazine
4층 SK네트웍스 채움 라운지 ⓒBRIQUE Magazine

 

공간의 지속 가능성

SK네트웍스의 투자사인 SK렌터카는 길동 채움을 발판 삼아, 향후 전기차 인프라 구축 역할을 이어받은 다양한 플랫폼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빠른 속도와 복합성을 요구받는 이 시대, 현대 사회 속에서 복합문화공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주목받는 F&B 브랜드가 핵심 콘텐츠로 들어선다면 잠시 주목받는 ‘핫 플레이스’가 될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제 역할을 해내고,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와 지역과 상생하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콘텐츠가 필요할 것이다. 길동 채움은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형체를 통해 담아내고, 사회가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느끼게 만드는 제안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름처럼 사용자의 시간과 마음을 채우고, 사회와 지역에 오래도록 선순환을 일으키는 공간이 될 것이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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