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위한 집

[Story] ‘콘크리트 도서관’ 공간 이야기 #1
ⓒKyungsub Shin
에디터. 김지아  사진. 신경섭, 윤현기  자료.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제2의 삶이라는 새로운 꿈
정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길목에서 건축주 부부는 집을 떠올렸다. 이는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잠시 뒤로했던 집이라는 장소를 향한 원초적 그리움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들은 제2의 삶을 실현하는 공간로서의 집에 주목했다. 그렇게 ‘콘크리트 도서관’은 살아온 집의 장면들과 살아갈 앞으로의 생활을 향한 상상에서 출발했다.

연구원 양진우 씨와 선생님 성기연 씨는 정년을 앞둔 중년의 부부다. 연구와 교육을 업으로 삼아온 이들은 정년 이후 일이 없는 삶을 쉬이 상상하지 못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이라는 영역을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 또 종결될 수도 없는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학문의 속성뿐 아니라 그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생활 역시 그렇다. 그렇기에 건축주 부부에게 집이란 은퇴라는 단어로 비로소 단절되는 생활이 아닌, 기존의 삶을 새롭게 이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Kyungsub Shin

 

도서관이자 집, 집이자 도서관
집을 향한 두 사람의 공통된 바람은 ‘움직이는’ 데 있었다. 멈추는 것은 곧 삶이 아니므로. 매일 아침 일어나 향하던 곳으로 더는 나아갈 수 없을 때 비어버린 시공간을 채울 장소는 이들에게 집이었다. 양진우 씨는 연구실에서 보내던 시간을 일정 부분 마당으로 옮기고자 했고, 성기연 씨는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책과 사색이 있는 공간을 꾸리며 여생을 보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집이 바로 ‘사적인 도서관’이다.

 

ⓒBRIQUE Magazine

 

환대의 골목, 사색의 공간

 

노후화된 주택의 현주소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위치한 콘크리트 도서관은 1960~80년대 가장 보편적인 도시주택 방식으로 지어진 노후화된 시멘트 조적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외관상 큰 문제 없어 보이는 30년 연식의 기존 건물은 부실한 기초에 집 전체가 폐기물 섞인 흙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조적 벽체는 이미 균열이 생긴 상태에 슬라브의 철근 역시 드러난 모습이었다. 건축가는 당시 신속한 공급을 목표로 지어졌던 주택의 단면을 현장에서 마주했다.

 

ⓒAGIT STUDIO

 

결정적인 조건은 신축이 불가능한 대지라는  것. 이 말인즉슨 노후 건축물을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좁고 긴 골목길이 지목상 대지임에도 주차장법을 준수할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아 전체 대지는 사실상 맹지에 속했다. 이러한 연유로 콘크리트 도서관 설계의 큰 방향은 30년 연식의 불완전한 기존 건축물을 온전히 끌어안은 채 영속적이고도 지속 가능한 새 건축물로 만드는 데 있었다.

 

ⓒKyungsub Shin

 

콘크리트라는 일관된 언어
기존 건축물이 취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주요 구조 역할을 하는 벽돌을 철거하며 공사하는 일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랐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구조를 포함한 기존 건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었다.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기존 구조체를 신설 구조체로 만들기 위한 바탕이자 벽체폼으로 활용하는 것. 다시 말해 기존 건물이 새로운 건물을 위한 거푸집이 되는 방식이다. 도서관의 콘크리트 벽은 옛 벽과 결합해 500mm 이상의 두께로 실현됐다. 이 합벽의 두께는 내부 공간의 깊이를 만드는 동시에 지난 30년의 시간을 함축한다. 이처럼 콘크리트 도서관에서는 구조적 해결에 따른 방식이 건축물 내외부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콘크리트가 하고 있다.

 

ⓒKyungsub Shin

 

일반적으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신축과 달리 일정 부분 구조, 입면, 공간을 분리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 건물을 철거해 구조를 보강하고 입면을 조립하는 일 사이에는 구축 방식이나 시간적 측면에서 서로 다른 어휘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건축물의 구성 방식을 명확히 하는 것에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콘크리트 도서관은 ‘콘크리트’라는 구축 물성 자체로 구조, 입면, 공간을 일관되게 구성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콘크리트가 여타 건물과 차별성을 갖는다면 바로 그 일관성에 있을 것이다.

 

ⓒKyungsub Shin

 

건축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
1층에는 교습소와 도서관을 배치하고, 2층에는 주택을 계획했다. 건축물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 그리고 도서관과 연결되는 교습소는 외부 방문객이 찾는 프로그램이지만, 건축주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두 공간은 층을 달리하되, 건축주에 의해 유기적으로 운용된다.

1층 평면도 ⓒAGIT STUDIO

 

옛 조적 벽체와 신설 콘크리트 벽체는 서로 다른 시간이 마주 보듯 거리를 두고 존재한다. 옛 시간과 새로운 시간을 구분해 인지할 수 있도록 옛 벽체의 외부는 붉은색을 칠했다. 지난 건축물의 얼굴과도 같았던 붉은 벽돌과 타일에 대한 기억을 지속하려는 계획에서다. 기존 건물의 30년 역사는 붉은색으로 표현돼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신설 콘크리트 벽체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Kyungsub Shin

 

도서관과 주택 사이 ‘사적인 도서관’
건축물의 주된 인상은 조형적 입면에 있다기보다, 좁고 긴 골목을 지나 다다르는 마당이나 도서관 공간에 있다. 외관에서 시각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장치인 큰 창과 테라스는 건축물이 작은 부지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공간이라는 데에서 기인했다. 큰 창은 이용자가 확장된 장소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도서관에서 인지하게 되는 공간의 영역은 건축벽뿐 아니라 외부 마당, 담장까지 이어진다. 한편 2층 테라스는 법적 면적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주택 부분에서 주변 건물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Kyungsub Shin

 

도서관의 가구 설계 역시 건축을 맡은 아지트스튜디오에서 담당했다. 목재로 만든 책상에는 ‘사적인 도서관’의 개념이 디테일로 녹아 있다. 혼자만의 시간과 영역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을 고려해 형태를 디자인했다. 일반적인 1인용 책상에 비해 넉넉한 넓이로 계획했고, 상판 모서리와 다리 프레임 사이 20mm 정도의 단차를 두어 여러 개의 책상이 모였을 때 적당한 틈이 생기도록 의도했다. 다리 구조부는 안정적으로 밀착되는 한편 상판은 50mm가량 간격을 두고 분리된다. 즉 칸막이 없이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독립된 영역을 인지할 수 있도록 가구의 디테일을 설계한 것이다.

 

ⓒBRIQUE Magazine

 

환대의 동선
골목 안에 깊숙이 위치한 대지이기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골목을 활용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했다. 이에 대문의 위치를 옮겨 골목을 관리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었다. 기존의 대문이 골목을 상관없는 땅처럼 대하고 있었다면, 변경된 동선으로부터는 비로소 골목을 환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방문객이 찾는 프로그램을 가진 건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적절한 동선 설정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도서관 입구와 교습소로 들어서는 문, 그리고 주택을 향하는 주 출입구는 각기 다른 위치에 배치했다.

 

ⓒKyungsub Shin

 

새롭게 열린 길
후미진 골목 끝에 위치하던 노후 주택은 이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장소로 개방됐다. 주인도, 손님도 없이 방치되었던 골목은 마침내 ‘사적인 도서관’을 향하는 길이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젝트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면, 콘크리트 도서관은 위험한 상태로 도처에 존재하나 주목받지 못하는 도시사각지대 노후부지의 근본적인 재생을 고민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을 수면 위에서 직면해낸 건축가와 건축주, 그리고 시공자의 용기가 녹은 결과물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Kyungsub Shin

 

 

‘콘크리트 도서관’  전체 이야기 담은 <브리크brique> vol.9  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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