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모던’을 발견하는 시간여행

‘에디티드 서울: 뉴 호-옴’ 전시 기획한 이미혜 꽃술 대표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용준  자료. 꽃술, 안테룸 서울

 

지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갤러리 9.5 서울’에선 1970년대 서울의 아파트를 재현해 가상의 집으로 꾸민 전시가 한창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와 공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읽고 서울의 현재와 내일을 조명하기 위해 ‘안테룸 서울 호텔’이 주관한 브랜드 기획 전시 ‘에디티드 서울: 뉴 호-옴’이 그것.

 

©Yongjoon Choi
©Yongjoon Choi

 

전시를 기획한 ‘꽃술kkotsul’은 여러 분야 창작자들과 협업해 우리나라의 생활 디자인을 알리는 ‘문화 매개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80년대 한국의 대표적 주거 모델인 아파트에서 영감을 받아 일상 속 물건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를 잇는 주거 문화와 생활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25평 남짓한 전시 공간엔 그 시절 아파트의 전형적 집치레를 연상시키는 한국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15팀의 가구와 소품, 그리고 꽃술이 모은 빈티지 소품으로 채운 가상의 집이 펼쳐진다. 등나무 의자와 꽃무늬 접시, 볼링핀까지…. 전통과 현대, 진짜와 가짜, 자연과 인공의 물건이 어우러져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한편, 묘한 현대적 심상을 자아내는 덕에 좀처럼 그 시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1970년대 아파트 집치레가 2021년 뉴모던으로 거듭나는 시간 여행 속에서 우리는 그저 하나의 세계와 시간을 공유해왔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고, 오늘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 

전시를 기획한 이미혜 꽃술 대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물건과 생활사에 관심을 두고, 산업화와 한국식 입식 문화가 시작된 시기로부터 오늘날의 한국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혜 대표를 만나 전시 기획, 그리고 문화 매개사 꽃술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미혜 꽃술 대표 ⓒBRIQUE Magazine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를 주제로 ‘가상의 집’ 콘셉트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아파트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주거 문화에 큰 이슈를 꼽는다면 단연 아파트의 등장이에요. 아파트가 처음 출현한 건 1960년대였지만, 한강맨션 등이 건설되며 본격적으로 ‘중산층의 상징’이 된 시기는 1970년대거든요. 강남 아파트 붐이 인 건 그 이후인 1980년대고요. 그때 등장한 아파트들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어요.

집마다 온갖 살림살이와 잡동사니를 보관해두는 ‘광’이 없어졌고, 특히 입식 주방의 출현은 생활 방식이 180도 바뀌는 결정적 계기였죠. 광을 대신할 붙박이장이 생기는 등 공간이 바뀌자 자연스레 인테리어와 생활 소품도 달라지기 시작했고요. 그 시기에 변화를 겪으면서 나타난 생활상과 여러 가지 물건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왔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15팀의 작품, 그리고 저희가 그간 모은 오래된 빈티지 가구와 소품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꾸몄죠. 마침 갤러리 공간이 주택난을 해결하려 정부가 도입한 국민 주택 면적 85㎡(약 25.7평)와 비슷하기도 해서 가상의 집 콘셉트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최용준의 Asia Seonsuchon Apts, 2018, archival inkjet print, 150x120cm.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최용준의 Asia Seonsuchon Apts, 2018, archival inkjet print, 35x28cm.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입식 문화가 시작된 시기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어떤 변화를 감지했나요?

놀랄만한 변화보다는 아파트의 입식 문화가 그 시기 전통, 문화와 뒤섞이면서 묘하게 변화하고 한국화되면서 지속해 왔다는 것, 즉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현대 디자인이 전부 서구에서 들어온 입식 문화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외국에서 유학하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도 많고, 입식 문화가 서구에서 온 것은 맞지만요. 다만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거나, 일부러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금씩 발전해왔다는 점이 핵심이죠.

최종하의 ‘De-dimension’을 보면, 벽에 걸려있는 옛날 소반이 연상돼요. 하지만 작가는 실제 테이블을 만들 때 그런 방식을 염두에 두지 않았대요. 오리진의 ‘color flow’도 마찬가지예요. 렌티큘라* 소재로 만든 장식장은 꼭 과거 우리의 자개장 같은 느낌이 묻어나죠. 아마 외국 작가가 만들었다면 그 느낌이 안 났을 것 같은데,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어딘가 박혀있던 기억이나 한국적인 DNA가 자연스럽게 발현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저만의 추측일 수도 있지만요. (웃음)

*렌티큘라: 보는 각도에 따라 상이 다르게 보이는 소재

 

최종하의 ‘De-dimension’.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현대식 자개장을 연상시키는 오리진의 ‘color flow ‘ (우측 하단) ©Yongjoon Choi

 

시대마다 고유의 생활상과 문화가 있잖아요.

전시에서 보여지진 않는데, 저희끼리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주제가 ‘부조’* 예요. 요즘 나오는 전자제품은 대부분 평면화되어 있고 표면이 매끄럽잖아요. 하지만 전통적으로 써온 물건을 보면 대부분 조각의 형태였거든요. 항아리나 바가지, 지점토로 만든 포도 넝쿨과 괘종시계라던지. 당시 유행했던 퀼트나 십자수도 마찬가지고요. 그 질감을 도드라지게 표현했죠.

오복기공사의 ‘Monster Series’ 블루투스 스피커는 그런 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일부러 스피커 내부의 전선 등 부속품을 끄집어내서 장식으로 활용했어요. 산업화가 진행되고 전자제품이 나오면서 느낄 수 없는 속 재료의 물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죠.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아카이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평면을 뛰어넘어 질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투명한 증강현실의 시대가 올 테니, 또 새로운 물건과 이야기들이 나오겠죠.

*부조: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Yongjoon Choi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패션매거진 <보그>에서 피처 에디터로 오랫동안 일했어요. 에디터로 일하면서 패션과 아트 관련 전시를 몇번 기획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대중문화에 관한 아카이빙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죠. 2011년에 <보그> 15주년을 맞아 ‘fashion into art’ 전시를 준비하면서 잡지 박물관에서 옛날 잡지를 찾아보는데, 제가 찾는 자료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1996년에 나온 창간호도 찾아볼 수 없었죠. 놀랍게도 당시 사무실에도 없었어요. (웃음) 그러다 5년 후에 <보그> 2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패션 100년’ 전시를 기획하는데, 패션 분야 역시 의상과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보관되어 있지 않더군요. 해방 직후부터 패션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사라져버린 거예요.

두 차례 큰 전시를 진행하고, 여러 가지 브랜드 기획 일을 해 오면서 생활문화의 기록에 대한 갈증을 계속 느꼈어요. 대중매체에 몸담으면서 제가 취재했던 생활문화에 관한 많은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기록이 없다는 건 현재의 이야기도 기록되기 힘들다는 의미거든요. 그 기록을 남기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전시뿐 아니라 꽃술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시 기록을 찾으려 전시장에 방문하는 분도 있다면서요?

전시를 오픈하고 나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어요. 이 주제로 연구논문을 준비 중인 분도 있었고요. 생활의 물건을 통해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자료가 정말 없다고요. 주거 공간이나 건축에 대해서는 건축가들이 이미 많은 연구를 했고 자료도 많은데, 생활 가구와 소품, 디자인 이야기는 구술 형태로밖에 남아 있지 않아 실물을 보기 어려웠는데 여기에서 보게 됐다며 기뻐하시더군요. (웃음) 우리나라에 대중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게 1970년대에 컬러 TV와 컬러 잡지가 나오면서부터인데, 최근에야 대중문화 아카이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사에서도 아이돌 가수 의상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했고요.

 

전시장에 있는 물건 중엔 빈티지 제품인지, 새로 만든 작품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것도 있더라고요.

전시된 물건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자연을 본뜬 수공예적 물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재료를 활용하거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긴 흔한 물건을 디자인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에요. 전자인 이스트스모크east smoke의 작업에서 특히 빈티지 제품인지 새로 만든 작품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감각이 두드러져요.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핸드 빌딩 방식으로 표현해서 만든 산호초나 수석, 나뭇잎 모양의 촛대 같은 세라믹 작업인데요. 새로 만든 작품인지 빈티지 제품인지 알 수 없게 일부러 섞어 놓아서 그걸 알아보는 게 전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예요. (웃음) 연진영 작가의 알루미늄 바 테이블과 의자나 최용준 작가의 사진이 후자인데, 주변에서 흔히 봐왔던 풍경과 오브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한 작업이에요.

 

©Yongjo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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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영의 알루미늄 가구 ©Yongjo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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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준의 사진 ©Yongjoon Choi
이스트스코므의 오브제.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최근 뉴트로Newtro* 무드가 유행하면서 일부러 촌스럽게 하거나, 옛 감성을 담아 만드는 물건도 많아졌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늘 말하곤 하는데, 이 전시에서 꽃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건 뉴트로보다는 ‘뉴모던New Modern’이란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과거의 것을 그 형태만 빌어 현대적으로 예쁘게 만들어서 트렌드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거든요. ‘뉴 호-옴’이라는 전시 제목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요. 하나는 현대 생활의 실험실과도 같았던 아파트의 등장과 그에 맞는 집치레로 만들어진 옛날식 발음 그대로의 ‘뉴 호-옴’. 그리고 현재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근미래에 새롭게 만들어 갈 또 다른 생활방식과 집치레를 담은 ‘뉴홈New Home’이죠.

*뉴트로: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Yongjoon Choi
등나무 의자를 연상시키는 설수빈의 ‘hoop chair’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인공 정원을 표현한 엄아롱의 ‘Move and Move’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공예와 공학을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오복기공사의 ‘Smog Series’ 이미지 제공: Anteroom Seoul X kkotssul

 

꽃술의 이름으로 용산구 원효로에서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디자인바design bar’도 운영하고 있죠.

꽃술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에이전시이자 전시와 출판기획을 겸하는 기획사이고, 그 공간은 꽃술이 운영하는 디자인바예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전국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한 우리 술을 만날 수 있는 바bar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디자인바’라는 이름을 붙였죠.
1968년에 지어진 서울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벽돌집을 개조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무허가 가벽을 철거하고, 1m 가까이 바닥을 덮고 있던 보일러도 들어냈죠. 지하 벙커가 나타나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요. 오래되고 역사가 있는 건물이지만 이곳을 지켜야 할 문화재나 유물로 여기지는 않았어요. 꽃술이 주목하는 것은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과도기이고, 그래서 더더욱이 서울에서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가장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요즘 쓰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거든요.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자리 잡은 꽃술 디자인바. ⓒkkotssul

 

가구나 작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바는 처음 봐요. 게다가 우리나라 술만 취급한다고요.

처음에 시작할 땐 디자인이 최우선이었고, 바는 이 공간에 더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봤어요.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머무르게 할까. 그래야 이 물건들을 써 볼 텐데…’ 하는 마음이었죠. 한국 디자인을 소개하니까 한국 술을 소개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 찾다 보니, 우리나라에 소규모 양조장이 정말 많더군요. 술 자체의 퀄리티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술에 얽힌 스토리도 풍부하고 막걸리 병이나 디캔터 등 디자인도 멋진 것들이 많거든요. 가구도 그렇지만 술도 ‘크래프트craft’라고 표현하잖아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공방에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과정이 결코 다르지 않아요.

 

ⓒkkotssul

 

전시 공간과 마찬가지로 꽃술에서도 모든 가구와 소품을 마음껏 체험해보고 구매할 수 있죠.

보통 전시장에서 ‘작품’은 우러러봐야 하는 존재잖아요. (웃음) 만져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요. 이에 반해 지금 이 전시장과 꽃술 공간에서는 모든 물건을 직접 만지거나 앉아보면서 마음껏 체험할 수 있어요. 물론 구매도 가능하고요. 가구와 소품뿐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바닥재부터 문고리까지 공간 안의 모든 것을 디자이너가 지속해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웠죠. 어떤 아티스트의 작품이든 혹은 기성 제품이든, 특별한 계층이나 돈이 많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즐기고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되기를 바랐어요. ‘작품’과 ‘제품’을 구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죠. 개중에는 아트 퍼니처를 지향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꽃술이 선보이는 작품을 만든 대부분의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요.

 

꽃술에선 모든 가구와 소품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다. ⓒkkotssul
ⓒkkotssul

 

작품과 제품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경험의 힘과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보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 일상 속에, 내 공간 속에서 그것을 만지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경험치가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죠. 저를 비롯해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아직 가구를 비롯해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부족해요. 특히 가구는 특정 시점에 싹 바꾸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사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죠. 침대 옆 탁자나 예쁜 의자 하나가 일상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를 최근에서야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여기엔 국내에 이케아가 들어온 것 역시 상당히 주효했다고 봐요. 아직 우리나라 디자이너 가구는 인식이 부족하고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실력 있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들이 존재한디는 걸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그것들이 자리 잡도록 하고 싶어요.

 

일관되게 ‘물건’을 통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의도가 느껴져요. 그 대상이 우리나라 작가와 작품이라는 점도요.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아카이빙이 전혀 안 된 것들이 너무 많아요. 꽃술이 생활의 물건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나 추억을 되짚기 위함도, 디자인적 가치가 높아서도 아니에요. 특히 옛날 물건들은 단순히 서양의 것을 베낀 조악한 것들도 많거든요. (웃음) 다만 과거가 있어 현재가 있을 수 있기에, 왜 현재의 디자이너들이 이런 디자인을 하게 됐는지, 또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고 기억하자는 거죠. 고려 시대, 조선 시대가 아니라 가까운 과거, 좌식 생활에서 입식 생활로 넘어 온 과도기를 통해서, 흔하디 흔한 물건이지만 내 기억과 경험, 스토리가 깃든 물건. 내 공간 안에서 말없이 자리 잡고 있는 ‘비석’ 같은 것들을 통해서요. 그걸 ‘일상의 기념비’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꽃술과 이 전시가 그 기념비가 가지는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kkotssul

 

주거 공간과 생활의 물건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입니다만,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에 대해 가격적으로, 심리적으로 접근 장벽이 있는데요. 쉽게 다가갈 방법이 있을까요?

옷이나 전자 제품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물건에 대한 값을 지불할 때 느끼는 부담의 정도는 상대적이거든요. 같은 물건을 보고도 너무 비싸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작가가 수제로 만든 세라믹 작품을 예로 들면, 작가가 일일이 빚어서 굽고, 핸드프린팅을 하고, 유약을 입히는 과정의 노력과 수고를 이해한다면 그 가치에 대한 비용을 선뜻 지불할 수 있죠. 이건 결국 관점의 차이인데, 어느 단계에 올라와야만 가능한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단계로 가기까지 경험이 중요하죠.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명품 브랜드에서 몇십 만 원 하는 티셔츠도 사잖아요. (웃음)

우리나라가 가전에서 가구의 시대가 된 게 최근 들어서예요. 아직 수입 가구에 비해 한국 가구에 대한 가치평가가 낮은 편이죠. 우리나라 가구 시장은 원목 가구 중심의 가구 브랜드 몇 개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가구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예요. 이후 침체기를 거쳤고, 요즘에야 본격적으로 이 씬scene이 주목받으면서 사람들도 점차 경험치가 쌓이고 있고요. 꽃술이 활동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힘을 보탠다면, 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알고, 일상 속에서 디자인이 가지는 힘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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