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목욕탕을 대중갤러리로

[Place_case] ② 조선시대 민초의 일상을 아카이빙한 북촌의 새명소 '갤러리조선민화'
©Place_case
글 & 사진. Place_case (플레이스 케이스)

 

일상에 영감과 풍요를 더하는 공간을 찾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p.lace_case 운영자이자 <브리크 brique> 애독자인 플레이스 케이스 Place_case님을 전문 기고자로 초대했습니다.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 공간 디자인PM으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장소들을 큐레이션하여 주변 이들과 함께 향유하고 소통하고자 합니다. 그가 펼치는 공간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러분도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진 속 건물은 현재 4회차 건생(建生)을 살아가고 있다 . 1950년에 지어져 약 19년간 중앙고 운동부 샤워실로 쓰이다 1969년부터 북촌의 유일한 대중목욕탕 ‘중앙탕’으로 약 46년간 사랑을 받았다. 목욕탕 폐업 이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북촌 매장으로 사용되었고, 2020년부터는 조선 민화를 전시하는 갤러리로 재탄생 했다.

고스란히 보존된 목욕탕 외관에 붙은 새 간판, ‘갤러리조선민화’. 이곳은 이름과 같이 조선시대 서민의 그림, 민화를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대중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반세기 동안 동네의 사랑방이었던 대중목욕탕만큼 상징적이고 재미있는 곳이 또 있을까?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펼치며 피로를 풀던 공간에 민초들의 염원과 애환이 담긴 작품들이 가득 담겨 더욱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중앙탕 옛 모습 ©서울특별시 서울미래유산
중앙탕 2021년 현재 모습 ©Place_case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이후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공간을 꾸미듯이, 의식 수준이 높았던 조선 후기의 서민들도 대소사와 절기를 기념하고 회화적 욕구 충족을 위해 다양한 그림으로 공간을 장식했다. 우리가 어렴풋이 들어본 화조도(花鳥圖), 모란도(牡丹圖), 책가도(冊架圖), 십장생도(十長生圖), 문자도(文字圖) 등이 대표적인 민화의 종류이다. 민화는 서민들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돌잔치, 혼례, 장례와 같은 주요 행사와 일상 속의 길상, 벽사의 징표 역할을 하며 생활에 녹아 들었던 실용미술이다.

민화는 원류에 있어서는 정통 문인화를 모방하지만, 이름 없는 화가에 의해 그려져 날인이 없고, 소박하지만 대담한 내용, 그리고 파격적인 구성과 색채가 큰 특징이다. 주로 부귀, 다산, 장수 등의 소망과 시대를 향한 비판을 익살스럽게 담아내 웃음과 위로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의 그림들은 병풍에 편집되거나 족자, 부채, 도자기와 같은 생활용품에 장식되어 서민들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한 점 한 점의 민화는 당시 민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도 같다.

 

(왼쪽부터) 화조도(花鳥圖), 모란도(牡丹圖), 책거리 일부. 화조도는 꽃과 새를 그린 그림으로 가정의 화목과 부부 간 애정을 상징한다. 모란도는 ‘꽃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을 그린 그림으로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책거리는 책, 벼루, 붓 등의 문방구류를 그린 그림으로 학문에 대한 열망과 출세를 상징한다. <출처=갤러리조선민화>

 

“민화는 잡화, 속화라 불리며 천민의 그림이라고 하대 받았지만, 최근 들어 그 가치가 재조명되며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우끼요에, 중국의 연화와 같은 민속화는 목판화가 대다수임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때그때 그려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죠. 비록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관습적으로 그려졌지만, 반복된 창작으로 축적된 미의식과 상상력, 필력이 더해져 창의력과 개성이 넘실대는 뛰어난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민화야말로 조선 예혼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죠.” – ‘갤러리조선민화’ 이세영 대표

 

‘갤러리조선민화’의 관장이자 운영자이며 그래픽디자이너이기도한 이세영 대표의 민화와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민속촌에서 가죽 붓으로 빠르게 그려지는 ‘혁필화(革筆畫)’를 접한 그는 글자(한자)와 이미지(문양)가 하나로 통합되는 광경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후 혁필화의 줄기를 찾아 나가다 조선의 ‘문자도 (한자와 그 의미를 형상화하여 그린 그림)’를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점차 민화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랜 연구와 수집을 거치던 그는 박물관 외에 원본 민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조들이 일상에서 펼쳐 누리던 그림들이 고이 접힌 채 창고에 보관만 되는 것이 안타까워 민화가 다시금 생명력을 발휘하며 행복과 웃음을 전하는 본래의 소명을 되찾도록 직접 나서게 되었다.

 

 

혁필화(革筆畫) 일부 <출처=갤러리조선민화>
문자도(文字圖) 일부 <출처=갤러리조선민화>

 

본격적으로 거처를 물색할 무렵, 운명처럼 나타난 곳이 바로 중앙탕이다. 건물이 위치한 북촌은 조선 말기에 지어진 개량한옥들과 그 시절 시대성이 겹겹이 쌓인 골목이 조화를 이루며 옛 정취를 가득 풍기는 곳이다. 옆으로는 한양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종묘, 흥인지문 등 주요 기관과 각종 궁궐이 밀집되어 있어 조선 500년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과도 같다. 이세영 대표는 민화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이 지역을 오래전부터 참 좋아했어요. 특히 계동은 관광지이기에 앞서 원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박제된 유적이 아닌 함께 호흡하는 옛 시대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에요. 조선 민초들의 일상을 함께했던 민화를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동네이죠.” – 갤러리조선민화 이세영 대표

 

이세영 대표는 목욕탕을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장소 곳곳에 남아있는 옛 흔적을 의도적으로 살려두어 공간에 담긴 추억과 세월을 기념하고자 했다. 그가 직접 구상해 탄생한 갤러리의 세 개 층은 저마다의 분위기로 민화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1층에 들어서면 일명 ‘바가지탕’이었던 자리에 조성된 비디오아트 연못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잉어가 헤엄치며 옥토끼가 뛰노는 ‘민화탕’은 이세영 대표의 작품으로 옛 그림들의 소재와 상징을 담아낸 영상물이다.

탕 위쪽에는 목어(용머리를 가진 물고기 모양의 나무 불구)가 달려 있는데,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와 같이 깨어 있으라는 의미의 불교 장식품이자, 시장에서 목탁과 같이 두드려 대중을 모으는 역할을 했던 도구이다. 목적은 달랐어도 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었던 이 오래된 장소의 상징성이 부각되는 연출이다.

 

1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목어와 비디오아트 연못 ©Place_case
©Place_case

 

2층에 올라가면 남아있는 옛 탕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몸을 담근 채, 내 자식 성공했으면, 우리 가족 건강했으면, 좀 더 좋은 나라가 됐으면 하며 이야기들이 오갔을 법한 곳에 현재는 두 개의 민화, <까치와 호랑이> 그리고 <운룡도>가 걸려있다. 두 그림은 의미는 알고 보면 목욕탕에서 나누던 주민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

<까치와 호랑이>는 좋은 소식을 물고 오는 까치와 액운을 쫓는 호랑이를 통해 새 해 복을 기원하는 역할과 함께 까치(민초)에게 훈계를 당하며 쩔쩔매는 우스꽝스러운 호랑이(권력)를 표현해 당시 신분사회를 익살스럽게 풍자한 작품이다.

<운룡도>는 용이 관장하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구름을 헤치고 승천하는 기운을 받아 성공하는 길상을 표상했다. 시대는 달라져도 사람들의 마음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조선 서민의 염원과 계동 주민의 염원. 그리고 현재 우리의 염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층에 남겨진 욕탕의 일부. <까치와 호랑이> 그리고 <운룡도>가 걸려 있다. ©Place_case
2층 전경. 한쪽 벽은 생동감 있는 색상을, 또다른 벽은 흰 색상으로 두어 그림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한다. ©Place_case

 

2층에서 3층을 올라가는 계단에는 비어있는 다락같은 곳이 있다. 낮은 천장 아래에는 마치 작은 사당처럼 멍석이 깔려있고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그 옆으로는 상여에 장식되어 낯선 길을 떠나는 이를 수호하던 용수판 두 개와 잉어가 그려진 도자기가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과 상징의 세계를 살았던 옛 시대의 모습이 함축된 공간이다.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계단 공간 ©Place_case

 

계단을 지나 3층에 도착하면 채광창이 있는 박공지붕과 흰 벽, 헤링본 마루가 깔린 공간이 나타나며 1,2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은 외부와 연결된 테라스가 있어 전면과 우측으로 계동 한옥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뷰 맛집’이기도 하다. 민화 관람 후 맨 꼭대기 층에서 조선의 정취를 간직한 계동의 전경까지 보는 것까지가 전시의 마무리이자 정점인 셈이다.

 

3층 전경. 테라스 너머로 한옥 기와지붕이 보인다. ©Place_case
3층 실 좌측에도 테라스로 나가는 문이 있다. ©Place_case

 

이세영 대표는 종종 테라스에 올라와 기와지붕의 서정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곤 한다. 오픈 한지 일 년이 넘어가는 시점, 그는 갤러리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고민중이다. 옹기나 꼭두, 용수판 등 조선시대의 다양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전시와 다른 민화 수집가와의 협력전, 민화 작가를 위한 기획전 등 더욱 폭 넓게 조선의 미를 알릴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자 한다.

 

3층 테라스 우측으로 보이는 기와지붕들. ©Place_case
3층 테라스 전면에서 바라본 오후의 계동길 ©Place_case

 

“갤러리를 방문해 민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민화의 끼와 조형미, 창의력은 오늘날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의 뿌리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렇게 미의 세계가 삶의 현장 곳곳에서 생산되고 누렸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갤러리조선민화’ 이세영 대표

 

하늘이 높아진 가을날, 북촌 일대의 골목들을 산책하고 계동의 목욕탕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염원, 해학과 위트가 담긴 작품들에 푹 잠겨 그 상징성을 읽어 나가보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에 마음의 피로가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조선민화
서울 종로구 계동길 92
화요일~일요일 11:00 ~ 18:00 (매주 월요일 휴무)
https://jsminhwa.com/INTRO
instagram.com/nabidor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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