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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

피크닉 전시 '명상 Mindfulness' 리뷰
ⓒGLINT

에디터. 장경림 자료. 글린트 GLINT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은 ‘업데이트update’가 된다. 분주한 현대인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몸을 바삐 움직인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 인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어색하다. 일에, 스마트폰에, 활자에, 영상에 눈을 머물며 마음의 공백을 메운다. 그렇게 무언가 꾹꾹 눌러 담고 있는데 정작 우리 내면 안에 채워진 것은 무엇일까. 의미 없는 채우기를 멈추고 비우기를 자처한 명상은 현대인의 새로운 치유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명상은 시대를 역행하는듯 ‘무위(無爲)’의 상태로 만든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함을 깨닫게 한다.

 

우리 뒤에 있는 것들과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What lies behind us and what lies before us are tiny matters compared to what lies within us.
– Ralph Waldo Emerson –

 

ⓒGLINT

 

마음에 주목한 전시 ‘명상’
2015년 개관 이후 류이치 사카모토(음악), 재스퍼 모리슨(디자인), 페터 팝스트(무대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전시로 화제를 모았던 피크닉piknic이 현대인의 ‘마음’에 주목한 전시를 ‘명상 Mindfulness’을 지난 4월 24일부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된 2020년, 규모 있는 전시를 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과감한 시도겠지만, 어느 때보다 치유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번 전시는 실제 명상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명상을 실천할 때와 유사한 변화를 유도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전시를 통해 심리적 불안을 단 한 번에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예술 작품을 통해 자가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감각을 통해 직접 느껴봄으로써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성됐다.

 

ⓒGLINT

 

발전과 성취가 중요한 현대인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잠시 멈춰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보는 시간 -명상의 체험은 이후의 삶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 하루의 아주 작은 부분, 단 몇 분이라도 모든 행위에 대한 가속을 잠시 멈추어 본다. 찻잔의 온기를 가만히 느끼거나 하늘과 바람과 자연의 변화를 관찰해 본다. – 공간디자인 서승모 건축가

이번 전시는 과밀을 방지하고, 명상의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예약을 통해 시간제로 진행하고 있다. 전시 구성은 총 네 개의 파트로 진행되며,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서 관념적인 작품의 감상 시간을 가진 뒤 2층과 3층에서는 다양한 감각을 느끼며 체험 형태로 즐길 수 있다. 눈으로만 보던 기존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명상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체험형 전시로 구성됐다.

 

차웨이 차이 ‘바르도(중음), 2016’ ⓒBRIQUE Magazine

 

죽음과 함께하는 삶 Being with Dying
여러 종교와 사상에서 죽음은 영적 수행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그중 불교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두 작가, 차웨이 차이와 미야지마 타츠오의 통찰을 담은 첫 번째 파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공간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이다. 영안실의 대기실을 상상하게 하는 사각형의 방으로 바닥에는 향의 재 가루가 수북이 쌓여있다. 깜깜한 어둠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하며 관 속에 들어온 듯 숨죽이게 한다.

방속에 놓인 첫 번째 작품은 대만 출신의 차웨이 차이가 만든 영상 작업이다. 작품명인 ‘바르도’는 티베트 불교 용어로 죽음에서 환생에 이르기까지의 영혼을 뜻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사망 선고를 받았으나 다시 생존한 사람들의 기록을 보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바르도’의 순간을 영상을 통해 표현했다. 영상 속 메시지를 통해 죽음 앞에 놓인 인간에게 깨우침 전달하고 있다.

 

미야지마 타츠오 ‘다섯 개의 마주하는 원, 1992’ ⓒGLINT

 

다음 작품 역시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다. 바닥에는 숫자로 이뤄진 다섯 개의 원이 놓여있다. 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인 미야지마 타츠오는 변화, 연결, 영원이라는 세 가지 콘셉트를 숫자를 활용하여 표현한다. 원 속의 숫자들은 윤회 사상에서 끝과 죽음을 의미하는 0은 표시되지 않은 채, 1부터 99까지 각기 다른 속도로 변한다. 이것은 공평하게 주어진 삶이지만,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인생을 나타낸다.
어둠 속 빈 공간에 놓인 두 작품은 현생과 사후세계의 중간 영역을 경험하게 하여 심리적으로 고립 상태를 만든다. ‘죽음’을 전시의 첫 번째 주제로 놓으며, 명상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몸과 마음을 비우고 텅 빈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박서보 + 원 오브 제로 ‘원 오브 제로, 2020’ ⓒGLINT

 

수행 Practice
먹을 갈고, 붓질을 반복하는 단순한 행위에서 선조들은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을 얻곤 했다. 명상은 수행을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시의 두 번째 파트는 반복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명상의 순간을 표현한 두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술가의 반복적인 작업은 본질적으로 수행의 성격을 지닌다. 붓질을 반복하며 그림으로 마음을 비워내는 박서보 작가는 오직 수신(修身)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렇게 이룬 수신의 결정체가 바로 작품이 된다. 원 오브 제로가 설치를 맡은 박서보 작가의 작품은 벽에 걸린 큰 그림에 다다르면서, 보는 이에게 산책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자오싱 아서 리우 ‘순례자의 길 Kora, 2011-2012’ ⓒBRIQUE Magazine

 

뒤를 이어 등장하는 작품은 16분 남짓의 ‘순례자의 길 Kora’라는 영상 작업이다. 대만 출신의 자오싱 아서 리우가 4일간의 순례 여정을 담은 영상으로, 작품명인 Kora는 티베트 불교 용어로 순례와 명상을 의미한다. 상영되는 동안 관람객은 편히 앉아 작품을 관람하며 함께 순례의 길을 떠난다. 1인칭 시점으로 표현되어 마치 내가 영상 속의 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마 스페이스 ‘느리게 걷기, 2020’ ⓒGLINT

 

알아차린다는 것 Awareness
2층부터는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명상을 실천할 수 있도록 체험형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먼저 등장하는 오마 스페이스의 작품 ‘느리게 걷기’는 원형의 길을 맨발로 걸으며,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변화와 의식에 집중하도록 한다. 원을 따라 걷는 행위는 복잡한 정신세계를 단순히 해, 더 깊고 높은 차원의 의식을 선사했다.
빛으로 길을 안내받으며 거친 흙바닥에서 둥글고 작은 자갈길로 점점 나아간다. 개인별로 주어지는 헤드셋에는 고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음악에 맞추어 느린 템포로 발을 옮긴다. 맨발로 촉각의 변화를 느끼고, 귀로 음악을 감상하며, 눈으로 고요한 원의 형상을 바라본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의식을 집중하고 나를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 마르코 바로티 ‘숨 쉬는 공간, 2015’ ⓒGLINT

 

자신을 하나의 대상으로 관찰하며, 그것과 하나가 되어가는 상태를 명상에서는 ‘알아차림’이라고 부른다. 느리게 걸으며 몸의 감각에 집중해 나를 관찰했다면 다음 전시에서는 그저 호흡에 집중해본다. 호흡은 명상의 기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숨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저 숨 쉬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거의 없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와 마르코 바로티의 합작인 ‘숨 쉬는 공간’은 폐가 호흡하는 형상을 설치 미술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10분 주기로 들숨과 날숨의 과정을 표현하여 무의식적인 호흡을 시청각의 차원으로 변환했다. 변화하는 통로 속을 걷고 있으면 마치 폐 안으로 들어온 듯 볼륨의 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시각적 변화와 함께 실제 호흡에서 일어날 법한 소리 역시 함께 흘러나온다.

 

패브리커의 작품으로 올라가는 계단 ⓒBRIQUE Magazine

 

의식의 바다 Sea of Consciousness
네 번째 파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상을 통해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현한 거장 데이빗 린치의 짧은 필름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초월 명상을 실천하면서 무한히 잠재된 창의력을 발현한 그의 삶이 나타나 있었다.
이후 패브리커의 작품 속에서 명상의 시간을 직접 가져본다. 홀로 들어가는 문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길처럼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란빛과 그윽한 스모그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온 듯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큰 울림이 들려오고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시야는 점점 어두워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안갯속에서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 앉힌다.

 

패브리커 ‘空間, 2020’ ⓒGLINT

 

“구글, 애플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상당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직원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명상 마니아였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구요. 저는 명상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잠재된 창의성을 무한히 발휘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예술가와 창작자들은 그 잠재된 창의성을 명료하게 인지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 역시 명상이 추구하는 순수 인식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김범상 디렉터

 

도심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
이번 ‘명상 Mindfulness’은 명상이라는 행위가 생소했던 사람도 전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보며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면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일상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획은 ‘전시회’라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명상의 시간을 마련해 그 문턱을 낮춰주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열면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와 알람, 손에 잡히지 않는 관계들. 분주한 현대인은 이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새 하루를 마감하곤 한다. 그러나 고요히 나를 마주하면 알 수 없는 공허함만 남는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이상한 역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쁜 세상 속에 맡겨진 나를 잠시나마 되찾고, 오롯이 나의 신체와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면 기분에 맞는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전시가 마무리된다. 처마 아래서 바람의 흐름과 차의 온기를 느끼며 여유로움을 한껏 머금을 수 있다. 성취, 경쟁과 같은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고 피크닉으로 내면의 소풍을 떠난 시간. 전시장을 나오면 매일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에 쉼표 하나를 찍은 듯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전시명.
명상 Mindfulness

일시.
2020년 4월 24일 (금) ~ 2020년 9월 27일 (일)
월요일 휴관

장소.
피크닉 piknic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입장료.
티켓 1만5000원

예매.
bit.ly/piknicMF

문의.
info@glint.kr
02-318-3233


참여 작가.

차웨이 차이 Charwei Tsai
개인의 경험과 관심사를 통해 보편의 가치에 접근하는 대만 작가

미야지마 타츠오 Miyajima Tatsuo
디지털 카운터 연작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박서보 PARK SEO-BO
단색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원 오브 제로 1OF0
거장 박서보와 팀을 이룬 신인 작가

자오싱 아서 리우 Jawshing Arthur Liu
다양한 매체로 인간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작가

오마 스페이스 OMA Space
구글이 주목한 아트 & 디자인 스튜디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Plastique Fantastique
도시 환경에서의 수행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 그룹

마르코 바로티 Marco Barotti
사운드를 통해 환경 이슈를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

테트아테트 Tête-à-Tête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영상 창작 스튜디오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영화사상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컬트의 제왕

패브리커 Fabrikr
젠틀몬스터, 카페어니언 등을 기획한 아티스트 듀오

서승모 Seo Seungmo
피크닉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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