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해방구를 찾아서

[Space] 은퇴자의 도심 속 세컨드 하우스, 어떻게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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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선  자료. 문도호제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2020년, 2020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4%, 약
700만 명이 일터를 떠나 또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된다. 2018년 통계청이 밝힌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 길어진 수명으로 은퇴 후로도 20여 년의 짧지 않은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은퇴 후의 경제 활동과 노후 자금 마련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로, 이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는 것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해방촌 해방구’ 역시 그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했다. 35년 남짓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생활에 익숙했던 건축주에게 은퇴 후 갑작스레 주어진 무한정한 시간은 오히려 부담이 되었고, 그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던 것. 그는 매일매일의 일상을 보다 건강하고 가치 있게 엮어줄 수 있는 공간, 삶의 굴레에서 한 발짝 벗어난 ‘해방구’ 같은 두 번째 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고민에 대한 답을 풀어보고자 했다.

“은퇴 후에도 꽤 오랫동안 삶은 계속되니까요.”

 

ⓒBRIQUE Magazine

 

도심 속 해방구를 찾아서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운 데에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 해방촌에 10평 남짓 작은 땅을 찾은 것. 은퇴 세대의 세컨드하우스second house 라고 하면 한적한 도시 외곽 지역의 전원주택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매일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색보다는 산책을, 명상보다는 독서를,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 소통으로 하루하루를 꾸리고 싶었던 건축주에게 서울
안에서 버스 한번 타면 언제든지 닿을 수 있는 이곳은 필연과도 같았다. 걷고 이곳저곳 누비기 좋아하는 그에게 이 작은 집은 새로이 맞이한 삶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그렇다면, 집은 어떤 모습으로 지어졌을까?
궁여지책과 묘수, 필연이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발견. 그 사이의 섬세한 조율 혹은 세밀한 구축.
그 모든 것들의 집합, 서울 한복판 남산 아래 작은 집, ‘해방구’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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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할까, 증축할까?

건축주가 이 땅을 매입했을 무렵 1층짜리 오래된 목조주택이 있었고, 건축주는 그 집을 크게 손대지 않고 고쳐 쓸 요량이었다. 하지만 인테리어 공사와 구조 변경을 위해서는 신축과 맞먹는 수준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조금씩 증축을 해 이미 건폐율이 100%에 가까운 위반 건축물이었기에 수리를 하더라도 여전히 위반 건축물로 남는다는 것 또한 무리일 수밖에. 증축이나 대수선 정도로 생각했던 공사는 신축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그렇게 집 짓기의 서막이 올랐다.

 

ⓒmundoehoje

 

14평 좁은 땅에 공간 나누기

 

건폐율 60%, 용적률 150%, 14평 남짓 좁은 땅. 법적 제한으로 감해지는 면적을 제하고 나면 가장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1층 면적은 5.9평에 불과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일조 사선제한에 의해 가용 면적은 더 작아지는 상황. 때문에 층별로 공간을 나누어, 1층에는 주방과 식당을, 2층에는 서재를, 3층에는 거실과 침실을 배치했다. 1.5m 층고의 다락 바닥 면적 일부를
오픈, 3층과 다락을 연결함으로써 4m에 가까운 층고를 확보해 좁고 답답한 느낌을 해소했다.

 

단면도 ⓒmundoehoje

3층과 다락을 오픈해 답답한 느낌을 해소했다. ⓒ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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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고 1.5m 다락에는 바닥에 다다미를 깔아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texture on texture

 

필연이 디자인하는 작은 집

 

작은 집을 계획할 때 가장 어려운 건, 부분의 작은 변화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 가지의 작은 변경 사항이 계획안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철근콘크리트구조 vs 목구조

처음에는 목구조를 적용하고자 했다. 철근콘크리트구조보다 목구조가 가지는 장점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집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면적 확보 면에서 목구조가 유리하다는 점이다. 철근콘크리트 벽식 구조의 경우 콘크리트 구조벽이 최소 180mm, 단열재가 135mm, 여기에 외장재 두께를 합하면 벽 두께가 총 400mm 정도가 된다. 반면 목구조는 200mm면 충분해 무려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것. 작은 집에서 이 차이가 사방에 적용될 것을 생각하면 면적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철근콘크리트구조보다 목구조의 공사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목구조를 적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효율적인 공간 확보를 위해 캔틸레버 구조를 적용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목구조는 캔틸레버
구조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대지의 고저 차 때문에 1층에 콘크리트 옹벽이 생겨야 했기 때문에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적용은 필연적인 결과다.

외단열 시스템 vs 벽돌

 

외장 재료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철근콘크리트 벽식 구조에서 벽 두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외장재는 외단열시스템이 가장 적합하다. 벽돌을 쌓거나 돌을 붙이는 것 역시 작은 집에서는 사치. 단열재 두께는 법적으로 135mm를 확보해야 하지만 압축 보드를 사용해 75mm까지 두께를 줄였다. 압축 보드는 일반적인 단열 보드보다 가격이 두 배 반 내지 세 배 정도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두 평 면적 차이가 작은 집에서는 무척 소중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콘크리트와 짙은 색의 외단열시스템으로 마감한 외부 ⓒtexture on texture

 

숨김의 미학

골조에 매입한 배수관

 

아무리 작은 집도 하드웨어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 층마다 물이 빠지는 배수관을 외벽에 설치해야 하는데, 작은 집이다 보니 유난히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집의 사면 중에 두 면은 다른 집에, 두 면은 도로에 접해있기 때문에 배수관을 내릴만한 곳이 두 면밖에 없는데, 하필 그 두 면이 집의 모습이 잘 보이는 정면 부분이었던 것. 최대한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궁여지책을 마련한 것이 배수관을 콘크리트 골조 안에 매입하는 방법이다. 보수가 필요할 때에도 외장재를 부분적으로 잘라내어 감쪽같이 만들 수 있다.

마이크로스케일의 하드웨어

작은 집이라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몇 가지 중 하나가 문손잡이다. 일반적인 기성품 손잡이를 달았더니, 문에서 손잡이만 도드라져 보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것. 결국, 기존 손잡이는 철수하고 문에 매입하는 형식으로 변경했다. 손잡이뿐 아니라, 세면대 등 기성품을 못 쓰는 상황이 더러 발생해 현장에서 숱한 조율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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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우아하게

작지만 소중한 외부 테라스

도시의 집들을 보면 윗부분이 사선으로 잘려 나간 형태의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정북 방향 사선제한이라는 법적인 테두리에 꼭 맞춰 짓다 보니 그런 형태가 나오게 되는 것. 하지만 면적의 최대치를 맞추느라 사선으로 나온 형태가 내부 공간에서 쓰일 때의 옹색함을 이 집에선 타파하고 싶었다. 온전히 쓸 수도 없는 애매한 내부 공간을 가질 바엔 작더라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테라스와 같은 외부공간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3층 테라스 ⓒBRIQUE Magazine

 

도로보다 낮은 1층

 

또 하나 사선제한에 대한 대응으로 묘수를 둔 것은 바로 1층이다. 사선제한에 따른 건물의 높이 조정으로 1층을 도로 레벨보다 약 1,200mm 낮춰 계획한 것. 주방과 식당 간에도 400mm의 단차를 두어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벤치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기에 적합한 아늑한 공간감이 만들어졌다.

 

1층 평면도 ⓒmundoehoje
1층은 도로보다 1m 가량 낮게 자리잡아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texture on texture
1층 주방과 식당 공간 ⓒtexture on texture

 

300mm의 딜레마

작은 집은 작은 변수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집을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해 허가를 받으려고 하니 1층에서 1.2m로 계획한 출입구 폭을 1.5m로 변경해야만 했던 것. 300mm를 조절하는 게 일반적으로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컴팩트하게 구성한 작은 집이라 이를 줄이자 계단을 놓을 자리가 부족해졌다. 현행 법규가 이 집과 같은 작은 집에 적용될만한 것으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법규를 전부 적용하면 집을 아예 못 짓는 경우도 발생한다. 도심 속 작은 집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예외 규정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BRIQUE Magazine

 

두 개의 출입구

이 작은 집에 출입구가 두 개라면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를 일. 하지만 이 집에서는 출입구를 두 개 두어야 할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1층의 주방과 식당 공간은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공적 성격을 갖는 공간이고, 2층 서재와 3층 및 다락의 거실과 침실은 1층에 비해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출입구를 분리하자 필요하면 한 집을 두 채처럼 쓸 수 있는 효과도 누리게 됐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실 등의 동선 공간을 두지 않아도 되어 1층을 더 넓게 쓸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 출입구가 나타난다. ⓒtexture on texture
2층 서재 ⓒtexture on texture
책장 한편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texture on texture

 

동네로 영역을 확장하는 집

집을 두 부분으로 분리한 것은 이 집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1층 주방과 식당이 공적인 공간이 되면서 가지게 될 새로운 역할 때문이다. 집은 독점적이고 사적인 영역이지만 동네와 접점이 되는 부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동네의 일부로 의미 있는 확장을 할 수 있다.
1층에서는 주인도 외부인도 식당이나 카페처럼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곳이다. 완벽하게 공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사적이지도 않은 이 공간은 집과 동네, 그리고 도시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중간적인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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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내일의 삶을 생각하다

이 집은 당초 세컨드하우스로 계획한 집이지만, 라이프스타일이나 쓰는 사람의 변화에 맞춰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집이다. 주거시설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계획한 것 역시 그런 이유다. 건축주가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집을 더 이상 활용하지 않을 때에도, 1층은 원테이블 레스토랑이나 공유 주방으로 임대를 할 수도, 2층과 3층, 다락은 게스트하우스나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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