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와 생활 사이

[People] ‘문도방 주택’에서의 사계절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김지아  사진. 이동웅, 윤준환

 

그릇을 만드는 문병식 씨와 유인향 씨 부부는 집과 공방,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공간을 오래도록 그려왔다. 그릇만큼이나 근사한 주택을 지난해 봄 ‘문도방’의 이름으로 꾸려가게 된 이들에게 공간에 대해 묻자 시작은 단순했다고 말한다. 간결하지만 명료한 선을 가진 문도방의 그릇처럼 세 공간을 고르게 쌓아 올린 그들의 집도 그러했다. 도예가로 살며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에 익숙했을 이들이 두 딸과 함께 채워갈 공간. 그곳에서 문도방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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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공방, 갤러리가 같이 있는 집은 처음이에요.

유인향 문도방 그릇 작업의 주가 되는 작업실은 여주에 그대로 있어요. 그 작업실을 같이 옮겨오고 싶었는데, 완전히 합치기는 불가능하더라고요. 작업할 때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 일에 집중을 못 하거든요. 현재로서는 주거와 갤러리, 수업을 하는 공방이 같이 있어요.

 

이렇게 세 공간이 함께 있는 집을 마련한 계기가 있나요?

유인향 이 집이 있기 전에는 판교에서 5년 정도 문도방 매장을 운영했어요. 지내다 보니 판교가 자연과 가까이 있으면서 생활권은 도심인 점이 마음에 들었죠. 세입자로 계속 있다가 문도방으로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건물을 지어서 집도 짓고 문도방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사실 저희 생각만으로는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문병식 그때는 저희가 어려서 생각을 못 했는데, 수강생 중 한 분이 어느 날 저를 차에 태우더니 끌고 나가시더라고요. “선생님, 나랑 같이 부동산에 가 봐요.” 하면서요. (웃음) 그래서 ‘땅을 사야 되나?’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와 상의한 뒤 다시 터를 찾게 됐어요. 우연히 이쪽으로 발길이 닿아 왔는데, 아내가 너무 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햇살 좋은 봄에 왔더니 집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유인향 터를 찾으려 애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과 제 직감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거든요. 이렇게 세 공간이 같이 있는 이유는 되게 단순해요. 분리하게 되면 집 따로, 매장 따로 비용이 이중으로 들잖아요. (웃음)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둔 거죠. 또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도 해서 아파트 생활보다는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주택이 훨씬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맡긴 이유가 궁금해요.

유인향 건축가를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어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라고 해도 막상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찾고 있던 와중에 수강생 한 분이 판교에 집을 지으셨다고 해서 여쭤봤죠. 우리가 좋아하는 건 단순하고 심플한 디자인인데, 제가 찍어둔 건축물과 조남호 소장님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분도 조 소장님께 설계를 의뢰해 집을 지으신 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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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전에 건축가에게 요구한 사항이 있었나요?

문병식 집에 관해서는 거의 아내가 도맡아 했어요. 저는 갤러리와 작업실을 어떤 식으로 분리하자, 작업 동선은 어떻게 하면 편하겠다, 정도의 의견만 냈고요. 어차피 여기서 공간은 아내가 많이 쓸 테니까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유인향 그래서 제가 주체적으로 하게 됐죠. (웃음) 집을 설계할 때 임신을 한 상태여서 집에 있어서는 아이들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하며 크는 것. 그게 큰 마당을 원했던 이유였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다락방 같은 것도 염두에 뒀어요. 그 외에 건축가님께 요구했던 건 세세한 부분들이었어요. 수납을 중요시해서 웬만하면 밖에 나오지 않게 최대한 정리정돈이 될 수 있는 수납 구조. 그리고 창은 좀 크게 내되 많지는 않길 바랐고요.

 

갤러리 쪽으로 있는 수공간이 근사하던데요.

유인향 그건 조 소장님이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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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때문에요?

유인향 관리보다도 고급 주택으로 느껴지는 부담감 때문이었죠. 이 공간은 박물관도 아니고 우리의 삶도 그렇게 럭셔리가 아닌데. (웃음) 수공간까지 들이면 부담스럽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소장님이 수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시면서 저희를 설득하셨어요. 수공간을 건너는 일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는 걸 의미한다고 해요. 외부와 분리되는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는 물 위의 징검다리를 걷는 이 공간이 문도방 주택의 특색이 돼서 만족스러워요. 찾아오시는 분들뿐 아니라 아이들이 아침마다 들러 노는 곳이기도 해요. 관리는 다 제 몫이어서 힘들긴 하지만요. (웃음)

 

건물의 색이 전체적인 공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유인향 처음에 생각했던 색은 흰색이었어요. 문도방이 주로 백색으로 작업을 하잖아요. 오랜 시간 주택을 둘러보면서 빨간 벽돌 집도 예쁘다고 생각해 온 터라 붉은 벽돌집과 흰색 집 둘 중에 고민했어요. 판교 쪽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집을 보고 또 봤는데 끝까지 외장 벽돌 색을 결정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원래 설계대로 회색 벽돌로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회색 건물이 이 동네와 조화를 잘 이룰지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건축가를 믿고 그렇게 결정했죠. 다음 집을 짓게 된다면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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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집까지 생각하시는 건축주는 흔치 않은데. (웃음) 집과 갤러리가 붙어 있어 겪는 어려움은 없나요?

유인향 아직까지는 없어요. 방문객이 많이 오시고 하는 번잡스러운 곳은 또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진입 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어 편해요. 지하는 지하대로, 갤러리는 갤러리대로, 집은 집대로 동선을 다 고려해서 설계했기 때문에 주택이 노출되거나 방문하시는 분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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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가 공방, 1층이 갤러리, 2~3층이 주거 공간인데요.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씩 골라주신다면.

유인향 너무 많아요. (웃음) 살면서 천천히 느낄수록 많아지더군요. 지하는 층고가 굉장히 높아요. 선큰 중정을 크게 두고 중정을 향한 큰 창을 낸 덕분에 환한 빛이 들어 지하 같지 않은 공간이 됐어요. 1층은 한국적인 인테리어 요소와 마감으로 백자 작업이 돋보일 수 있도록 구성해 남편이 꿈꾸던 공간이 됐죠. 주거 공간에서는 확 트인 거실과 서로 다른 뷰를 가진 창이 마음에 들어요. 사계절의 변화를 집으로 들일 수 있어 참 좋아요. 덕분에 외출이나 여행에 대한 갈증도 해소되는 것 같고요.
문병식 갤러리는 천장을 최대한 높여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개방감이 중요하기도 하고, 또 출입문이 크면 갤러리로 들어설 때의 느낌이 다르니까요.
유인향 시공하시는 분들이 그것 때문에 좀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천장이 높으니까 40평인데도 많이들 넓어 보인다고 말씀하세요. 대신 갤러리 층고 때문에 주택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많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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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많이 두고 사시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문병식 지금도 저는 더 줄였으면 해요.
유인향 저는 또 그렇진 않거든요. 공간에 적절히 어울릴 만한 가구와 취향을 반영한 생활 소품으로 천천히 집을 채워가고 싶어요.

 

의견 조율이 필요하시겠어요. (웃음)

유인향 다행히도 집에 있어서는 남편이 제 의견을 많이 따라줘요. 심플하고 간결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하기도 하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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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실현된 집에 살아보니 어떤가요?

유인향 공간을 꾸려가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됐어요. 생활에 어떤 게 필요한지, 어떤 게 중요한지를 계속 생각해 보게 되고 집 안의 사물 하나하나에 따라 공간이 확 바뀌니까 물건과 나의 관계 같은 것도 생각하게 되고요. 집에서는 주로 제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저 못지않게 아이들도 집을 참 좋아해요. 즐겁게 놀 수 있는 다락도 있고, 뛰어놀 수 있는 마당도 크게 있으니까요. 천창으로 들어오는 달과 별을 찾기도 하고, 매시간 바뀌는 그림자로 그림자 놀이도 해요. 또 안방 욕실에 아이들 전용으로 수영장 같은 욕조를 만들었는데, 그걸 잘 활용해줘서 뿌듯하죠. 거의 수영 선수처럼 물을 가까이해요. (웃음) 이 집에 살면서 더 이상 장난감은 사지 않게 됐어요. 모든 게 놀이가 될 수 있으니까 행운이죠.
문병식 여주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올 때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이 공간에서 예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죠. 꿈꾸던 갤러리도 있고, 도예로 맺어진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니 더없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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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도예를 하셔서 이런 형태의 집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유인향 맞아요. 전혀 다른 일을 했다면 협조하는 게 쉽진 않았겠죠. 근데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끼리 많이 만나요. 결혼하고 한동안은 저도 문도방에서 도예가로 함께 그릇을 만들었어요. 현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육아에 집중하지만, 틈틈이 손잡이나 오브제 조각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문병식 생활과 작업이 함께 하니까 여러 면에서 수월하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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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살아 어려운 점이나 아쉬운 점도 있나요?

유인향 이전 집인 여주에서도 주택에 살았어요. 그래서인지 관리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는 것 같아요. 여주에 비하면 여기가 더 번화한 도시라 그 점도 만족스럽죠. 불편한 점은 거의 없어요. 적재적소에 수납 공간이 있고, 동선 설계도 잘해주셔서요.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크면 학교에 가야 하니까. 주변에 도보로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어 그 부분이 걱정은 좀 돼요.

 

동네 분위기는 어떤가요? 수도권이지만 비교적 한적한 동네인 것 같아요.

유인향 처음 왔을 때는 동네 초입이 좀 어수선해서 실망할 뻔했죠. 근데 언덕을 지나 들어오는 순간 다른 동네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저희가 오면서 집들이 하나둘 지어져서 지금은 전원단지처럼 조성됐어요. 판교나 분당 등의 도심과 가까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동네예요. 아침에는 새소리가 들리고 네다섯 시만 돼도 아주 한적해요. 싫지 않은 적막과 고요함 속에서 새소리, 물소리, 우리 아이들 노는 소리에 집중하게 돼요. 갤러리로서도 외곽에 있는 게 더 잘 어울리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계속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니고, 대부분 문도방을 알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니까요. 문도방 그릇의 결을 생각할 때 여기처럼 조금 한적한 곳에 있는 게 더 적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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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고 난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문병식 이사 오고 아내가 참 부지런해졌어요. (웃음) 이 집이 지어지고 마침 여주로 가는 전용 도로가 뚫려서 이동도 편리해졌죠. 판교 매장에 있던 작은 공방에서 여기로 옮겨오면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점이 저로선 가장 즐거워요.
유인향 집을 짓고 산다는 게 참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계절을 지내 본 지금은 그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천천히 탐색해 가고 있어요. 오래 보아야 알게 되는 아름다운 선과 창으로 드리우는 매시간 바뀌는 빛의 길이, 색으로 채워지는 공간의 풍요로움 같은 걸 이제 알게 됐어요. 아침 일찍 장화를 신고 부지런히 곳곳을 가꾸는 재미도 알아가고 있고요.

 

‘좋은 집’이란 어떤 곳일까요?

유인향 화려함보다는 살면서 느끼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집에서나 아쉬운 점은 있을 거예요. 그런 걸 오래 생각하기보다 그 집의 좋은 부분을 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구성원과 함께 채워가는 감각도 중요해요. 공방, 갤러리가 함께 있는 이 집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 집이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집을 짓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에 이 ‘다음’을 또 생각하고 싶어요. 그때의 생활과 구성원에 따라 우리에게 좋은 집은 계속 바뀌기도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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