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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으로 완전한 삶을 위하여

[Space] 그 남자, 그 여자가 사는 집, 남녀하우스
ⓒHyosook Chin
에디터. 김윤선 사진. 진효숙 자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202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0년 1월 인구동향’에 의하면 올해 1월 출생아 수는 2만6818명으로, 작년 1월보다 11.6%(3522명) 줄었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 역시 1970년 통계 작성 시작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2019년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1명이 채 안 된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혼인 건수가 8년째 줄고 있는 데다 혼인을 늦추는 경향이 나타났고, 출산 가능한 여성 인구가 감소하는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 또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딩크DINK는 ‘Double Income, No Kids’의 준말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상황과 맞물려 딩크족을 표방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자녀를 낳지 않는 주된 이유로 경제적 여유 부족을 꼽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직장 경력 단절 우려, 육아에 대한 심적 부담 등의 이유 또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빠와 엄마 아닌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기

‘남녀하우스’의 건축주 역시 딩크족 부부이다. 그들은 198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이자,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금융 전문직 종사자다. 여행을 좋아하고 와인바 데이트를 즐겼던 부부는 결혼을 하고도 일과 개인 생활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싶었고, 결혼 전부터 함께 고민하고 상의한 끝에 자녀를 두지 않는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빠와 엄마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 남자와 여자로서 부부 둘만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함께 행복을 찾기 위한 결정이었다.

 

남자와 여자, 집을 짓다

그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을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먼저, 서울을 벗어나지 않되 땅값이 적절하면서도 직장과 가까운 동네를 물색했다. 자녀 계획이 없는 만큼 학군이나 육아를 위한 인프라 등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땅을 찾고 건축가를 만나는 데까지 1년 반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결혼 생활 가운데, 충분히 함께 하면서도 개인의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는 집을 원했다. 둘만으로, 그리고 혼자로서도 완전해지고 싶은 남자와 여자의 집 짓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심 끝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적한 동네에서 집 지을 땅을 발견한 부부는 그들의 생각을 실현해 줄 건축가를 만나 온전히 그들만의 생활방식과 개성을 담은 집을 지었다. 결혼을 통해 둘로서, 또 하나로서 더 완전해지는 삶을 꾸리고 싶었던 그 남자, 그 여자가 사는 집. 어떻게 지었을까?

 

ⓒHyosook Chin

 

집 짓기의 시작, 알맞은 땅 찾기

두 개의 도로에 접한 모퉁이 땅

부부가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찾은 대지는 서쪽과 북쪽 두 개의 도로에 접한 모퉁이에 있는 땅으로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차량이 드나들기에 편리해 공사 시에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북쪽에 도로가 있는 경우 물리적으로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데, 이는 일조권 사선제한과도 관련이 있다.

 

ⓒHyosook Chin

 

피할 수 없는 일조권 사선제한

일조권 사선제한은 주거지역에서 집을 지을 때, 주변 건물의 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법이다. 정북 방향에 있는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건축물 높이 9m 이하면 1.5m 이상, 건축물 높이 9m 이상이면 해당 건축물 높이의 ½ 이상 간격을 벌려 놓아야 한다. 이때 북쪽에 대지가 아닌 도로가 인접해있는 경우, 인접 대지 경계선이 도로 너머가 되기 때문에 확보할 수 있는 면적이 더 커진다. 이 땅은 북쪽에 도로가 인접해 있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금이나마 면적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현황도로 정리하기

다만 접한 도로 중 한 곳은 현황도로(지적도상 도로가 아니지만 주민이 오랫동안 통행로로 이용해온 사실상 도로)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대지 일부를 도로에 내주어야 했다. 지적도상 현황도로의 대지 경계가 울퉁불퉁한 이형이라 편의를 위해 일직선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1층 평면도 ⓒaoa architects

 

그 남자, 그 여자의 집

두 개의 화장실

부부가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남편과 아내의 화장실을 따로 두는 것이었다. 아마 이 집의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아니었을지. 한 층 연면적이 11평 정도인 작은 집에서 비교적 넓은 면적의 화장실, 그것도 화장실이
두 개라면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를 일.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이 온전히 반영된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화장실은 계단과 함께 집의 한가운데 위치해 집 전체 공간 구획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화장실의 끝과 끝에는 문을 설치해 동선에 유연성을 더했다.

 

2층 화장실 ⓒHyosook Chin
3층 화장실 ⓒHyosook Chin
3층 평면도 ⓒaoa architects
2층 평면도 ⓒaoa architects

 

2층 남편 공간, 3층 아내 공간

2층 거실과 3층 침실은 같은 면적과 형식을 가진다. 두 공간 사이에 프라이버시와 위계는 느슨하지만 각 층에 남편과 아내의 독립적인 화장실을 배치함으로써 거실은 남편의 공간으로, 침실은 아내의 공간으로 암묵적으로 점유된다. 차가운 분위기를 내는 거실의 청록색 대리석 벽과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침실의 붉은 체리 나무 벽은 이러한 실의 기능을 반영한 재료이자,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공간을 전형적,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재료이다.

 

2층 거실 벽에는 청록색 대리석 벽으로 차가운 분위기를 냈다. ⓒHyosook Chin
3층 침실 벽에는 붉은 체리 나무 벽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냈다. ⓒHyosook Chin

 

집의 숨은 얼굴 찾기

내부 공간의 대칭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외관은 창문의 위치와 크기로 인해 남쪽은 남자의 얼굴, 북쪽은 여자의 얼굴처럼 보여지며 은근한 위트를 드러낸다. 외관에는 굽지 않고 상온에서 말린 초록색의 흙벽돌을 적용했다. 벽돌을 쓴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비용 절감의 이유가 컸다. 건축가는 처음에는 동네의 분위기를 고려해 노란 색조의 벽돌을 제안했지만, 부부가 직접 고른 색상을 적용했다.

 

ⓒaoa architects
여자의 얼굴처럼 보이는 북쪽 ⓒHyosook Chin
남자의 얼굴처럼 보이는 남쪽 ⓒHyosook Chin

 

집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4개 층의 공간 구성

집은 총 4개 층으로 1층은 차고와 주방, 2층은 거실과 남편의 화장실, 3층은 침실과 아내의 화장실, 4층은 외부 테라스가 딸린 취미실로 구성했다. 용적률을 최대한으로 맞추는 여타 도시의 집들과 달리, 부부에게 필요한 공간만으로 간소하게 채웠다.

 

집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계단

70m²(약 21평) 남짓한 작은 땅에 4층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계단이다. 계단은 집에서 이동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결코 작지 않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단순하게, 계단이 집의 모든 공간을 명쾌하게 분리하고 구획하는 요소로 기능하기를 바랐다. 계단을 집 한가운데 배치하자 그를 기점으로 남쪽은 생활 영역(거실, 침실 등), 북쪽은 서비스 영역(화장실, 세탁실, 드레스룸 등)으로 대칭적인 공간 분리가 일어났다. 계단은 서비스 영역과 함께 순환 동선을 이루면서 집의 개방감을 극대화하며 공간 경험을 풍부하게 만든다.

 

단면도 ⓒaoa architects

 

집 같지 않은 집

부부가 건축가에게 맨 처음 이야기했던 집의 모습은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 그들에게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때로 집 같지 않은 특별한 공간이어야 했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주방을 1층에 두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에게 주방은 퇴근 후 잠깐 들른 카페나 와인바 같은 공간이 된다.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생활 패턴을 고려해 음식 생산보다 음식 소비에 적합하도록 마련한 큰 식탁 역시 그런 공간감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또한 부부는 집 내부에 거친 콘크리트 마감을 그대로 노출해 브루클린의 여느 호텔 같은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원했다. 여행을 통해 접했던 공간의 이미지는 부부가 원하는 집을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4층 취미실. 옥상 테라스로 연결된다. ⓒHyosook Chin
2층 거실 한편 ⓒHyosook Chin

 

방이 없는 집

이 집에는 방과 문이 없다. 모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스튜디오 같은 구조로 계획되어 각 층이 방의 개념을 대신하는 셈. 이런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가 없는 부부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방이나 문으로 공간을 쪼개지 않고 개방감있게 쓰되, 층별로 공간을 구분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방법을 택했다.

 

창문 구성

창문은 공간의 성격에 따라 그 기능과 크기가 다른 창을 배치했다. 침실은 수면에 최적화된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작은 환기창을, 거실에는 조망을 위해 가로로 긴 고정창과 환기창을 두어 남쪽의 빛이 잘 들어올 수 있게 했다. 2층 화장실과 3층 화장실의 환기창 역시 크기가 다르다. 상대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3층 아내 화장실은 2층 남편 화장실보다 창의 크기를 작게 설계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는 외부로 시선이 확장되고 밝은 빛을 효과적으로 들일 수 있는 작은 고정창을 배치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좁은 계단실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관련 기사 :

 

남녀하우스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3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brique-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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