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 만들어낸 공공의 헤리티지

[Heritage is _____.] ⑤ 민락수변공원 돗자리 공공미술 프로젝트: 워터프런트 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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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지일  사진. JUNLEEPHOTOS  자료. 아트소향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건축에는 다양한 시간을 오간 역사의 흔적이 존재하고,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그 흔적은 우리 삶에 그대로 투영된다. 이런 자리에는 분명 ‘헤리티지’라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많은 건축가·공간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흔적을 함부로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변신시키기보다는 지나온 과거와 오늘날의 가치가 공존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건축·공간에서 헤리티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헤리티지는 단어의 의미를 넘어 진지한 학문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용어이며, 도시가 고민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헤리티지를 둘러싼 여러 개념이 오고 가는 이때, ‘한국의 건축·공간에 헤리티지는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부터 남겨야 할 것과 변형된 것,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은 계속된다.

 

① 오늘의 유산이 될 보편적인 풍경
② 스테이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 해남 유선관
③ 골목의 풍경, 노동의 가치를 투영하다 — 을지다락
④ 생경함과 익숙함 사이, 1980년대 다가구주택 — 구의살롱
⑤ 로컬이 만들어낸 공공의 헤리티지 — 민락수변공원 돗자리 공공미술 프로젝트: 워터프런트 도어
⑥ 남겨진 것과의 넉넉한 공존 — 전봇대집
⑦ 부활, 그리고 현재 진행형— 재건문구사 & 재건사커피
⑧ 폐공장, 다음 단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 코스모40

 

도시의 헤리티지는 건축의 그것과는 닮은 듯 상이하다. 도시의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낡은 건물을 헐어내 초고층 건물을 세우고, 한편에서는 쓰러져가는 오래된 건물을 문화유산이라며 보존하고 보호한다. 사유화된 건물은 공공의 헤리티지로 정의할 수 없지만, 도시의 헤리티지는 사적 소유물이 아닌 일반 대중이 향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궁극적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가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에서의 헤리티지라 정의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은 2020년 전국적으로 실시했던 공공 프로젝트로, 각 지자체별로 평균 4억 원의 예산을 배정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업이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민락수변공원 돗자리 공공미술 프로젝트: 워터프런트 도어Waterfront Door’는 국내 최초의 수변공원인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의 약 500m 길이의 해안 산책로를 해양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다채로운 패턴으로 디자인한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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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락수변공원의 과거와 현재
부산 수영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으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곳에 위치한 민락수변공원은 지역 개발 촉진과 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해 1992년 조성되어 1997년 5월 개장했다. 약 3만 3000m²(길이 543m, 너비 60m) 면적에 최대 4만 명 정도를 수용하며, 바다를 바라보며 각종 행사나 풍경을 관람할 수 있는 3040m²의 스탠드가 특징이다. 2003년 광안대교 개통과 초고층 주상복합 및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마린시티의 조성이 마무리된 2010년부터는 밤의 파도에 비치는 마린시티와 광안대교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인파가 이곳에 앉아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현지에서는 ‘야외 술집’이라는 부정적인 오명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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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의 법칙
많게는 수천 명이 몰리는 공간인 만큼, 코로나19가 팬데믹이 계속되자 수영구에서는 이곳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골머리를 앓아왔다. 임시 출입구 7곳을 만들어 하루밤에 560팀, 최대 3천 명만 출입을 허용하고, 청테이프로 구간을 나눠 취식할 수 있도록 간격을 표기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지만 비가 오면 테이프가 떨어져 나가고 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청테이프로 조악하게 구분된 간격을 거리두기라 인식한 시민들도 많지 않았고, 이에 거리두기가 제대로 지켜질 리도 만무했다. 마침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동네 미술’사업의 예산을 배정받은 수영구는 해당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와 예술가들에게 사업 참여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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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도, 멀리서도 아름답게
사업에 참여한 ‘아트소향’은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로컬 갤러리로, 아트소향과 동서대학교 석좌교수인 이코 밀리오레Ico Mgliore가 협업한 디자인안이 최종 당선됐다. 이코 밀리오레와 마라 세르베토로 구성된 M+S 건축사무소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수년간 전 세계 유수의 기관과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수의 공공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전시 등에 참여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다. 아트소향과 M+S 건축사무소는 청테이프로 구획된 400여 개의 2x2m 구역마다 의미를 부여했던 다른 업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수변공원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바라보고 도시 경관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아트소향의 남은진 대표는 “민락수변공원은 부산 명물 중 하나인 광안대교를 오가며 한눈에 보이는 지역으로, 개별로 구획된 칸을 하나하나 꾸미게 되면 멀리서 봤을 때의 풍경이 아름답지 않고 각 구역이 강조되어 공공성을 갖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며 가까이서 즐기는 것만큼 멀리서 즐기는 것도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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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롭게 밀집된 드로잉은 M+S 건축사무소가 오랫동안 전달해 온 연구와 철학을 확장한 표현으로, 해안로인 동시에 사람들이 잠깐 멈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공간이다.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 거리두기 존에는 반복되는 물결 표시와 해양 생물 패턴들이 휴식 공간과 혼재되어 있다. 패턴 간의 대화는 기준점이 되는 5개의 크고 넓은 4×4m의 거리두기 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번호가 붙여진 작은 크기의 사각형 거리두기 존과 해양 생물들이 그 주위를 둘러싼다. 이는 마치 거리의 번호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산책로의 다른 지점에서도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다 물결과 상어, 문어, 매끈한 귀상어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생물 패턴은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해양 도시인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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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테이프로 삭막하게 구분 지어져 있던 수변공원의 거리두기 존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색과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산책로로도 기능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상황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각 존에 붙여진 번호는 주변 상점에서 음식을 배달시키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민락수변공원에서 주변 상인들이 좀 더 쉽게 고객들과 소통하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해양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의 조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 드로잉은 바다를 둘러싼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이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많은 발견과 이야기로 가득한 놀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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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변화를 넘어 지역 예술 활성화
지역 미술 단체 소속 청년 작가와 미술 전문 작가 등이 함께 참여하여 총 396개의 드로잉이 탄생했고, 예산 중 일부는 청년 작가 지원 목적으로 사용됐다. 드로잉은 올해 코로나 19거리두기 표시로 우선 쓰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더라도 공공미술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여러 디자이너의 노력이 함께한 색다른 표현을 통해 도시재생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지역에 애착을 갖고, 지역 문화를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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