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소한 것에는 가치가 있다

쌍문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작은 서점, '쓸모의 발견'
에디터. 장경림 자료. 비유에스건축 B.U.S Architecture

 

아기공룡 둘리가 머물던 고길동 아저씨네 집, 한 가족처럼 사는 동네 주민들의 정겨운 이야기로 시청자를 웃고 울린 ‘응답하라1988’. 두 작품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서울 도봉구 쌍문동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죠. 높지 않은 주택들이 어우러져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을을 친구 삼아 산책할 것 같은 소담한 동네. 그런 정겨운 모습에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끌어내기에 좋아 종종 작품의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런 쌍문동 골목길 중턱에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작은 서점이 등장했습니다. 이름은 ‘쓸모의 발견’. 원래 낡은 집이었는데 새로운 쓸모를 발견해 서점으로 새 단장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노후 주택을 리노베이션을 통해 동네의 사랑방으로 바꿔낸 이야기를 비유에스건축의 조성학, 박지현 소장과, 서점 주인이자 이 집의 주인인 건축주로부터 들어 봤습니다.

 

건축가의 집 스케치 ⓒB.U.S Architecture

 

쌍문동 그 집

건축주는 오래도록 머물면서 삶의 터전이 될 동네를 찾아 다녔습니다. 주거 공간도 마련하고, 책 쓰고 그림을 그리는 본인의 평소 생활을 생업으로 삼을 서점도 함께 만들길 원했죠. 그러던 차에 쌍문동을 만나게 됐습니다. 쌍문동은 1970~1980년대 서울의 전형적인 마을 풍경이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무분별한 도시계획에서 벗어나 낮은 지붕으로 더 많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그러나 밤이 되면 어둡고 한적해 퇴근길 주민들이 작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곤 했습니다.

몇 해 전 이 동네에 들어선 ‘쓸모의 발견’은 낡은 주택을 리노베이션해 새 단장한 집과 서점이 연결된 아담한 건물입니다. 마치 토끼 귀를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지붕과 안마당에는 훌쩍 큰 감나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점은 도로와 가까이 마주해 행인을 반기죠. 작은 몸집에 수수한 모습의 건물이지만 밤이면 반딧불이처럼 따뜻하게 길을 밝힙니다.

 

ⓒKyung Roh
변경전 1층 평면도(왼쪽)와 변경후 1층 평면도 ⓒB.U.S ARCHITECTURE
변경전 지붕층 평면도(왼쪽)와 변경후 2층 평면도ⓒB.U.S ARCHITECTURE
변경후 단면도 ⓒB.U.S ARCHITECTURE

 

감나무를 지켜라

이 집이 이런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데에는 남모르는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안마당의 감나무인데요. 이 마을 주민들은 동네 골목길을 오르다 숨이 차거나 힘이 들면 집 앞 작은 턱에 잠시 앉아 쉬곤 했답니다. 건축주가 이 집을 만나기 수십 년 전부터 있던 모습인데요, 옛 주인은 가을이면 주렁주렁 맺히는 감을 이곳에서 쉬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함께 먹었다고 합니다.

새 주인과 건축가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길목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감나무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옛 집의 흔적과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사소한 것 같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소중한 쓸모였기에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기로 했죠.

 

감나무가 풍성했던 옛 집의 모습 ⓒB.U.S Architecture
옛 주택에서 실측 중인 비유에스 건축 ⓒB.U.S Architecture

 

건축가들은 서점을 위한 새 공간은 수평으로 증축을, 거주를 위한 집은 경사 지붕을 덜어내고 수직으로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40~50년이나 된 낡은 주택을 증축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죠. 왜냐하면 기존의 주택은 마당의 절반이 건축법을 위반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서는 감나무의 뿌리를 일부 잘라야만 했고, 작은 건물에서 거주 공간과 서점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입구를 분리하는 등 동선과 구조를 신경 써야만 했습니다.

 

감나무를 안마당에 품은 새 집의 모형 ⓒB.U.S Architecture
감나무를 안에 두고 담장과 마당을 조성하는 모습 ⓒB.U.S Architecture
기존 벽돌과 증축으로 새로 조적한 벽돌 ⓒB.U.S Architecture

 

1층 서점은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앞으로 공간을 내었고, 아슬아슬하게 침범하고 있던 마당의 감나무 뿌리는 조경 전문가와 협의해 추운 겨울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집이 겨울에 완공이 돼 감나무의 상태가 당시로는 알 길이 없었죠. 다행히도 이듬해부터 감나무는 예의 과실을 안겨다 줘 모두에게 기쁨이 됐습니다.

 

감나무 잎 반경에 따라 덜어낸 2층의 범위 ⓒB.U.S Architecture
완성된 2층 테라스 ⓒKyung Roh
2층 내부 모습 ⓒKyung Roh

 

배려와 미학을 담은 곡선

2층은 잎과 열매가 풍성해지는 것을 고려하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재치 있게 표현됐습니다.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설계를 하면 공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죠. 특히 협소주택인 이 집은 거주 공간을 더 넓게 만드는 방법도 고려했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감나무 반경만큼 부드럽게 덜어내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감나무와 함께하는 생활에 대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부드러운 곡선은 타일로 마감하여 과일을 베어 문 듯, 겉과 속이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건물의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감나무에 대한 애정, 삶이 녹아든 집을 위한 건축가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Kyung Roh
ⓒKyung Roh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이 집은 또 고양이 네 마리를 위한 동선도 고려했습니다. 1층의 집과 서점을 분리하면서 벽에 작은 창문을 냈죠. 이 구멍은 고양이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성격이 다른 두 공간의 소통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앉아 있길 좋아하는 고양이가 벤치가 생긴 듯 창문 턱에 가만히 머무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건축주의 아이디어인 작은 창문은 옛날 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한옥에서 온돌 때문에 생긴 단 차이를 위해 높고 작게 나있던 창문의 형태를 본 따온 것이죠. 한옥에서는 음식을 주고받던 통로지만, 이 집에서는 고양이가 서점을 내려다보는 지점이 되었고요. 이 집에서는 작은 창문마저도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작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Kyung Roh
ⓒKyung Roh

 

집 안에서도 건축주의 책 사랑이 느껴지는 곳은 벽을 활용한 책장입니다. 토끼 귀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지붕 아래는 계단이 위치하는데요. 이 계단 옆에 책을 수납할 수 있도록 책장을 마련했습니다. 협소주택의 공간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여백 공간을 활용하여 건축주의 개인 서적도 넉넉히 보관할 수 있게 되었죠.

 

ⓒKyung Roh
ⓒB.U.S Architecture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했던 것 자체가 저희의 지향점과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동네의 대부분은 신축 다가구주택이거든요.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땅을 추가 매입해서 원룸으로 개발하느냐, 아니면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느냐. 새로 지어 쓰는 것이 개인에게는 훨씬 큰 이익을 남긴다는 건 명백해요. 그럼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보존을 택한다는 것은 중요한 가치에 공감을 한다는 거죠. 이 집은 건축주의 성향이 담겨 있고, 저희가 그것을 실현시켜줄 사무소였던 것 같아요.” – 박지현 소장

 

건축가들은 ‘쓸모의 발견’이 하나의 대안적인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존 건축에 접근하던 규정화된 방식을 탈피하고,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는 ‘버스BUS’처럼 건축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것이죠. 이러한 건축가들의 지향점이 ‘쓸모의 발견’에서도 그대로 담겨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도 가치가 있잖아요, 이름의 뜻을 생각하면 작은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 집의 성격과 건축주분의 삶의 태도가 잘 담겨있는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기존 주택에서 살릴 수 있는 것들 -마당의 감나무뿐 아니라 벽의 흔적이나 기존 벽돌의 재료들도 쓸모를 고려했어요.”– 조성학 소장

 

ⓒB.U.S Architecture

 

“쌍문동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곳을 선택한 것은 동네의 분위기랄까요? 시골 고향집 같아요. 은행나무도 있고, 감나무도 있는 것이 정취가 있었어요. 주변에 빌라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요. 감을 매개로 동네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건축사무소에서 감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을 고려해 2층을 곡선으로 설계하신 것을 보여주셨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저희는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었어요.” – 건축주

 

책과 고양이와 감나무.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잔잔한 영화 한 편의 주인공 같은 세 친구들은 ‘쓸모의 발견’ 안에서 함께 숨 쉬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겨운 서울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했지만, 밤에는 어둡고 적막한 동네였던 이곳에서 ‘쓸모의 발견’은 반딧불이 역할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에게는 오르막길의 정겨운 쉼터가 되고, 집 주인에게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안락한 보금자리가 됐죠.

만약 옛 집을 허물고 원룸으로 가득 채워진 다가구주택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불현듯 가슴이 답답해 오네요. 누구든 쌍문동 골목길을 굽이 걷다 따뜻한 불빛의 이 서점을 발견한다면, 이름에 딱 어울리는 곳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질 쌍문동의 정다운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B.U.S Architecture
ⓒB.U.S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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