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 있는 삶에 대하여

[Scent in Space] ⑤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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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준 사진. 최진보 자료. 수토메 아포테케리

 

그야말로 필름 누아르의 한 장면 같은 마포구 망원동 골목길 어딘가. 두서도 없이 날선 감각이 있는 출입문을 발견했다면 높은 확률로 그곳은 ‘수토메 아포테케리Sutome Apothecary’의 쇼룸 겸 작업실이다. ‘수토메’는 홍윤경 대표가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 낸 고유 명사, ‘아포테케리’는 구어식 영단어로 ‘약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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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도 귀에도 낯설기만 한 이 약국은 급기야 코를 자극한다. 험상궂은 골목의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향이 어귀부터 퍼지는 순간을 맞닥뜨리자면 어느 누구도 머뭇대지 않을 수 없을 것. ‘이상한 나라의 알렉스’쯤이 된 기분으로 기묘한 보폭의 계단을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막아선 철문. 냅다 두드릴 수도, 벌컥 열어젖힐 수도 없는 진퇴무로에서 얼마간 숨을 골랐을까, 청아한 목소리가 철문을 가른다. “어머,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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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경 대표가 밝게 인사했다. 골목길부터 은은한 향이 가득했노라 운을 뗐다.

“오스트리아 빈에 잠시 있었어요. 원래 유학을 생각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계획대로 되진 못했지만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에서는 일상에 아로마테라피가 녹아 있어요. 한국에선 감기나 몸살로 약국에 가면 통상 양약을 지어주잖아요, 근데 거기선 허브티를 먼저 처방해 줘요. 물론 일반적인 티보다는 좀 더 진하죠. 이걸 먼저 마셔본 뒤에 다시 오라고 해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 티를 마시면 다 나아요. 심리적인 효과도 분명 있을 거예요. 자연의 어떤 생명력과 섭리, 치유력을 믿고 또 의지하는 거죠. 그래서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금 저희 공간 같은 향이 나요.”

 

조향 중인 홍윤경 대표 ⓒBRIQUE Magazine

 

1980년대에 태어난 홍윤경 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는 학부와 석사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국내의 한 갤러리에서 경력을 쌓았다. ‘향’에 흥미가 생긴 건 고교 시절 같은 반 친구 때문이라고 했다.

“그맘때 또래 남자애들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기 어렵잖아요. 다 한창 땀 내서 운동하고 혈기도 왕성하고. 근데 그 아이가 올 때면 항상 좋은 냄새가 났어요. 알고 보니 그 친구 어머니가 아로마 테라피스트이셨고, 그 집에 놀러 가 처음 향을 접하게 됐죠. 그 뒤로는 계속 혼자 공부했어요. 향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다른 창조적인 일과 마찬가지로 자기 작업, 자기 공부가 중요하더라고요. 기본적인 향의 계열, 효능, 부작용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숙지하는 데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그 후 이를테면 ‘허벌 계열의 어떤 오일과 우디 계열의 어떤 오일이 지금 테라피 적으로 필요한데, 어떻게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향을 배합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두 스스로의 작업으로부터 찾아 나가야 하는 거거든요. 같은 재료와 기능을 가질 때, 더 섬세하면서도 심미적인 향을 찾는 것. 그런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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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었다. 무엇보다 ‘수토메’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궁금했다.

“수토메라는 이름은 저희 집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 지은 이름이에요.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을 두고 부모님과 많은 논의를 거쳤는데 합의점을 못 찾던 중이었어요. 영화 ‘써니’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죠. 어느 날 버스에서 영화에서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오더라고요. 가사 중에 ‘suitcase of memories’라는 단어가 꽂히듯 귀에 들어왔어요. 어구의 의미가 맘에 들었고, 일본인들이 영어를 줄이는 방식을 차용해 ‘sutome’라는 한 단어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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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까지 운영됐던 수토메 스테이 ⓒSutome Apothecary

 

지금은 운영이 중단됐지만, 홍윤경 대표와 어머니는 2012년부터 4년간 마포구에 ‘수토메 스테이’를 운영했다. 당시 홍윤경 대표가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축가 친구들이 그에게 참고해보라 추천한 공간이 지랩(Z_Lab)의 ‘제로 플레이스’였다. 기획과 설계는 물론 가구와 브랜딩 등 토탈 디자인의 개념을 응용해 만든 전무후무한 스테이 공간이었다.

“그 당시에 봤을 때 굉장히 잘 된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이만큼까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참고해서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이를테면 공간의 컬러를 정해 톤 앤 매너를 균일하게 한다던가, 우리만의 스토리에 집중한다던가, 그런 디테일을 최대한 챙기려 했죠. 복층구조였던 공간에 갤러리도 기획해 넣었고, 낮에는 전시공간으로 투숙객들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게 했어요. 갤러리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기자님들에게 보도자료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면서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어요. 시기적 흐름을 잘 탔던 덕도 봤죠. 서울시에서 한창 도시민박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내놓았을 때였고, 독특한 수토메 스테이가 서울시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사례가 된 셈이죠.

그 후 지랩으로부터 공간이 너무 좋다며 연락을 받았어요. 지랩이 먼저 만든 공간을 참고해 만든 곳이 역으로 좋은 곳으로 알려지게 된 거죠. 그렇게 처음 닿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지금까지 지랩이 기획하는 지스테이(Z_Stay) 공간에 향을 만들어 넣는 일을 하고 있어요.”

 

ⓒSutome Apothecary
수토메 스테이의 객실 ⓒSutome Apothecary

 

누와, 스테이 소도, 조천마실, 일독일박 등 뚜렷한 테마와 아이덴티티가 살아있는 공간을 기획해 ‘스테이’ 문화의 새 지도를 그리고 있는 지랩의 공간들은 세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 예약이 어려울 지경이다. 지랩의 공동대표들은 조도와 온도, 음악, 향 촉감 같은 ‘공간의 끝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차 강조했다. 홍윤경 대표는 ‘향’이라는 매개를 통해 공간의 최종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인공 향료는 상관없지만 천연 원료의 경우에는 사람에 따라, 체질에 따라, 그리고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어떤 특정 향이 약이 될 때가 있고 독이 될 때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간에 향을 둘 때 굉장히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상주하는 공간에 하나의 같은 향이 끊임없이 난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특정한 공간을 위한 소위 ‘시그니처 향’을 조향할 때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요. 어느 하나의 향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는 거죠. 한 공간에 늘 거주하는 사람, 상업 공간이라면 매일 같이 출근하는 매니저라든지, 그런 분들까지 고려해 뭐랄까, 향을 견고하게 구축한달까요? 건축적으로 얘기를 해 볼게요. 자하 하디드의 흐르는 듯한 건물,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삐죽빼죽 날이 선 건물이 있는가 하면 필립 존슨, 르코르뷔지에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도 굉장히 편안한 건물도 있잖아요. 후자처럼 조향을 하려 해요. 향을 처음 맡았을 때 이를테면 ‘아, 이건 오렌지 향이네?’ 하고 단언할 수 없는 향. 어느 한 향 요소가 균형을 어그러뜨리면서 튀어 오르지 않는 향을 만들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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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토메 아포테케리’라는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천연 향료나 합리적인 판매가뿐만이 아니다. 향을 대하는 그의 태도, 사람과 공간,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향긋한 시선, 그로부터 비롯된 ‘향’이라는 테마의 웰메이드 콘텐츠를 창조해낸다는 데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홍윤경 대표는 학창 시절 교과 공부보다 책 읽는 데 열중했다고 고백한다.

“학교를 거의 안 갔어요. (웃음) 그래서 졸업이 가능한 최저 출석일을 겨우 충족시키고 졸업을 했죠. 학교에 가지 않는 날 그냥 책을 보며 공부한 것들이 정말 많아요. 대학을 가면 책을 훨씬 더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졸업했어요. ‘무책임’과는 다른 결이죠. 지금도 제가 그런 면이 있지만, 할 건 하거든요. 학생으로서의 기본, 해야 할 공부는 해뒀죠. 수능도 어쨌든 그런 시험이잖아요, 어떤 지문을 ‘읽고’ 그 내용을 바르게 ‘해석’해내는 거. 책을 많이 읽으면 다각도에서 도움이 돼요. 그 당시 읽은 책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어요. 역사, 사회학, 민속학, 철학… 분야 불문,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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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들어내는 모든 향에는 스토리가 있다. 얼기설기 가공된 잡담이 아니다. 언어와 문장, 사유와 기지가 직조된 진짜 이야기다.

“향을 만들 땐 어디선가 직접적으로 콘텐츠를 끌어 올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소설 속에서 묘사한 어느 시대의 거리라거나 공간 속에 향이나 냄새를 상상케 하는 단서들이 있을 때가 있죠. 그런 경우엔 그걸 실제 향으로 구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저는 생겨요. 그렇게 만든 향을 통해 제가 바라는 건 마치 홀로그램처럼 그 순간을 경험하는 거에요.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있지만, 이를테면 마치 침엽수림에서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향료들을 이용해 만든 향을 분사해 놓으면 마냥 숲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순 없지만 완성도 높은 공간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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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제로 ‘향’을 가지고 지난해 5~6월경 혜화동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어쩌다 산책’에서 팝업 형태의 수토메 아포테케리 브랜드 전시를 열었다.

“향 전시. 개인적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였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무것도 없이 향으로만 전시 공간을 채우는 거였죠. 시각적으로 보이는 건 이 작은 향 보틀 뿐인데, 자칫하면 너무 성의 없고 허전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빈자리를 메울 콘텐츠가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회가 온 거죠. 정말 좌대 딱 열두 개 위에 각각 열두 개의 향을 놓고 전시를 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혜화동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 지역에 시대를 불문하고 살고 또 활동했던 인물들의 글이 바탕이 됐어요. 이를테면 김환기 화백의 부인이자 비평가였던 김향안 선생님의 에세이에서 일부 발췌를 한 문장을 바탕으로 향을 만들고 제가 이야기를 덧붙이는 식이죠. 그곳에 사셨던 정기용 선생님의 ‹서울 이야기›라는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바탕으로 향을 만들고 제 이야기를 덧붙이고. 이런 방식으로 열두 가지 향을 만들어서 전시하고 판매도 했어요. 전시를 보러 오셨던 분들이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어요. 의미 있는 인물의 글이 있고 그로부터 파생된 향이 공존하는 공간에 있으니, 마치 그 인물의 아틀리에나 개인 공간에 간 느낌을 받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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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웹페이지(sutomeapothecary.com)엔 그가 만든 향과 이야기들이 별처럼 박제되어 있다. 코뿐 아니라 뇌, 심장, 망막 등 다양한 신체 기관을 통해 ‘향’의 실재를 체험코자 한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좁디좁은 공간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해 서둘러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향’이란 뭐냐고.

“삶의 밀도… 이렇게 얘기하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객관적인 시간을 사는 건 아니에요. 똑같이 70년을 살았어도, 누군가에게는 30년 같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100년 같을 수 있는 거죠. 이건 뇌과학자들이 얘기하는 건데요, 어렸을 때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굉장히 천천히 가지요. 근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체감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요. 그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않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겪는 시간이 그저 짧은 단위로 뭉텅뭉텅 잘려 지나가고, 각인되기보다 버려지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어린 아기들 눈빛을 보면 어떨 땐 저는 조금 무서워요. 지금 저 아이가 뭘 보고 있는 걸까, 슬로모션처럼 흐르고 있을 그 시간에 무얼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요. 아이의 눈빛으로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호기심을 가지다 보면 성글게 스쳐 지나가던 시간에도 밀도가 생겨요. 어른들의 빨리 감기 같은 시간 속에 제어를 거는 게 바로 향이에요. 사람들은 이렇게 회상하곤 하잖아요, ‘거기서 문을 딱 열었는데…’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사로잡은 향이 있고 기억이 생기고, 속절없이 흐르던 시간에 쉼표가 찍힌 거죠. 누구나 모든 순간을 붙들어 기록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 순간 향이 있다면 어쩌면 가능할지 몰라요. 그 순간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죠. 엉뚱한 대답일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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