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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란 58년 개띠입니다

[People] '후암동 복합주거' 건축주 류명동씨의 집 이야기
ⒸBRIQUE Magazine
글 & 사진. 김윤선  영상. nekoes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 이른바 ‘뺑뺑이’로 고교에 진학한 고교평준화 1세대이며, 유신정권 말기 암흑의 시기에 20대를 보낸 이들. IMF 외환위기로 혹독한 중년기를 거치며 격동의 대한민국을 온몸에 아로새기며 걷고 또 뛰었던 사람들.
이윽고 2019년에 이르러, 그 뜨거웠던 춤사위를 멈춘 이 시대 아버지의 표상.

 

“서울에서 나고 자란 58년 개띠입니다.”

은퇴 후의 삶을 그리며 남산 아랫마을, 후암동에 집을 지은 건축주가 자신을 소개한 첫 문장은, 짧고 덤덤했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장성한 두 딸을 ‘꼬마’라 표현하던 그가, 덩치가 제법 큰 이 집 또한 ‘꼬마 빌딩’이라 부르기에 집이 자식 같은 존재냐고 물었더니,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집이란 아내와 같은 존재란다. 그에게 집이란 아내이자 자식이고, 가족은 곧 집이었으리라.

‘후암동 복합주거’의 건축주 류명동씨를 찾아 ‘아내 같은 집’에서 함께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후암동 복합주거’의 건축주 류명동씨 ⒸBRIQUE Magazine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1958년에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중공업 분야에서 35년간 일하다 은퇴하고, 지금은 퇴직 걱정 없는 후암동 복합주거, ‘꼬마 빌딩’ 관리인 역할에 만족하며 충실히 생활하고 있어요.

 

35년간 일하시면서 여러 나라를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비행기를 지겹도록 많이 탔죠. 이전에는 얼굴이 흑색이었습니다. 월급 공짜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웃음) 지금은 그런 데서 해방되니까 너무 좋아요. 각기 다른 나라의 다섯 개 도시에서 주재원으로 일했는데요, 가족들과 함께 살며 보냈던 시간과 추억, 그리고 경험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어떤 도시에 머무셨나요? 이사도 많이 다니셨겠어요.

일본 도쿄와 미국 뉴저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에는 영국 런던에서 머물렀어요. 저는 이사의 달인이에요. (웃음) 짐을 꾸리고 푸는 것뿐만 아니라, 이사를 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일들을 해결하는 데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고요. 에피소드도 아주 많아요.

 

다양한 형태의 집에 살아보셨을 것 같아요. 

일본 도쿄에서는 신주쿠 지역에 3층짜리 맨션 1층에 살았습니다. 도쿄가 워낙 주택 렌트비가 비싸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을 구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여기 살면서 일본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낀 게 있는데 바로 수납이에요. 그야말로 ‘수납의 귀재들’이죠. 작은 집인데도 수납공간 배치를 기가 막히게 해놓았더라고요.

미국에서는 큰 차 두 대쯤 댈 수 있을 만한 주택에 살았어요. ‘랜치하우스(ranch house)’라고, 몇 계단을 올라가면 현관문이 있고 반지하 공간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처음으로 ‘아, 이런 곳이 단독주택이구나’ 하는 걸 느낀 집이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단독주택이 여러 채 모여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독일에는 ‘켈러(Keller)’라는, 주택 지하 혹은 반지하에 있는 식품 저장공간이 있어요. 여기에 채소나 와인 등을 보관하는데, 그곳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집에서 열 걸음만 걸어가면 숲이 있었는데, 이 숲이 어찌나 울창한지 비가 내려도 맞지 않을 정도였던 기억이 나요. 독일이 교통이 참 좋은 나란데, 당시 우리 집에서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까지 차로 7시간이 걸렸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는 3시간, 5시간이면 프라하까지도 갔어요. (웃음)

영국 런던에서는 ‘타운하우스(Town House)’에 살았어요. 타운하우스가 단독주택이면서 공동주택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집이라 주변 이웃들과 재미있게 지냈죠. 스콘에 잉글리시 티를 마시는 애프터눈 파티를 즐기기도 했고요. 밤이 되면 별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푸른 풀밭과 함께할 수 있는 널찍한 주거환경이 참 좋았어요. 이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지만, 런던에 있을 때만은 아내와 매일 산책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당시에 아내가 몸이 좀 아파서 한국에 와서도 주거환경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어떻게 보면 후암동에 이 집을 짓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죠.

 

한국에서는 어떤 집에 머무셨어요?

계속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몇 군데를 옮겨 다니고 외국도 드나들었지만,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에 거의 30년 넘게 살았죠. 그 집에 적을 두고서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쉬러 왔는데, 아파트 생활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외국이라고 다 좋은 주거환경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원이나 트인 공간이 있는 집에 살다가 밀집한 환경에 들어오니까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더군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은 어떠세요? 해외에서도 많이 지내셨으니 관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제가 살아온 도시마다 특색이 있고 좋은 점이 있지만, 서울처럼 남산이 있고 한강이 흐르는 좋은 자연환경, 그리고 맛있는 먹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찬 도시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주거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있지만요. 게다가 인정(人情)도 있고, 치안도 좋고, 거리도 비교적 깨끗하고 정리가 잘 돼 있죠. 매일 접하는 통신, IT,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아주 매력적인 도시예요.

 

매력적인 도시, 서울 ⓒKyungsub Shin

 

매력적인 도시 서울에서도, 후암동에 터를 잡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건축가와 함께 몇몇 동네를 다녔어요. 연남동, 판교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생각한 나름의 기준점은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있는 동네, 사람 냄새가 나는 곳, 그리고 건강을 고려해 이곳저곳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이동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죠. 부수적으로는 땅값 상승 가능성이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런데 어느 날 후암동에 추천할 만한 땅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은 얼떨결에 집을 짓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후암동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일단 교통이 무척 편리해요. 강남을 비롯한 서울 시내 어디로든 연결이 잘 되고, 서울역이나 남대문 시장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요.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이태원, 경리단, 해방촌 등과도 가깝고요. 사회체육센터도 가까이 있어서 아침에 수영과 헬스를 하고 드럼을 치러 가는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느라 하루가 빠듯할 지경입니다. (웃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당연히 남산이죠.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 분주하고,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거실에서 보이는 위치에 앞으로 용산공원이 생길 예정이라는데, 그것도 기대가 돼요.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대형 공원 못지않은 서울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겠죠.

후암동의 원래 이름이 뭔지 아세요? 바로 ‘두텁바위’예요. 정겨운 단어죠? 돌이 주는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함과 푸근함이 바로 후암동의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두텁바위가 순우리말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후암동’이라는 한자어로 개명을 했대요. 당시 후암동에 일본인이 꽤 많이 살아서 적산가옥도 많고요.

 

‘후암동 복합주거’는 어떤 집인가요?

주위 사람들이 이 집이 지어질 때 굉장히 놀랐대요. 정사각형도, 직사각형도 아닌 삐뚤삐뚤한 단면을 가진 땅이어서 설계하는 분들도 애를 먹었다고 하고요. 주차장 배치를 계획하는데 도면 400장을 그렸다고 할 정도니까요.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는데 가장 많이 신경을 쏟았고요, 땅이 반듯하진 않지만, 그 선을 지켜가면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1층 공간을 열어둠으로써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에요. 그 공간이 이 집을 대표하고, 이 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경사지의 삼각형 땅에 지어진 ‘후암동 복합주거’ ⓒKyungsub Shin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와 대화도 많이 나누시고, 의견도 내셨을 것 같은데요.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었다면요?

첫 번째가 ‘볕이 잘 드는 집’. 남향으로 빛을 많이 받아서 사람이 더 밝아질 수 있는 집이 되었으면 했어요. 두 번째는 수납공간이었죠. 다른 공간을 포기하더라도 수납공간만은 알차게 하고 싶었어요. 저희 큰딸도 엄마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고요. 특히 아내가 물건을 밖에 내놓는 걸 싫어해서 ‘엄마가 원하는 수납공간’에 초점을 맞췄죠.

또 한 가지는 거실과 방 면적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대지면적이 넓지 않아서 설계에 영향을 많이 줬거든요. 거실과 방을 7:3 또는 8:2 비율로 하고 싶다고 했죠. 대지면적에 비해서 거실 면적을 크게 가졌어요. 낮에 주로 생활하는 공간인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놓일 공간을 넓게 함으로써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요. 다만 그래서 손님이 오셨을 때 침실을 제공하는 것은 여의치 않지만요.

 

건축주 류명동씨는 거실을 넓게 만들기를 원했다. ⓒKyungsub Shin

 

이 집에 살면서 생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있나요?

지금 사는 집과 이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비교한다면 아파트는 만들어진, 통상적이거나 범용적인 디자인의 거주공간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춰가는 것이고, 이런 단독주택은 그에 비해 ‘프리스타일(Free Style)’의 자기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어요.

단독주택에 산다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에서 오히려 자기만의 루틴이나 오너십이 생겨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새롭게 인지하고 있어요. 요즘 한 TV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참 멋있어 보이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그분들이 혼자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이 이면에 많을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주택이란 게 한 달 정도만 손을 놓고 있으면은 거의 폐허가 돼요. (웃음) 큰 빌딩이야 전문 관리인이 있지만, 우리 집과 같은 작은 복합주거 건물은 건축주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누구나 집 짓기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이 있게 마련이지만, 유지보수나 관리는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죠. 집만 잘 짓고 나면 끝일 것 같은데 말이에요. 

특히 유리창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집은 바로 엉망이 돼요. 요즘 유리창에 붙어서 움직이는 로봇 청소기가 있는데, 그나마 다행이죠. 창문은 애초에 안으로 열리게 했는데요. 처음에 설계할 때는 밖으로 열리는 구조였던 걸 건축가에게 요청해서 바꿨죠.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제가 쓸고 닦고 관리하려면 안으로 열리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걸요. (웃음) 처음에는 그런 건물 관리를 운동 삼아 했었는데 이게 매일 반복되니까 힘든 부분이 많더라고요. 건축주들은 강제로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어요. 모든 게 그렇잖아요. 집 역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준비해 놓아야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건축주의 책임감이 필요하죠.

 

유지보수 전문가가 되셨겠네요. 

제가 직접 하지 않고 전문가를 부르려니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더군요. 저는 여기 살면서 생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페인트칠, 전기설비, 실리콘 작업, 원예, 분리배출을 비롯한 청소 등 유지관리 분야를 자급자족해오고 있어 뭐 이제는 거의 ‘숨은 고수’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BRIQUE Magazine

 

그런 부분을 감당 못 할 바에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사는 편이 낫겠는데요. (웃음)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얘기해주죠. “좋지만 이런 애로 사항도 있단다.” (웃음)
여기 산 지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사계절을 한 번 지내고 나니까 이제야 뭐가 뭔지 알겠더라고요. 

 

집 관리하기엔 어떤 계절이 편하던가요?

겨울이 제일 편해요. 겨울은 화단관리를 안 해도 되거든요. 하지만 눈이 오면 치워야 하는 단점도 있긴 하죠. 그건 동네 사람들 다 같이 협업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집안의 공간이 있다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드럼과 기타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아파트였다면 소음 때문에 엄두도 못 냈겠죠.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드럼이나 기타를 칠 때 느끼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와요. 그리고 옥상 텃밭을 좋아해요.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가족들에게 매일 싱싱한 채소를 식탁에 올려줄 때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옥상에서 가끔 작은 파티도 여는데요. 사람들을 초대해서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소소하게 과일과 와인을 즐기기도 해요. 기분 좋으면 기타도 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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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압권이에요. 남산타워가 잘 보이는 공간도 있다고 하던데요?

거실이요. 거실 파노라마 창문이 한번 꺾여 있죠. 사실 이쪽 벽면까지 창문을 연결하는데 구조적으로 부담도 있었대요. 하지만 남산타워를 볼 수 있는 지점이라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고 해요. 저녁에는 남산타워에 조명이 켜지는데요. 실시간으로 공기 오염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집니다. 공기가 좋을 때는 파랑, 그다음은 초록, 그다음은 노랑, 가장 안 좋을 때가 빨강이에요. 남산타워 보면서 노랑이나 빨강 불이 켜져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나가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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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건축물의 디자인과 사람이 만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과 사람이 합치되어야만 하죠. 그리고 제게 집이란 제 ‘아내’와 같은 존재예요. 언제나 들어오고 싶은 공간, 온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도 나와 잘 맞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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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브리크 brique>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집을 지으면서 고생을 꽤 했어요. 집을 지으면서 세세한 부분들까지도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고, 그 결정은 비용과 직결되니 항상 예민할 수밖에 없었죠. 이 집을 지은 다음 기대수익이 충족될까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건축주로서 여러 가지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집을 통해 얻고자 하는 체크포인트를 잘만 관리한다면 충분히 각자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리크 brique> 독자분들 중에도 집을 지으려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겠죠? 특히 저와 같이 넓지 않은 토지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자산 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대해 많이 고민하실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답을 주지는 못하죠. 경계없는 작업실과 스페이스 워크, 이 건축가들이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을 복합해 제가 거주하면서도 수익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집을 제안해줬는데요. 저와 같은 은퇴 세대들에게 노후의 수익을 제공해줄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주거 형태예요. <브리크 brique>가 다양한 주거 형태와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미디어로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본인에게 가장 편하고 알맞은 집을 선택할 수 있는 자료와 아이디어를 주신다면 ‘나눔’이라는 의미에서 좋은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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