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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삼대가 함께 사는 법

[Space] 푸하하하프렌즈 ‘제주도 세거리집’
ⒸYoon, Joonhwan
에디터. 김윤선  자료.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 FHHH friends

 

섬마을 제주에 삼대三代가 함께 사는 집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어린 삼 남매까지. 제주 토박이 일곱 식구의 ‘제주도 세거리집’이다. 전통적인 제주도 집의 형태인 안거리와 밖거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집에서 생활하던 가족은 노후한 집을 헐고, 한 집이지만 삼대가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세 거리’를 가진 집을 지었다.
검은 모래 해변이 보이는 제주의 한적한 마을, 제주도 사람의 진짜 제주도 생활과 문화가 담긴 집 이야기를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이하 푸하하하프렌즈) 한양규 소장에게 들어봤다.

 

ⒸYoon, Joonhwan

 

삼대三代가 함께 사는 집, 세 개의 공간

부부, 삼 남매, 조부모님. 이렇게 삼대가 함께 산다. 삼대를 위한 세 개의 공간을 분리하되, 때로는 함께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자녀를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육지의 여느 집들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구성원 각자가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조부모님과 삼 남매는 1층, 부부는 2층을 쓴다. 부부와 자녀들은 계단으로 연결되고 조부모님의 집은 완벽하게 분리해 기존 주택에서 안거리와 밖거리가 분리되어 있던 것처럼 개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했다.

 

진입층 평면도 ⒸFHHH friends

 

1층처럼 보이는 2층 집

제주에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2층 건물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이유는 제주의 바람 때문이기도 한데, 건축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제주의 거센 바람에 저항할 수 있도록 집을 낮게 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바람이 어느 정도냐면, 바람이 지붕의 기와를 들어내 그 틈으로 빗물이 타고 내려와 누수가 될 정도다. 그런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형태가 자연스레 집에 나타난 거다.

 

1층 집처럼 보이지만 2층 집이다. ⒸYoon, Joonhwan

 

지붕은 집의 모자

캐노피를 길게 빼서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길게 뺀 캐노피로 인해 집이 전체적으로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지붕은 ‘집의 모자’니까. 지붕 모양에 기교를 부려 집을 더 멋지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2층에 쓸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모자랐다. 게다가 옥상정원을 만들어서 건축주가 바다를 조망하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 사명이 있었기에, 지붕 모양은 필요와 기능의 필연적인 결과다.

 

단면도 ⒸFHHH friends

 

제주도 집에는 대문이 없다?

제주의 집들은 원래 대문이 없다. 제주에 가서 유심히 보면 온 동네 문이 다 열려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제주에는 도둑이 없다는 말도 있다. 제주의 전통가옥에는 대문 대신 ‘정낭’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대문 역할을 한다. 정낭은 대문 자리에 구멍이 세 개 뚫린 돌기둥을 놓고 그 사이에 나무 기둥을 끼워 놓는 걸 말한다. 나무 기둥을 어떻게 걸쳐놓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나무 기둥이 세 개 걸쳐 있으면 ‘멀리 외출’, 두 개 걸쳐 있으면 ‘가까운 곳에 외출’, 걸쳐있지 않으면 ‘집에 있다’라는 의미다.

 

정낭. 나무 기둥이 걸쳐있지 않으면 ‘집에 있다’라는 의미다. ⒸGettyImages

 

이 집에도 대문은 없다. 대신 대문이 있을 자리에는 화단을 만들고, 집 정면에 완전히 열거나 완전히 닫을 수 있는 문을 설치했다. 여행을 가거나 문을 잠가야 할 때에만 쓰고 대부분은 열어놓고 산다고 한다. 데크와 문은 조금 떨어지도록 간격을 두어서 신발을 벗어 높을 공간을 마련했다. 밖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 집이다. 겨울에 차가운 신발을 신고 나가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이래도 되는지 건축주에게 물어봤더니 제주도는 따뜻해서 괜찮다더라. 다만 위험한 건 비인데, 캐노피가 길어 다행히도 보완이 되었다.

 

ⒸYoon, Joonhwan
문을 열었을 때 ⒸYoon, Joonhwan
문을 닫았을 때 ⒸYoon, Joonhwan

 

제주도 집의 높은 공간, 상방

제주의 집에는 예로부터 높은 공간인 ‘상방’이 있었는데, 이는 집의 중심에 위치한 개방적인 곳이자 환기가 원활하게 되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부부, 삼 남매, 조부모가 쓰는 세 집도 각각 높은 공간을 하나씩 만들었다. 북쪽 지방과 남쪽 제주 집의 큰 차이가 겹집 구조라는 건데, 이 또한 거센 바람 때문이다. 북쪽 지방은 보온을 위한 겹집 구조와 온돌이, 남쪽 지방은 바람이 잘 통하는 홑집 구조와 마루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환기를 유도하는 ‘상방’이라는 공간이 생긴 거다. 1층의 자녀 거실은 2층까지 뚫려있어서 2층의 부부 거실과 좁은 틈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빛이 잘 들고 환기가 잘 된다. 1층과 2층에서 서로 인사도 할 수 있고, 각자의 공간에서도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부부 거실 ⒸYoon, Joonhwan
단면도 ⒸFHHH friends

 

일 년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

일 년에 한 번, 제주에 흩어져 사는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건축주의 요구가 있었다. 그 공간이 바로 자녀 거실이다. 자녀 거실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 집이 마당을 품고 있는 모양새로 2층까지 트여 있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도 상상해봤다.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큰 공간을 만들었다. ⒸYoon, Joonhwan

 

부부의 공간, 2층

2층은 부부를 위한 공간이다. 언제든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자녀 거실과 연결되어 있다. 부부 주방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외부 테라스가 바로 연결되도록 계획했는데 건축주 아내분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 건축주가 처음부터 요구했던 바다를 볼 수 있는 옥상정원은 부부 침실과 가까이 배치했다.

 

부부를 위한 주방 ⒸYoon, Joonhwan
산이 보이는 부부 침실. 창문 오른쪽에 있는 문을 통해 옥상 정원으로 나갈 수 있다. ⒸYoon, Joonhwan
2층 평면도 ⒸFHHH friends

 

삼 남매를 위한 세 개의 방

1층은 삼 남매를 위한 세 개의 방과 거실로 구성했다. 각 방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데크가 깔려있는 테라스가 있어서, 어디서든 외부공간을 접하며 뛰놀 수 있게 했다. 각 방의 벽은 움직일 수 있는 가벽으로 설계해서 생활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현재는 아이들이 어려 벽을 허물어 쓰고 있는데,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게 되면 다시 벽을 치면 된다. 이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자녀 거실이다. 거기 가면 그냥 기분이 좋더라. 내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택은 내가 살고 싶어졌다는 기분이 들 때 납품한다. 그래서인지 약간 배가 아픈 기분이다.

 

아이들의 방은 가벽으로 설계해 생활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Yoon, Joonhwan
왼쪽의 앞마당, 오른쪽의 뒷마당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Yoon, Joonhwan
1층 평면도 ⒸFHHH friends

 

할머니의 물부엌과 뒷마당

제주의 어머니들은 항상 바쁘다. 할머니도 하루 종일 일하신다. 할머니를 위한 물을 쓰는 부엌을 따로 만들고 뒷마당 가까이에 할머니 방을 배치했다. 여기에서 생선도 손질하고, 텃밭도 가꾸신다. 텃밭 옆에는 수돗가를 만들어 편리를 더했다. 할머니의 주방은 재래식 주택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뒷마당 한편 텃밭과 수돗가 ⒸYoon, Joonhwan
할머니의 부엌 ⒸYoon, Joonhwan

 

나무와 콘크리트

공용 공간에는 나무를, 개인 공간에는 석고보드에 밝은 색 도장을 칠해 공간의 성격마다 재료를 달리 사용했다. 1층에서 활용한 재료를 2층까지 연결해 재료가 연속되면서 공간이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나무는 합판을 사용했는데, 시공사에서 나무 무늬를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특히 자녀들의 공간이 나무로 되어 있어 따뜻한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다. 천장은 콘크리트로 했는데, 마치 외부 같은 분위기를 주고 싶어서다. 노출 콘크리트 특유의 물때를 그대로 노출시켜 자연스러운 매력을 살렸다. 아이들이 자랄 때 이런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자란다면 좋을 것 같았다.

 

ⒸYoon, Joonhwan

 

마을회관 같은 집

다 짓고 나니, 마을 사람들이 이 집을 보고 마을회관이냐고 물었다. 사방이 뚫려 있고, 자세히 보면 동네 마을회관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마을회관이라서 마을 사람들이 마구 놀러 오는 건 곤란하지만, 그냥 이 집을 계속해서 마을회관이라고 불러줘도 괜찮을 것 같다. 빨간 벽돌집, 노란 지붕집,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Yoon, Jo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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