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Heritage is _____.] ② 100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해남 유선관’
ⓒDonggyu Kim
에디터. 김지아  사진. 김동규  자료. 착착건축사무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건축에는 다양한 시간을 오간 역사의 흔적이 존재하고,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그 흔적은 우리 삶에 그대로 투영된다. 이런 자리에는 분명 ‘헤리티지’라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많은 건축가·공간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흔적을 함부로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변신시키기보다는 지나온 과거와 오늘날의 가치가 공존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건축·공간에서 헤리티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헤리티지는 단어의 의미를 넘어 진지한 학문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용어이며, 도시가 고민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헤리티지를 둘러싼 여러 개념이 오고 가는 이때, ‘한국의 건축·공간에 헤리티지는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부터 남겨야 할 것과 변형된 것,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은 계속된다.

 

① 오늘의 유산이 될 보편적인 풍경
② 스테이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 해남 유선관
③ 골목의 풍경, 노동의 가치를 투영하다 — 을지다락
④ 생경함과 익숙함 사이의 1980년대 다가구주택 — 구의살롱
⑤ 로컬이 만들어낸 공공의 헤리티지 — 민락수변공원 돗자리 공공미술 프로젝트: 워터프런트 도어
⑥ 남겨진 것과의 넉넉한 공존 — 전봇대집
⑦ 부활, 그리고 현재 진행형— 재건문구사 & 재건사커피
⑧ 폐공장, 다음 단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 코스모40

 

땅끝마을로 알려진 전라남도 해남에는 백 년 전통의 여관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이다. 두륜산을 배경으로 숲과 계곡이 조화롭게 펼쳐진 곳에 나지막이 자리한 유선관은 본래 대흥사를 찾는 수도승이나 신도들이 머무는 객사였다. 그러다 1970년대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해 여관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흥사와 1914년부터 시간을 함께해온 이곳은 겹겹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두터운 이야기가 축적된 장소다. ‹서편제› ‹천년학› 등을 비롯한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는가 하면,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에 해남 지역의 명소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을 통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이들이 유선관을 찾았다.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30년이 흘렀다. 백 년 여관이라는 전통을 안고 공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리노베이션이 필요했다. 세월의 흐름에 쇠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보수하고, 유선관이 지닌 가치를 잇기 위해 지속성에 초점을 두고 더하는 작업을 했다. 개인의 유산이 아닌, 어느덧 공공성을 지니게 된 유선관의 리노베이션은 축적된 기억들을 지속하고 다시 그 위로 쌓아가는 일이 중요했다.

 

ⓒDonggyu Kim

 

여관과 스테이

현재의 시점에서 유선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착착건축사무소 김대균 소장은 유선관 리노베이션을 두고 질문했다. 과거 유선관은 여행하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묵게 되는, 잠자는 곳으로서의 여관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었다. 한편, 오늘날의 (한옥) 스테이는 여행이라는 일련의 서사 없이 그 자체가 그 목적이 되기도 한다. 즉 머무름이 목적이고, 그 안에서 안락함과 자연이 주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2021년 스테이의 일인 것이다. 무언가를 향해 걷지 않아도 머무르며 비워내고 충족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 김 소장은 오늘날 스테이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층위의 요소를 고려해 공간을 바꾸었다.

 

ⓒDonggyu Kim

 

설계와 브랜딩의 만남

공간을 구체화하는 방식은 사용자의 행위에 있다. 각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할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고민하는 일은 설계의 일이면서 동시에 브랜딩의 일이기에 공간과 콘텐츠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좋은 건축에 가까워질 수 있다. 유선관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는 김대균 소장과 총괄 브랜딩 및 운영을 맡은 배시정 비애이컬처 디렉터, 즉 설계와 브랜딩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콘텐츠가 선명하지 않아도 리노베이션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선명하지 않은 공간을 구성하면, 그 공간은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기획 및 운영자의 유무가 리노베이션에 영향을 주느냐는 물음에 대한 김 소장의 대답이다.

 

ⓒDonggyu Kim

 

편의성을 높인 방

기존 유선관은 2인실, 4인실, 8인실로 각기 다른 크기의 객실로 나뉘어 있었다. 리노베이션 후 공간은 2인실 기준에 맞춰 총 여섯 개의 객실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는 운영과 설계의 접점을 찾은 결과다. 객실 외부에 위치하던 공동화장실과 샤워실도 방 안으로 들여 편의성을 더했다. 특히 야외에 있던 공동화장실은 리노베이션의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아무리 경험이라 할지언정 실외의 공동화장실, 샤워 공간은 실질적으로 머무르는 이들에게 큰 불편을 주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리노베이션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전통이라 여겨졌던 과거의 요소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관계를 고려해 적절하게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개별 방에도 한식 파티션을 세워 각각 침실, 거실, 화장실로 분리했는데, 이 같은 분할의 방식은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격格을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Donggyu Kim
ⓒDonggyu Kim

 

새로 열린 마당

유선관의 필지는 기존의 공동샤워실(현 카페)을 뒤로 한 공간으로도 이어져 있었다. ‘유선관’으로 인식되던 땅의 두 배만큼이 실제 필지였던 것이다. 동선을 바꾸어 설정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필지 덕이었다. 숨겨져 있던 공간의 담장을 없애고 낮은 담을 두르니 너른 마당이 생겼다. 이때 마당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장치로 기능한다.

 

ⓒDonggyu Kim

 

마당 쪽으로 옮긴 입구를 통해 유선관으로 들어서면 방문객은 마당부터 본 건물까지 세 층위의 공간을 거치게 된다. 예로부터 사찰에는 세 개의 산문山門 –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 이 있어 본당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문을 통해야 했다. 사찰뿐 아니라 한국의 궁궐에서도 삼문삼조三問三朝의 구성이 원칙이었다고 하는데, 이렇듯 세 개의 문을 지나 세 공간을 거치는 위계가 한국의 전통적 구조다. 유선관은 당대 여관 운영을 목적으로 그 지역의 평범한 목수에 의해 지어졌기에 이처럼 다양한 공간의 결을 경험하도록 하는 삼문 구조가 적용되지는 않았다. 이에 더 오래된 건축의 역사를 반영해 한국 전통의 공간적 구조를 건물에 돌려준 셈이다.

 

배치도 ⓒchakchakstudio

 

세 가지 공간을 거쳐 유선관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간격을 더한 마당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도록 비워졌다. 비워진 마당은 유선관에 머무는 이들뿐 아니라 두륜산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과 지역 사회가 두루 이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카페의 야외공간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관혼상제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또, 판소리나 전통음악 공연처럼 지역사회의 다채로운 행사를 담아낼 수도 있다. 기존의 유선관이 단순히 잠만 자고 아침밥을 먹는 등 프로그램이 한정된 공간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유선관에서 풍부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기억을 쌓을 수 있도록 공간을 정비했다.

 

자연과 만나는 길, 자연에 대비하는 길

도로 쪽으로 나 있던 기존 유선관의 입구는 확장된 마당 쪽으로 옮겨 방문객이 두륜산의 봉우리와 산세를 감상하며 건물로 들어설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선에서는 유선관을 둘러싼 드넓은 자연을 눈에 담기 어려웠다. 문을 열면 바로 건물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유선관을 이루고 있는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마당에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있던 조경을 비우고 더 가까이 있는 돌과 나무, 산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이끌었다. 스파의 위치 또한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했다. 한편,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지형에 위치했던 유선관은 계곡을 면하고 있어 폭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했다. 지세를 고려해 유선관 전체의 배수 시설을 보강하는 등 기반 시설 또한 정돈하는 작업을 거쳤다. 동시에 전반적인 결을 맞추고자 중정 바닥의 시멘트블록을 걷어내고 마사토와 자갈을 깔아 한층 정갈한 모습으로 자연과 어우러지기를 의도했다.

 

ⓒDonggyu Kim

 

특별하지 않으면서 특별한

열린 마당과 더불어 유선관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프라이빗 스파와 카페다. 대청 문을 열고 마주하게 되는 뜻밖의 공간인 스파는 유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한 결과다. 계곡을 끼고 숲과 어우러져 있는 유선관의 가장 큰 콘텐츠는 다름 아닌 자연. 물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스파를 설치했다. 더욱이 대흥사 일대는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주변의 풀벌레 소리, 새소리와 함께 물 속에서 고요히 노곤함을 덜고 자연과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유선관만의 경험이자 기억이 된다.

 

ⓒDonggyu Kim

 

또한 기존 공동샤워실, 화장실이었던 공간은 카페로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다. 대흥사와 유선관을 방문하기 위해 해남으로 향한 이들이라면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난 전라도 일대 지역을 빈속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정과 대흥사의 유구한 차茶 문화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카페를 마련했다. 카페는 흔히 기대할 법한 남도 한식을 제공하는 대신 갓구운 빵과 제철과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한국의 의식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배시정 디렉터는 해남 특산물인 쌀, 고구마, 무화과, 단호박 등을 활용해 두루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고. 카페는 유선관 이용객뿐 아니라, 두륜산 공원을 둘러보는 이들 모두 편하게 들러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차를 마시며 교류를 나누었다는 대흥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동시대의 사람들이 나란히 차를 마시는 장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다.

 

ⓒDonggyu Kim

 

유현과 중첩의 공간

유선관 리노베이션의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김 소장은 ‘유현’, 배 디렉터는 ‘중첩’이라 각각 답했다. 유현은 사전적으로 ‘이치나 아취雅趣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그윽하며 미묘함’을 의미한다. 그윽하다는 것은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없음을 함축하는데, 안개 낀 순간에 비유할 수 있다. 안개가 없는 상태에서 걸을 때는 공간에서 움직임의 범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만, 안개 낀 공간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늘 한계가 있는 공간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끝없이 무한한 공간성을 만날 수 있는 거죠. 두륜산의 나무와 숲이 가진 공기, 밤하늘의 별이 ‘나’와 일체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유현의 순간이에요. 그 경험을 한 우리는 비로소 스테이를 했음을 깨닫게 되죠.”
배 디렉터는 중첩이라는 단어를 들어 리노베이션과 브랜딩을 통해 유선관이 전에 없던 공간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을 지탱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온 유선관에 그저 한 겹을 더했을 뿐이라고. “유선관을 잇는 무수히 많은 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저희는 그저 흐르는 시간의 찰나에 잠시 머무는 것일 테고요.”

 

ⓒDonggyu Kim

 

유선관 리노베이션은 단순히 건물을 물리적으로 보수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100년이라는 시간을 지탱해온 유선관이 가진 자연적, 환경적, 인문적 가치를 두루 살폈다. 그리고 오늘날의 스테이와 한옥이 필요로 하는 지점과 그 다양한 레이어를 교차하는 일련의 과정을 진득하게 거쳤다. 그렇게 섬세한 더하기와 빼기를 통해 다시 유선관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된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는 건 우리의 몫일 테다.

 

ⓒDongg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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