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집’, 가장 사적인 건축에 관하여

[Interview]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서재원 대표, 이의행 소장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김현경  자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이 시대 건축 설계는 서비스업이다. 바꿔 말하면, 건축주의 요구와 자본, 법적 제한, 그리고 여러 이해관계 사이 조율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디자인 서비스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건축은 서비스업이라는 미명하에 갇혀 있지만, 전문가로서 주관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소신 있는 건축가들, 에이오에이 아키텍츠다.

건축가의 소신과 시대정신, 사는 이의 면면을 담는 어쩌면 가장 사적인 건축으로써 집. 이 세 가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를 이끄는 서재원 대표와 이의행 소장을 만나, 그들이 이 시대 건축가로서 생각하는 건축과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재원 대표(왼쪽), 이의행 소장 ⓒBRIQUE Magazine

 

‘남녀하우스’라는 이름이 제가 에디터로서 이 집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였는데요. 직접 이름을 지으셨다면서요?

서재원 설계하면서 건축주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성격, 성향을 파악하는 시간이었죠. 한번은 건축주가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영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 영화는 전통적인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관습이 뒤바뀐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해요. 남성 우월주의자인 남자 주인공이 갑자기 여성 우위의 세상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볼 수 있는 영화죠. (웃음)
이의행 거기에서도 설계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아요. 건축주는 남편과 아내가 대등한 입장에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개인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집을 원했어요. 본인들의 삶이 담긴 이름인 것 같다며 건축주도 마음에 들어 했죠.

 

특기할 만한 점은 건축주가 딩크족 부부라는 점이죠. 그런 면에서 남녀하우스는 요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시대상이 드러나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재원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집이죠. 그게 이 프로젝트가 가지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서울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요. OECD 국가 중에서도 인구 밀집도가 상위권인 도시죠.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으니까 많은 이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해요. 그렇지만 땅은 한정되어 있고, 집값은 비싸니 작은 땅에 작은 집, 이를테면 협소주택 같은 집이 주목받고, 이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요. 세대와도 관련이 있어요. 아파트나 빌라 같은 획일적인 공간에 사는 것 보다 자기만의 삶을 영위하는 게 중요한 세대들이 이제 건축주로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의행 이들은 젠더 감수성도 확고해요. 전통적 성 역할 구분이나 가족 개념에 대한 생각이 기성세대와는 달라요.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가족이자, 또 개인으로서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사고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공간에 반영하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대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남녀하우스 ⓒHyosook Chin

 

설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도시의 집들을 보면 사선으로 잘려져 있다든지, 법적 제한에서 비롯한 필연적인 형태를 드러내는 것에 비해 남녀하우스는 형태의 완결성이 두드러져요.

서재원 도시의 작은 땅에 건축을 하다 보면 법적 제한이 형태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건축은, 그리고 건축가는 어떤 의지를 갖고 자기 완결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법적 제한이 형태에 영향을 주는 건 당연지사죠. 하지만 그것만을 가지고 필연적인 형태를 만드는 일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윤리적 프레임이 있는 것 같아요. 건축가의 내적 의지와 법규 등 외적 조건이 밸런스를 이루는 것이 중요해요.
이의행 형태가 다른 데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건 바로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제한을 해결하고 서로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냈을 때 오는 희열도 있고요.
서재원 분명한 건 좋은 디자인은 부분과 전체가 연동한다는 점이에요. 부분이 바뀌었을 때 전체가 성립된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를테면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사의 제품들이 그래요. 모든 요소가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 그 자리 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죠. 그러니까 좋은 디자인이 성립하려면 전체가 하나의 완결성을 가져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건축뿐 아니라 모든 디자인이 그런 것 같아요.

 

남녀하우스 ⓒHyosook Chin

 

건축은 자기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서재원 그렇지만 건축을 완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은 언제나 있어요.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완결성을 어떤 식으로든 붕괴시키거든요. 그래서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허점 혹은 여유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설계한 ‘망원동 단단집’은 여러 상황 때문에 실제 완전한 대칭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칭으로 보여요. 완결성을 전제로 하되 불완전성이 포함될 여지를 남겨 놓았죠. 그러니까 건축은 결국 여러 가지 복합된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니 언제나 주변과의 합의가 필요한데, 그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이용’하자는 거예요. 이의행 건축이 고고하게 혼자 존재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의도’가 중요해요. 우연을 의도하든 필연을 의도하든 건축은 건축가의 세심한 의도 속에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프로젝트를 보면 유난히 대칭 형태가 많아요. 외관뿐 아니라 평면에서도 대칭이 나타나죠. 이쯤 되면 대칭에 집착한다고 보이는데요. (웃음)

서재원 그렇게 보였나요? (웃음) 사실 대칭을 위해 대칭을 만든 건 아니었고, 궁극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에요. 필요에 따라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는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이 부분에 영향을 주면서 평면, 입면, 단면이 하나의 체계로 연동되도록 하는 거죠. 사실 많은 사물이 대칭 형태를 띠고 있어요. 우리가 매일  만지는 마우스도 그렇고요. 의자도 그렇죠. 사람 얼굴도 대칭이고요. 자연에도 대칭이 많아요. 아무 조건없이, 하나로 완결성을 가질 때 대칭 형태를 가지죠. 재밌는 건 대칭은 자꾸 무언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에요. 단단집이 뭘 연상시키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빨간 선인장, 딸기 아이스크림, 마인크래프트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더군요. (웃음)
남녀하우스도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북쪽은 여자 얼굴을, 남쪽은 여자 얼굴을 연상시켜요. 얼굴 모양을 만들기 위해 대칭으로 창문을 배치한 게 아니라 평면에서 대칭을 통해 전체 시스템을 만들다보니 입면에서도 그 형태가 나타났고 그걸 다시 은유적으로 드러낸 거죠. 그러니까 대칭은 저희에게 어떤 의미에선 ‘게임’인 셈이에요.
이의행 또 다른 이유로는 공사비 절감 목적도 있어요. 대칭으로 하면 공사 난이도가 낮아져서 공사비를 아낄 수 있거든요.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고요.

 

망원동 단단집 ⓒHyosook Chin

 

‘시스템’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서재원 남녀하우스 평면도를 보면 시스템에 따른 하나의 ‘완결된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어요. 대칭은 그 결과물로 나온 형태이고요. 정사각형 공간 한가운데에 벽과 계단을 놓음으로써 공간과 동선을 명료하게 구분하고자 했는데,  벽을 기점으로 왼쪽(북쪽)은 서비스 공간, 오른쪽(남쪽)은 생활 공간이에요. 2, 3층에서는 화장실을 통과하는 순환 동선이 일어나도록 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고요. 즉, 하나의 시스템이 전체 층을 아우르면서 발현되고, 외부에서도 드러나죠. 이 시스템은 공간과 동선, 나아가 생활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죠.

 

남녀하우스 플랜 콘셉트 다이어그램 ⓒaoa architects
2층 평면도 ⓒaoa architects
3층 평면도 ⓒaoa architects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디테일도 있어요. 이를테면 남녀하우스는 지붕이 ‘바로크 성당’ 같아요. (웃음)

서재원 일종의 클리셰예요. 클리셰를 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풍자’를 하고 있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희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망원동 쌓은집’ 같은 삼각 지붕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이게 어디에서 왔을까 유추를 해보면, 서양의 종교 건축이거든요. 그래서 이 집 공사하는 동안 다들 교회가 들어서는 줄 알았대요. (웃음) 클리셰가 무언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단단집에서 전체를 빨간 타일로 하지 않고 저층부에만 흰 타일을 쓴 것 또한 그와 같은 제스처예요. 옛날에 지어진 건물들이 저층부와 고층부 재료를 다르게 썼다는 점에서 착안했죠. 모서리 부분에는 혹두기 마감 디테일을 썼는데, 우리 도시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디테일이에요. 이건 아마 요즘의 어떤 건축가들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재료일지도 몰라요. (웃음) 그렇지만 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풍자를 통해 하고 있죠.

 

ⓒHyosook Chin
ⓒHyosook Chin
망원동 쌓은집 ⓒHyosook Chin

 

여기에서 풍자의 대상은 무엇인가요?

서재원 우리나라 다가구, 다세대 주택에 나타나는 ‘양식’ 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이미 그게 우리 도시의 모습임에도 그걸 욕하고 싫어하는 ‘현상’에 대한 풍자가 될 수 있어요. 단단집에선 아주 키치하고 올드한 느낌의 반짝거리는 빨간 타일을 썼어요. 이것들은 그동안 우리 도시에서 항상 있었던 재료인데, 지금은 이걸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학 무늬가 그려져 있는 벽돌도 마찬가지예요. 소위 집장사들이 막 지은 건물에서 쓰여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생긴 거죠. 하지만 재료는 죄가 없잖아요. (웃음) 그래서 이걸 다른 방법으로 이 시대에 맞춰 재해석해보고자 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는 독특한 감성을 의도하고 싶었어요. 한 평론가는 저희의 그런 시도를 ‘비판적 수용 ’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동감했어요.
풍자는 그를 통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이나 반응을 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어요. 냉소나 조소와는 다르죠. 그러니까 풍자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비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저런 모습이 결국 우리의 모습이잖아요. 우리가  가진 것을 외면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게 못났어도 그걸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마음을 갖자는 겁니다.

 

망원동 단단집 ⓒHyosook Chin
망원동 단단집 ⓒHyosook Chin

 

여러 프로젝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형태, 이른바 ‘스타일’ 이 읽히기도 해요. 건축주들과는 어떤 식으로 소통, 조율의 과정을 거치나요?

서재원 가끔 사람들이 ‘어떤 건축주를 만나길래 이런 건물이 나오느냐’ 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건축주에게
막 우기면서 설계를 하지는 않거든요. (웃음) 당연히 건축주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걸 최대한 수용하면서 설계를 하죠. 다만 요구사항의 기능과 형태가 아까 말씀드렸던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것을 중요시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동안 내놓은 결과물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이의행 사실 건축주는 기본적으로 모두 까다로워요. 원래 건축가와 건축주는 확률적으로 50% 는 사이가 안 좋아지게 마련이거든요. (웃음) 저흰 건축주와 사이가 좋은 편이에요.

 

건축 설계는 업종으로 분류하자면 ‘서비스업’이에요. 이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서재원 건축 설계는 서비스업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는 건축 서비스업자가 아니라 공간을 제안하고 나아가 삶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로서 역할 해야 한다고 봐요. 건축에서 건축주의 이야기를 뺀 다음에 건축가가 할 말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봉준호 감독이 한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죠. 건축 역시 그 결과물에 대해 건축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의행 적절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건축가로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겠죠. 그래야 건축가가 단순히 서비스업자가 아니라 진짜 건축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좋은 공간, 좋은 집, 나아가 좋은 건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의행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건축가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개인과 시대의 숨겨진 욕구를 재해석해서 건축가의 형식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집이 좋은 집이 아닐까요?
서재원 좋은 건축은 ‘헛간’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제주도에 있는 귤 창고 같은. 농부가 가진 능력과 주변의 재료를 가지고 용도에 맞춰서 지은 것뿐인데, 거기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헛간처럼 스스로 윤리를 가진 형태, 어떤 허세도 느껴지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려는 의지 없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건축. 그게 좋은 공간이자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재원 대표(왼쪽), 이의행 소장 ⓒBRIQUE Magazine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관련 기사 : 

 

남녀하우스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3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3/

 

 

You might also like

작지만 꾸준한 ‘영화의 만찬’

집에서 취향과 음식을 나누는 소모임, ‘시네밋터블Cinemeetable’

건축, 기억을 간직하다

도시의 시간을 쌓아 올린 '연암빌딩'

정릉에 살어리랏다

‘책벌레’ 교수님이 사는 ‘정릉동 책놀이집’

세상에 없던 부동산이 나타났다

좋은 집을 구하는 새로운 방법,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 '홈쑈핑'

취향으로 집을 그리다

공학과 낭만의 만남, ‘펨벌리 하우스 Pemberley House’

아마도 유일한

목욕탕집 딸이 가꾸는 '유일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