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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의 발견

[Space] '아홉칸집' 공간 이야기
ⒸKyung Roh
 에디터. 김윤선  자료. 네임리스 건축  NAMELESS Architecture

 

살아가는 사람이 그 쓸모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집. 네임리스 건축이 들려준 ‘아홉칸집’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홉 개의 방, 아홉 개 이상의 상상

 

ⒸKyung Roh

 

‘아홉칸집’은 집이라 하기엔 그 형태가 꽤 파격적이에요. 복도없이 방 아홉 개가 나열되어 있죠.

의도적으로 집이 특정한 형태와 기능을 가지지 않도록 했어요. 집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방’이거든요. 거실, 안방, 아이방, 욕실, 화장실, 현관 등··· 크기가 각기 다른 방들이 연속되어서 공간이 이루어져요. 그 방에 대해 건축가가 어떤 설정을 하고 바꾸지 못하도록 고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설계죠. 하지만 아홉칸집은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아홉 개의 방을 내던져주고, 거기에 거주자가 직접 능동적으로 채우고 이야기를 찾아 나갈 수 있게 했어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비워놓은 집이죠.

 

정해진 기능이 없는 공간에서 거주자가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반영해야 하는 집이군요.

거주자가 삶을 능동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건축가는 건축주와 조율을 하면서 집을 설계해나가는데 대부분 건축가가 어떤 평면을 제안하고 거기에서 건축주가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제시하죠.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동선을 가진 공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건축가가 생각하는 관념과 기술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정해진 공간 안에서 삶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게 항상 의문이었어요.

1층 평면도 ⒸNAMELESS Architecture

 

아홉 방이 아니라 아홉 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방과 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방’과 ‘칸’은 비슷하지만, 그 의미와 물리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요. 방은 벽과 문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닫혀 있는 공간이에요. 칸은 네 개의 기둥이 있는 공간, 즉 ‘경계’의 의미가 있어요. 칸에는 벽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네 개의 기둥으로 구획을 하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가 벽의 개념이 아니라,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하나의 경계일 뿐이죠. 칸은 방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으로 닫혀 있는 경계가 느슨한 공간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방보다 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아홉칸집은 아홉 개의 칸이 형성되어 있고 그 사이를 열 수도 닫을 수도 있어요. 아홉 개의 칸이 하나의 큰 방일 수도 있고, 기둥 사이를 닫으면 작은 방이 되기도 해요. 칸의 공간감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전통 고택이에요. 창문을 자유 자재로 여닫을 수 있고, 다 열어서 기둥만 남기면 그 자체가 열린 공간이 되는 유동적인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죠.

 


*칸
건물, 기차 안, 책장 따위에서 일정한 규격으로 둘러막아 생긴 공간.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칸’이나 ‘툇마루’와 같은 단어가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전통 건축을 염두에 둬서 그걸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툇마루는 아주 좋은 공간성을 가지고 있어요. 쓰임이 별로 없는 버려진 공간으로 생각될 수도 있고, 애매한 외부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풍경이 좋은 장소에서는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그 경계에서 다양한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는 사이 공간이에요. 그런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 전통 건축의 툇마루밖에 없더라고요. 비슷하게 쓰이는 데크deck는 마루가 깔려있고 바비큐도 해먹고 뛰어놀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말하거든요. 서구식 표현인데 결국 넓은 마당이죠. 툇마루는 데크와는 달리 건물 외벽에 붙어서 얇게 형성된 사이 공간이에요.


*툇마루
한옥은 내외부 공간 사이에 완충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완충공간이 바로 퇴이고 퇴에 깔리는 마루가 툇마루이다. 툇마루는 외부에 개방되어 있으면서 안방과 건넌방, 부엌 등의 동선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잠시 걸터앉아 옷도 털고 신발도 정리할 수 있는 생활의 완충공간이기도 하다. 또 추운 겨울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체적, 환경적 완충공간의 역할을 한다.


ⒸNAMELESS Architecture
ⒸKyung Roh

 

혹 여섯 칸이나 열두 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다름 아닌 아홉 칸으로 지은 이유나 의미가 있나요?

동양 문화권에서 숫자 아홉이 갖는 의미가 아주 많다고 해요. 하지만 딱히 그런 의미를 담지는 않았어요. 거실, 주방, 화장실, 침실, 서재, 욕실 등 집의 기능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소의 공간을 하나의 칸으로 생각했어요. 어떤 기능을 가진 공간이 어떤 칸에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우선 최소의 생활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둔 거예요. 어떤 기능이 들어와도 적용할 수 있는 최소의 공간을요. 그 최소의 공간의 물리적인 크기는 가구나 동선을 고려해 많은 실험을 거쳤고요. 결과적으로 중심선을 기준으로 3.6×3.6m의 공간을 하나의 칸으로 삼았어요.

공간 구성 다이어그램 ⒸNAMELESS Architecture

 

직관적이라기보다는 치밀한 계산과 합리성에 근거해서 나온 치수네요.

그런 다음 3.6×3.6m의 공간을 가로, 세로 세 개씩 나열해 아홉 개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주택에서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정한 수의 공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 공간의 바닥면적을 합하면 35평 정도가 되거든요. 그게 아홉 칸이 된 결정적인 이유예요. 아주 현실적인 이유죠. 건축주에게 필요한 공간과 비용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서 그 규모가 정해졌어요.

 

미완성의 아름다움

 

ⒸKyung Roh

 

집 안팎이 다 콘크리트예요. 재료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공사비를 최소화하면서 아홉칸집이 가진 생각들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재료가 콘크리트였기 때문이었어요. 흔히 콘크리트에 마감을 하지 않는 경우를, ‘노출 콘크리트’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그렇게 할 때는 콘크리트를 붓기 위한 형틀로 매끈한 합판 거푸집을 써요. 그래야 거푸집을 제거했을 때 표면이 깔끔하게 나오니까요. 하지만 아홉칸집은 의도적으로 합판 거푸집이 아닌 유로폼을 사용했어요. 유로폼을 쓰면 콘크리트 표면이 거칠게 나와서 나중에 벽돌이나 도장을 해서 한 번 더 마감을 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하지만 그 거친 질감을 그대로 노출해서 마치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까지 온통 콘크리트라 몸에 해롭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오히려 벽지를 바를 때 쓰는 접착제나 화학 안료에서 유해물질이 더 많이 나와요. 그에 비하면 돌가루, 자갈, 모래, 물을 섞어서 만드는 콘크리트는 자연 재료죠. 그냥 형태를 변형한 ‘돌’일 뿐이에요.

 

ⓒBRIQUE Magazine
아홉칸집 공사 현장 ⒸKyung Roh

 

심지어 싱크대와 욕조, 세면대까지 콘크리트라니 놀라워요.

건축주가 싱크대와 세면대, 그리고 욕조까지 콘크리트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살에 닿는 부분까지 콘크리트로 해달라니,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웠죠. 전형적인 미감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홉칸집엔 그게 잘 어울리겠더라고요.

 

ⒸKyung Roh

 

그건 아마 건축주의 취향에 달린 문제였겠죠?

사실 비용 절감은 부차적인 거고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이런 거친 질감을 선호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아파트라는 거대한 주거 문화가 있잖아요. ‘집’ 하면 떠올려지는 재료에 대한 전형성이 있어요. 하지만 건축주는 너무 매끈한 것보다 거친 재료의 물성이, 사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공간을 꾸려나가는 삶을 제안한 아홉칸집에 더 잘 어울린다는 데 동감하셨어요. 완성되지 않은 아름다움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죠.

 

쓸모의 발견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모터 펌프를 넣어서 지하수를 꺼내는 걸 ‘관정’이라고 하거든요. 아홉칸집이 위치한 노곡리처럼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보통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요. 그런 지역은 무조건 관정을 설치해야 물을 쓸 수 있어요. 옛날식으로 말하면 우물이죠. 그런데 우물처럼 실제 물을 길어 쓰는 건 아니고, 지하 20~30m를 파서 거기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다가 수도에 연결하는 거예요. 관정은 너무 설비적인 구조물이라서 보통은 시야에서 안 보이는 구석에 넣으려고 해요. 하지만 공사 시작 전에는 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위치를 미리 잡을 수가 없어요. 어느 날 현장에 갔는데 앞마당 한가운데 관정이 생겨서 원형의 콘크리트가 박혀 있는 거예요. 현장 소장님과 한참을 입씨름했어요. 너무 어색하고 마당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생각지 않았던 풍경에 몇날 며칠을 안절부절못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관정이 마당에서 쓸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건축주와 얘기해서 그냥 두기로 했어요. 지금은 마당에서 야외 테이블로 잘 사용하고 있어요.

 

쓸모 없고 흉한 설비 구조물이었던 관정이 앞마당의 야외 테이블로 새롭게 탄생했다. ⒸKyung Roh

 

우연히 생겨난 불완전한 것들로부터 그 아름다움과 쓸모를 발견했네요.

의도하지 않았던 데서 의외의 쓸모를 발견했죠. 뒷마당쪽 숲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콘크리트 둔덕도 마찬가지예요. 숲으로부터 흙이 쓸려 내려오는 걸 막으려고 흙으로 막이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또 어느 날 현장에 가보니 둔덕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런데 투박하고 흉해 보일 수 있는 그 풍경이 왠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웃음) 예쁘게 마감해놨더라면 오히려 별로였을지 몰라요.

 

이 집에서 좋아하는 장소를 꼽는다면요?

지금 떠오르는 건 옥상이에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지 말지 고민하다가, 사다리만 놓기로 했거든요. 주변에 마당이 풍부한데 굳이 옥상까지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죠. 그래서 옥상은 하나의 남겨진 땅, 여지餘地로 두자고 했어요. 나중에는 계단을 설치할 수도 있겠죠. 옥상의 공간이 어떤 쓸모가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그 점이 좋아요. 
그리고 천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빛이 여름에는 한가운데를, 겨울에는 사선을 가로질러요. 계절마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움직이는 모습과 분위기가 달라지죠. 그 역시 변화의 여지가 있는 공간이에요.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집의 완성은 사람, 또 사람

 

ⒸKyung Roh

 

아홉칸집은 ‘덜 만들어진 집’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건축이 모든 걸 완성지으면 그 안에서의 삶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삶을 완성해가는 공간은 철저하게 그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해요. 집이라서 더 그렇죠. 그게 아닌 단적인 예가 아파트거든요. 아파트는 기능과 합리성, 경제 논리에 의해 누군가 표준이라고 정해놓은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야 하잖아요. 사실 많은 집들이 그런 아파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단독주택들도요. 물론 평면의 형태는 다르죠. 2개 층이 뚫려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형태적인 요소가 공간의 핵심은 아니거든요. 어쨌든 그 공간에 사람이 자기를 끼워 맞추어 살아야 해요. 거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서 물리적인 공간이 조금 덜 만들어져있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완성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것. 살아가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움직여 집과 공간을 삶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 그게 조금 아홉칸집이 ‘덜 만들어진 집’으로서 가지는 의미인 것 같아요.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아홉칸집은 웬만한 농가 주택만큼 돈을 적게 들여 지었어요. 예산이 넉넉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 현실적인 부분과 맞닿아 조율해낸 부분이 설계에 녹아들어 있고요. 건축주가 이 집이 다 완성되고 나서 한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돈이 많았다면 이런 집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예산이 넉넉했다면 과연 이런 과정과 교류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집이 탄생했을까 싶어요. 하지만 돈이 적든 많든, 삶의 방식을 담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과정이 있었던 집인 것만은 분명해요.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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