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유일한

목욕탕집 딸이 가꾸는 '유일주택'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경섭  사진. 김현경  자료. 에이라운드 건축 a round architects, 마인드맵 건축 Mindmap architects

 

유일주택 건축주 유정민 씨는 플로리스트다. 꽃을 다듬고 가꾸던 그는 이제 10여 세대가 사는 다세대주택, 유일주택의 관리자 역할도 맡게 되었다. 유일주택에 사는 이들과 자신을 단순히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꽃을 가꾸듯 함께 사는 이들과의 관계를 가꾸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길든 짧든 유일주택을 집으로 택한 이들이, 이곳에서 이왕이면 잘 살다가 행복한 추억을 안고 떠나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초여름 날 유일주택 선큰*(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개방된 공간에 꾸민 정원) 가든에 심어진 나무들을 앞에 두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유일주택 @BRIQUE Magazine
유일주택 지하 1층에 위치한 유정민 씨의 작업실 @BRIQUE Magazine
유정민 씨의 작업실 @BRIQUE Magazine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정말 오래됐어요. 7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요. 지금 유일주택이 있는 이 땅은 원래 부모님이 운영하던 유일목욕탕이 있던 곳이에요. 수십 년 전 이야기인데, 부모님께서 목욕탕을 그만두고 나서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원룸 임대업을 하셨어요. 그런데 건물도 나이를 먹다 보니까, 시설 면에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언젠가 집을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자식인 제가 더 나이들기 전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워낙 큰일이잖아요. 공교롭게도 유일주택을 짓게 됐을 때 제 나이가, 유일목욕탕을 짓던 시절의 부모님 나이와 비슷하더라고요.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2년 정도 알음알음 공부도 하면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느닷없이 집을 짓자고 하면 놀라실 수 있으니까, 자연스레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조금씩 이야기를 꺼냈죠.(웃음) 그 후 2년 동안은 부모님과 함께 여러 집을 보러 다녔어요. 직접 다녀봐야 어떤 집이 좋은지, 또 그 집을 누구랑 지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잖아요. 많은 건축가분들의 포트폴리오를 찾아보고, 또 직접 방문해 보기도 하면서 박창현 소장님을 알게 되면서 작업을 의뢰 드렸죠. 박 소장님이 워낙 바쁘시다 보니까, 최하영 소장님께서 합류하게 되셨고요. 집을 짓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무척 즐거웠어요. 잘 모르는 분야를 알게 되는 건 뿌듯한 일이잖아요. 저한테 건축은 정말 신세계였죠.

 

건축주 유정민 씨(왼쪽)와 최하영 마인드맵 건축 대표 @BRIQUE Magazine
유정민 씨와 최하영 건축가 @BRIQUE Magazine

 

실제로 집을 짓는 일은 고되었을 것 같은데요.

고민의 연속이었죠.(웃음) 선택해야 하는 게 백만 개는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저 자신이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집을 짓기 전에 나름 공부도 하고 현장도 다녀봤는데, 실전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욕심과 포기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럴 때마다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하나씩 정리해나갔어요. 최 소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일단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요. 그게 정해지면 거기서부터 하나씩 최선의 선택을 해나가면 된다고요. 그렇게 마음먹으면 최고의 집은 지을 수 없을지라도 최선의 집은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말이었어요.

 

유일주택을 지으면서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게 무엇이었나요?

맨 처음부터 지하와 공용 목욕탕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보너스 같잖아요. 원래 건물에서도 물탱크와 보일러가 설치된 지하 공간이 있기는 했어요. 비록 컨디션이 좋은 공간은 아니었지만요. 지상 공간은 세대별 집과 공용 공간만 넣어도 꽉 차잖아요. 지하 공간을 만들어야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겠더라고요. 목욕탕은 제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온 건데요. 제가 원체 목욕탕을 좋아해요. 어디로 여행을 가도 꼭 노천탕이 있는 곳을 갈 정도예요. 그래서인지 너무 당연하게 목욕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하와 목욕탕을 만드는 과정이 참 어려웠어요. 예산이 꽤 증액되기도 했고요. 지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땅을 파는데 물이 계속 차오르는 거예요. 물을 퍼내고 다시 땅을 파면, 또 물이 차오르는 일이 반복됐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원래 이 땅이 미나리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미나리를 재배하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하는데, 땅이 걸고 물이 잘 모여야 미나리가 잘 자란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가 이 동네가 전반적으로 지대가 좀 낮기도 해요. 지하 공사를 하는 동안 계속 물이 차니까, 걱정이 심해져서 몇 번 울기도 했어요.(웃음) 다행히 두 소장님께서 제 걱정을 많이 덜어주셨죠. 박 소장님께서 집에 대한 개념이나 구상을 잘 잡아주셨다면, 최 소장님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소통 면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고요. 지금은 정말 집에 만족하고 있어요. 이제 유일주택이 지어진 지 1년이 다 되어가니까, 나올 수 있는 문제는 거의 다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하 1층 공용 목욕탕 @BRIQUE Magazine
지하 1층 공용 목욕탕 @BRIQUE Magazine

 

지하 1층에 공용 목욕탕이 있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모습에서 위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전 유일목욕탕의 공간성을 잇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창현 소장님과 맨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점을 재미있어하셨어요. 대중목욕탕이 있던 터에 공용 목욕탕이 있는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다는 게 무척 흥미로우셨나 봐요. 박 소장님 말을 빌리자면 공간성이 이전 건물과 살짝 겹치면서도 달라지는 면이 생길 것 같아 매력적인 지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현재 거주자분들이 공용 목욕탕을 사용하고 있나요?

아직 거주자분들에게 완전히 오픈하지는 못했어요. 유일주택이 완공되고 1년여간 온전히 쉰 날이 없었어요. 아무래도 집을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까요. 거주자분들에게 공간을 온전히 열려면 마음의 거리부터 가까워져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여유가 없었죠. 건물에 하자가 생기면 보수도 해야 하고, 집을 보러 오는 분들도 맞이해야 했고요.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간 달이 한 달도 없을 정도였어요. 이제 차차 방법을 찾아 보려고요. 거주자분들과 나름의 규칙도 만들어봐야 할 테고요.

 

유일주택, 유일목욕탕 이름 모두 아버님 함자에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아요. 아버님 함자가 유일규이거든요. 목욕탕 이름을 지을 때, ‘유일’이라는 두 글자를 본인 이름에서 따오셨는데,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특별함을 담고 싶으셨다고 해요. 자기애가 좀 강한 집안이에요.(웃음) 보통 집을 지을 때 어떤 이름을 붙일지 오래 생각하게 된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도 별별 이름을 다 생각해봤는데, 어느 시점부터 태명처럼 자연스레 유일주택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처음 유일주택이라고 불렀던 분은 박창현 소장님이었네요. 유일주택이라는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집과 잘 맞는 이름인 것 같아요. 너무 옛날 느낌의 이름도 아니고, 이전의 것을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고요.

 

지하 1층 선큰 가든 @BRIQUE Magazine
지하 1층 선큰 가든 @BRIQUE Magazine

 

집을 다 짓고 이사를 오고 나서는 어떠셨나요. 짓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단 너무 낯설었어요.(웃음) 제집이 아니라 어디 펜션에 온 기분이었어요. 이사 오고 나서 한 달 이상은 집에 들어왔을 때, 푸근한 느낌이 전혀 안 들고 어딘가 놀러 온 것 같았어요.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안 보이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두 소장님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셨다는 걸 알게 됐죠. 

예를 들어 지하 1층 목욕탕은 욕조 쪽에 큰 창이 나 있어요. 창 바로 앞에 대나무로 조경 작업을 해뒀는데, 밖에서는 내부가 잘 안 보이는데 안에서는 밖이 훤히 잘 보여요. 공간 안에서 머물러봐야만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 유일주택 공용 공간이 외부로 개방된 지점이 많아요. 남측 세대 쪽은 공용 공간인 복도에 일부러 창을 따로 달지 않았어요. 비와 먼지에 취약하지 않을까 걱정이 컸는데, 소장님들이 적극적으로 설득하시더라고요.(웃음) 공간 전체의 개방감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면서요. 지금은 되게 만족스러워요. 복도에 먼지가 잘 들어오지만, 그만큼 잘 나가기도 하더라고요. 날씨가 좋은 날 복도나 계단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면, 계절감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지하 성큰 가든도 빛이 예상보다 훨씬 빛이 잘 들어요. 가끔은 지하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요. 두 소장님이 채광과 환기에 정말 많은 공을 쏟으셨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어요.

 

유일주택은 선큰 가든, 중정, 층별 화단, 건물 앞 등 여러 공간에 다양한 방식의 조경을 시도했는데요. 자연을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플로리스트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조경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지는 않아요. 꽃과 나무는 다른 분야라서요. 유일주택 조경은 뜰과숲이라는 기업에서 진행했어요. 계절마다 꽃과 식물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를 하나하나 다 고려하며 작업해주셨죠. 조경이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다만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이긴 해서, 각 공간 조경에서 어떤 식물을 포인트로 삼고 싶은지 의견을 내기는 했어요. 조경 작업이 끝났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하고 있어요. 성큰 가든에 심어진 단풍나무나, 중정에 있는 자작나무, 층별 화단의 가우라, 건물 앞 아스틸베와 목수국이 시즌마다 만들어내는 풍경이 모두 달라요. 성큰 가든에 떨어지는 햇볕이 단풍나무 잎을 만나 별사탕 같은 그림자가 지하에 드리워진다거나, 가우라가 훌쩍 자라면서 아래층을 향해 폭포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연출되거나, 목수국이 말라가는 와중에 억새가 자라나는 풍경이 매일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고는 해요. 산속에서 바라본 풍경 하나를 쓱 가져와서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거주자분들도 일상에서 행복을 얻는 부분이지 않을까요.(웃음)

 

유일주택 3층 남측 세대와 공용 화단 @BRIQUE Magazine
유일주택 3층 북측 세대와 주정 @BRIQUE Magazine

 

유일주택 5층에는 부모님께서 거주하시는 집이 있고, 4층에는 약 1.5룸 크기의 집이 두 개. 3층과 2층에는 각각 네 개의 원룸이 있는데요. 어떤 분들이 거주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401호에는 제가 거주 중이에요. 나머지 아홉 개 세대에 살고 계신 분들의 삼 분의 이는 서울시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분들이에요. 지금은 이사하셨지만 302호에서 살던 민정 씨라는 분이 기억에 깊이 남는 분이에요. 유일주택에 처음으로 입주한 분이기도 한데요. 워낙 밝고 붙임성이 좋은 분이기도 했는데, 유일주택 거주자분들이 이곳에서 민정 씨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요즘도 3층 공용 화단에 직접 허브를 심어서 키우던 모습이나, 주말 낮에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거실에서 무언가 하던 민정 씨의 모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사실 저는 집이 완공되고 난 후에는 각 방이 금방 찰 줄 알았어요. 제가 건축주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이 집에 담긴 가치를 당연히 알아봐 주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주변 방들보다 렌트비가 조금 비싸긴 했는데, 초창기에 방이 정말 안 나가서 애가 좀 탔어요.(웃음) 동네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오신 분 중 한 분이, 집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본인은 거의 잠만 잔다고 월세를 깎아 달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저는 이 집이 거주자분들에게 기능적인 면으로만 생각되는 건 원치 않았거든요. 한 집에 살다 보면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마음이 잘 맞는 분이 들어와 주시면 더 좋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다행히 홈쑈핑*(건축적 가치가 높은 집을 중개하는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을 통해 유일주택에 담겨있는 고민에 공감해주시는 분들과 만나게 되어서, 지금은 부모님 외에 아홉 명의 거주자분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보통 다세대주택은 혼자 산다는 생각이 강하지, 다른 거주자분들과 함께 산다고 잘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세입자 분들과 함께 산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단체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유일주택에서 함께 산다고 이야기하는 건 단체생활과는 뉘앙스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 공간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 만나게 되잖아요. 오가며 마주쳤을 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요. 한 공간에 있는 이들이 각자 알아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 같이 잘 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지은 집에서 사는 분들이잖아요. 거주자분들이 유일주택에서 사는 시간이 이왕이면 행복하기를 바라요.

 

유일주택 남측 세대 복도 @BRIQUE Magazine
유일주택 슬라브와 오프닝 @BRIQUE Magazine

 

세입자분들과 같이 잘 살기 위해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을까요?

입주를 고민하는 분들이 오시면, 가장 먼저 차 한잔과 함께 대화를 나누어요. 예로 서울시립대 학생분이라면 어떤 과를 다니는지 또 개인적인 취향은 어떤지 같은 이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유일주택에 어떤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왜 있는지를 잘 설명해 드리려 해요. 거주자분들 중 초창기에 동네 부동산을 통해 들어온 세 분과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세 분이 본인 집 외에 공용 공간을 잘 사용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심지어 세 분 중 한 분은 얼마 전에 나간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집에 담긴 의도를 알게 됐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웃음) 거주자분들에게 제 생각을 알아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함께 사는 분들과 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이 집에 녹아있는 의도를 잘 전달 드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부모님께서 집을 지을 때 원하시던 부분이 있을까요? 

어머니가 몸이 좀 불편하세요. 예전에 겪은 사고로 다리가 편치 않으신 터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집을 바라셨어요. 그런 점에서는 만족하고 계신 것 같아요. 다만 처음에는 집이 좀 작아진 것에 대한 불만이 있으셨어요. 현재 부모님께서 쓰고 있는 5층 공간이 이전 건물에서 살던 평수와 비교했을 때 많이 줄어들었거든요. 소장님들한테 걱정을 말했더니, 특이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건물 골조가 짜여지고 내부 공간을 둘러보면 집이 되게 작아보일건데, 내부 공간 구성이 완성되고 인테리어까지 마치면 좀 더 커 보일 거라는 거예요. 거기에 가구가 들어오면 훨씬 더 크게 느껴질거라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갔죠. 가구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공간이 커져요.(웃음)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안 갔는데,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공간을 짜임새 있게 잡아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부모님도 저도 집이라는 게 꼭 커야만 좋은 걸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공간의 쓸모는 더 커졌거든요. 물론 짐을 되게 많이 정리했어요. 근데 살만해요. 오히려 여기서 짐을 더 늘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정민 씨가 머무르고 있는 402호 거실 @BRIQUE Magazine
유정민 씨가 머무르고 있는 402호 주방, 침실, 테라스 @BRIQUE Magazine

 

좋은 집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잠만 자는 공간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유일주택을 지을 때 용적률에 관한 고민이 없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 층수에 비해 임대 세대 수가 적은 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두 소장님의 의견에 따르길 잘한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 집에서 사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 되더라고요. 어딜 나가기가 힘든 시기잖아요. 훌쩍 떠나고 싶어도 여행을 갈 수 없고요. 유일주택에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끊이지 않아요. 어머니가 옥상에 텃밭처럼 상추나 파를 기르는 공간을 가꾸고 계세요. 어머니와 함께 옥상 텃밭 좀 가꾸거나, 화단에 물을 주고, 목욕탕에서 목욕도 해요. 지하 공간에 있는 제 작업실이나 4층 방의 테라스에서 커피도 한잔 하기도 하고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그 일을 할 수 있게끔 여지를 주는 공간이 있는 덕분이죠. 심심할 틈이 없어요.

재미있는 게 옥상에서 전농동을 둘러보면 다들 건물 옥상에서 뭔가 키우고 있어요. 화분을 가져다 둔 분도 계시고, 저와 어머님처럼 텃밭을 꾸린 분도 있죠. 어떤 분은 사람만 한 감나무를 심으셨더라고요. 옥상에 말이에요.(웃음)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려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들 비슷한 마음이구나 싶어요. 뭔가 기르고 싶은 마음, 뭔가 여유를 가지고 싶은 마음 같은 거요. 좋은 집은 그런 마음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유일주택 공용 화단에 심어진 가우라 @BRIQUE Magazine
유일주택 1층 출입문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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