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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D의 사람, 공간 그리고 디테일

오헤제 건축사무소의 ‘35년된 아파트 고쳐짓기' 프로젝트를 톺아봤다 : 건축주, 공간, 인테리어
Ⓒo.heje architecture
글. 이현준 자료. 오헤제 건축설계사무소 o.heje architecture

 

사람

 

가족간의 거리감

건축주는 두 자녀를 둔 젊은 부부다. 그들은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아이의 독립성과 사생활을 중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오가며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생각해 보니 한 집안에서 세대가 다르고 급격하게 성장하는 자녀들과 ‘자연스레 마주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더라. 우리 시대의 ‘가족’이 만나고 모이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주치고 싶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공간 또한 보장받고 싶은 부분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

 

Ⓒo.heje architecture

 

건축주는 기존 구조에서 방은 어떻게 재배치해야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나올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사생활을 지켜주면서 가족끼리 고립되지 않고 자연스레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 아이들 방에 발코니를 편입하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사실 건축주가 공간적으로 기대했던 곳은 서재였다. 서재 또한 아이들과 어떻게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 연장선이다. 집을 짓거나 고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밝은 공간, 넓은 주방, 풍부한 수납공간을 원했다.

 

가족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

이번 리노베이션으로 만들어진 공간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곳은 바로 원룸 형태의 가족실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동선 때문인지 아이들도 참 즐거워했고. 공사가 끝난 후 찾아가 보니 우리가 직접 제작한 테이블 위에 아이들이 누워있거나, 서재와 붙어있는 소파베드에서 아늑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벽 내부로 소파베드가 위치해 아늑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주변에는 순환 동선이 만들어진다. ⒸHyosook Chin
원룸형 공간 전경 Ⓒo.heje architecture

 

부인은 반외부 공간을 가장 좋아해 조그만 테이블도 두고 가드닝 공간도 확보했더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텐트가 있는데, 거기에서 아이는 요리하는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는 요리하는 중에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우리 예상보다 반외부 공간을 풍성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o.heje architecture

 

건축주와의 대화

우리는 보통 건축주와의 첫 미팅에 상세한 내용의 체크 리스트를 드린다. 기존에 어떻게 살았는지, 새로운 집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좀 더 세부적으로는 기존 집에서 어떤 걸 남기고 버릴 건지, 가구는 어떻게 처리할 건지 등의 항목들이 적혀 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소상히 리서치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공간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한다. 아파트먼트 D의 건축주는 좋아하는 부분과 취향이 확고했다. 스타일이나 미감에 대한 레퍼런스를 직접 제시하기보다 집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조화로운지 의논했고 대부분 우리를 신뢰하며 따라와 줬다.

 

공간

 

도면과 구조

1984년 아파트 준공 당시의 평면이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설비, 빨간색 표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구조 벽이다. 원룸 형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전체가 순환하는 구조에 대한 스터디가 선행됐다. 집이 방과 복도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원룸적인 공간 구조를 가지는 것을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 위쪽에 있던 주방을 밑으로 내리고 나머지 요소들도 가족실 주변으로 모이게끔 했다. 이 공간을 ‘ㄱ’자의 마당과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1984년 아파트 준공 당시 평면 Ⓒo.heje architecture

 

부엌과 마당 (중간 영역)

요즘에는 신축을 할 때도 부엌을 북향으로 두지 않는 집이 많다.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보니 키친과 리빙은 밝은 곳에 두려고 한다. 기존의 부엌은 북쪽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바닥 난방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설비적인 검토를 거쳐 남쪽으로 옮겼다. 옛날 아파트는 천장엔 난방 배관이 위치하고 놀랍게도 윗집의 급수관도 천장을 지난다. 그런 설비적인 변수 때문에 어려움이 좀 있었지만, 현장 상황에 맞춰 천장 디자인을 수정하며 대응해 나갔다.

 

북측에 있던 부엌을 남쪽으로 옮겼다. 이곳을 중심으로 중간영역과 순환 동선이 형성된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부엌을 중심으로 이 마당, 반외부적 중간 영역에 물 쓰는 공간을 모아두었다. 원래는 발코니였던 공간인데, 기존에 있던 창호를 철거하고 창 하부를 털어냈다. 예전의 주거를 보면 ‘토방’이 있다. 당시에도 부엌까지는 신발을 신고, 거기서 내부로 진입하지 않았나. 중간 영역을 디자인하며 그런 토방의 구조를 떠올리기도 했다. 또 요리를 하다 보면 이것저것 흘리고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은데, 중간 영역에선 청소도 용이하다는 기능적인 장점도 있다. 다들 발코니를 방으로 만들면서 실내를 ‘확장’ 하는데 우리는 Apartment D의 반외부 공간 디자인을 하며 되려 실내를 ‘축소’한 셈이다. 발코니를 복원해서 이전보다 더 크게 만들었으니.(웃음)

 

ⒸHyosook Chin

 

‘앉을 수 있는’ 공간

‘아틀리에 바우와우’ 소장이면서 <메이드 인 도쿄>의 저자인 츠카모토 요시하루는 좋은 주택에 대해 ‘앉을 수 있는(seatable)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라. 단순히 의자가 많은 공간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런 공간을 생각하며 공간을 기획했다. 거실과 서재, 중간 영역과 부엌, 현관 등에 툭 하고 걸터 앉을 수 있는 곳이 많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막다른 골목과 원룸적 구조간의 공간차

같은 아파트의 다른 집 대부분이 칸칸이 나누어진 기존의 방 구조를 유지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Apartment D를 처음 본 건축주나 이웃분들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체감하는 것 같았다. 현관에 들어와 복도를 지나는 것과 이 커다란 공간이 한눈에 드는 것은 그 공간감의 차이가 현저하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디테일

 

가구와 조명

건축과 가구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어져서 하나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 그리 복잡하지 않은 물건들은 직접 만들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에 딱 알맞게 어우러지는 디자인의 가구를 찾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벽에 고정된 등은 직접 제작했다. 이런 존재감이 약한 벽등을 좋아하는데, 딱 원하는 디자인을 기성제품 중에 찾기가 어려워 조명은 제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또한 공간의 위아래로 간접조명을 풍부하게 설치했다.

 

ⒸHyosook Chin

아일랜드와 함께 테이블도 제작했다. A급 합판이다.(웃음) 합판은 뒤틀림 없이 나무의 질감을 살릴 수 있어서 사용한다. 부엌 싱크 상판 재료로는 칸스톤을 썼다. 얼핏 인조대리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조 돌이다. 인조대리석보다 강도가 훨씬 강한 대신 가공이 까다롭다.

 

합판으로 제작한 책장과 테이블 ⒸHyosook Chin
칸스톤으로 만든 부엌 싱크대 상판 ⒸHyosook Chin

 

빛을 머금은 벽

테라코 벽은 빛을 받아서 쳐 내지 않고 머금는 성질이 있다. 가까이 보면 텍스처에 그림자가 어린다. 환하면 환한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머금은 빛을 뱉어내 특유의 분위기를 낸다. 사실 테라코 벽은 외부공간에 많이 쓰는 재료로 물에도 강하고, 반외부적인 중간 영역의 공간감을 표현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표면에 분사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천장도 같은 컬러와 재질로 이어 벽과 천장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지도록 했다.

 

테라코 벽의 텍스처 샘플 ⒸBRIQUE Magazine
Ⓒo.heje architecture

자세한 꿈

Apartment D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는 사진인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 다시 이 집을 고쳐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80년대 당시의 도면을 마주하는 심정이 되어 그전에 어떤 꿈을 이 공간에 심어 두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다. 시간이 지나 어떤 방식으로 이 공간이 다시금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치 80년대로부터 오늘에 다다른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듯, 지금에 알맞게 공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새롭게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이다음에 누군가 이 집의 공간과 우리의 도면으로부터 과연 어떤 꿈을 발견해낼까, 상상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o.heje architecture
ⒸHyosook Chin

 

‘주택 같은 아파트’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아파트라는 제약 많은 공간 안에서도 외부적인 경험을 하면서 그런 생각에 이른 것 같다. 이 중간 영역에 공간에 빗물이 내려가는 관이 하나 있는데, 옛날 아파트는 그 소리가 크다.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비가 내리노라면 반외부적 공간의 성격에 걸맞게 빗소리가 관을 타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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