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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연희동 할머니 집

[City] 추위도 막고, 바람도 막고, 햇빛도 들이다.
ⓒHyosook Chin
글. 전종현 편집위원  사진. 진효숙

 

‘연희동 할머니 집’은 연희동에 자리 잡은 단층 주택으로 70대 고령의 할머니가 머무는 곳이다. 50세가 넘은 나이의 딸은 노쇠한 어머니가 걱정되어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이 집은 딸에게 있어 나고 자란 곳이고 할머니에겐 거의 평생을 보낸 삶의 터전이기에 집에 대한 애착이 컸다. 보통 땅이 있으면 새로 집을 짓거나 다가구주택 혹은 빌딩을 높게 올릴 수도 있지만 딸은 알맞게 집을 고쳐 당신의 어머니가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바랐다. 추위도 막고, 바람도 막고, 햇빛도 들이는 집에서.

 

ⓒHyosook Chin

 

이름은 가고 사람은 남는다

 

이번 프로젝트 이름이 ‘Y house renovation’인데요. 작명에 규칙이 있나요?

보통 건축주 성이나 동네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는 편입니다. 이번 작업은 연희동에 위치해 Y로 정했죠. 프로젝트에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이것만 지켜진다면 사실 프로젝트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연희동 단층집 리노베이션’이라고 말해도 되고요.

 

건축주가 지은 이름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건축주 따님이 어머님을 대신해 우리와 주로 소통했는데 ‘만휴당(晩休堂)’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휴식이 충만한 집’, ‘느지막이 쉴 수 있는 집’이란 의미로, 따님의 기원이 잘 느껴지죠. 모름지기 집은 부서지면 명을 다하지만, 집 주인은 계속 바뀌어요. 곧 사람이 집보다 오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집 이름이 계속 바뀔 수 있는데 제가 지은 특정한 이름이 꼭 쓰일 필요가 있을까요? 건축가는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고 믿어요.

 

‘연희동 할머니 집’이 입에 착 달라붙는데, 이렇게 불러도 될는지…

물론입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요. 연희동 할머니 집… 나쁘지 않네요.(웃음)

 

땅에 붙은 집

 

신축 대신 리노베이션을 선택해 얻은 장점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새로 짓는다고 좋은 게 아니죠. 살릴 부분은 살리고 버릴 부분은 버리며 잘 고쳐 쓰면 그보다 합리적인 게 없습니다. 기존 골격을 유지하며 편리함을 더하면 익숙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으로 탈바꿈하죠. 연희동 할머니 집만 하더라도 원래 존재하던 마당은 쾌적한 공간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집과 마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조의 공간이 되었죠. 한옥은 방 안에 머물기 보다 방 밖으로 나가고 싶은 곳인데, 대청과 퇴 덕분입니다. 현대 건축은 상대적으로 외내부가 뚝 끊어진 편이라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려 하지 않아요.

 

다가구 주택을 신축해 꼭대기 층에 살면서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게 더 낫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람이 사는 집은 땅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해요. 땅으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그 집은 기억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집과 땅 사이에는 바닥을 밟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지면에서 발이 분리되면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져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2층 집보다 단층집을 더 애정하지요. ‘연희동 할머니 집’은 들고 나는 대문의 느낌을 크게 왜곡시키지 않아 전과 비교해 크게 이질감을 갖지 않아요. 대신 밝은 공간은 더 밝아지고 어두운 공간에도 차분하게 빛이 들어가게 바뀌었죠. 툇마루가 생기니 마당에 나갈 때 그리 좋을 수 없을 겁니다. 청명한 날씨에 툇마루에 앉아있으면 할머님의 기분이 얼마나 좋으실는지…

 

ⓒHyosook Chin

 

주거자 입장에서 그런 면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칠까요?

한옥이 좋은 이유는 대문만 열어도 동네와 바로 연결되는 느낌이 오기 때문이죠. 고층 아파트에 산다면 현관문을 열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층으로 움직여 외문을 열고 나가야 비로소 땅을 밟을 수 있어요. 이 과정은 동네를 기억하는 하나의 잔상으로 남기 힘들어요. 한옥은 발을 뻗으면 바로 땅에 닿으니 동네를 기억하는 경험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남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도쿄는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이 선형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제가 도쿄에 살았을 때 느꼈던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역에서 내리면 동네 상가가 나오고 걸어갈수록 점점 집이 가까워지며 자신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특유의 느낌이 존재하죠. 시부야-하라주쿠-오모테산도의 뒷길을 돌아다닐 때에도 동네와 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연속성이 지속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에 비해 서울은 일종의 ‘핀 포인트’ 도시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핀을 꼽은 점과 점 사이를 이동하는 기분이라서요. 특히 강남만 하더라도 걷는 기쁨을 주는 거리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죠. 대로변은 깔끔하지만 막상 골목에 들어서면 난주차가 극성이라 시각적인 피곤함이 몰려오는 경우가 잦아요. 도시를 걸으면서 연속성을 느끼는 선형적 체험은 곧 새로운 자극과도 밀접히 연결된답니다. 걷다 보면 생각하게 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달까요. 옛부터 창의적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산책을 예찬한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집, 새로운 삶

 

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소한의 가구와 짐으로 살고 계세요. 리노베이션을 계기로 필요 없는 물건도 모두 정리하고, 가꿔야 할 조경도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고친 집에서 사시면서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이 집을 비추는 달빛이 참 예쁘다.” 이사를 온 것도 아니고, 새롭게 집을 올린 것도 아니고, 단지 고쳤을 뿐인데 리노베이션 이전의 기존 집에서는 마당을 전혀 즐기지 못하신 거죠. 예전에는 마당 가꾸는 압박감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기 위한 진입 공간의 일부로 간주하셨다면, 이제는 마당을 즐기면서 전에 인식하지 못하던 주변을 발견하고 계세요.

또한 예전에는 집 안팎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습니다. 집 안을 감도는 바람과 함께 자연스레 담소를 나누기에도 제격이죠. 동네 할머님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사람방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완공 당시에도 이미 동네 또래 커뮤니티에서는 ‘스타 탄생’이었어요. 늘그막에 좋은 집을 갖게 되어 모든 할머니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셨다죠.(웃음) 근처를 지나가다 문득 그 집에 들렸을 때, 대문이 열려 있고 툇마루에 할머니 몇 분이 앉아서 대화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무척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Hyosook 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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