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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는 보리를 베어다가

[Life in greenery] ②우리나라 첫 '플라워 디자이너' 심기순 KFDA 초대 이사장의 꽃과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글. 이현준 에디터  자료. 심기순 고문

 

꽃꽂이나 원예를 ‘사치’로 여기던 1970년대 말, 한국에 최초로 ‘서양 꽃꽂이’를 소개하며 꽃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을 대중에 활발히 소개한 이가 있다. 심기순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KFDA) 초대 이사장 얘기다. 

 

심기순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KFDA) 초대 이사장. 2019년 7월 ⓒBRIQUE Magazine

 

심 초대 이사장은 1935년에 태어나 20대에 결혼 후 우연한 기회에 꽃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플라워 디자이너로서 남다른 감각과 재주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면서 실력을 갖춰 나갔고, 플라워 디자이너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1977년 12월 KFDA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 지금까지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이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도쿄 플로리스트 양성 전문학교장이자 세계 꽃 협회(World Flower Council)를 창단한 세키에 주자브로(Sekiye Juzaburo)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의 꽃 디자인을 세계에 알렸다. 심 고문은 조선호텔, 롯데호텔의 연회 등 대규모 행사 공간을 꽃과 식물로 꾸미는 책임은 물론,  꽃으로 하는 집 인테리어, 드라이 플라워 가공, 선물 포장법 등으로 많은 매체의 리빙 관련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해 꽃 디자인을 알리는 데 힘을 모았다.

 

영그는 보리를 베어다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계신 심 고문을 찾아뵀다. 1970~1990년대 발행된 신문을 오려 스크랩해 둔 파일,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커다란 앨범 속 사진들과 함께였다. 당시 한국인의 공간에서 꽃과 풀은 어떤 존재였을까. 

“꽃 등 식물로는 사무 공간을 주로 꾸몄고, 당시 한국에는 전무했던 서양 꽃꽂이, 즉 ‘플라워 디자인’은 호텔 연회장 같은 크고 특별한 공간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주거 공간에는 화초를 조금 두고 보는 정도고 꽃을 꽂아두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었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다 같이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꽃을 디자인한다는 것, 관상용 식물을 둔다는 건 사람들에게 그다지 친근하게 여겨지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나아지는 나라의 형편만큼 변화는 감지할 수 있었어요. 조촐하게 꽃 몇 송이로 식탁을 꾸미던 소극적인 범위에서 주거 공간, 전시 공간, 문화 공간 전반의 장식으로서 플라워 디자인이 점차 퍼져나갔죠. 우리나라 안에서도 꽃을 디자인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생겼고, 작아도 꽃과 식물이 있는 공간, 초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어요.”

<자료 제공 = 심기순>

 

국민 정서 발전과 국위 선양

 

지금이야 넘쳐나는 이미지를 참고해 누구나 취미 삼아 꽃을 디자인하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 세계와 공유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어느 SNS 페이지에 그득한 젊은 플로리스트의 꽃들을 심 고문에게 보여드렸다. 한참을 신중히 뜯어보시곤 “곧잘 했다” 하신다. 

“그 시절은 해외로 나서는 것조차 생소했던 때라, 세계 꽃 협의회(World Flower Council) 행사나 연수차 출국한 걸 두고 ‘국위 선양’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때만 해도 엄한 정부 분위기도 그렇고, 나라를 대대적으로 처음 알리는 88올림픽도 앞뒀던 터라 그런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199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FC(World Flower Council) 행사에 참석한 심기순 고문
<자료 제공 = 심기순>

 

멋지게 꾸미면 공부도 만점

<자료 제공 = 심기순>

 

당시의 리빙, 인테리어 관련 기사를 접하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흙 대신 유리구슬을 넣어 수경재배 할 수 있다는 내용에 지면의 큰 부분을 할애하기도, 새 학기를 맞아 아이 방을 꾸미는 방법을 예스럽지만 깜찍한 일러스트와 함께 풀어내기도 한다. 사뭇 진지한 톤으로 가을맞이 실내장식법을 다룬 기사는 볼수록 신기하다. 말린 꽃 액자를 만드는 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1986년도의 기사를 보며 따라 만들고 싶을 정도다. 만약 심 고문이 현재를 산다면 팔로워가 꽤 많은 SNS 유저가 아니었을까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자료 제공 = 심기순>

 

“화초를 실내에 놓으면 싱그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걸 구태여 설명해야 납득하는 시절이었어요. 지금과는 매우 달라요. 지금이야 혼자 사는 젊은이들도 작은 화분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어느 시대에나 트렌드 세터도 있고 얼리 어답터도 있잖아요. 그때도 인테리어, 집 꾸미기에 관심 많은 여염집 규수들이 물론 있었죠. 꽃을 배우러 오는 이들 중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부 수업을 원하는 여대생들, 연예인들도 꽤 됐고요. 그런 사람들은 앞다퉈서 새로 나온 커튼으로 바꿔 달고, 부지런히 꽃을 말려서 꽂고, 백화점에서 앙증맞은 도자기 인형도 사다 놓고 그랬죠.”

 

<자료 제공 = 심기순>

 

짚신과 구두

 

심 고문은 젊어서부터 재미있고 찰진 입담에 기발한 표현과 행동으로 지인들에게 웃음을 종종 선사했다. 인터뷰 때에도 아랫도리는 병원에서 준 환자복을 입었다. 하지만 상의는 고급스러운 블라우스를 입는 재치를 발휘했다. 불현듯 그게 인생인 것도 같았다.

그의 일과 중 하나인 낮잠도 걸렀는데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되었길래 끝으로 여쭸다. 심 고문에게 꽃과 풀은 뭐냐고. 

 

심기순 고문 부부 사진 ⓒBRIQUE Magazine

 

“’플라워 디자인’이라는 걸 알리려고 그 옛날에 무료 강좌도 많이 열었어요. 꽃 얼굴만 보이게 만드는 걸 본 수강생들이 글쎄 선생이 무어라 얘기하기도 전에 줄기에서 꽃 머리만 똑똑 따다가 수업하겠다고 찾아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죠. 짚신이 고무신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누가 고무신을 신나요? 구두 신지. 계절에 맞게, 기분에 맞게. 자연스럽게 갈아 신는 거예요. 세상도 그렇게 바뀌어요. 그때 꽃과 풀의 역할이 있었다면, 지금 꽃과 풀은 또 지금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지요. 다만 꽃을 꽂는다는 건 인내고 또 절제, 거긴 늙음이 없어요. 쉬지 않고 계속해요. 난 꽃한테 많이 배웠어요. 지금도 꽃을 꽂는다는 사람들은 아마 무진장 배우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은퇴가 없어요. 죽는 날이 꽃을 손에서, 마음에서 놓는 날이지요.
내가 이 요양 병원에서 두 눈이 가장 동그랗다는 죄(?)로 TV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 나와. 오늘은 잡지 인터뷰도 하고. 다시 유명해졌나 봐요.(웃음)” 

또 한 차례의 여름을 배웅하는 아흔의 문턱. 심기순 고문의 미소가 배롱나무꽃처럼 폈다. 뿌리를 앉히고 줄기를 세우고 잎을 다듬고.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꽂듯 살아 온 세월이 여기 고운 리본처럼 놓여있다. 늘 그랬듯 가만히 매듭을 짓는 그녀의 손길이, 그 얼굴이 못내 아름답다. 

 

ⓒBRIQUE Magazine
심기순 고문의 집 현관에 놓인 그녀의 작품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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