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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파트 리노베이션

오헤제 건축사무소의 '리노베이션'에는 비범한 무언가가 있다.
Ⓒo.heje architecture
에디터. 이현준  자료. 오헤제 건축설계사무소 o.heje architecture

 

1984년 준공돼 서른다섯 해 째 제자리를 지킨 이 아파트 유닛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6LDK. 전용면적 55평 공간에 6개의 방과 더불어 거실(L), 다이닝(D), 주방(K)이 존재한다. 집을 고쳐 지은 오헤제 건축설계사무소(이하 오헤제)는 이 과거의 평면을 ‘유난’ 대신 ‘꿈’이라 읽었다.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누님도 아우도, ‘내 방’이 갖고 싶던, 그 시절 우리네 ‘꿈’ 말이다.

한편 오헤제와 ‘아파트먼트 D’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그 시절의 주거 양태를 ‘리노베이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봤다. 베란다를 터 공간을 확보하는 것, 가벽을 헐어 방을 넓히는 것 너머의 층위를 오헤제의 ‘고쳐 짓기’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의 꿈과 지금의 꿈을 이어 오늘을 사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제안, 대한민국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라는 프레임 속에서 동선과 흐름, 안과 밖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행위, 그리고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서의 리노베이션 말이다.  

 

Ⓒo.heje architecture

 

아파트먼트 D: 꿈을 이어가는 곳

 

‘아파트먼트 D’는 강남에 위치한 55평 아파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다. 통상 ‘신축’은 주변 땅의 맥락을 읽고 기초부터 세워 나가는 건축 행위를 말한다. 그에 비해 ‘리노베이션’은 건물 본래의 바닥과 천장 등 기본 골조를 유지하며 이미 존재하던 환경과 맥락 안에서 과연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것은 얼마나 새로울지에 대한 고민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바탕이 된다.

 

Ⓒo.heje architecture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고민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꿈을 이어가는 행위로서의 리노베이션’, ‘원룸적인 공간’, 그리고 ‘중간 영역’이다. 지어진 지 3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아파트의 리노베이션을 고민하면서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던 화두는, 예전의 것을 새롭게 바꾸는 과정에서 지금 공간을 사용하는 세대가 그것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이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 생활상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었을 꿈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내부 철거공사 당시 Ⓒo.heje architecture
1984년 준공 당시 ‘아파트먼트 D’의 평면 Ⓒo.heje architecture

 

준공 당시의 평면도를 보면 이 55평 형 아파트에는 좁은 방들이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모여있다. 6개의 방과 거실 하나, 다이닝 하나, 부엌 하나(6LDK)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평면 타입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기 방을 갖는 게 꿈이었기에 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나 싶다. 남향을 중시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방이 남향을 갖도록 포베이(4-Bay) 구조를 취했다. 현관에서 들어오면 작은방과 구석 방이 있고 또 작은방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거실, 왼쪽으로는 다이닝, 안쪽으로는 주방이 있다. 다른 편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방과 또 하나의 방이 있다. 크게 보면 내부 복도를 따라 방이 줄지어선 구조다.

 

ⒸHyosook Chin

 

원룸적인 공간

 

Ⓒo.heje architecture

 

기존의 집이 마치 막다른 골목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방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공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가족을 위한 ‘원룸’ 형식의 공간을 상정해 가족 모두를 위한 ‘원룸’을 구심점 삼아 골목골목 흩어져 있던 6LDK가 재배열 되는 구조를 상상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반외부같은 마당과 가족실을 거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단계적인 프라이버시를 계획했다.

Ⓒo.heje architecture
Ⓒo.heje architecture

 

처음 원룸 형식을 생각하면서도 기존 방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막다른 골목처럼 막혀 있는 공간이 원룸처럼 순환하도록 구조적인 변화를 생각했다. 과거만 하더라도 ‘내 방’이 갖고 싶어 집 내부에 되도록 많은 방을 만드는 게 일상화됐다. 부모님도 모시고 아들, 딸도 여럿 낳아 식솔도 많았으니까. 반면 요즘은 많은 방보다 삶의 방식에 맞게 공간을 활용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많은 경우, 이름은 집이지만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다들 집에 들어오면 각자의 방으로 바로 들어가고, 식탁에 잠깐 모여 밥을 먹고 다시 제 방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단지 방 하나를 터서 거실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정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큰 공간, 삶의 중심이 되는 공간의 필요성을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복도를 없앤다는 건 꽤나 중요했다. 실에서 만나고 실에서 흩어지는 것. 이동의 통로로서 공간을 들고 나는 매개로 복도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가 머물고 있는 공간을 우연히 지나가고, 집 안 어느 곳을 가든지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었다.

 

기존 구조의 평면 Ⓒo.heje architecture
가족이 모이는 ‘원룸적인 공간’을 만들어 재탄생한 평면 Ⓒo.heje architecture

 

‘중간 영역’과어프로치

 

현대의 주거 공간을 살펴보면 아파트와 주택을 막론하고 집으로의 물리적인 접근법, 즉 ‘어프로치(approach)’엔 공통점이 있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곧바로 현관이 나오고, 중문이 있다면 중문을 거쳐 신발을 벗은 뒤 내부로 진입한다. 현관이라는 ‘점’적인 공간을 거쳐 곧바로 외부에서 내부로 전환되는 구조다.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점’을 거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면’적인 중간 영역을 경유해 여유 있는 템포로 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의 외부에서 내부로 접근하는 문제는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우리가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다.

 

Ⓒo.heje architecture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에서는 이 어프로치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이번에는 ‘ㄴ’자 공간을 중간 영역으로서의 마당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이 한옥을 예로 들자면, 대문에서 진입할 때 ‘현관’이라고 지정된 점적 공간이 따로 없다. 어찌 보면 이 마당이 커다란 현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파트먼트 D도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면’적으로 어프로치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내부로 완전히 진입하기 전, 신발을 신고 어느 방향에서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집으로의 ‘어프로치’를 달리하는 중간영역 Ⓒo.heje architecture

 

이런 중간 영역은 집에 손님을 들일 때도 요긴하다. 우리 한옥에 누군가 방문하면 대문에 들어서서 곧바로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앞에서 짧은 담소를 나눈다. 안도 밖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영역인 공간은 간이 응접실 같은 역할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 외부가 오히려 LDK의 L, 즉 아웃도어 리빙으로 변한다. 택배 아저씨는 대문 밖에서 물건을 전달하고 돌아가시는 반면, 마트에서 배달 오신 아저씨는 중간 영역을 지나 툇마루까지 오신다. 아파트먼트 D의 마당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중간 영역으로서 쓰일 것을 상상했다. 대량으로 장을 봐온 날이나 마트에서 배달이 오는 경우, 문을 열고 들어오면 펼쳐지는 이 영역 어딘가에 슥 뒀다가 곧바로 부엌에서 정리하고 손질을 하는 식이다. 문을 기점으로 외부가 내부로 전환되어 신발만 벗고 집으로 진입하는 방식은 근대 이후에 생겨난 모습인 것 같다. 집으로의 접근, 어프로치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자 했다.

 

다각도에서 본 중간영역 ⒸHyosook Chin
서촌에 자리한 오헤제 오피스의 중간영역 ⒸBRIQUE Magazine

 

아파트 13층에 어떻게 하면 외부적인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30년도 더 된 아파트 단지다 보니 동 간격이 아주 넓은 데다 조경으로 심어진 나무들이 거의 6-7층 정도의 높이로 거대한 숲처럼 우거져 있더라. 그런 환경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북쪽을 마주한 방에서 보이는 6, 7층 높이의 나무들 Ⓒo.heje architecture

 

환경 만드는 일

 

‘신축’과 ‘리노베이션’ 등 공사의 범위로서 건축의 사고를 한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DDP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도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하 하디드가 만든, 마치 동굴 같은 하나의 ‘환경’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는 것이었고, 아파트먼트 D도 마찬가지다. 건축 시공 방법 때문에 ‘리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기존의 상황을 대지로 대하고 새로운 ‘환경’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주택을 새로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리노베이션처럼 이미 존재하던 공간을 재탄생시키는 경우엔 기존의 구조체가 참 다양한데, 이들이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환경과 이야기, 그리고 ‘어프로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신축과 아주 멀리 있지 않다.

 

DDP 라이브러리 Ⓒo.heje architecture collaborated with Samuso Hyojadong

 

지금 이 한옥 오피스도 마찬가지다. 기존 한옥을 리노베이션 한 공간인데, 우리가 대대적으로 고쳐 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리노베이션’은 공법의 의미도 있지만,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 공법과 기술적인 부분은 차순위다. 이 한옥은 복잡한 공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구적인 리노베이션이 가능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집인 동시에 사무실인 ‘1LDKO’ 가 그렇게 나왔다. 하나의 방과 거실, 다이닝, 부엌. O는 오피스다. ‘ㄱ’ 자 내부 공간이 다이닝과 부엌이 된다. 거실은 바로 여기 마당이다. 마당도 하나의 방으로 생각하고 도면을 그렸다. 이처럼 모든 프로젝트에는 기존의 환경이 있고, 그 환경을 감싸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접근법이 조금 다르게 된다. Apartment D가 이전의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간직해 왔을 이야기의 켜를 상상해본다.

 

오헤제 건축사무소의 서촌 사무실 ⒸBRIQUE Magazine
외부에서 바라본 Apartment D’ ⒸHyosook 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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