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방법

[Lifestyle] 취향공동체 세 가족의 집, '풍년빌라'의 시작과 과정
ⓒDonggyu Kim

에디터. 김윤선  자료. 문도호제

 

우리 말에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안다’는 말이 있다. 이웃과의 친밀함과 정을 중요시하던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정서를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선 이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밥숟가락 개수는커녕,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게 당연해진 시대, 완벽한 이웃을 만나기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기,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통하는 세 가족이 모여 완벽한 이웃이 된 집이 있다. 이 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풍년빌라 거주자이자, 기획자인 임태병 문도호제 소장을 만나 집의 시작과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BRIQUE Magazine

 

STEP 1.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방법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 ‘어쩌면 가족’

풍년빌라는 세 가족,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지인 공동체가 모여 사는 집이다. 그들은 단순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 관계가 아니라,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라이프스타일이 통하는 취향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하인드B-hind를 빼놓을 수 없다. 비하인드는 2000년대 초반 홍대 앞에서 임태병 문도호제 소장을 비롯한 네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카페로, 홍대 카페 문화의 시초이자 원형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이따금 와인 바나 교회 합창실 등을 빌려 함께 음악을 듣고, 진지한 토론회를 열던 친구들이 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 비어있는 낮 시간을 활용해 월세라도 벌어보자 했던 게 카페의 시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던 자유롭고 독특한 분위기로 꾸며진 공간에는 감성을 공유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카페는 문화 공간이자 예술가들의 산실이 되었다.

 

비하인드 카페 ⓒDesign House

 

십수 년 간 이곳을 거쳐 간 스태프와 파트타이머만 해도 40~50명 남짓. 대부분 홍대에서 예술을 전공하던 학생들이었고, 이중 몇몇은 임 소장의 집에서 하숙을 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공유 주거’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친밀한 관계에 있던 친구들과의 하우스 셰어링 경험은 임 소장으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은 계기가 됐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지보다 일상을 공유하는 식구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과 가족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몇 해 지나다 보니 큰 집을 얻어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막연하게나마 하게 되었죠.”

젊고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발판 삼아 언젠가는 그런 집을 건축적으로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들의 장기임대 플랫폼 ‘어쩌다 가게’

그 생각에 불을 지핀 것은 2012년 즈음,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한일 현대건축 교류전으로부터였다. ‘같은 집 다른 집’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는 당시 임 소장이 몸담고 있던 사이 건축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젊은 건축가 5팀과 일본의 젊은 건축가 5팀이 모여 주거 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중 일본 건축가 나루세 이노쿠마가 제시한 셰어하우스share house의 형식과 개념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셰어하우스의 개념을 너무나 명료하게 보여줬어요. 이웃과 단절된 기존 공동주택에서 식당, 욕실 등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입주자들이 대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제안했죠.”

그때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는 ‘어쩌다 가게’를 기획하는 데 일조했다. 집은 돈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리니, 이런 방식으로 가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단독주택을 개조해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을 모으고 5년간 임대료 인상 없이 안정적인 임대를 보장하는 플랫폼, ‘어쩌다 가게 동교’가 탄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쩌다 가게 동교 ⓒW Magazine (자료 제공=문도호제)

라이프스타일이 통하는 지인 공동체 ‘어쩌다 집’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공간으로 실현되자, 접어 뒀던 집에 대한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어쩌다 집’ 협동조합이 결성된 것이 2015년경.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삶의 가치관과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짓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집은 가게와는 달랐다. 비용 또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진척이 더뎌지면서 결혼을 하거나 거처를 옮겨 신상에 변화가 생긴 사람도 생겨났다. 새로운 대안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조립식 가족’의 삶을 담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황선우 작가 또한 그중 하나. 
난관에도 불구하고 공급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존 주택에서 탈피해, 이웃이 되고 싶은 이들과 함께 각자의 필요와 삶을 반영한 집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의식은 확고했다.

“집은 여전히 너무 무겁더라고요. 돈이 많이 드니 진행은 더디기만 했죠. 좀 더 가벼운 형식으로 풀 순 없을까 고민하니, 그때부터는 소유에서 벗어난 점유 형태의 집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10명 정도 남아있던 조합원들끼리 다시 뭉쳤고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갔어요.”

소유가 아닌 점유로의 전환. 풍년빌라 짓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Donggyu Kim
ⓒDonggyu Kim

 

STEP 2. 집 짓기를 위한 세 가지 전략

사람들을 모으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선 보다 구체적이고 촘촘한 계획이 필요했다. ‘토지 임대부와 장기 점유권, 그리고 집주인 찾기.’ 그동안의 고민을 정리하며 집 짓기를 위한 견고한 전략을 차례로 세워나갔다.

 

토지 임대부 : 땅만 빌려 우리가 살 집을 직접 지어 볼까?

우리나라 임대 시장은 토지와 건물이 함께 묶여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토지와 건물은 각자 다른 운명을 타고난다. 일반적으로 토지는 계속해서 가치가 상승하지만, 건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감가상각으로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 결국, 오른 땅값과 떨어진 건물값이 같아지는 제로섬 게임으로 향한다. 어찌 보면 이는 임대업의 가장 큰 딜레마. 그러나 임 소장에게 집 짓기를 위한 실마리를 준 것 역시 이 딜레마다.

“토지 임대부 방식으로 땅만 빌려 집을 짓는다면 어떨까 싶었어요. 대신 건물은 우리가 직접 짓거나 고쳐 쓰고요.”

임대인은 토지만 빌려주어 건물에 투입할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지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으로,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Donggyu Kim

 

장기 점유권 :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 임대 기간 10년을 보장하는 집

다만 건물을 신축하던 고쳐 쓰던 단순 임대보다 비용 부담이 크므로, 장기간 임대료 인상 없이 임대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0년 이상의 장기 점유권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지가는 단기간에 상승하지 않을뿐더러, 임차인 역시 건물에 투입한 비용을 회수할 시간이 필요하니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최소 10년이라는 기간을 두는 것이 서로에게 안정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장기 점유권 개념 다이어그램 ⓒmundoehoje

 

집주인 찾기 : 가치 있는 ‘집테크’의 발견

그다음은 토지와 토지주, 즉 투자자를 찾는 일이었다. 새로운 방법의 집 짓기 방식에 흥미를 느낀 많은 사람이 연락을 주었지만, 쉽사리 투자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투자할 돈이 생겼으니 매입할 땅을 찾아 달라고 하더군요. 3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가볍게 나눴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가 투자를 결정한 거예요.”

그 후 본격적으로 적합한 땅을 찾는 일이 시작됐다. 투자자가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도록 현재 땅값이 싸고 지가 상승 가능성이 있는 땅이면서도, 거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지역일 것.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했다. 거주자들의 주 활동 지역이었던 홍대 근처를 중심으로 망원동과 서교동, 성산동, 연희동 일대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러다 불광천 가까이에 있는 동네를 발견했다. 대지의 일부를 통로 용도로밖에 활용할 수 없는 ‘자루형 부지*’였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자루형 부지
도로에 접한 출입구가 자루의 입구처럼 좁게 생긴 토지를 말한다. 보통 가격이 낮고 감정평가 시에 감가 원인이 된다. 깃발을 걸어 놓은 모양 같다고 하여 깃발 부지(flag lot)라고도 한다.


“깃발 부지라 주변과 비교해 평당 300~400만 원 정도 저렴하게 나와 있었어요. 천변보다 프라이빗하고, 잘 정리하면 재미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았죠. 동네와 연결될 가능성도 보였고요.”

다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투자자가 건물 건축 비용도 부담하게 되면서 거주자들은 매달 토지와 건물 건축비 총액의 이자를 지불하기로 했다.

 

ⓒDonggyu Kim

 

“투자자가 저희와 인연이 있는 지인분인데, 드라마 ‹시그널›, ‹킹덤›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예요. 목돈으로 투자처를 찾자 주변에서는 대부분 강남에 땅을 사라고 했대요. 금방 오른다고. 하지만 본인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글을 쓰는 사람인데, 돈이 돈을 버는 구조랄까. 그러니까 투기성이 있는 투자를 원하지 않았어요. 건강하고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풍년빌라’라는 이름 역시 투자자로부터 유래했다. 김은희 작가와 남편 장항준 감독이 공동 집필한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에서 따온 것.

풍년빌라로 가능성을 엿본 건축주는 자발적으로 또 한 번 투자를 결정했다. 근처 부지에 풍년빌라와 유사한 형식으로, 젊고 재능 있는 작가들을 위한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모델이지만, 그 가치와 가능성을 본 거죠. 임대업을 오래 해온 분들은 이제 더는 소유한 땅에 건물을 지어서 임대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이전만큼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 방식은 큰 수익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부담이 적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죠. 투자한 돈에 대한 은행 이자만큼의 이득은 가져가면서, 10년 이후의 지가 상승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요. 투자자들에게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요.”

 

ⓒDonggyu Kim

 

STEP 3. 풍년빌라에서의 10년, 그 이후

 

출구 전략 : 집으로 종잣돈 만들기

집 짓기의 마지막 관문은 ‘출구 전략’ 찾기. 10년의 장기 점유가 종료된 이후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을 만들어 두어야 풍년빌라 이후의 삶에도 대비할 수 있을 터. 일종의 출구 전략을 찾는 일이 마지막 과제로 남겨졌다. 그들이 찾은 출구 전략은 집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 거주자들이 공동투자를 하고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1층에 카페를 두기로 했다.

 

거주자들이 운영하는 1층 카페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동네와 집의 접점으로서 역할 하면서, 입주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야 했어요. 카페를 통해 얻은 수익금 일부는 집세에 보태고, 꾸준히 적립하면 장기적으로는 이후를 위한 종잣돈이 되리라 예상해요. 아직은 실험하는 단계지만요.”

이 출구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카페 개점 1년이 되는 오는 가을을 그 기점으로 보고 있다. 거주자들이 직접 운영해 수익을 내는 게 여의치 않다면 공간을 외부에 임대하는 대안도 생각해두었다.

 

출구 전략 개념 다이어그램 ⓒmundoehoje

 

“아직 손님이 많지 않지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동네 분들이 꽤 있어요. 동네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봐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페가 생긴 다음, 오히려 저희가 마음에 큰 위안을 느껴요. 아침에 첫 커피를 내렸을 때 거주자들이 다 내려와 10분쯤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며 함께 시간을 가지거든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후속 기사 : 

 

풍년빌라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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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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