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알맞은

[Space] ‘공굴집’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유영  사진. 최진보  자료. 김성진

 

나에게는 좋은 집
세상이 중요하다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진실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걸 품은 채 사는 삶은 속부터 영근, 철 맞은 열매와 닮았을지도.
공굴집에 사는 두 사람도 그 열매 같은 삶을 그렸다. 그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삶을 닮은 집이었다. 관리가 편하고 주거 인프라가 잘 갖춰진 아파트에서 벗어난 이유도 거기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지어진 지 60년이 다 되어 가는 작은 주택을 손수 고쳐 산다. 안락한 소파나 이국에서 온 근사한 조명은 없는 집. 그렇지만 제 삶을 더 괜찮게 만드는 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이 사는 그 집엔,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정원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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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굴
발음하면 입안에서 구르는 ‘공굴집’의 귀여운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 우선은 빌 ‘공空’, 동굴 ‘굴窟’을 써서, 아늑한 동시에 비어 있는 집을 그렸던 두 사람의 꿈을 드러내기로 했다.

실제로 완성된 집의 2층은 군더더기 없이 비워져 생각과 시선이 흐르고 자연과 실내가 연결된다. 1층은 지친 몸을 누여 쉴 수 있는 안온한 휴식처로 탄생했다. 그뿐일까? 건축하는 남편과 디자인하는 아내는 직접 발품을 팔고 도면을 그리고 철거와 공사를 진행했는데, 이 추억 역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집 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인 ‘공구리(콘크리트)’를 떠오르게 하는 이름으로 그 바람도 이뤘다. 공굴집의 이름엔 부부의 상상과 열정과 노력과 시간이 다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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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자리를 채우는 것

 

체제에서 벗어난 집

 

낮고 다른 집으로
집으로 빽빽이 채워진 아파트, 윗집 침실과 아랫집 침실 사이에 누운 누군가는 생각한다. ‘아, 못 참겠다.’ 조금 더 신경 쓸 것이 많고 불편해진다고 해도, 아파트를 벗어나는 건 김성진 씨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파트가 나빠서가 아니다. 아파트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도 그였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냥 그래야만 하는 일’이 있고, 그가 단독주택에 살아야 하는 것도 그런 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안정호 씨는 평생 아파트에 살아왔으나 배우자 성진 씨와 함께하며 새로운 집의 형태를 그려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서울 곳곳을 산책하듯 거닐면서 여러 주택을 구경하다가 성동구 어느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집을 만난다.

 

구옥에서 본 것
1963년 지어진 이층집엔 세월을 매섭게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외관을 감싼 분홍빛 타일은 정겨웠으나 보수할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내부는 더욱 혼란했는데,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방 두 개와 불법 증축한 화장실이 밭은 간격을 두고 나뉜 상태였다. 그러나 건축가의 눈을 가진 성진 씨가 보기에 이 집엔 가능성이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는 오히려 혼자서도 바꿔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북돋웠다. 법적으로는 야외이지만 가설 지붕을 덮어 화장실로 사용 중인 공간은 마당으로 가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호 씨는 또 다른 것을 보았다. 지하철역과 가깝고 밤에도 환할뿐더러 오래 살아온 주민이 많은 동네라는 입지는, 단독주택에 처음 살아 보려는 그에게 확실한 매력이었다.

 

공굴집의 리노베이션 전 모습 ©Sungjin Kim

 

건축과 디자인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성진 씨는 젊은건축가그룹 에이더스(이하 에이더스)에서 경영기획본부 팀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건축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건축하는 사람이자 경영 팀장이라는 정체성은 성진 씨의 독특한 이력에서 왔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건축을 다루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다가, 실무를 모르는 채 글을 쓴다는 걸 견딜 수 없어져 건설 현장에서 수년간 경험을 쌓는다. 에이더스로 옮긴 후에는 설계를 했지만, 회사가 성장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집 짓는 과정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경영 업무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편 정호 씨의 직업은 UI(User Interface) 디자이너. 사용자가 웹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즐기도록 하되, 시각적으로도 매끈한 디자인을 구상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우리와 나를 위한 집
공굴집에는 두 사람의 직업적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디자이너가 소재와 자재부터 생활 동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펼치면, 건축가는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확인하고 더 좋은 답을 가져오기도 했다. 성진 씨는 정호 씨가 공굴집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였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로 이 집에는 클라이언트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만족하는 디테일들이 가득한 한편 성진 씨의 건축적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도 명확히 자리한다. 가령 물건을 보이지 않게 정리해 둔 심플한 공간을 좋아하는 정호 씨의 성향에 맞춰, 성진 씨는 알뜰하게 수납공간을 계획했다. 디귿(ㄷ) 자로 만든 2층 싱크대와 조리대는 수납 가능 면적을 늘려 깔끔한 공간을 완성하면서도, 싱크대에 선 사람이 마당을 바라보거나 거실에 앉은 사람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시선의 흐름을 만들고 싶었던 성진 씨의 바람도 함께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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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내부 ©BRIQUE Magazine

 

흐르는 집

 

나만의 뜰
단독주택에 살기로 한 이상 마당은 있어야겠다고 성진 씨는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의 조경이 공유하는 정원이라면, 단독주택의 마당은 나만의 뜰이었다. 경치 좋은 마당과 더불어 살고 싶어 언덕 위 주택도 돌아보았지만, 치안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호 씨는 번화가와 좀 더 가까운 집을 원했다. 성동구의 구옥은 두 사람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할 만한 집이었다. 높은 데서 보이는 경치는 포기해야 했어도 둘의 취향만으로 꾸민 조그만 마당은 가질 수 있었다. 의자를 두고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실용적 마당을 만들지, 그림인 양 바라볼 마당을 만들지 오래 궁리한 두 사람은 화장실로 쓰이던 지금의 마당 자리를 비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멀끔해진 공간을 무얼로 채울지에 대한 고민은 수 개월간 이어졌지만, 결국 부부 모두 낮에 일하는 생활 패턴과 이웃집과의 거리를 고려해 마당의 쓰임을 결정한다. 공굴집 2층의 마당은 바라볼 풍경으로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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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중심
공굴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짜였다. 2층 한편에 마당을 두는 건 고정된 상황이었으므로, 2층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마당을 누리는 일상의 모습도 달라질 터였다. 결국 2층은 거실 겸 주방으로 완성했는데, 식사와 집안일, 취미 생활과 손님맞이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홀hall로 만들어 더욱 자주 마당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마당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채광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덕분에 리모델링 전 네 개였던 정면 창문을 과감하게 하나로 줄이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창을 줄이자 집이 주는 안정감도 한결 높아졌다. 2층을 홀로 구성하면서 1층은 자연스럽게 침실과 화장실 등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었으며, 커다란 창이 없어 되레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1층 안쪽에서 바라본 현관 ©BRIQUE Magazine
1층 침실 ©BRIQUE Magazine

 

얇아지고 얇아진 집
집 전체가 간결하지만 2층은 특히 단출하다. 공간을 구획하는 기둥도 소파나 협탁 같은 가구도 찾아볼 수 없고, 원목 마루와 하얀 벽 사이에 성진 씨가 손수 만든 오디오 수납장과 스피커, 턴테이블과 LP 몇 장만이 가볍게 놓였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만을 남기고 모두 덜어낸 셈인데, 이는 건축에 대한 성진 씨의 철학에서 비롯했다. 그는 자연, 육체, 정신 등 삶을 이루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 건축이 엄청난 무엇이 되지 않는 순간, ‘얇아지고 얇아지다 결국 사라지는 순간’이야말로 건축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최대한 덜고 비운 집엔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추우면 옷을 덧입고 더우면 벗으면서 자연스럽게 지내려 한다고도. 꼭 필요한 벽만 남긴 이유 역시 ‘더 얇아진 집’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정호 씨와 성진 씨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그곳에 사는 이와 그곳을 찾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관계가 방해 없이 뒤섞이며 흐르는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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