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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너머 의자 Beyond the Chairs

덴마크 가구디자인의 아버지, '한스 베그너'의 이야기 짙은 의자들
에디터. 이현준  자료. 더멘션 The Mansion

 

지난 5월 22일, 아트&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부티크 ‘더멘션’이 베그너 하우스를 오픈했다. 전설적인 가구 디자이너로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스 베그너(Hans J. Wegner)를 위한 공간이며, 특별전과 함께 선보인다. Carl Hansen & Søn, PP MØBLER , Frederica 등 한스 베그너를 생산하고 있는 대다수 브랜드의 마스터 피스들을 한 공간에 모아, 그의 철학과 열정 그리고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 

 

ⒸThe Mansion

 

1914년 덴마크 퇴네르에서 출생한 베그너는 가구 디자이너인 동시에 목공예 장인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장인정신에 기반한 기술적 토대 위에 축복받은 예술적 재능을 결합해, 어쩌면 다시는 존재할 수 없을 위대한 작가의 삶을 살았다. 덴마크 고유의 기능주의가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형태로 완성된 초유의 작품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오늘날 사람들이 덴마크 가구에서 연상하는 거의 모든 속성들의 원형이 그의 손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2007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베그너는 무려 1000여 점의 가구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중 500여 점은 의자다. 특히 의자를 편애했다. 인간의 삶에서 의자가 단순한 물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가구와 신체 사이의 관계는 물론 집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정서적 기능까지 고민했다. 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집의 속성인 ‘안락함’은 베그너 체어를 상징하는 속성 중 최우선에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한스의 의자 중 10 작품을 골라 그 너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CH23 | ‘베그너 디테일’을 세상에 알리다

 

ⒸThe Mansion

 

정교한 핸드 드로잉 설계, 소재의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공법, 예술성과 안정성 모두를 달성하는 정밀한 디자인. 구상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고 고집스러우며 까다롭게 진행되는 한스 베그너의 작업 방식을 두고 세상은 ‘베그너 디테일’이라 불렀다. CH23 다이닝 체어는 젊고 혈기 넘치는 베그너의 초기 걸작품 중 하나이며, ‘베그너 디테일’을 세상에 알린 의자이기도 하다. 1950년 Carl Hansen & Søn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첫 작품들 중 하나이며, CH23을 포함한 다섯 작품은 이들의 끈끈하고 상호보완적인 파트너십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데서 ‘클래식’으로 추앙받고 있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전통적인 베그너 디테일 방식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해 과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PP250 | 재미와 흥미로부터

 

 

ⒸThe Mansion

 

한스 베그너는 주로 일상 속 작은 재미와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PP250 ‘발렛 체어’는 그의 구상 습관이 가장 명백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1951년 한스 베그너는 건축학 교수 Steen Eiler Rasmusse, 디자이너 Bojesen과 함께 실용적인 방법으로 옷을 접어 보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이 의자를 디자인했다. 최초 네 개의 다리로 구상되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9세의 선택을 받았으나, 한스 본인의 불만족으로 2년의 추가 설계기간을 거친 후 현재의 3족 형태로 완성되었다. 베그너는 비교적 저렴한 소나무 재질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의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증명하고 싶었고, 종내 국왕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디자인에 감탄하며 총 10개의 발렛 체어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의 대화에서 논의된 결과물을 실용적으로 통합해 재기 넘치는 조각 디자인으로 완성한 PP250은 현재 PP MØBLER에서 제작하고 있다.

 

CH24 | 북유럽 디자인의 아이콘, 가장 지속적으로 사랑 받는 의자

 

ⒸThe Mansion

 

스칸디나비안 모던 디자인을 상징하는 역작. ‘Wishbone Chair’ 또는 ‘Y Chair’라고도 불린다. 가장 지속적으로, 또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 셀러다. 한스 베그너의 작품들 중 소위 ‘차이니스 체어 라인’라는 작품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덴마크 무역상의 초상화에 삽입된 명나라풍 의자에서 영감을 얻어 구상되었다고 한다. 원목에 스팀을 가해 제작한 유선형 팔걸이, 알파벳 Y 형태의 등받이가 특징이며, 동서양의 감성이 유려하고 모던하게 융합된 결과물이라는 평이다. 수많은 걸작들이 그렇듯 CH24 역시 부침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의자로 꼽힐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1950년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던 당시에는 수용하기 힘들만큼 아방가르드하다는 비판이 대세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CH24를 평하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호평이 이어지고 점진적으로 구매가 증가해 오늘의 위상에 이르고 있다. 베그너와 Carl Hansen & Søn의 첫 협업 라인 중 하나다.

 

PP502 | 덴마크 의자 디자인의 전환점

 

ⒸThe Mansion

 

PP502는 한스 베그너 자신에게는 물론 덴마크 가구 역사에 있어서도 큰 전환점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의자를 기점으로 덴마크 의자 디자인은 인체공학을 최우선 순위에 두게 된다. 과학적 접근 없이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디자인 세태에 경종을 울린 의학 박사 Egill Snorrason의 비평이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한다. 등받이 높이를 낮추고, 프로펠러 형태의 상단이 등 하부를 편안하지만 단단하게 지탱하도록 한 구조는 의학적 토대에 예술을 접목한 가구 설계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의자는 사장 또는 비서를 위한 것이다. 아니다. 비서에겐 너무 비싸다. 의자에 올바르게 앉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CH445 | 역동적이며 웅장한 외형이 품은 안락함

 

ⒸThe Mansion

 

‘윙 체어’라는 별칭의 CH445는 베그너의 작품 중 가장 힘있는 실루엣을 하고 있다. 오큘러스와 마찬가지로 웅장한 상체를 견고하지만 가느다란 프레임 위에 얹은 디자인이 시각부터 압도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좌석과 등받이는 사용자가 다양한 자세로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어떻게 앉든 머리와 목, 등, 어깨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비교적 차분한 디자인을 선호했던 베그너가 구조적인 역동성 역시 섭렵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PP503 | The Chair,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보통명사

 

ⒸThe Mansion

 

덴마크는 물론 전 세계 의자 디자인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의자. 전통적인 덴마크 목공예 기술과 디자인 철학의 본질,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다. 한스 베그너라는 거장의 개인사를 넘어 덴마크, 더 나아가 세계 가구 역사에 가장 굵고 진한 방점을 찍은 위대한 유산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베그너는 더 이상 다른 작가와 문화에서 영감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자신과 그가 만든 작품, 그의 철학이 전 세계 가구 디자인의 원형이 되었으며, 덴마크 모던 디자인이 국제적 혁신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된 신호탄이자 주춧돌이 되었다. 1960년 세계 정치사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쇼에 배치된 것을 계기로 ‘케네디 체어’라는 애칭이 생겼으나, 미국인들은 이 위대한 작품에 걸맞는 더욱 확실하고 영향력 있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더 체어’. ‘의자’라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화한 존경과 경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CH07 | The Smiling Chair, 한 세대를 앞선 혁신의 결과물

 

ⒸThe Mansion

 

다른 몇몇 작품이 그랬듯, CH07 역시 시대를 과하게 앞선 탓에 부침의 세월을 겼었다. 1963년 베그너가 ‘The Smiling Chair’를 공개했을 때 비평가와 대중의 온도는 서로 확연히 달랐다. 파격적인 디자인에 평단은 열광했으나 대중에게는 포용하기 힘든 괴리감으로 해석되었다. 덧붙여 제작 기술의 한계 역시 발목을 잡아, 결과적으로 생산이 매우 제한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대중이라는 집단을 구성하게 되면서 1998년 재출시와 함께 폭발적인 찬사가 쏟아졌고, 건축학 측면에서는 하나의 걸출한 구조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의자는 반드시 편안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작가의 철칙이 매우 개성있는 형태로 실현된 작품이다.

 

PP701 | 한스 자신의 집을 위해 설계한 의자

 

ⒸThe Mansion

 

1965년 한스 베그너는 코펜하겐 북쪽 Gentofte에 자택을 지었다. 이후 약 40년 동안 살았으니 그의 중년과 말년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건설 당시 작가는 벽, 캐비닛, 창문, 문, 램프에 이르기까지, 인테리어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직접 설계했는데, 이때 탄생한 의자가 바로 PP701이다. ‘Bull Chair’라는 예명을 가진 PP518의 미니멀 버전으로, 베그너의 다이닝룸을 위해 구상되었다. 이 의자는 베그너 하우스에서 단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을 정도로, 작가는 물론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CH88 | 뒤늦게 스타덤에 오른 ‘첫째 아들’

 

ⒸThe Mansion

현재 제작 중인 한스 베그너의 의자들 중 가장 늦게 데뷔한 작품이다. 1955년 개발되었으나 실제 생산은 2014년에 이루어졌다. PP MØBLER의 베스트 셀러인 PP701을 제작하기 위한 프로토타입으로서 구상되었으나, 대중화와 보편화를 기조로 한 Carl Hansen & Son의 선택을 받아 뒤늦게 출시되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심플하지만 위트 있는 디자인이 특색이며, 부수적인 요소를 경계하는 작가의 미학을 구현하기 위해 의자 본연의 기능과 무관하다 판단되는 요소를 과감하게 생략해 완성되었다. 장식과 목재, 강철이 우아하게 조화를 이루며 미니멀리즘을 보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PP130 | 장인의 과업,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The Mansion

 

1986년. 72세가 되던 해, 한스 베그너는 스스로 부여한 과업을 완수한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의자를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꿈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야 할, 어쩌면 단지 꿈으로만 남게 될 것 같은 아득한 숙제였다. 이미 수많은 걸작으로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던 그였지만, 심미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마침내 가장 특징적인 형태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PP130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단순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이다. 곡선과 직선을 매우 안정적으로 배치해 다른 어떤 가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우아함을 실현했다. 의자 본연의 기능인 편안함에 충실하면서도 가볍고 실용적이며 이동성 또한 뛰어나다. 이 의자가 한스 베그너의 작가적 경험과 영감, 철학이 가장 농도 있게 투영된 결과물이라 불리는 이유다.

한스 베그너 특별전은 ‘더멘션(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45길 7)’에서 6월 15일까지 열린다. 한스 베그너를 위해 마련된 더멘션의 ‘베그너 하우스’는 특별전이 종료된 뒤에도 유지된다고 하니, 여름 볕이 기세를 더하기 전에 발걸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전시장 전경 ⒸBRIQUE Magazine
전시장 전경 ⒸBRIQUE Magazine
전시장 전경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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