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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의 가능성

[Interview] 무명씨의 집 짓는 방법, 네임리스 건축
ⒸNAMELESS Architecture
에디터. 김윤선  자료. 네임리스 건축 NAMELESS Architecture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네임리스’라는 사무소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떠올랐다. 새삼 느껴 본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이름 없는 그 몸짓이 꽃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 이름 없는, 정해지지 않은 건축을 통해 건축 그 이상의 가능성을 짓는 무명의 건축가들, 네임리스 건축 나은중 소장을 만났다.

 

나은중(좌), 유소래 소장 ⒸNAMELESS Architecture

 

‘네임리스NAMELESS’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이름이 없다’는 이름이라니.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지은 이름이에요. “너희들 이름이 뭐니?” 했을 때 “이름이 없어요.” 라고 답을 하면 거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상과 생각들, 혹은 관점이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게 재밌어서 도리어 이름 짓기를 비틀어 부정하는 뉘앙스의 이름을 지었어요. 다소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이름 석 자 달고 건축해야지, 하는 여느 어르신들의 생각과는 반대될 수도 있지만, 이름이 없는 것에서 오는 ‘해석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네임리스 건축이 추구하는 건축의 방향성이 담긴 이름이네요.

네. ‘해석의 다양성’은 저희가 건축을 하면서 늘 품고 있는 이야기예요.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게 만들고 가능하면 주변 맥락을 압축하고자 해요. 문학에 비유한다면 산문보다는 시에 가깝달까요? 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걸 즐겨요. 산문이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거라면, 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정제되고 압축되어 있지만, 속으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죠. 그걸 건축에 적용해서 단순히 외부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방식뿐 아니라 그 안에서 거주하고 경험하는 가운데 다채로운 풍경이 발생하는, 그런 건축을 하고자 해요.

 

처음에 미국에서 사무소를 개소하셨죠.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동료이자 아내인 유소래 소장과 함께 2010년에 뉴욕에서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일하면서 문화적인 인프라는 풍부하지만 사회적인 기회가 적다고 느꼈어요. 뉴욕에서 젊은 건축가들이 건물을 설계할 기회가 희귀하거든요. 뉴욕에서 젊은 건축가상을 탄 건축가들도 정작 뉴욕 땅에 뭔가를 지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뉴욕에서 할 수 있는 건 파빌리온과 같은 공공예술이나 전시 등이죠. 문화적인 기회는 많지만, 실제 건물을 만들 기회는 극히 드물어요.

 

의외네요. 뉴욕은 서울보다도 훨씬 큰 대도시인데.

뉴욕에서도 맨해튼 같은 곳은 주로 디벨로퍼들에 의한 개발이 많아요. 스티븐 홀 같은 건축 대가들도 뉴욕에는 건물을 지을 기회가 별로 없어요. 오히려 베이징에 몇만 평 짜리 미술관을 설계한다면 모를까. 필연인지, 문화적으로 안정된 나라일수록 오히려 그런 기회가 적은 것 같아요. 파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파리 시내는
몇백 년 된 건물들을 전혀 건드릴 수가 없잖아요. 라데팡스와 같은 신도시 역시도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젊은 건축가들에겐 기회가 없고요.

반면에 아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은 지금도 변화무쌍하게 건물이 소멸하고 생성하는 단계죠. 그 빈도가 무척 높고 속도도 빨라요. 도시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만큼 건축가에게 기회도 많고요. 건축가들에겐 우리나라가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해요.


*라데팡스
프랑스 파리 서부 외곽에 건설된 현대식 상업지구


 

제가 일하고 있는 성수동도 하루도 공사를 쉬는 날이 없어요.

성수동 같은 곳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역동적인 장소죠. 근본적으로 준공업지역이라 밀도를 높이는 게 가능한 곳이기도 하고요.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도시 중 하나예요. 아주 매력적이죠. 하지만 그런 점이 때로는 건축가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도 해요. 기회가 많으니까 오히려 양적 팽창에 휩쓸리기도 쉬워요.

 

건축 설계 외에도 가구 디자인과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죠.

‘건축’이라는 경계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해요. 건축은 건물이고, 건축가는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태도에 대한 의심을 계속해서 품고 있어요. 건축가는 흔히 사람들이 생활하고 경험하는 주변 환경들, 그러니까 도시에서부터 시작해서 공간, 작은 스케일로는 가구도 될 수 있겠죠. 그 모든 것들이 건축이자 공간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의도된 어긋남’을 구현한 가구 로드 시리즈Rod series ⒸKyung Roh
국립중앙박물관 잎마당에 위치한 놀이공간 미래 고고학Future Archeology ⒸKyung Roh
천연펠트를 적층해 만든 패브릭 가구 펠트 시리즈Felt Series ⒸKyung Roh

 

건축이 반드시 물리적인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요.

도시, 내가 사는 동네와 장소, 내가 궁둥이를 닿고 있는 의자··· 그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건축의 범위는 물리적인 크기와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매체, 미디어에 관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건축이 다른 분야에 비해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데 워낙 물리적인 한계가 있잖아요. 누군가 어떤 공간을 경험하고자 하면 그 공간에 직접 와야 하는데, 그게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하면 다수의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죠. 예를 들어 아홉칸집은 개인 주택이니까 누구나 방문해서 경험해볼 수는 없잖아요.

여러 가지 형태의 건축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공간을 영상으로 담기도 하고요. 출판도 그 관심의 일환이에요. 어떤 장소와 공간을 상상하고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것은 한정적이지만, 소통의 방법은 아주 다양해질 수 있어요.

처음 뉴욕에서 사무소를 열었을 때, 당장 건물을 만들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건축을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이상적인 꿈들을 꿔왔던 것 같아요. 몇 해를 그렇게 보냈어요. 그때 공모전에도 많이 참가했는데 실제 건물을 만드는 공모전이 아닌 파빌리온 설계나 아이디어 공모전이 많았어요. 건축에 대한 이상적인 관점이나 생각을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의 개념으로 펼친 것들이었죠. 한 달에 하나 이상은 도전했고, 뉴욕에서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것 또한 이런 결과물을 통해 수상했어요.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생각보다는, 건축으로 그리고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행위가 얼마나 다양할지, 그 경계는 어딘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꿈을 꿨어요. 그리고 그렇게 쌓아둔 생각들이 한국에서 차근차근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아홉칸집은 건축주가 ‘삼각 학교’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면서요?

삼각 학교를 설계하면서 학생, 선생님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많이 부대끼기도 했고요. 결국 조금은 이색적이라고 말씀해주시는 형태의 학교가 만들어졌죠. 학교를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그 이후로 어디 가면 학교 건축 전문가라는 소리를 간혹 들어요. 하지만 저희는 절대 학교 건축 전문가가 아니에요. 그리고 특정 시설에 국한된 전문가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화고 삼각 학교 ⒸKyung Roh
아홉칸집 ⒸKyung Roh

 

학교나 병원의 경우 특화된 인력들이 있기도 하죠.

특화될 이유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주 특수한 시설, 이를테면 암센터나 반도체 공장 같은 경우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학교든 관공서든 운신의 폭을 줄이는 순간 갇혀 버리고 말아요. 공간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이 관습과 관성에 길드는 순간 어떤 여지가 사라지죠. 새로울 게 없어져요. 교회 건축, 학교 건축에서 10~20여 년 전에 잘하셨던 분들이 그 시설의 전문가로 불리게 되면서 수많은 건물을 만들었지만 사실 매너리즘에 빠져 그저 그런 건축가가 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이후 또 다른 집을 설계하게 된다면 어떤 집이 탄생할까요?

글쎄요. 아홉칸집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다른 집에도 적용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모든 건물이 그렇듯이 아홉칸집은 아홉칸집의 건축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집이거든요. 물론 공공성을 가진 미술관이나 학교와 같은 건물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생각들을 안 할 수가 없죠. 하지만 집은 달라요. 건축주가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가 전적으로 달라요. 또 다른 집을 짓게 된다면 아홉칸집과는 180도 다른 집이 될 수도 있겠네요.

 

‘좋은 공간, 좋은 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첫 번째예요. 살아가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해요. 건축은 삶을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이루는 하나의 ‘바탕 만들기’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이의 삶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공간.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고, 아홉칸집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아홉칸집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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