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찾기’로부터 시작된 건축가의 일

[Interview] 조성익 홍익대학교 교수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사진. 김재훈, 최진보  자료. 엠지알브이, 티알유 건축사사무소

 

교육자로 또 건축가로. 우리네 삶과 최전선에서 맞닿아있는 교육과 주거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조성익 교수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강단에 서는 교육자이자, 티알유TRU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대표 건축가다. 그는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들에게 ‘욕망의 교육자(Educator of Desire)’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맹그로브를 통한 목표였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삶의 뿌리를 내릴 터전을 만들며 겪은 과정과 생각에 대해 조성익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조성익 홍익대학교 교수 ⓒBRIQUE Magazine

 

MGRV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가 인상 깊습니다. 건축주와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MGRV 팀은 2년 전, 코리빙 사업을 시작하며 건축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그들의 취지를 담은 메일이 감동적이었어요. ‘맹그로브 프로젝트는 청년을 위한 대안적인 주거 상품을 만드는 시도지만, 이를 넘어서 청년의 포괄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선언을 하시더군요. 또한 단순히 집을 도구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께하는 경험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죠. 저 역시 그 증명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게 사회적 이슈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개인 주택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동 주택이나, 공공 건축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요. 건축가는 집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하곤 해요. 하지만 바뀌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죠. 맹그로브를 통해 청년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면 건축가로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의도로 봤을 때 일반적인 공유 주택 설계와 다른 점이 있었을 거라 예상되는데요.

물리적인 차이를 보기 전 바라봐야 할 점이 있어요. 사실 청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주택 상품 개발과 공급은 누구나 낼 수 있는 아이디어죠. 지금 많은 주택 사업자와 건설사들이 이 일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의 이유와 운영의 차이가 판가름을 낼 거예요. 코리빙을 짓는 일은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운영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프로젝트에 비하면 건축물 설계 자체가 가진 의미는 상대적으로 미미하고요. 건축가인 우리는 운영자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배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을 뿐이죠. MGRV는 젊은 거주자들이 개인의 삶을 소중히 하면서도 이웃을 포용하고,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아마 몇 년은 지나야 누가 이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고, 코리빙의 진짜 플레이어인지 가려질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그 차이점이 미미해 보일지 모르지만요.

 

ⓒTRU Architects

 

기획 단계에서 벤치마킹 트립을 함께 다녀오셨죠. 외국 코리빙 사례를 통해 영감받으신 부분도 있을까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은 코리빙이 우리나라가 개발한 주거 형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 다루는 주거 형식이 맞아요. 하지만 코리빙 형태는 이미 동일한 주거 문제가 발생했던 유럽과 일본에서 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일본 코리빙 사업으로 유명한 소셜 아파트먼트SOCIAL APARTMENT 매니저와 연락이 닿아 방문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본인들이 발견한 비밀을 친절하게 알려주더군요. 이렇게 다 알려줘도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보니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더라고요. (웃음) 그들은 보편적으로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과 일본으로 나눈다는 생각없이 청년층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벤치마킹 트립에서 배운 것은 공공의 영역과 개인의 영역을 분리하는 문제에 있어 적절한 선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가서 보니, 특유의 집요함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고들더군요. 예를 들어 공동 수납장의 상단을 45도로 기울어지게 만들었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함께 쓰는 수납장 위에 함부로 물건을 두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명확한 공공의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가구 하나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공간 설계에서 심리학 혹은 생태학의 영역에 들어간 기분이 들 정도로 세밀한 행동 특징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맹그로브는 1인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가구를 직접 제작했다. ⓒKIM JAEHOON STUDIO

 

맹그로브 역시 코리빙에서 발생할 불편의 많은 부분을 가구로 해결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로서 아이디어 제안을 많이 하셨나요? 1인 주거가 늘어나는 현시점에서 가구의 최적화는 신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철학과 콘셉트부터 누군가 나서 기준을 세워야 해요. 가구는 정말 즉물적입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가구가 보내는 메시지를 누구나 재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요. 낮고 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다면 편안하게 오래 앉으라는 뜻이고, 높은 스툴이 있다면 빨리 커피 한 잔 하고 하던 일로 돌아가라는 뜻이죠. 즉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게 가구예요. 하지만 건축은 좀 다릅니다. 한 시간만 살아선 그 집을 알기 어렵죠. 며칠을 살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측면이 발견되고, 인간의 반응을 느리게 끌어냅니다. 건축은 오래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와 같고 가구는 스피드 퀴즈랑 성격이 비슷해요. 6개월에서 1년 주기로 근거지를 바꾸는 청년들에게 가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건축주와 초기 단계부터 많은 가구 디자인 아이디어를 토론했고요. 이 영역은 지금 질문투성이 상태입니다. 혼자 사는 방에 스툴이 좋을지, 데스크 체어가 좋을지 대답하기 어렵죠. 미지의 영역이고,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맹그로브에서 ‘가벼운 스침’은 기획과 운영, 건축을 아우르는 핵심 콘셉트였죠. 어떠셨나요?

그 말을 처음 쓰게 되었을 때가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건축 개념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와 수많은 사례를 보고, 몇 개월을 토론만 하며 발견한 핵심이죠. 어쩌면 맹그로브의 건축과 공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이기도 합니다. 오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개인 생활과 공동체 경험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키워드였어요. 개인의 경험에 많은 할당을 할 것인지, 공동체 경험에 무게를 둘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우선시한다면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쉽게 외로워지겠죠. 공동체 경험을 우선시한다면 교류가 발생하지만 피로도가 쌓이게 됩니다. 개인과 공동체 경험의 황금비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거주자 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핵심 단어를 무엇인지 오랜 토론을 하며 ‘짧지만 가벼운 스침’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당시 구체적인 설계 단계는 아니었지만 핵심 개념어를 두고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죠.

 

맹그로브 모형 ⓒBRIQUE Magazine

 

핵심 개념어가 공간으로 잘 풀어졌나요? 공간을 보면 입주자의 동선과 성향, 라이프스타일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신 게 느껴지더군요.

처음에는 뜬구름을 많이 잡았죠. 20대인 입주자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들일지 예상을 해봤지만 그 세대가 아닌 사람들끼리 한 막연한 이야기고요. (웃음) 그러다보니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화 중에 독dog 타입 인간과 캣cat 타입 인간이 나왔어요. 늘 사람 곁에서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밥 먹을 때만 나타났다가 선반 위에 올라가 쳐다도 안 보는 고양이 같은 성격도 있죠. 다만 두 성향을 이분법으로 나눠 바라본 것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다가도 며칠을 집 안에서만 머물고 싶기도 하죠. 우리는 두 동물의 머리가 달린 캣독 인간이니까 독 타입은 외롭지 않게, 캣 타입은 부담스럽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세 가지 타입의 방과, 개인 생활을 보장하되 커뮤니티가 발생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속에서 살아가며 가벼운 스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겠죠.

 

ⓒTRU Architects

 

건물 밖 이야기를 하자면, 숭인동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서울의 주거 지역인데요. 이 동네에 건물을 지으며 재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었을까요?

외벽 마감재는 어린 시절 기억이 담겨있습니다. 제가 떠올리는 동네의 기억은 까칠까칠한 시멘트 회색 벽이거든요. 한낮의 햇빛을 받으면 굉장히 거친 느낌을 주지만 그림자가 지면 온화해 보였죠. 하루 중 어떤 시간인지 읽어낼 수 있는 재료입니다. 맹그로브에는 이 안에서 채워질 색깔이 알록달록할 거라 생각했어요. 사람도, 가구도 그럴 거라고 봅니다. 집은 그들의 배경 역할을 하기 위해 최대한 겸손한 재료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회색으로 전체적인 톤을 맞췄습니다. 시멘트의 거친 표면이 특징인 스플릿 블럭split block을 하부에 사용하고, 상부에는 대조적으로 줄무늬로 된 시멘트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설계나 디자인에서 이유를 명확히 하셨다는 것이 엿보입니다. 교수님만의 건축 철학일까요?

농담으로 저의 미들네임이라고 말하는 게 ‘이유’에요. (웃음) 교육자이자 건축가로서 제가 한 설계가 교육과 맞닿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자주 인용하는 게 하라 켄야가 한 말인데,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욕망의 교육자라고 했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소비자는 애초부터 타고난 욕망이 있어서 어떤 물건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업가나 디자이너가 욕망을 제시하면 그걸 보고 소비의 가치관을 세운다는 말이죠. 집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거 디자인으로 좁혀 봤을 때, 아파트는 과도한 에듀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과한 교육이 이뤄졌어요. 지금 가장 필요한 곳은 1인 청년 주거예요. 그들은 사회에 이제 막 나와 혼자 갖춰가는 집에 대해 욕망을 교육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MGRV가 좋은 뜻을 가지고 이 사업을 시작했으니, 건축가인 저 역시 청년들에게 좋은 욕망의 교육자가 되어보자는 게 이번 설계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니 모든 디자인에 이유를 명확히 해야겠죠? (웃음) 방의 크기는 얼마나 커야할지, 수납장은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이런 주거의 욕망을 코리빙으로 에듀케이션할 수 있다면 그들이 다음 세대의 주거 소비자로, 또 기획자로 활약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TRU 건축사사무소 내부 ⓒBRIQUE Magazine

 

건축가로서 맹그로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집에서만큼은 저는 배경 디자이너 역할이지, 영화감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른 작업에서는 조금 욕심을 내기도 해요. (웃음) 이 집에서는 제가 만든 배경 속에서 거주자와 운영자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가 가장 궁금해요. 맹그로브는 운영과 발견이 중요한 집입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코리빙1.0 단계이고요, 여기서 피드백을 얻어 2.0 시대를 누가 잘 이끌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것이라 봅니다. 입주자가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나누는지, 그들끼리 잘 소통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운영의 집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집’, ‘좋은 공간’은 무엇인가요?

좋은 공간이란 매력적인 이성과 똑같아요. 미묘한 텐션tension이 느껴지는 편안함. 우선, 편안함은 기본 전제에요. 편안하고 아늑해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주는 거죠. 이 위에 약간의 새로움과 미묘한 텐션이 있어야 재미가 있겠죠. 텐션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스테이크 위에 뿌리는 파슬리나 파르페 위에 얹는 체리가 맛에 엄청난 기능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벤트 자체에 재미와 즐거움을 주죠. 프로그램으로서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것. 공간에서는 의외의 장식이나 독특한 조명일 수도 있을 거고, 햇빛이 들어오는 방법을 조절할 수도 있겠죠.

 

TRU 건축사사무소 내부 ⓒBRIQUE Magazine

 

삶의 모습이 변화하며 주거의 형태도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건축가로서 2020년 집이 가져야 할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벼움입니다. 생산 단계의 이야기를 하자면 물리적으로 가벼운 집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집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요. 콘크리트를 붓고, 온갖 돌을 붙이는 무거운 집이죠. 가격도 가벼워져야 합니다. 햄버거 전문점을 즐겨 찾는 이유는 4000원에 다양한 메뉴로 만찬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가격의 가벼움이 집에서도 필요합니다. 또한 삶의 가벼움도 필요해요. 바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 필요한 거죠. 생산, 가격, 삶의 방식에서 우리는 가벼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가벼움을 포용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TRU Architects

 

‘맹그로브’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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