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말고 나를 위해

[no more room] ⑤ 플라스틱 프리에 도전하는 ‘알맹상점’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유영  사진. 윤현기  자료. 알맹상점

 

환경을 둘러싼 크고 작은 목소리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점검한 기획 연재 ‘no more room’을 시작합니다.
버려진 것들을 재해석해 활용한 공간과 서비스, 환경에 관한 고유의 철학을 가진 기업과 브랜드, 업사이클링을 실현하는 크리에이터, 도시 생태를 고민하는 공공과 개인의 활동을 고루 담았습니다.
재생과 순환, 공존이라는 무거운 키워드보다는 ‘지구와 도시를 지키는 일’이 곧 나를 위한 것,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① 도로 위 트럭 방수포가 어깨 위 가방으로, 프라이탁FREITAG
②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가 지키려는 것

③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 B39의 리모델링 이야기
④ 근대 양조장의 재탄생, ‘산양 양조장’
⑤ 플라스틱 프리에 도전하는 ‘알맹상점’
⑥ 새활용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공의 움직임
⑦ 동네공원의 파수꾼 ‘서울환경운동연합’
⑧ 자연과 도시의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끝)

 


 

페트 생수병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브리타’. 필터가 들어 있어 수돗물을 빠르게 정수하는 주전자형 정수기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폐필터를 제대로 배출할 방법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어느 날, 캐나다와 영국 등 외국의 브리타 회사에서는 다 쓴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행동한다. 요구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필터를 교체할 때마다 폐기할 필요 없이 충전재만 다시 채워 쓸 수 있도록 카트리지 설계를 변경하라, 재활용 수거 프로그램을 제공하라, 매립이나 소각 외에 국내에서 재활용·재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들라. 약 1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명하고 1,500여 개의 폐필터가 모였다. 변화가 일어난다. 브리타 코리아가 필터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2021년 안에 도입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한 것. ‘브리타 어택’이라고도 불리는 이 운동에는 여러 단체가 힘을 보탰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알맹상점’이다.

 

알맹상점 내부 ⓒBRIQUE Magazine

 

알맹상점은 이름 그대로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판매한다. 소독한 용기를 들고 가면 세제부터 화장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그램(g)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일반 슈퍼마켓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은 이곳에 없다. 친환경 발포세제, 설거지 비누, 고체 치약, 비건 화장품 등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보다 적은 제품으로만 알차게 구성했다. 서울 합정동에 자리 잡은 상점에는 언제나 사람과 이야기가 흘러든다. 그러므로 이 공간에서는 사고파는 일 외에도 다양한 작업이 꿈틀댄다. 샴푸 비누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부터,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표시하고 재질 개선과 회수·리필 체계를 요구하는 ‘화장품 어택’ 등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운동까지.

앞서는 사람과 뒤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알맹상점을 꾸린 이들은 분명 앞서는 이다. 그들이 만든 자국이 누군가에게 제 걸음을 떼어 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주은 알맹상점 공동대표를 만나 앞서는 담대함에 대해 물었다.

 

이주은 알맹상점 공동대표 ⓒBRIQUE Magazine

 

환경 이슈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 전만 해도 딱히 관심이 없었어요. 당시 애인이었던 현재 배우자가 환경 문제를 무겁게 여겼거든요. 카페에서 데이트할 때도 습관적으로 빨대를 꽂아 마시면 잔소리를 할 정도로요. 그런데 문득 ‘내가 살아가는 이곳이 바로 환경 그 자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 이토록 관심이 없었다니 스스로 당황스럽더라고요.

 

환경에 관심이 있는 개인으로 시작해 지금은 알맹상점의 공동대표로서 일하고 있죠. 그 과정이 궁금해요.

결혼한 후 일하다가 다치면서 갑자기 전업주부가 되었는데, 집에서 뭘 할지 고민하다가 정리부터 해야겠다 싶었어요. 옷장을 정리하니까 버릴 옷이 엄청나게 나오더라고요. 이 옷들이 정말 재활용이 될까? 의문이 생겨 찾아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안 되는 소재가 훨씬 많은 거예요. 그때부터 쓰레기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금자 님(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이 연 컨소시엄에 갔다가 망원시장의 ‘노 플라스틱 운동’이 공공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네? 싶어 모임에 들어갔고, 거기서 금자 님과 래교 님(양래교, 알맹상점 공동대표)을 만나 뜻을 모았어요. 노 플라스틱 운동만으로는 실질적인 쓰레기양을 줄이기 어려우니, 내용물만을 중량 단위로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을 열어 보자고요.

 

제로웨이스트, 특히 플라스틱 줄이기 활동에 집중하는 듯해요. 

플라스틱은 제일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일상적인 소재잖아요. 방을 둘러봤는데 제 물건 중 플라스틱 아닌 게 없더라고요. 컵, 옷, 신발 밑창에도 플라스틱이 들어 있고…. 제 방만 해도 그런데 세계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겠어요? 만일 누군가 바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일이 플라스틱 줄이기라고 판단했고, 그럼 알맹상점은 우선 플라스틱 문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죠.

합성섬유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은 이슈화가 되긴 했어요. 그걸 본 사람 중에선 면으로 된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죠. 그런데 면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아요. 목화가 병충에 약한 식물이다 보니 농약을 정말 많이 치거든요.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전 세계 농약의 10%, 살충제 중 25%가 목화 재배에 쓰인다고 해요. 자연이 오염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노동자가 병에 걸려 생명을 잃어요. 나은 대안은 유기농 면 소비인데 유기농 면은 가격이 저렴하지 않죠.

 

개인의 소비에 환경과 사회적 문제가 모두 얽혀 있네요.

육식도 그렇죠.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어마어마해요. 육류와 관련해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세계 교통수단이 내뿜는 탄소보다 많다고 해요.* 그 영향이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후 위기의 증거는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다와 가까운 곳부터 조금씩 잠기죠. 땅이 잠긴다는 건 터전을 잃은 난민이 생긴다는 이야기예요. 먼 나라 일일까요? 불과 10년만 지나도 한국 역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우리가 난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자연과 주거, 인권 등은 긴밀히 연결돼 있고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

 

밀랍 초 ⓒBRIQUE Magazine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 볼 수 있을까요?

소비를 추적하면서 유심히 보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소비의 분야는 크게 의, 식, 주로 나뉘죠. 예를 들어 음식이라면 내가 무얼 먹었는지, 그렇다면 그 음식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재료는 어떻게 길러졌는지 짚어 가는 거예요. 입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 옷에 합성 섬유가 쓰였는지 혹은 원료를 재배할 때 자원을 얼마나 소모했는지, 노동자는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러다 보면 결국 나에게도 환경 문제에 일조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흔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하잖아요. 일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일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에도 관심을 가져 보세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여요.

 

지금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도 소개해 준다면요.

용기 들고 다니기. 집 근처에 알맹상점 같은 리필샵이 있다면 가서 세제나 세안 용품을 사 봐도 좋겠죠. 리필샵이 아니더라도 용기를 들고 다니면 은근히 쓸 일이 많아요. 또 하나는 ‘거절’이에요. 시장에서 뭔가 사면 봉지에 넣어 주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하면 빨대와 홀더를 챙겨 주잖아요. 모두 한 번 쓰이고 버려져요. 그런 것부터 거절해 보세요. 필요 없는 건 사양하고 알맹이만 담아 올 때의 기쁨이 있어요.

 

친환경적인 삶을 위해 텀블러나 천연 수세미 같은 소위 ‘에코 용품’을 구매하는 일은 도움이 될까요? 

집에 있는 물건부터 찾아서 쓰세요. 다 쓴 후 또 필요해졌을 때 좀 더 지속 가능한 제품을 찾으면 좋죠. 내가 가진 물건은 이미 생산되어 버린 거잖아요. 그 물건을 안 쓴다고 해서 쓰레기가 사라지나요? 가치가 다할 때까지 쓰세요. 그다음엔 가능한 한 친환경 제품이나 중고 물건을 구해 보세요. 요즘 많이 사용하는 당근마켓만 둘러봐도 텀블러와 장바구니가 쏟아져요. 이미 생산된 재화만으로도 충분히 소비할 수 있어요. 굳이 새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죠.

 

다양한 리필 제품 ⓒBRIQUE Magazine
환경에 영향이 덜한 제품들 ⓒBRIQUE Magazine

 

다회용기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비누를 쓰는 등 작은 실천을 해나가다가도 ‘이렇게 작은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약해지거나, 귀찮아서 외면할 때가 있어요.

완벽하게 할 수는 없어요. 작은 일이라도 지속 가능한 실천을 해냈을 때는 스스로 칭찬해 주세요. 만일 실패하더라도 심하게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말고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쓰레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는 일이 더 중요해요. 재미나게 해 보세요. 용기를 들고 다니다가 붕어빵 하나라도 본인 용기에 담아 오면 종이 한 장은 아낀 거예요. 작은 성취감과 즐거움도 중요해요. 

 

최근 플라스틱이나 쓰레기를 활용해 새 제품이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사례가 많아요. 근사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언젠가는 이것도 결국 버려지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해요.

물건의 수명을 늘린다는 의의가 있죠. 작품이 되지 않았다면 버려지고 파쇄되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쓰레기였을 텐데, 더 오래 일상에 머무르게 할 수 있잖아요. 그냥 버려지는 재화가 정말이지 너무 많아요. 좀 더 긴 시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일종의 가치 소비 제품이지 않을까요?

 

뜻 맞는 단체와 함께 담배꽁초 어택, 화장품 어택 등 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이어가며 성과를 얻고 있죠. 어택을 진행하는 이유는 확실한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인가요?

보다 핵심적으로는 시민들 스스로가 깨닫기를 바라서예요. 나도 참여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요. 목소리 하나하나가 중요하단 걸 아는 사람들이 늘면 아주 큰 힘이 될 수도 있겠죠.

 

ⓒBRIQUE Magazine

 

소비자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고 했어요.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하는 정책은 뭐라고 생각해요?

많아요. (웃음) 먼저 리필샵을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분에 관한 법률이 너무 단단해요. 화장품 소분샵을 운영하려면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든가, 스티커나 라벨 등을 사용해 개별표시사항을 표기해야 해서 또 쓰레기가 나온다거나요. 현실적으로 풀린다면 꼭 필요한 만큼만 패키징하는 게 가능해질 텐데요. 그런데 규제가 바뀌는 데는 소비자 인식 변화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소비자 인식과 법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국내 소비자는 플라스틱, 혹은 비닐 등으로 개별 포장이 되어 있어야만 깨끗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개별 포장 없이 진열해 둔 숟가락을 샀다면 집에서 씻어서 사용하면 돼요. 그런데 먼지 앉았다고 불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생각이 줄어든다면 새 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테고, 법이 변하는 데 영향을 끼치겠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물건을 주문했는데 흠집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반품하잖아요. 반품으로 폐기되는 물건의 양은 어마어마해요. 이럴 때 다른 선택지도 생각해 보는 거예요. 이를테면 ‘흠이 있지만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으니 그냥 쓰겠다, 앞으로 생산할 때는 주의해 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겠죠. 한국에서는 교환과 환불 외에 소비자가 주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어릴 때부터 소비자 주권을 교육하는 나라에서는 제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요. 국내 소비자도 충분히 할 수 있죠. 기업에 행할 수 있는 일이 반품, 교환, 환불뿐이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브리타 코리아를 대상으로 한 필터 캠페인 역시 그 일환이었고요.

 

다양한 차를 소분해 구매할 수 있다 ⓒBRIQUE Magazine

 

큰 질문이에요. 우리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면 지구의 미래는 어떨까요?

기후학자와 과학자들은 기후 재앙까지 7년 남았다고 해요. 지구의 기온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1.5℃만 더 높아지면 모든 생태계가 붕괴할 거라고요.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쓰레기가 또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마스크 사용량이 는 데다 일회용품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잖아요.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일회용품이 더 위생적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기본 수칙만 지킨다면 다회용품은 쉽게 세척할 수 있어 안전해요. 오히려 세척 없이 폐기하는 일회용품이 더욱 위험할 수 있어요. 환경미화원이나 폐기물 처리 작업자에게 그대로 노출되니까요.

그렇지만 지구가 아픈 건 어쩌면 한순간일지도요. 지구는 회복할 수도 있죠. 하지만 공룡처럼 그냥 멸종할지 몰라요.

 

인간이요?

그렇죠. 지구상에 인간 비율이 아주 높잖아요. 상대적으로 환경에 예민한 동식물은 기후 위기와 온도 변화 때문에 죽어 가는데…. 이 현상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와요. 벌들만 사라져도 식물 대부분이 사라질 거고, 그러면 우리가 내뿜는 탄소는 어떻게 될까요? 다른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구가 아프고 북극곰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죠. 아는 데서 끝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그걸 알고 행동이 바뀌었나요? 바뀌어야 바뀌어요.

 

앞으로 알맹상점은 어떤 일에 집중하려 해요?

상품 판매 외에도 깨진 그릇을 수선하는 킨츠기 수업, 샴푸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강의 및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재미에서 한 걸음 더 가야 할 때라고 봐요. 분리수거도 중요하지만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에요.

영양사로 일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각각의 양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잔뜩 차려서 남기고 버리는 경우가 흔하고, 그 쓰레기를 세금으로 처리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조명하고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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