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우리 사이 완벽한 ‘케미’

[People] 낙락헌 건축주 부부의 새로운 삶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종우  사진. 박영채, 김동규  자료.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건축주 김은진 씨와 이병철 씨 부부는 서울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은평한옥마을로 이주했다. 자의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한옥을 짓고 살게 되었다지만, 낙락헌 이야기를 할 때면 부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의 좋은 점을 설명하기 바빴다. 특히 ‘케미’와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들을 찾아온 집과 새로운 삶이 만족스러워 이 모든 것이 ‘인연’인 것 같다고. 새로운 집과 자연, 그리고 마을과 자신들 사이의 ‘케미’가 정말 잘 맞는다고 했다.

많은 언론과 방송이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그럼에도 직접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의 어느 날, 낙락헌의 문을 두드렸다. 아침 햇살 가득한 주방에서 탁 트인 창을 바라보며, 새집 덕분에 달라진 부부의 삶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건축주 이병철 씨(좌)와 김은진 씨 ⓒBRIQUE Magazine

 

전에 살던 집은 아파트라고 들었어요. 그냥 단독주택도 아니고, 한옥에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병철 처음부터 한옥에 살 생각은 없었어요. 나중에 은퇴하면 서울 인근 조용한 곳에 단독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있었죠. 반면에 아내는 서울을 떠나지 않고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어요. 그러던 중 2013년 무렵에 SH공사에서 은평 뉴타운 배후에 한옥 필지 분양 공고를 낸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근처에 북한산도 얼마 멀지 않고, 습지도 무척 가까운 데다 지하철역도 근처라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죠. 그래서 분양받았는데, 이곳에는 한옥만 지어야 한다는 걸 분양받고 나서야 알게 된 거예요. 결국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한옥을 짓게 된 겁니다. (웃음) 시작은 그랬죠.
김은진 남편이 집 지을 생각을 하던 때쯤, 저는 방송작가로 한창 일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퇴직했지만, 당시 근무하던 아리랑TV 방송국은 강남 한복판에 있었죠.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다 보니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상태였어요. 그래서 남편이 아파트를 벗어나 서울 밖에 단독주택을 짓겠다 했을 때 반대했죠.

 

그런데 마음을 바꾼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은진 은퇴 후에 어떻게 살지 남편과 한창 토의하다, 남편이 한옥 필지를 발견하고 제게 보여줬어요. 전 아파트가 아니면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반대할 생각으로 필지로 따라갔죠. 당시 이곳은 집도 편의시설도 없는 빈 땅이었어요. 그런데 필지 주변의 자연과 산세를 보는 순간, 반대하겠다는 마음을 접었어요. 서울인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이 아름답고 공기도 좋더라고요. 인근 절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서 물고기도 헤엄치고요. ‘이제 여기서 살아야겠구나’ 싶었어요. 살면서 이 동네와 전혀 인연이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사는 걸 보면 땅과의 인연이 우리 가족을 부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설계를 맡은 구가도시건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병철 처음에는 한옥 전문 건축사사무소를 많이 다녀봤어요. 그러던 중 구가도시건축을 알게 되었는데, 조정구 소장님은 신축 한옥이든 한옥 리노베이션이든 잘 설계하시기로 유명했어요. 사무소 역사도 오래되었고요. 조 소장님을 뵙고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을 가장 잘 지어주실 분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구가도시건축과 함께하게 됐죠.
김은진 구가도시건축이 지향하는 한옥이 전통 한옥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게 더 좋았어요. 이 집에서 살면서 우리가 내린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조 소장님과 여러 번 이야기하며 알게 됐지만, 구가도시건축이 지향하는 한옥은 실용적인 한옥이에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도시인들이 한옥에 살 때 한옥이 아파트보다 불편하면 안 되는데, 구가도시건축은 철저히 실생활에 맞춘 한옥을 지향하죠. 설계 의뢰할 때도 느꼈지만, 6년째 살면서도 조 소장님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고 있어요.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 ⓒBRIQUE Magazine

 

집의 편리함을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 게 한옥과 양옥의 결합이죠. 두 분이 직접 요구하신 건가요?

김은진 그렇진 않았어요. 다만 설계 전에 조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어렸을 적 한옥에서 살았을 때 불편한 게 많았거든요. 신발을 보관할 신발장 놓을 공간이 없어 고생한 경험도 있었죠. 그리고 설계 의뢰할 때까지만 해도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서 TV 보는 게 일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한옥에서 TV를 보려면 어디서 봐야 하나 싶었죠. 한옥 대청마루나 안방에 TV를 놓고 보는 모습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조 소장님께 질문을 많이 했어요. “한옥에서 TV 보려면 어디서 봐야 하나요?”, “신발은 어디에다 두어야 하죠?” 이런 질문들을요.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설계를 들고 오신 거죠.
한옥과 양옥을 합쳐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어요. 다만 불편함이 없는 한옥을 원했고 설계 의뢰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여쭤봤을 뿐인데,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형태의 설계안을 보여주셨죠. 그렇게 한옥의 불편함을 아래층이 보완하고, 위층에서 한옥의 멋과 경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주셨어요. 

 

문을 닫으면 외부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지하층 ⓒBRIQUE Magazine
ⓒYoungchae Park
전통 한옥의 멋을 살린 1층 ⓒBRIQUE Magazine
ⓒYoungchae Park

 

한옥과 양옥의 결합과 함께 통창도 낙락헌만의 개성이죠. 주방의 창이 아주 큰데, 사생활 침해가 있을까 걱정하진 않으셨나요?

이병철 제가 아파트 생활을 싫어했던 이유는 꽉 막힌 시멘트벽과 조그만 창 때문에 자연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웃과 소통할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해서였어요. 아파트에서도 만족하며 살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당시 저는 답답하게 느낀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낙락헌에서는 통창 덕분에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고, 밖에서도 집 안을 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이걸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통창으로 바깥과 ‘소통’한다고 생각해요. 창을 통해 집 밖의 자연과 내가 연결되고, 집 밖의 이웃과 내가 서로를 보고 소통할 수 있죠. 그래서 이 창이 정말 좋아요.
김은진 남편은 처음부터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전 이사 온 뒤 한동안은 조금 걱정했어요. 주방에서 밥 먹는 것도 힘들어했죠. 그래서 식사를 준비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일도 몇 번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졌어요. 집 위치가 사람이 붐비는 곳도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걱정도 없고요. 저 멀리 있는 북한산을 멍하게 쳐다보는 ‘산멍’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이제 자연스러워져서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아무렇지 않아요. 집 앞을 지나가는 마을 아이들을 보면 제가 직접 나가서 과자도 주곤 해요. (웃음)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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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갑갑한 마음이 금방 풀릴 것 같아요. 습지도 멀지 않고 자연이 눈앞에 있으니까요.

이병철 창밖만 보면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겨울이 느껴지잖아요. 봄이 되면 습지에서 파릇파릇한 풀들이 올라오기 시작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울창한 숲이 만들어지면 여름이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러다 단풍이 져요. 창밖 북한산과 느티나무, 습지만 봐도 계절의 흐름을 다 알 수 있어요. 도시에 살면서 계절을 느끼는 게 쉽지 않잖아요. 낙락헌에 산 이후로는 봄이 언제고
여름이 언제인지, 가을은 언제쯤 오고 겨울 풍경은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김은진 저희 아들은 직장 때문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집에 오는데, 아들이 하는 말이, 일주일마다 꽃이 달라져 있고, 풀 색깔이 달라지고, 가을에는 단풍색이 일주일 단위로 바뀐다는 거예요. 은평한옥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다르다고 해요. 여기 오는 게 자기한테는 휴식이래요. 매일 사는 저희도 풀과 꽃이 수시로 달라지는 걸 느끼는데, 아들은 자연의 변화를 더 확실하게 느끼는 거죠.

 

설계 및 시공 도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은진 2015년 6월쯤이었는데, 집 짓는 도중에 상량식*을 했어요. 소장님 말씀으로는 본인이 지은 집 중 가장 성대하게 상량식을 한 집이라고 하셨어요. (웃음) 제가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국악 공연 기획도 한 적 있어서 제가 아는 사물놀이패를 초청했어요. 풍물도 치고 버나(접시돌리기)도 하고 아주 재밌었죠.

*상량식(上樑式) : 한국 전통 건축에서 집 짓는 과정 중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집의 중심인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 떡·술 등을 마련해 새로 짓는 건물에 재난이 없도록 지신(地神)과 택신(宅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상량식을 하는 날에는 공사를 쉬고 이웃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상량식 당시 축문을 읽는 이병철 씨 ©guga urban architecture
©guga urban architecture

 

이병철 아내가 상량식 때 필요한 축문을 쓰고, 제가 축문을 읽었죠. 서예가도 초청해서 현장에서 목재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도 했어요. 정확히 전통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재밌었고 누구나 쉽게 못 하는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끝나고 마을 사람들과 국수 나눠 먹으면서 놀았죠. 상량식을 아주 제대로 치렀으니, 우리 집이 충분히 복 받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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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네요. (웃음)

이병철 조정구 소장님이 집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셨어요. 집 안팎의 조명, 선큰 가든의 타일 종류, 대청마루 분합문의 자물쇠까지 하나하나 직접 결정하셨죠. 외부 조명은 ‘구가등’이라고 해서 구가도시건축에서 직접 디자인해 만든 조명인데, 직접 설치해 껐다 켜다 반복하면서 잘 어울리는지 일일이 확인하셨죠. 자물쇠는 소장님이 일본에 출장 가서 사신 물건이에요. 출장 가셨을 때 저희가 생각나서 사 오셨다고 하셨어요. (웃음) 문을 잠글 때 자물쇠가 밖에 드러나는 게 보기 좋지 않은데, 덕분에 말끔해졌어요.
김은진 원래 저는 화려한 주방 조명을 원했어요. 그런데 소장님이 반대하셨어요. 조명이 화려하면, 저희가 그토록 원하던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데 오히려 방해될 거라고 하셨죠. 그래서 애초에 계획했던 조명보다 훨씬 단순한 디자인으로 바꿨는데, 역시 소장님 말씀이 맞았어요. (웃음) 지금 만족하고 있어요.

 

두 분이 사는 이곳이 ‘은평한옥마을’이라는 점도 독특해요. 살아 보니 어떤가요?

김은진 일단 마을 주민들끼리 비슷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대다수 주민들이 어릴 적 한옥에 살았던 경험이 있거나, 살면서 한옥을 동경해 왔어요. 한옥을 짓고 살면서 느끼는 점도 비슷하고요. 그렇다 보니 일종의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설계 의뢰하러 건축사사무소 다닐 때 같이 한옥 공부하던 주민들도 몇 분 계시고요. 마을 주민들끼리 함께 하는 활동도 아주 많아요.
이병철 주민들 연령대도 대략 비슷하다 보니, 남자들끼리 같이 등산하고 끝나고 술 마시는 모임이 있었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모임이 다 취소됐지만요. 이전에는 1년에 한두 번씩 골프 모임도 진행했었어요. 60대 어르신들끼리 따로 모이는 경우도 많았고요.
김은진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이제 마을 안에 집이 많이 지어져서 집과 집 사이 거리가 가까워져 사생활 침해 관련 문제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이 소위 ‘핫 플레이스’가 되는 바람에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고요.
이병철 마을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있어요. 마을이 형성되던 초창기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조용한 삶을 위해 전원주택 개념으로 한옥을 짓고 입주한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점차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주차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죠. 솔직히 지금은 우려스러운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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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낙락헌에 살면서 느낀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은진 일단 이 집에 온 이후로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어요.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매일 방송하는 프로그램 대본 쓰면서 중간에 짬 내서 공연 기획하는 일을 했어요. 스트레스가 아주 많고 일에 쫓기는 삶을 살았죠. 방송작가 일을 시작한 이래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 집에서 일하면서 위로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 같아요. 한창 일할 때나 은퇴한 뒤에나 주로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요, 여기 앉아서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차도 마시고요. 북한산 보면서 산멍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죠. 그러다 나 혼자 쉬고 싶을 때는 지하로 내려가서 TV 보며 쉬기도 하고요. 지금 이 집에 사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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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한옥이 어쨌든 나무로 지어진 집이라 주기적으로 수선을 해야 해서 비용이 발생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겠죠. 2년에 한 번씩 ‘오일 스테인’이라고 해서 외부 목재에 발라줘야 하는 기름이 있어요. 낙락헌은 1층집이고 지하는 한옥이 아니다 보니, 마을 내 다른 집들보다는 그나마 신경 쓸 부분이 적은 편이죠. 

 

ⓒYoungchae Park
ⓒYoungchae Park

 

좋은 점은 저도 정말 많은데, 가장 좋은 점은 제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주방의 통창으로 바깥을 보면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아주 잘 보여요. 조금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바깥 풍경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요. 밖에 보이는 나무, 꽃, 풀. 저것들도 다 생명이잖아요. 봄에 활짝 피어나서 한창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다 떨어져 버리고. 그러다 봄이 되면 다시 자라기 시작하고. 저는 창밖 자연을 보면서 생명의 순환을 느껴요.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며 살 때는 이런 생각은 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는데 이 집에서 창밖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성찰하게 돼요. 바깥 풍경을 보면서 가치관의 변화도 생겼고, 요즘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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