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공원이 될 수 있다면

[Interview]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소장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노경  자료. 푸하하하프렌즈

 

연희동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수상한 벽돌집에 다다른다. 어느 밤 쌓아 올린 견고한 요새일까, 도심 한복판 때아닌 방주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냥 태초부터 거기에 있었던 광물 같은 것이려나. 골목을 따라 이어진 계단이 발길을 재촉하는 이 집. 
‘집 안에 골목’ 설계를 맡은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소장에게 집과 동네에 관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책임건축가 ⓒBRIQUE Magazine
집 안에 골목 ⓒKyung Roh

 

연희동에 오랫동안 거주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연희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연희동은 전통적인 주거지로 알려졌지만, 자세히 보면 구역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요. 이 동네는 ‘연희동’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크고 으리으리한 주택이 있는 곳은 아니에요. 필지도 그렇게 크지 않고요.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살았는데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추세죠. 개성 있는 상점이나 카페도 많이 생겼고요. 2001년부터 작년까지 20년 가까이 연희동에 살았는데, 이 동네는 볕이 정말 좋아요. 아침에 집을 나서서 골목을 걸을 때 햇빛을 받은 바닥이 반짝거리는 장면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봄이 되면 일주일 정도 골목 가득 꽃향기가 진동하죠. 집 안에 골목은 원래 처음에 한양규 소장이 진행하던 걸, 욕심내서 제가 한다고 했어요. (웃음)

 

동네에 대한 애착 때문인가요?

개소 초창기였던 2013년에 연희동에서 주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아 설계부터 시공까지 담당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정신적인 충격이 컸어요. 건축주도 덩달아 고생하시고. 당시엔 제가 너무 실력이 모자랄 때라서요. (웃음) 두 번 다시 동네 프로젝트는 하지 말자 다짐했죠. 동네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혔는데, 되게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연희동 골목길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각별한 감각이 다시 저를 이끌었고, 골목에 관한 이야기를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희동 ⓒKyung Roh

 

집 안으로 골목을 끌어들여 안과 밖의 연결을 시도했다는 점이 ‘집 안에 골목’의 중요한 테마죠.

대지가 경사지라 계단으로 된 오르막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예요. 막다른 길인 오르막 계단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마주 보고 있고 이곳이 동네 골목의 시작점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이 골목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집에서부터 골목이 시작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저는 집 자체보다도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골목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도 길이 끝없이 연결되고, 안과 밖의 구분 없이 골목길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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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집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계단도 심상치 않아요.

이 집에서 가장 좋다고 느끼는 장소가 바로 계단이에요. 어떤 공간이든, 현관과 계단은 관심이나 조명을 받는 곳이 아니잖아요. 그 중요도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받고 있어요. 계단은 집 밖으로부터 들어온 계단 골목의 연장인데, 현관과 계단을 이어 가까이 두고 그 사이에 40cm 정도 단 차를 두어 걸터앉을 수 있게 했어요. 골목 어귀의 쉼터 같죠. 신발을 신고 벗기도 편리하고.

 

ⓒBRIQUE Magazine
ⓒKyung Roh

 

필사적으로 집 안과 밖을 연결하려는 의도가 보여요. 그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됐나요?

어렸을 때 저는 집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을 맞닥뜨리는 게 너무 무섭고 답답했어요. “자, 여기가 끝이야.”라고 말하는 듯했죠. 거실에서 방으로, 다시 방에서 거실로··· 이런 움직임이 마치 어항 속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달까. 벽이 저를 튕겨 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온 집안 문을 다 열어 놓곤 했어요. 물론 제가 좀 산만한 아이여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웃음) 안과 밖을 연결하고, 벽과 문을 허물고, 집 안으로 골목을 잇는 모든 시도는 그런 제 개인적인 기억이 투영되어 있어요. 사실 어떤 집이든 설계할 때마다 결국은 그렇게 돼요. 건축주가 다른 만큼 각자 다른 형태로 나타나긴 하지만요.

 

한승재 소장이 에디터에게 집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최근 완공한 주택 프로젝트인 ‘ㅁㅁㅁㅁㅁㅁㅁㅁㅁ’ 역시 ‘집 안에 골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건축주 상황도 비슷했어요. 자녀가 조금 더 어리기는 하지만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에요. 집 한가운데 중정을 중심으로 네모난 트랙이 만들어지는데, 아이들이 그 트랙을 뱅글뱅글 돌면서 뛰어다녀요. ‘집 안에 골목’과 마찬가지로 끝없이 걸을 수 있고 연결되는 집이죠. 모든 방에서 중정을 볼 수 있어서 바깥바람과 햇빛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해요.

 

ㅁㅁㅁㅁㅁㅁㅁㅁㅁ 프로젝트. 집 한가운데 중정이 있다. ⓒKyung Roh
집 안에 골목 ⓒKyung Roh

 

벽과 문도 가변적이라, 공간 활용에 유동성이 높아 보이네요.

문을 어떻게 열고 닫는지에 따라 적게는 2개, 많게는 6개까지 방이 생길 수 있어요.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공간이 변화를 요구받을 때 쉽게 대응할 수 있죠. 아파트처럼 실 구획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으면, 어느 시기엔 죽은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자녀가 독립하거나 군대에 가면 우울한 장소로 방치되고 창고로 전락하기도 하죠. 이렇게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은 더욱이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집이 필요해요. 마치 공원처럼요.

 

‘공원’이요?

건축의 원형은 건물이라기보다 공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원에 가면 원하는 곳 어디서든 산책도 하고 쉬기도 하잖아요. ‘집 안에 골목’에서도 그런 공원을 닮은 집을 만들려고 욕심을 부렸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자연스러움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아주 인위적인 작업을 한 것 같아요. (웃음)

 

한승재 소장의 스케치 ⓒFHHH friends
한승재 소장의 스케치 ⓒFHHH friends

 

‘집 안에 골목’ 전체 이야기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5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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