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닌 ‘마을’을 짓는 일

[Space] '송학리의 생각'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종우  사진. 스튜디오 에스파시오, 김동규, 이동웅  자료. 소수건축사사무소

 

논밭 사이를 지나 개울 하나를 건너면 나오는 양평의 한 작은 마을. 그곳에는 비슷하지만 제각기 다른 벽돌집이 모인, ‘송학리의 생각’이 있다. 아이들은 널따란 길에서 함께 놀며 식물과 곤충의 이름을 알아가고, 어른들은 우연히 들른 옆집에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서로 나누는 요즘 보기 드문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곳, 집들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마을, 송학리의 생각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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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육 도시, 양평


자연에서 배움을 찾다

경기도 양평군은 상수원(식수로 사용하는 물의 원천지)을 보호하기 위해 공장 설립이 까다로운 지역이다. 그 결과, 경기도 내 다른 지역들에 비해 산업 인프라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비교적 농촌 도시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다. 그로 인해 양평은 기존 교육의 대안으로 자연 친화적 교육을 고민하던 학부모와 대안 학교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경쟁 중심의 기존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찾던 이들에게 그야말로 새로운 배움의 터전이 된 셈.


교통이 편리한 입지

송학리는 양평역까지 대중교통으로 약 30분, 자가용으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입지를 갖고 있다. 이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또한 마을 진입로가 경사가 높지 않고 별다른 장애물 없이 넓어 폭우, 폭설 등의 자연재해에도 큰 무리 없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 또한 송학리를 선택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30~40대 직장인
부모가 대부분인 거주자들은 함께 모여 살 곳을 고민하던 중, 편리한 입지 조건과 진입로에 반해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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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설계를 위한 선택
거주자들이 땅을 매입해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건축가는 몇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중 하나는 각각의 집들이 들어설 땅들의 모양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타운하우스는 정돈된 땅 위에 똑같은 형태의 집을 여럿 설계하는데, 송학리에서는 일반적인 타운하우스를 설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또한 땅의 모양과 별개로, 거주자들은 특색 없는 밋밋한 집 대신 가족의 취향이 묻어나는 맞춤형 집을 원했다. 부담할 수 있는 설계 비용도 가족마다 달랐다.


형태를 통일하는 ‘타입화’

건축가는 해법으로 재료와 설비의 수준을 통일하는 것을 제안했다. 또한 가족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친 후, 집의 형태를 ㄱ자형, ㄷ자형, ㅁ자형 세 가지 타입으로 통일해 설계하는 것을 제안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ㅁ자형 집, 공간의 독립성을 부여하면서 외부공간과 접하는 면을 늘린 ㄱ자형 집, 외부공간과 접하는 면을 최대한 펼친 ㄷ자형 집까지. 건축가는 땅의 모양과 각 가족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집의 형태를 세 가지로 표준화했다. 거주자들은 건축가의 제안을 존중해 받아들였고, 그 결과 서로 크기나 형태를 자랑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외관을 가진 집들이 탄생했다.
다만 내부 공간을 비롯한 세부적인 공간 설계에 있어서는 개별 가족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집마다 다르게 설계했다.
세 가지 타입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주자 가족들의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타입으로 분화했다.

 

ㄱ자형 집 ‘은빛창’ ⓒBRIQUE Magazine
ㄷ자형 집 ‘유진사’ ⓒBRIQUE Magazine
ㅁ자형 집 ‘더블류’ ⓒBRIQUE Magazine

 

집 안의 중심, 주방
건축가는 설계 전 설문조사를 통해, 집 형태 외에도 내부 공간 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결과를 도출했다. 주방이 집 안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 요리와 식사를 위해 매일 사용하는 공간인 주방이 내부 공간 배치상 구석으로 밀려나 있어, 마치 배척받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건축가는 주방 중심의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부 공간은 대부분 주방을 중심으로 주방과 마당, 주방과 거실이 연결되는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이를 통해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부모님은 자녀가 마당 혹은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더라도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당과 연결된 주방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응접실의 역할을 겸한다.
손님들과 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가족들의 공간인 거실, 안방은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장받는다. 그렇게 주방은 집 안의 중심이자 외부인을 처음 맞는 환영하는 공간이 된다.

 

거실과 분리된 ‘호연지가’의 주방 ⓒBRIQUE Magazine
마당과 연결된 ‘훈운안옥 위드유’ 주방 ⓒBRIQUE Magazine
주방과 연결된 ‘성윤당’의 거실 ⓒBRIQUE Magazine

 

마을을 마을답게 만드는 법

송학리의 생각은 집이 아닌 ‘마을’이다. 마을을 이루어 같이 살기로 했다는 점은 건축가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주택 설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했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툇마루
툇마루는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에서 방 안과 마당 사이 위치한 좁고 평평한 공간을 부르는 말이다. 서양식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대중화되면서, 최근 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요즘 주택에 보기 드문 툇마루를 건축가가 송학리에 부활시킨 이유는 이웃끼리 관계 증진을 위해서였다.
툇마루의 면적 자체는 기껏해야 한 사람이 앉을 만한 넓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툇마루는 집 안으로 들어가거나 집 밖으로 나가기 전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집 안과 밖을 연결해준다. 이로써 지나가다 마주친 이웃이 잠시 걸터앉아 집주인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다. 사적 영역인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중간 지대나 다름없는 툇마루에서 친밀함을 쌓는 것이다. 또한 툇마루는 문 이외의 또 다른 출입구로서 아이들이 집을 드나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Studio Espacio

 

마을을 탐험하는 ‘여정’ 만들기
건축가는 집 안과 밖을 드나드는 동선을 의도적으로 단순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집과 이웃의 집을 다양한 방법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서로의 집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출입하게 만들기 위함도 중요한 이유였다.
도시 아이들이 집 평수와 형태를 비교하며 서로를 차별한다는 뉴스를 본 건축가는 송학리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설계 단계부터 공을 들였다. 고민 끝에 건축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담장과 골목. 집 전체를 다 보지 않아도 집을 드나들 수 있도록 건축적 장치를 만들었다. 대문 앞 담장으로 문을 열어도 집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했고, 골목으로 만들어 놓은 동선을 통해 아이들은 마을을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집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담장으로 인해 대문 앞에서 전체 형태를 알 수 없는 ‘호연지가’ ⓒStudio Espacio
집 벽과 담장 사이 골목길 ⓒStudio Espacio

 

‘이벤트’를 만드는 커뮤니티 시설
송학리의 생각을 집들의 집합이 아닌 ‘마을’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마을 초입에 있는 커뮤니티 시설 ‘생각’ 덕분이다. 생각이 자리한 땅은 집을 짓기에는 작고, 방치하기엔 큰 애매한 크기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자투리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심하던 중, 건축주 가족들의 제안으로 커뮤니티 시설 역할을 하는 2층짜리 근린생활시설이 만들어졌다. 1층은 카페와 같은 공간을 중앙에 두고 좌측에 별도로 독립된 공간을 두어, 그곳에서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도록 의도했다. 2층은 마을 주민의 손님들이 방문해서 숙박할 수 있도록 게스트하우스로 계획됐다.

 

커뮤니티 시설 ‘생각’ ⓒBRIQUE Magazine
생각 1층 카페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시설 ‘생각’이 지어진 후,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지는 ‘이벤트의 중심’이 되었다.
1층 중앙의 카페는 옛 마을의 우물이나 동네 슈퍼처럼 지나가다 목을 축이기 위해 찾는 공간으로 쓰인다. 1층 내부 좌측의 독립된 공간은 마을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초빙해 함께 영어, 미술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 수업장으로 쓰이고 있다. 1층의 널찍한 마당과 계단은 날씨가 맑고 선선한 날에는 플리마켓과 같은 행사를 열어 마을의 온 가족이 참여하는 공연장처럼 사용된다. 송학리의 다양한 이벤트가 연이어 벌어지는 구심점 역할을 맡은 셈이다.

 

ⓒStudio Espacio
ⓒStudio Espacio

 

‘송학리의 생각’ 전체 이야기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5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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