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쉬는 집

다섯 식구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책과 노니는 집’
ⓒJinbo Choi
에디터. 박종우  사진. 최진보  자료. 투닷건축사사무소 TODOT Architects & Association

 

서점과 농촌 그리고 스테이. 언뜻 봐서는 어울리지 않지만, ‘책과 노니는 집’에는 이 모두가 어우러져 있다. 투닷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이 집은 서점동과 주택동 두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북스테이와 서점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서점동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이고, 평택호를 바라보는 주택동은 도시생활에 지친 가족들을 치유한다. 집이면서도 집이 아닌 곳. 독특한 콘셉트가 궁금해 건축가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점동(왼쪽)과 주택동 ⓒJinbo Choi

 

책으로 치유하는 삶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책과 노니는 집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곳은 사실상 방치된 땅이었다. 과거 건축주의 아버지가 소유한 땅이었으나, 그 후로는 10년 가까이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곳이었다. 주위에 사는 주민들이 거의 없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가까웠다.

“집이 있기 어려운 자연환경이었어요. 처음 답사 갔을 때 여기서 어떻게 살지 싶었죠.” – 모승민 소장
“황량했어요. 황량한 들판에 마을은 뒷동산 저 뒤에 있고, 여기 마을은 이 집이 들어오면서 한둘씩 채워져야 하는 상황이었죠.” – 조병규 소장

 

공사 전 대지 모습 ⓒTodot Architecture
대지에서 보이는 평택호의 모습 ⓒTodot Architecture

 

건축주는 왜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걸까. 경기도 동탄에 살던 건축주는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크나큰 스트레스를 겪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치열한 입시 경쟁에 휘말리는 것을 지켜보며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기 시작했다. 건축주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구연동화 등 동화책 관련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고, 동화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는 책을 이용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 이게 큰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반적인 서점이 아닌 거예요. 책을 읽어주기 위한 공간이 필요한 거고, 책을 파는 건 거드는 것뿐인 거죠.” – 조병규 소장

 

투닷건축사사무소 조병규 소장 ⓒBRIQUE Magazine

 

건축주는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을 꿈꿨다. 하지만 그 공간이 굳이 도심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돈을 버는 수익 사업을 위해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공간이) 이목이 쏠리고 사람들의 접근성이 고려돼야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괜찮대요. 그런 건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본인은 수익을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라고 얘기했어요.” – 모승민 소장

 

투닷건축사사무소 모승민 소장 ⓒBRIQUE Magazine

 

“홍보해서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게 아니라, 소개를 통해 알음알음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니까 평택에 있어도 모임은 유지될 것 같다고 보더라고요. 더불어 마침 평택호라는 관광지가 근처에 있으니 스테이나 카페를 겸하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죠.” – 조병규 소장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굳게 확신한 건축주는 새로운 집과 꿈에 그리던 공간을 건축가와 함께 짓기 시작했다.

 

일상과 비일상의 조화

 

두 건물을 동시에 지어야 하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공사 기간도 큰 문제였다. 건축주의 세 아이가 완성된 집에 입주해 새로운 학교에 다니려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 이전에 공사가 반드시 끝나야 한다. 하지만 필지를 정하고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이미 3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건축가들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목조 주택을 제시했다.

“목조 주택이 공사 기간이 좀 짧아요. 관리비 측면에서 절약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죠. 그리고 잘 지으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집보다 목조 주택이 실질적으로 더 따뜻해요.” – 조병규 소장

“아무래도 다루기가 쉽죠.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지으면, 일단 성형이 되고 난 뒤에는 해체하거나 조정하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목구조로 집을 지으면 되게 편하죠. 그래서 공사 기간에 분명 메리트가 있었죠.” – 모승민 소장

 

배치도 ⓒTodot Architecture
서점동과 주택동 다이어그램 ⓒTodot Architecture

 

그렇게 해서 결국 목조 주택으로 지어진 책과 노니는 집. 주택동과 서점동으로 이루어진 이 집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됐다. 서점동은 멀리서 보여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집’의 모습을 갖고 있다. 주택동은 외부와 내부 모두 목재를 사용했다. 이러한 형태는 ‘단순함이 곧 강력함’이라는 건축가들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점의 단면 형상이 집의 모습, 다시 말해 우리 원형 속 집의 모습을 갖고 있잖아요. 그게 사람들한테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기호라고 봤어요.” – 모승민 소장
“저희의 모토이기도 해요. 단순한 게 강력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더 단순해지려고 노력하죠.” – 조병규 소장

 

서점동 시공 모습 ⓒTodot Architecture
주택동 시공 모습 ⓒTodot Architecture
서점동 외관 ⓒJinbo Choi
주택동 외관 ⓒJinbo Choi

 

이렇게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된 서점동과 주택동을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건축주 가족들의 사생활 침해였다. 주택동과 서점동이 지나치게 가깝다면 서점을 방문할 손님들에 의해 가족들의 일상이 침범당한다. 반대로 너무 멀다면, 두 공간 사이 관계성이 떨어진다.

“일상 공간과 비일상적인 공간이 같이 있잖아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일상이 서점으로 인해서 침범받거나 방해받으면 안 되잖아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가까워져야 하는 그 지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조병규 소장

적당한 거리 설정을 고민하던 건축가들이 내놓은 해결책 중 하나는 바로 두 공간의 형태. 서점동은 집처럼, 주택동은 오히려 집 같지 않은 형태를 지녔다. 건축주 가족들의 사생활 침해와 서점을 찾는 손님들을 동시에 생각한 결과다.

“이곳이 서점으로 활성화되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텐데, 옆에 집 같은 건물이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도 낯설어하고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 모승민 소장

“일상이 영위되는 집이지만, 서점의 배경으로서 집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조병규 소장

 

모두를 위한 ‘열린 쉼터’

 

이 집의 콘셉트를 묻는 질문에, 두 건축가는 ‘소통’이라 답했다. 농촌 지역에 서점을 차린 건축주의 의도가 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가치였다.

“이분(건축주)의 이야기를 저희가 재해석하자면, 결국 그 안에 ‘소통’이라는 핵심 콘셉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농촌은 도시와 달리 사람을 강제로 데려오지 않는 이상, 사람이 안 모이고 소통 공간이 마련되지 않잖아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건 뭘까, 그런 공간이 서점이 아니었을까요?” – 모승민 소장

 

서점동 내부 ⓒJinbo Choi

 

소통은 서점동 뿐만 아니라 주택동 내부에도 녹아들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2층 가족실. 가족의 변화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예비 공간인 동시에, 가족들끼리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거실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갔을 때 2층이 격실로 되어있어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2층에도 소통의 공간이 필요했던 거죠. 2층은 각각 방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가족 관계 면에서 (소통이) 부족할 것 같아 저희가 제안했던 공간이에요.” – 모승민 소장

 

주택동 2층 가족실ⓒJinbo Choi

 

책과 노니는 집은 소통 외에도 개방과 확장성도 중요한 콘셉트로 꼽을 수 있다. 주택동과 서점동의 커다란 창 덕분에 내부 공간에서도 마치 외부와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은 평택호와 인근 습지를 비롯한 자연이 안으로 쏟아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집이 적극적으로 평택호를 바라보고 있고, 서점도 마찬가지로 평택호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열어뒀어요. 계절마다 평택호를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질 텐데, 거기서 만들어진 추억이 나름의 장소성을 획득하길 기대한 거죠.” – 조병규 소장

“하늘과 평택호, 빛이 안으로 확 쏠리거든요. 그러면 진짜 밖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안에 있지만, 밖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 모승민 소장

 

주택동 2층 안방 ⓒJinbo Choi

 

건축주는 자신이 동화를 통해 마음이 치유된 경험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커다란 창과 단순한 외관 또한 건축가가 건축주의 의지를 공간으로 구현한 것이 아닐까.

“거기(책과 노니는 집)까지 가는 과정이 좀 낯설어요. 길도 낯설고 외길이라 운전하기도 어렵고. 그런데 그런 곳을 지나서 이곳에 왔을 때, 마치 하나의 ‘쉼터Shelter’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단순한 형태로 만들었고요.” – 모승민 소장

인적 드물고 찾아오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책과 노니는 집. 험난한 길을 헤치고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면,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목구조가 주는 따뜻함과 평택호의 자연은 커다란 창 덕분에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덕분에 이곳은 농촌 속 외딴 섬이 아닌 ‘열린 쉼터’가 된다. 인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자연과 통하는 쉼터 말이다.

 

서점동 1층 다목적실 ⓒJinbo Choi
서점동 중정 ⓒJinbo Choi
ⓒJinbo Choi

 

 

오래도록 추억을 선물할 집

 

두 건축가에게 좋은 집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날 것 자체로 살 수 있는 공간이 제일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파트를 보면 마감재로 온통 감싸져 있잖아요. 마감이라는 게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상업적인 부분도 있고요. 건축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냥 날 것 그대로 오랫동안 삶과 연결된 집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모승민 소장

책과 노니는 집의 외관은 별도의 마감 없이 내부에 쓰인 적삼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목재를 노출한 외관이 어색하게 느껴졌으나, 모승민 소장의 답변을 듣고 생각해보니 앞서 “단순함이 강력하다”라 말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고 느껴졌다. 이곳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을 방문객들에게 집이 가진 원형의 모습을 제시해, 낯선 곳에서도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인 것 같아요.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오래 남아 가족들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 되니까요.” – 조병규 소장

책과 노니는 집. 아이들과 책 읽을 공간을 만들겠다는 건축주의 의지에서 시작된 이 집은 이제 특유의 단순함으로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 외관을 가진 집이 되었다. 집 안의 탁 트인 가족실과 1층 거실은 가족끼리 서로 소통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평택호의 자연과 새로운 집은 앞으로 건축주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들을 오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투닷건축사사무소의 모승민 소장(좌)와 조병규 소장 ⓒBRIQUE Magazine

 

‘책과 노니는 집’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4/

 

You might also like

경험하고, 느끼고, 연결하다

[We still move] ⑤ 브랜드 협업 공간 ‘데어 바타테’

호텔처럼 편리하게, 집처럼 편안하게

[We still move] ④ 1인 가구 전용 주거서비스 ‘셀립 순라’

오늘은 문구점, 내일은 맥주집

[We still move] ③ 오프라인 마케팅 실험을 위한 팝업스토어 ‘프로젝트 렌트’

이 시대의 여행법…집과 스테이의 경계를 허물다

[We still move] ②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

청년주거의 다양성 확보, 유휴 공간 개발 시급

2020 아시아 청년주거 국제 콘퍼런스, 지난 3일 온라인으로 열려

출퇴근 시대 이후의 일과 집

[We still move] ① 업무 공간과 주거의 만남 ‘로컬스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