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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건축을 만든다

[Interview] 사무소효자동 서승모 소장에게 '형식'이란.
ⓒBRIQUE Magazine
글 & 사진.  전종현 편집위원

 

사무소효자동에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제 취향을 한껏 드러내며 일하는 것도 아닌데 매 프로젝트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맴돈다. 그들이 일하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으리으리하게 존재감을 내비치는 곳이 아님에도 막상 대화를 나누면 사무소효자동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런 기묘함의 저변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사무소효자동을 이끄는 서승모 소장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뜻밖의 단어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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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효자동은 고유의 형식을 지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프린트 한 장을 하더라도 미색지를 쓰는 것처럼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미색지는 일단 눈에 편하죠. 그리고 도면에 잘 어울립니다. (웃음) 저희는 도면, 회의록부터 시작해 여러 부분에서 포맷, 즉 ‘형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모든 서류를 미색지로 뽑는 것도 그 일부죠.

 

하하. 주변에서 ‘유별나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지 싶네요.

일본에서 건축을 배워서 그런지 매 과정을 소중히 하고, 그게 하나의 형식으로 발달하는 문화에 익숙해요. 과정에 대한 형식은 저희와 함께 일한 사람을 배려하는 게 주된 목적이지요. 그 예로, 사무소효자동은 집을 다 지으면 ‘납품 상자’로 작별 인사를 한답니다.

 

‘납품 상자’란 말이 익숙지 않아요.

건축사무소가 공사를 끝내면 ‘건축 도서 납품’을 합니다. 도면 등을 책의 형태로 정리해 전달하는 건데, 요즘은 CD도 곧잘 사용해요. 하지만 저희는 나무 상자를 하나 마련하고 그 속에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담아요. 3~4개월 동안 한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도면, 회의록, 서류, 감리 보고서, 자재 목록표까지 매 과정이 자연스레 하나의 결과물로 모이기 마련이죠. 공간이라는 건축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설계 중 탄생한 다양한 이야기도 소중한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걸 상자에 모아 건축주에게 전달하는 건 당연한 도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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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납품 상자’의 형식은 어떤 매력을 지닐까요?

건축 과정을 담는 형식인 ‘납품 상자’는 보통 4개를 준비해요. 하나는 사무실에 보관용으로 비치하고 나머지는 건축주, 시공사, 그리고 프로젝트를 담당한 실무자에게 돌아가는데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딱 보기에도 격이 있어 건축주도 만족하고, 무엇보다 책 하나 덜렁 주면 잃어버리기 쉽거든요. 건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납품 도서를 찾아보며 확인을 해야 하기에, 박스에 담는 이유도 있어요. 시공사 같은 경우는 공사를 하면서 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게 준비하면 서로 마음이 편해집니다. 더불어 뚜렷한 형태 없이 진행하던 건축의 전 과정을 ‘상자’라는 형식으로 정리하면 그동안 우리가 고민한 도면, 건축주와 시공사와 나눈 이야기가 가시화되는 효과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납품 상자’를 만들면 정말 프로젝트가 끝난 것 같아 마치 책거리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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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효자동이 생각하는 ‘형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형식은 사람을 배려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런 형식이 별난 건 아니지요.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형식이 바로 매너니까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떠들지 않기, 사람이 지나갈 때 비켜주기,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절하기 등 서로 간 원활히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매너가 탄생하는데요. 영화 <킹스맨>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이처럼 형식은 우리 사회에서 빠질 수 없어요.

 

그런 형식은 실제 어떻게 발현되나요?

저희는 정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살짝 따듯한 미니멀리즘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한국적이고 동양적이면 금상첨화지요. 그런 면에서 미색 종이는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멋이 있고, 단정한 명조체를 세로 쓰기로 배열한 명함과 각종 라벨에는 옛 것 특유의 분위기가 머뭅니다. 사무소효자동의 명함을 보면 그래픽적인 요소를 강하게 쓰기보단 정보의 나열을 미세하게 조절해 시각적인 긴장을 주면서, 물리적으로는 형압이란 후처리를 통해 단차가 만드는 미묘한 텍스처가 존재해요. 슬쩍 보면 아주 약간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확실히 다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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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가 건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원, 삼각, 사각 등 눈에 확 띄는 조형적인 어휘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보다 벽 사이를 벌려 공간을 만들고 음영을 끌어들이고 동선을 배치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처음 봤을 때 매력적인 모습이 ‘짠’하고 튀어나오는 것보다는, 공간에 빈 구석이 있어 편안하고 조화롭고 삶의 배경으로 물러서는 느낌이 좋아요.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사무소효자동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여러 형식이 뭉게구름처럼 모이면 그게 바로 정체성이 아닐까 싶어요. 혹 사무소효자동이 중시하는 가치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사무소효자동 웹사이트에는 한 편의 시가 올라와 있어요. 마크 스트랜드(Mark Strand)가 쓴 ‘Keeping Things Whole’이란 시인데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Keeping Things Whole
사물을 온전히 품기

 

In a field
I am the absence of field.
This is always the case.
Wherever I am
I am what is missing.
들판에 서면
나는 들판의 부재(不在)이다.
이는 언제나 그렇다.
어디에 있든
나는 결여된 것이다.

 

When I walk
I part the air
and always
the air moves in
to fill the spaces
where my body’s been.
걸으면서
나는 공기를 가른다.
그러면 언제나
공기가 움직여 들어와
내 몸이 있던 자리를
채운다.

 

We all have reasons
for moving.
I move
to keep things whole.
우리 모두에게는
움직이는 이유가 있다.
세상을 온전히 품기 위해
나는 움직인다.

 

어렸을 적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어 버전을 읽은 후부터 스스로 건축적 태도를 생각할 때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이 시가 떠오르게 되네요. 하루키는 마지막 시구인 ‘I move to keep things whole.’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whole’은 ‘물사, 즉 물건과 일(일체의 사물)’로 ‘keep’은 ‘무너뜨리다, 흩트리다’의 부정형으로 번역했어요. 마지막 문단을 접하면서 ‘우리 모두 삶의 이유가 있지만, 나의 삶은 주변의 일, 사물 관계를 무너뜨리거나 흩트리지 않기 위함이다’라고 제 나름대로 의역해 보았지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건축은 일상의 배경으로 작동하는 한, 주변과 타자에 대한 고려가 필수입니다. 건축물은 뒷산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놓이고, 이미 존재하는 옆집의 입면 질서를 의식해 창호는 리듬을 타지요. 연속된 치마의 높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외장재, 그림자를 드리우는 처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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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한 건 과거 <SPACE>에 글을 기고하면서 정리한 생각인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세계에 어떤 이가 차지하는 자리는 그 때문에 채워진 자리입니다. 움직이는 이유가 사익이 아니라 세계의 균형이라면, 제가 지은 건물이 돋보이는 법보다 동네와 조화롭게 존재하는 지혜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소효자동이 중시하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 맥락에서 ‘연희동 할머니 집’은 사무소효자동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녀를 키우고 출가시키며 오랜 세월 한 집에서 살아온 노모가 앞으로 여생을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보낼 수 있도록 기존 공간을 온전히 부시지 않고 새로운 장소로 바꾼 프로젝트입니다. 방에서 복도, 외부의 툇마루, 마당까지 이어지는 여러 켜의 분절을 통해 내부에서 마당을 마주하는 이는 전에 누리지 못한 온화함을 느낄 수 있지요. 무엇보다 동네와 어울려 주민들이 낯설어 하지 않으면서 골목길 한편에서 세월을 쌓는 집으로 남는다면 그 가치야 말로 무엇에 비할 수 없게 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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