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대신 ‘한국 사람이 사는 집’

[Space] ‘낙락헌’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종우  사진. 박영채, 김동규  자료.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은평한옥마을 끝자락 맹꽁이 습지에 가장 가까운 집. 담장 밖에서 보면 주변 한옥들과 다를 바 없지만, 문을 열고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집이 기다리고 있다. 독특한 마을에 지어진 독특한 집 ‘낙락헌’.
집 안팎을 둘러보며 공간 속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찬찬히 펼쳐본다.

 

ⓒYoungcha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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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뉴타운, ‘은평한옥마을’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은평한옥마을은 한옥으로 지어진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밀집된 지역이다. 은평뉴타운 개발 당시 한옥 용지로 지정된 이곳은 2012년 9월 첫 분양을 시작해,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전원생활을 누리고 싶은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한옥 분양이 이루어졌다. 해당 지역 내에는 한옥 건축물만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집뿐만 아니라 편의점, 카페, 레스토랑 등 각종 근린생활시설도 한옥으로 설계돼 현재 관광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출퇴근에 용이하고 북한산과 맹꽁이 습지와도 가까워, 자연을 즐기면서도 수도권 밖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최적의 입지인 셈. 그러나 분양 초창기에는 한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필지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필지를 조성하면서 기존 지형이 가지고 있던 지형적 특징이나 맥락이 사라진 평지로 변했다.

이후 필지 규모를 축소 및 재구획해 단독주택에 적합한 형태로 재분양을 시행했다. 지형적 맥락이 사라지고 역사성이 없는 땅에 새로 집을 설계함으로써, 북촌이나 서촌 등 깊은 역사와 맥락을 존중해야 하는 한옥 주거지역에서 시도할 수 없는 독창적인 주택 설계가 가능했다.

 

구가도시건축의 은평한옥마을 계획안 ©guga urban architecture
계획안보다 필지가 쪼개진 최종 확정안 ©guga urba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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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편안한 우리 집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인 집
건축주의 단 한 가지 요구사항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하지만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이 형성되는 내향적인 형태의 도시한옥에서는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실현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건축가는 지하는 내향적인 공간으로 설계하되, 1층은 외향적인 공간으로 설계해 1층 어디에서나 외부 경관을 감상하도록 고안했다.

 

지하층 평면도 ⓒguga urban aechitecture
1층 평면도 ⓒguga urban aechitecture

지하 공간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 가족끼리 휴식을 돕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그에 비해 1층은 주방과 대청, 안방 등 어떤 공간을 통해서든 전방의 느티나무와 습지, 북한산을 볼 수 있도록 동선과 방향을 설계했다. 덕분에 건축주 가족은 1층에서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다가도, 필요하면 지하로 내려가 소통을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하층 모형 사진 ⓒguga urban aechitecture
지하층 ⓒBRIQUE Magazine
1층 ⓒYoungchae Park

 

편리하고픈 욕망을 구현하다
한옥에서 살더라도, 아파트만큼 편하게 살고픈 욕망은 여전하다. 다양한 수납공간, 현관, 신발장, 주차장 등 전통 한옥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공간이 많았다. 한옥에 산다고 해서 아파트에서 살았던 건축주 가족에게 불편함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가는 지하를 양옥, 지상 1층을 한옥으로 설계해 공간의 형태를 완전히 구분하였다. 또한, 필로티 구조로 누마루* 슬래브를 마치 웨이터가 한 손으로 쟁반을 받치듯 띄워 올렸다. 필로티 구조 덕분에 현대인에게 필요한 주차장을 구현하고, 별도의 현관을 두어 아래로 진입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었다. 지하 양옥 공간에는 일반적인 아파트처럼 세탁실, 수납공간, 신발장 등을 설계했다.

*누마루 :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띄워 지면의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다락처럼 한 층 높게 만든 마루.

 

ⓒguga urban aechitecture
ⓒYoungcha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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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소통하는 통창
집 밖 자연을 감상하도록 해달라는 건축주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1층에 통창 설치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통 한옥의 건축 양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전통 창호는 유리 대신 한지를 사용하며, 창의 크기는 작고 필수적으로 목재창살을 댄다. 건축가는 크고 선명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는 요청을 구현하기 위해, 전통 양식의 창호 대신 통창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당시 유리 창호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기술이 없어 전통으로 굳어진 건축 양식을 오늘날까지 구태여 반복할 이유는 없다는 것. 크고 넓은 통창 덕분에 건축주의 요구대로 낙락헌에서 북한산과 인근 자연환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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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지만 덤덤한 디테일

무덤덤한 중간 공간, 계단
양옥과 한옥, 전혀 다른 두 공간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았다면, 자칫 낙락헌은 두 공간의 충돌로 느껴질 수 있었다. 건축주 가족이 집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건축가는 두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데 필요한 진입공간(entrance vestibule)에 큰 공을 들였다. 양옥과 한옥 사이 이동을 의식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오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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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공간인 계단에 대한 고민은 건축가의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당시 현장에서 미장 작업을 통해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시공 단계에서 설계대로 설치했던 계단 부의 벽체를 뜯어내고 미장 작업을 진행했다. 벽체가 너무 두꺼워 계단 부의 창으로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장 작업 덕분에 고벽돌과 한옥의 기둥, 초석, 콘크리트가 한데 모여있는 계단에서 거주자들은 개별 건축 재료나 재료들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계단 중간에 창을 설치해,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외부 풍경에 더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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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담장
건축가가 공들인 디테일 중 하나는 담장이다. 집 안을 외부인들로부터 가려 건축주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그 높이가 지나치게 높아 집이 폐쇄적이라는 인상도 피해야 했다. 개방과 폐쇄 사이에서 내린 결정은 담장이 이어지면서도 중간에 꺾여 내려가는 형태로 설계하는 것. 건축가가 특히나 신경 쓴 부분은 담장이 꺾이는 위치와 높이였다.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얼마만큼 꺾여서 내려가야 하는가, 이러한 부분은 시공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건축가가 직접 집 안과 밖을 오가며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정해진 담장의 최소 높이는 집 안 대청마루에 서 있는 성인의 무릎~발목 사이 정도. 담장 높이가 그 이하로 내려가 발이 노출되면 집 안의 사람은 지나치게 개방적이라 느끼고, 무릎 위로 높아지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에 따른 심리적인 변화는 설계에서는 알 수 없어 현장에 와서 직접 일일이 점검하고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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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나타나는 ‘구가등’
낙락헌의 처마에는 ‘구가등’이라 이름 붙여진 외부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구가도시건축에서 직접 디자인한 등이다. 구가등이 특별한 점은 기성품처럼 만들어진 그대로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집의 구조에 맞추어 전등의 크기와 형태를 바꾼다는 것.

낙락헌의 구가등은 현재 집의 구조에 맞게 다시 디자인되어 자리 잡고 있다. 낮에는 찾기 어렵지만, 밤이 되어 전등을 켜야 할 때가 되면 비로소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조명이 집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가등은 낙락헌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옥 고유의 고풍스러움을 강조하며 낙락헌 특유의 따스한 감성을 완성한다.

 

ⓒYoungcha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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