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 to Collection

노인을 위한 리노베이션

[Space] 안전하고, 밝고, 소박한 집으로 탈바꿈하다.
ⓒHyosook Chin
글. 전종현 편집위원  사진. 진효숙  자료. 사무소효자동

 

신축이 아닌 리노베이션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요구사항이 분명했던 연희동 할머니 집. 결과적으로 할머니를 위한 리노베이션은 무장애 설계, 밝은 집, 마당 정리로 귀결되었다.

 

무장애 설계

 

연희동 할머니 집은 할머니 혼자 거주하는 곳이다. 할머니의 체구와 생활 패턴에 딱 맞게 설계하면서 주거자의 일상과 조응하는 섬세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할머니의 신장인 147cm는 공간 디자인의 기준점이 되었다. 가구부터 시작해 부엌의 싱크대, 화장실 세면대, 심지어 잠시 짐을 놓는 신발장 높이까지 미세하게 조절했다. 특히 무릎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즉 무장애 설계는 필수였다. 실버카를 끌고 다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핸드레일의 크기, 계단판과 디딤돌 간의 단차 등 웬만한 동선 안의 각종 수치들은 오로지 할머니 맞춤으로 계획했다.

실버카로 바깥 외출을 하다 집으로 들어오려면 담의 대문부터 집의 현관까지 적절한 환경이 구비돼야 한다. 그래서 그 동선이 최대한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법적으로 휠체어 등의 보행 보조기가 다니는 슬로프의 기울기는 1:12 정도로 규정되어 있는데 집의 기존 구조를 살리는 리노베이션이다 보니 실제 존재하는 동선의 절대 길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결국 가로 세로 비율이 나오지 않아 각도가 예상보다 좀 더 급하게 됐다. 더불어 원래 존재하는 도로 면과 집안 내부 바닥 간의 단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는 약 80cm. 그래서 이걸 최대 높이 15cm 이하로 쪼개어 단계적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Hyosook Chin

 

대문간 바깥에는 판이 두 개 있다. 첫 번째 판은 도로 경계석과 높이가 같은 13cm다. 시각적으로 이웃 경계까지 연결되는 효과도 있다. 이어서 두 번째 판은 15cm 높이로 만들어 할머니가 대문간 밖에서 안으로 진입할 때 약 30cm 높이의 단차를 무리 없이 커버하면서 외부 문을 열 수 있도록 의도했다. 이제 내부로 들어오면 현관 앞까지 도달하는 진입로가 펼쳐진다. 이미 앞에서 43cm를 커버했기 때문에 남은 단차는 40cm 남짓이다. 이를 3개의 판으로 나누어 한 판 한 판 이동할 때마다 충분히 쉬면서 올라갈 수 있도록 계획했다. 혹여 장 본 것이나 짐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로 길이는 80cm 정도로 넉넉히 잡았다. 또한 진입로 좌측에 핸드레일을 설치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동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집 밖에서는 실버카를 끌거나 지팡이를 짚는 것처럼 집 안에 들어와서는 핸드레일을 통해 몸을 의지하며 안전한 보행 환경을 만든 것이다.

 

ⓒHyosook Chin
ⓒsamusohyojadong

 

이런 무장해 요소는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데 특히 할머니가 다칠 수 있는 욕조에도 잊지 않고 적용했다. 바닥은 마찰계수가 높은 재료를 사용해 물이 묻어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날 때 몸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설치한 안전바는 욕조 옆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samusohyojadong

 

밝은 집

 

기존 집은 낮에도 조명을 키고 있을 정도로 어두운 편이었다. 자연 광량이 충분하거나 기분 좋은 조도일 때는 불을 끄기 마련인데 여기는 늘 켜야 했다. 게다가 가장 큰 안방에는 그동안 할머니의 삶이 묻어난 온갖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어서 어두운 느낌을 가중시켰다.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리노베이션을 할 때 따님은 할머니가 좀 더 밝은 환경에서 생활하길 원했다. 근데 이 집은 북향이다. 대문이 북쪽으로 나있기 때문에 기본 광량이 충분하지 않고, 남쪽에서 빛을 끌어오려면 창문이나 천장 등의 장치를 활용해야 하지만 이웃 간의 이격 거리가 너무 협소하여 사생활 문제가 대두되는 등 주변 환경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 다행히 마당으로 들어와 바닥을 치고 내부로 들어오는 산란광을 잘 활용하면 굳이 남쪽 직사광을 건드리지 않아도 충분한 광량을 확보할 수 있어서 결국 남쪽, 동쪽에 빛을 끌어들이는 창은 뚫지 않았다.

 

리노베이션 이전의 모습(현재의 침실에서 마당을 보았을 때) ⓒsamusohyojadong
리노베이션 이후의 모습 ⓒHyosook Chin

 

즉, 연희동 할머니 집은 밝은 곳을 눈으로 보는 집이다. 직사광이 마당에 떨어지기 때문에 이곳이 제일 밝고, 반사광이 산란하며 내부로 퍼진다. 내부에 머무는 사람은 마당을 직접 보면서 밝은 빛을 느끼고 산란광은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빛의 효과가 가장 잘 기능하는 곳은 할머니 방이다. 대문 안에서 현관을 바라볼 때 ‘ㄱ’ 자 구성인 집에서 도우미와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는 중간에 배치된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안쪽 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당을 향한 벽이 전창으로 이루어져 실질적으로 가장 밝고, 시야 또한 가장 크게 열린다. 할머니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박공 지붕 쪽 공간은 오히려 조도를 조금 낮게 잡았다. 대신 천장에 매입한 작은 스포트라이트들을 조절하며 아스라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마당 정리

 

연희동 할머니 집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넓은 마당이다. 마당 가꾸기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식물을 길러왔는데 몸이 연로해지며 관리가 힘들어지자 마당이 난리가 났다. 가지치기도 못하고 옆집으로 뻗어가는 나무를 붙잡아주지도 못하는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할머니는 집을 고치는 김에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모든 짐을 버렸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관리가 되는 마당이 필요해졌다.

 

리노베이션 이전의 마당(집으로 진입할 때) ⓒsamusohyojadong
리노베이션 이전의 마당(집 내부에서 보았을 때)ⓒsamusohyojadong

 

그 해답은 바로 소거법. 할머니와 상의해서 가장 아끼는 나무 두 그루만 남긴 채 모두 정리했다. 화분, 항아리, 가드닝 제품을 철거하고 무성한 잔디를 모조리 뽑았다. 마당에는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를 깔아 비가 왔을 때도 관리가 편하고, 마당을 오며 가며 집 내부에 들어왔을 때 뒤처리가 깔끔하게 만들었다. 흙의 입자가 크고 약간 노란 끼가 돌며 밝은 편이라 산란광이 더 풍부해지는 효과는 덤이었다. 넓고 긴 장대석을 필요한 곳에 세 개 놓았는데, 하나는 신발을 올려놓고 마당과 툇마루 간의 단차를 줄이는 디딤돌로 사용할 수 있게 툇마루 앞에 높았고, 나머지 두 개는 장독대를 위한 받침대로 사용했다.

 

리노베이션 이후의 마당 ⓒHyosook Chin

 

 

You might also like

프랭크 게리가 담은 한국, ‘루이비통 메종 서울’

도포자락을 흩뿌리는 학춤의 선과 찰나, 수원 화성의 견고함을 담다

‘이름 없음’의 가능성

[Interview] 무명씨의 집 짓는 방법, 네임리스 건축

집은 사람을 담는다. 사람은 집을 닮는다.

[People] '아홉칸집' 건축주 고경애 씨의 집 이야기

어디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Life] 세상에 없던 집의 탄생

쓸모의 발견

[Space] '아홉칸집' 공간 이야기

[Opinion] 식물의 귀환

식물의 건축가, 남정민이 말하는 식물과 공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