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처럼 편리하게, 집처럼 편안하게

[We still move] ④ 1인 가구 전용 주거서비스 ‘셀립 순라’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종우  사진. 최진보  자료. 셀립 라이프 앤 스테이

 

창덕궁과 종묘 사이, 고즈넉한 동네의 골목 초입에 낯선 건물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1990년대를 연상시키는 복고풍 호텔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지난해 12월 문을 연 ‘셀립 순라célib soonra’. 1인 가구를 위한 새로운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호텔 서비스의 편리함과 집의 편안함을 동시에 지녔다. 이곳에서는 호텔식 단기 숙박과 전형적인 주택처럼 장기 숙박이 가능하다.

셀립 순라는 이미 전체 서른 개의 객실 예약이 끝난 상황이다. 관광 목적의 단기 숙박객도 셀립 순라를 즐길 수 있으나 대부분은 3개월 이상 장기 거주자이다. 1인 가구나 공유, 밀레니얼 세대를 키워드로 한 다양하고 특색있는 주거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요즘, 이곳은 어떤 특별한 색깔을 가진 곳일까? 또 여기에 머물고 싶어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셀립 순라의 사업 기획과 디자인, 운영을 총괄하는 셀립 라이프 앤 스테이의 김정서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셀립 순라 ⓒBRIQUE Magazine
ⓒcélib life & stay

 

혼자서 당당히 사는 이들을 위해

셀립 순라. 다소 생소한 이름에 그 의미가 궁금해졌다. ‘셀립’ 은 무슨 뜻이고 ‘순라’는 무슨 뜻일까?
“셀립은 프랑스어에요. 독신자, 1인 가구를 뜻하는 셀리바떼célibataire 와 자유를 뜻하는 리베르떼liberté 를 합쳐 만든 말이죠. 나답게, 혼자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에요.”

이름부터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공간이라는 의도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순라’는?
순라는 조선시대 궁궐 근처에 설치된 길인 ‘순라길’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의 종로구 원남동, 인의동, 권농동, 봉익동 인근을 지나는 이 길들은 조선시대 종묘를 지키던 순찰자, 순라(巡邏)꾼들이 화재와 도적을 경계하기 위해 순찰을 돌던 길이다.

 

창 밖으로 창덕궁이 보이는 셀립 순라의 객실 ⓒBRIQUE Magazine

 

셀립 순라는 1인 가구를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재조명하겠다는 의지와 지역의 역사성을 그 이름에 담아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기획, 운영을 하는 곳은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솔루션을 제안하는 브랜드 ‘셀립 라이프 앤 스테이’. 이들은 셀립 순라를 시작으로 앞으로 은평과 여의도 등 서울 내 다양한 지역으로 지점을 확장할 계획이다.

 

집도 살아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

셀립 순라의 가장 큰 특징은 호텔과 집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주거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존 호텔과 다른 점은 뭘까? 바로 단기 숙박과 장기 숙박이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다.
단기 숙박은 ‘셀립 스테이’라는 이름으로 1일부터 최대 3개월까지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은 ‘셀립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3개월부터 최대 2년까지 원하는 만큼 머무는 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숙박 시스템이 생겨난 이유는 뭘까?

 

ⓒcélib life &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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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예로 들자면, 나에게 맞는 옷을 찾으려면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직접 옷을 사 입어 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하잖아요. 음식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집은 그럴 수 없어요. 내가 어떤 집에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 어떤 게 필요한 사람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예산만 적당히 맞으면 바로 계약해야 돼요. 그래서 진짜 나에게 맞는 집인지 알아볼 수 있게 해주자, 집도 시식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의미에서 나온 서비스예요.”

시식을 통해 나에게 맞는 음식을 확인하고 다양한 옷을 입어보며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찾는 것처럼, 집도 살아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주거의 조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셀립 순라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더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다.

 

ⓒcélib life & stay

 

실제로 지금 체류 중인 장기 이용자들 중에는 처음에는 오래 머물 계획이 없었으나, 머물면서 생각이 달라진 이들도 여럿 있다. 5개월째 머물고 있는 김민구 씨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6월 초에 입주한 그는 처음에는 1개월만 머물 예정이었으나 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김 씨는 “일단은 1개월만 계약했는데, 지내보니 생각보다 무척 편해서 연장했어요. 다른 층에 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요. 방이 주는 편안함이 충족되더라도 사회적인 부분에서 불편한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게 없어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célib life & stay

 

눈치보지 않는 1인 생활

셀립 순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입주자들이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피곤해하거나 타인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타 공유 주거 서비스들과 달리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나 낯선 입주자와 마주치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용 공간이 있지만 이는 혼자 이용하기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에 가깝다.

 

1층 공용 주방 ⓒcélib life & stay

“집에서는 마음이 편해야 하고 누군가가 와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강요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입주자들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남 눈치를 안 보게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만 남길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김 디렉터는 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예로 1층 라운지의 식사 공간을 꼽았다. 그는 “재밌는 장면 중 하나는 입주자들이 식사하는 모습이에요. 입주자들이 내려와서 다 한 분씩 앉아서 스마트 폰 보거나 음악 들으시면서 식사하고 있어요. 각자 서로 신경쓰지 않고 밥 먹을 수 있는 분위기라 그렇게 편해 하세요.”라고 전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험. 셀립 순라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셀립 순라의 이용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다.

 

1층 라운지 식사 공간 ⓒcélib life & stay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

셀립 순라의 주 이용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밀레니얼 세대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예상은 실제로도 들어 맞았다.
“연령대는 대부분 20~30대에요. 대다수가 1990년대생이긴 하지만, 현재 입주자들 중 가장 어린 사람과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20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요. 주로 30대 초반의 ‘자취 연습생’들이에요.”
본격적으로 자취를 시작해야 하는데, 막상 혼자 살자니 부담스러워 시험삼아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셀립 순라의 현재 주 고객이다.

 

ⓒcélib life &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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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이후 지난 8개월 간 김정서 디렉터가 셀립 순라의 고객들을 관찰하면서 알게 된 점들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나답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만족시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부모님 집보다 안 좋은 집에서 살기는 싫은데, 자기 돈으로 갈 수 있는 집은 지하 단칸방 정도인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셀립 순라에 오면 부모님에게 자신이 잘 살고 있고, 누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죠.”

 

셀립 순라 5층 개인실. 방마다 내부 공간 형태가 다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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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립 순라의 주 고객인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만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루프탑, 홈바, 응접실, 홈시네마 등의 공용 공간이 이러한 공간에 해당한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공용 공간은 낯선 입주자와의 교류 대신 입주자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주로 쓰인다. 개인 공간인 객실은 비교적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기 수월하게 구성되어 있다.

셀립 순라 내부 공간 구조 ⓒcélib life & stay
예약제로 운영되는 지하 1층 공용공간 응접실 ⓒBRIQUE Magazine
지하 1층 홈 시네마 ⓒBRIQUE Magazine

 

호텔의 만족감, 집의 편안함

셀립 순라는 공식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꾸준히 호텔과 집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호텔과 집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우선 호텔의 경험으로, 디렉터는 이용자들이 침구류를 굉장히 만족스러워 한다는 후기를 전했다.
“저희 침대랑 이불, 침대 시트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자취해서 혼자 산다면 이런 호텔용 시트를 사용하기 쉽지 않겠죠. 2주에 한번씩 전문가들이 방문하셔서 관리를 해주세요. 매트리스도 호텔용으로 제작된 것이어서 잠이 잘 온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célib life &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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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식 관리는 에어비앤비와 결합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기 거주자가 출장이나 개인 사정으로 객실을 오래 비워야 할 때, 거주자의 허락을 받고 객실을 에어비앤비에 내놓을 수 있다. 단기 숙박 이용자가 거주자가 없는 동안 머물면,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 만큼을 장기 거주자가 내야하는 월 이용료에서 아낄 수 있다. 셀립 순라의 매니저가 호텔처럼 거주자와 소통하고 객실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독특한 서비스이다.

호텔에 맞먹는 꼼꼼한 관리가 만족감을 가져다준다면, 집의 경험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식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셀립 순라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일반적인 호텔 뷔페와 다른 백반. 그야말로 ‘집밥’이다.

“호텔 조식은 하루 이틀 정도 먹을 때는 맛있지만 그 이상 먹으면 질리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집에서 먹는 밥은 질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곳이 집이라는 경험을 강하게 주기 위해 건강한 백반식 식사를 제공하는 셰프 ‘꼬륵’과 파트너십을 맺고 집밥을 제공하게 됐어요.”
스크램블 에그나 소시지, 오렌지 주스 등으로 대표되는 호텔 조식은 그 자체로 맛은 있어도 밥이 주식인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매일 먹는 식사가 되긴 어렵다. 음식만으로도 집과 집이 아닌 곳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célib life & stay
ⓒcélib life & stay

 

집의 경험은 셀립 순라 내부 인테리어로도 확인할 수 있다. 1층과 지하 1층 공용공간의 인테리어는 호화롭거나 우아한 느낌이 나지 않는다. 호텔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복고풍 느낌이다. 디렉터는 “이러한 인테리어가 옛날 할머니집, 이모집과 같은 느낌으로, 입주자들에게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의외로 복고풍 인테리어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오히려 신선하고 ‘힙한’ 것으로 다가온다.

 

1층 카페 ⓒBRIQUE Magazine
1층 복도 ⓒBRIQUE Magazine

한 장기 숙박자는 “친구들이 놀러오면 지하 1층 공용 공간을 써요. 저는 여길 소개할 때 ‘대한제국’에 왔다고 이야기해요. 요즘 감성에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célib life &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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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 대신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복고풍의 인테리어와 벽돌로 이루어진 외관, 갈대를 심어놓은 외부 조경이 인근 동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덕분에 홍보도 없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어가는 중. 하지만 디렉터는 입주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BRIQUE Magazine
루프탑 ⓒBRIQUE Magazine

“저희는 절대 힙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저희는 어떻게 하면 서울 주거의 기준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집이란 것은 10년이 지나도 집이어야 하잖아요. 겉은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할 수 있죠. 시간이 지나면 업데이트 돼야죠.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해요. 집의 본질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곳,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집 같은 경험을 주고 싶어요.”
최근 많은 코리빙 서비스, 공유 주거 서비스가 소위 힙한 모습, 멋있는 이상향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

디렉터에게 마지막으로 셀립 순라 이후로 서울 내 여러 지역에 새로운 주거 공간들을 만들면서 지키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물었다.
“눈치 안 보고 입주자가 편하게 드러누울 수 있는 경험은 어떤 셀립에라도 있어야 해요. 그렇게 편하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요.” 누울 수 있는 경험이라니, 거창한 대답을 생각해서 그런지 신선했다. 누울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일까.
“한국 사람들은 누가 길 한복판에 드러누우면 ‘거기가 네 집이냐’라고 말하잖아요. (웃음) 그만큼 한국 사람에게는 편하게 드러누울 수 있는 곳이 곧 집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침대가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만은 아니고, 안심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의미죠.”

 

ⓒcélib life & stay
ⓒcélib life & stay

 

호텔이 주는 편리함과 집이 주는 편안함.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셀립 라이프 앤 스테이. 셀립 순라는 순라길에서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밀레니얼 세대를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célib life & stay

 

‘셀립 순라’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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