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 골목 어귀에 숨어 있는 동네 사랑방

[Near my home] ⑪ 여든다섯살 적산가옥의 새로운 쓰임 ‘회현사랑채’
ⓒHanul Lee
에디터. 박경섭 자료. 이용주 건축스튜디오

 

서울역과 남산 백범광장공원을 지나면 회현동에 도착한다. 좁은 골목과 바투 붙어 있는 건물들이 부지기수인, 이 유서 깊은 동네 깊숙한 곳에 회현사랑채가 있다. 지붕 사이로 튀어나온 긴 창과 2층 내부가 훤히 보이는 통유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회현사랑채 리노베이션을 맡았던 이용주 서울시 공공건축가와 만났다.

 

이용주 건축가
이용주 건축가 ©BRIQUE Magazine

 

증축과 개축, 원형을 알 수 없던 건물

 

회현동 앵커시설 전경 ⓒHanul Lee
회현동 앵커시설 모델 ⓒYongju Lee Architecture

 

어떻게 회현사랑채 리노베이션을 맡게 되셨나요?

서울시에는 공공건축가 제도가 있어요. 공공건축 영역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에요. 저도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인데요. 회현사랑채의 경우에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주민참여형 앵커시설 중 한 곳이에요. 주민참여형 앵커시설 건립 프로젝트 중 하나로 올라온 회현동 근대가옥 리모델링에 제가 지원한거죠.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당시에는 회현동 앵커시설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현재는 회현사랑채라는 이름으로 불리더라고요.

 

리노베이션 이전 사진을 보니,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험난한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 회현동 앵커시설을 맡게 됐을 때는 건물의 정확한 현황을 알지 못했어요. 주어진 정보는 대지 면적과 이곳이 1935년도에 지어진 목조구조의 적산가옥이라는 것뿐이어요. 서울시 측 바람은 근대가옥인 적산가옥을 동시대적 관점이 담긴 문화적 자원으로 탈바꿈 시켜 보자는 거였어요. 일종의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거였죠. 현장에 가보니 짐작했던 것보다 상황이 복잡했어요. 지어질 당시에는 한 가구가 사용하는 집이었지만, 여러 번의 증축과 개축을 거쳐 네 가구가 살고 있더라고요. 리노베이션을 위해서는 먼저 내부 실측이 필요한데, 실측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증축이 여러 차례 이뤄져서 제대로 된 도면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실측을 위해서는 건축물 일부를 철거해야 했는데, 행정적으로 불가능하더라고요. 시공 업체가 정해지지 않은 설계 단계에서는 철거 업체를 선정할 수 없더라고요. 그 때문에 시공 과정에서 도면이 여러 번 수정되었어요.

 

리노베이션 이전의 회현동 앵커시설 지붕 골조 ⓒYongju Lee Architecture
리노베이션 완료 후의 회현동 앵커시설 지붕 골조 ⓒHanul Lee
회현동 앵커시설 지붕 골조 ⓒHanul Lee

 

시공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철거부터 까다로웠을 것 같습니다.

어려웠죠. 당초 주민분들의 의견은 회현동 앵커시설 내부에 주민들을 위한 넓은 공간을 만들자는 거였어요. 규모가 큰 회의나 모임을 하기에 용이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층 공간은 내벽을 모두 없애고 단일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구조 업체 측 의견이 이론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거였어요. 실제 시공 단계에 들어가니까 예측했던 상황과 달랐어요. 현장 소장님이 내벽 철거를 일괄적으로 진행하면 지붕이 무너질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결국 구조 업체 측 전문가님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어떤 벽부터 뜯어낼지와 구조보강 방안을 실시간으로 정해주셨어요. 그런데도 철거가 총 3개월이나 걸렸어요. 보통 철거 과정은 3주 내외면 끝나거든요. (웃음)

 

기와지붕을 뚫고 나온 창

 

설계 과정에서 주민분들의 의견이 다수 반영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조율되었을까요?

말씀드렸지만 2층을 단일 공간으로 만들고 창을 크게 내기로 한 건 주민분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어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주민 회의를 세 번 정도 참여했어요. 공간별 프로그램을 어떻게 잡을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적산가옥을 구태여 왜 리노베이션 하느냐는 반대 의견을 내는 주민분들도 계시기는 했어요.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서 적산가옥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떻게 되살릴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죠.

 

회현동 앵커시설 2층 전면창 ⓒHanul Lee
회현동 앵커시설 창 ⓒHanul Lee

 

핵심이 된 디자인 요소가 궁금합니다.

회현동 앵커시설의 정체성이 지붕 선에 있다고 봤어요. 여러 번 증축과 개축을 반복한 건물이지만, 지붕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고 있었을 테니까요.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지붕 선을 최대한 살리려 했어요. 매스 면에서 특히 고민이 많았는데 2층에 통유리를 넣어 외부와 교감을 높이고, 전면 매스를 캔틸레버화 하여 매스 차원의 변화를 주고자 했어요. 켄틸레버가 1m 정도인데 기존 슬라브로는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철골을 넣어야 했어요. 실내에 철골 구조가 목조 구조와 함께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울지 고민되더라고요. 칠을 해서 나무랑 비슷한 질감을 낸다든가, 석고보드로 철골을 둘러싸서 흰색으로 마감을 하는 방법이 있긴 했어요. 결론은 구태여 철골을 가리지 말자는 거였어요. 금속, 유리 등의 재료가 기존의 기와, 목재와 대조를 이루면 오히려 시각적 환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회현동 앵커시설 창 ⓒHanul Lee

 

박공지붕 사이로 튀어나온 창이 시선을 강하게 끕니다.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을 것 같아요.

어색하다고 보는 분도 계실 거예요. 호불호가 갈리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원형을 알 수 없는 건물의 원형을 상상해서 되살리는 작업보다는, 오늘날의 관점과 언어에 기반한 리노베이션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공공건축은 일반 시민분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잖아요. 저는 공공건축은 시민분들에게 ‘저기에 저런 건물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공건축물이 공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영감의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는 거죠. 실험적인 시도가 비교적 자유로운 게 공공건축의 장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회현동 앵커시설이 2019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감사할 따름이죠.

 

주변 일대 골목이 굉장히 좁은데요. 건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나요?

고생했죠. 회현동 일대가 건설 자재를 실은 차가 다닐 수가 없어요. H빔이 조금만 길어도 아예 골목으로 못 들어오는 거예요. 회전 반경이 안 나오더라고요. 이걸 옮기려면 기계로 들어 올려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결과적으로 건축 부재가 전반적으로 짧아지게 됐어요. 내부 공간을 보면 철골 구조 중에서 잘린 걸 용접으로 붙인 흔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주변 환경 때문에 생긴 흔적이에요. 이런 문제가 쌓이면서 공사비가 당초 계획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어요. 다행히 예산이 증액되었어요. 이것도 공공건축이라 가능했던 일이죠.

 

공간을 완성하는 이웃들

 

회현동 앵커시설 1층 육아실 ⓒHanul Lee

 

완공 이후 주민분들이 회현동 앵커시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 몇 번 가봤어요. 회현동 앵커시설 1층에 육아실이 있어요. 많은 주민분이 찾는 공간이 될 테니까,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갈 때마다 그 공간에는 늘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삼삼오오 데크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1층 책장 앞에서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요. 옹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어요. 공간을 설계할 때 아이들이 이 공간을 즐겨 찾으리라 깊게 생각하지 못해 아쉽더라고요. 아이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1층 책장의 경우 성인 이용자가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고 만든 공간인데, 아이들이 책장 앞 바닥에 앉거나 엎드린 채로 책을 읽는 거예요. 바닥이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맨바닥에 눕거나 앉기에는 딱딱하거든요.

 

회현동 앵커시설 1층 책장 앞 ⓒHanul Lee
회현동 앵커싯러 외관 ⓒHanul Lee

 

이용자들이 공간을 사용하며 만들어지는 풍경도 건축물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당초 기획과 다른 풍경이 들어오는 것도 의도치 않은 즐거움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육아실을 만들 때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어린이집과 학교가 있는데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이곳을 찾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주민분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된 거죠. 생각해보니까 회현동에 놀이터가 별로 없더라고요. 회현 시민아파트 부근에 새로 생긴 곳이 있긴 한데, 회현동 앵커시설이 더 접근성이 좋아서 그런지 학부모분들과 아이들이 많이 찾아주는 것 같아요. 1층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2층 대회의실은 교실처럼 쓰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현동 앵커시설이 아이들에게 학교나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탐구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빈 공간이 많은 공공건축물을 좋아해요. 누구나 들어와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거리에 많지 않잖아요. 도시에서 공공건축물이 시민들이 별 이유 없이 와서 머물다 떠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회현동 앵커시설을 방문했을 때 홀로 책장 앞에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봤는데 참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앞으로 회현동 앵커시설이 아이들에게, 또 회현동 주민분들에게 편한 공간이 된다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혼자 잠시 시간을 보낼 공간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머릿속을 스치는 공간처럼요.

 

회현동 앵커시설 ⓒHanul Lee
회현동 앵커시설 ⓒHanul Lee

 


[Near my home] 동네가 내 집이 된다면

글 싣는 순서 :

집 밖으로 나온 우리집 공간 ‘프로젝트 후암’
커피향 흐르는 해방촌 세탁방 – 세탁기와 커피가 함께 있는 카페 ‘론드리 프로젝트’
쌓인 책은 줄이고, 없는 책은 빌리고 – 온라인 공유 도서관 ‘국민도서관 책꽂이’
누구나 창고는 필요하다 – 삶을 담는 그릇, ‘미니창고 다락’
짐을 비우고 삶을 채우세요 – 짐에 대한 연구보고서 ‘오호’
누구나 주인이 되는 술집 – 매일 주인이 바뀌는 영등포 커뮤니티 바 ‘삼만항’
연남·연희 ‘플레이’ 리스트 – 동네의 숨은 콘텐츠를 찾아서, 어반플레이의 ‘쉐어빌리지’
슬기로운 동네생활 – 직주근접 동네 생활자, 심영규 주식회사 정음 대표
우리 동네에서 살아볼래요? – 블랭크가 만드는 공간, 동네, 지역
오래된 동네를 밝히는 여덟 개의 풍경 –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거점시설
⑪ 회현동 골목 어귀에 숨겨져 있는 동네 사랑방 – 여든다섯살 적산가옥의 새로운 쓰임 ‘회현사랑채’

서계동을 밝히는 색다른 시도 – 서울을 품은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거점시설’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3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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