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을 위한 교집합의 공간

수지 단독주택 : 건축농장 '폴리하우스Poly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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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브리크 brique>  자료. 건축농장 Farming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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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Artist-in-Residence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예술가들에게 일정기간동안 거주·전시공간, 작업실 등 창작 및 생활 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을 말한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국내외에 활성화됐으며, 입주 작가 프로그램이라고도 한다. 레지던시Residency라는 말 뜻처럼 예술가는 특정 공간에 ‘거주’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다른 예술가나 미술계 인사와 교류하며 창작 활동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내외 여러나라의 레지던시 공간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간을 사적 공간과 공유 공간으로 나누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사적 공간 & 공유 공간

 

예를 들어 잠을 자는 침실과 세면실은 각 자의 숙소에, 개인작업실은 별도의 공간에, 공동작업실은 개인작업실에서 이동이 편한 공간에 배치하고, 휴식을 위한 공간과 요리 등을 위한 주방은 공유 공간으로 사용해 입주하는 작가들의 사생활을 배려하면서도 낭비되는 공간을 최소화하는 형태를 취한다. 모든 사적공간에 침실, 욕실, 주방, 거실, 작업실을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집합 공간을 만들어두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지키면서 공유 공간을 통해 작가들끼리 교류하도록 하는 형태다. 교집합의 공간이 거실의 모습을 한 휴게실과, 요리와 식사를 위한 주방이어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교류가 쉽게 일어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교류는 공동작업실에서 공동작업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축농장Farming Architecture의 폴리하우스Poly house는 가족 간에도 필요한 사적인 영역과 공유의 영역을 영리하게 풀어낸다.

 

concept di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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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간을 크게 1층은 서비스 공간, 2층은 가족 공간, 그리고 3층은 개인 공간으로 수직적 구분을 하는데 사용자의 생활과 가족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3층의 부부침실과 자녀침실이 독립적으로 배치돼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2층은 거실과 주방 욕실을 두어 교집합의 공간 즉 공유공간이 된다. 마지막 1층은 주차와 창고 공간으로 활용된다.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진입도로의 위치, 6미터의 고저차를 가진 경사지, 20% 밖에 되지않는 건폐율 등 대지의 복잡한 조건들은 최적의 설계안을 찾는 실마리가 된다. 건물 전체의 절반이 땅에 묻히고, 나머지 절반은 마당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폴리하우스는 실내와 외부가 만나거나, 그 경계가 역전되는 ‘중성적인 공간(ambivalent space)’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집 내부에 접촉면을 높이고, 내외부의 시각적 단절을 최소화한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형태의 단순함과는 대조적으로 내부에 숨겨진 변칙적인 요소들이 다양한 뷰를 창출한다. ‘틈’과 ‘중간적인 공간’을 통해 평면적인 거주 환경이 아닌 내밀한 주거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 <폴리하우스Poly House 건축 개요> 중에서 –

 

수직과 수평 그리고 선형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중성적인 공간’으로 이름붙여진 이른바 교집합의 공간으로 보인다. 간혹 한계를 그어놓으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타나곤 한다. 지형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설계된 이 주거건축물은 묘하게도 레지던시의 공간과 겹쳐진다.
환경을 직접 통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자동차를 시속 200km이상 달릴 수 있게 하는 힘은 엔진과 도크, 가속페달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브레이크의 역할이 크다. 언제든지 내가 속력을 줄일 수 있고, 멈춰설 수 있다는 브레이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함부로 속력을 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공간과 공유 공간이 적절하게 섞여 있을 때, 그리고 그 공간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공간 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또 그러한 긴장과 이완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때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하다.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면서도 이어진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창작을 위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들에게도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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