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끝을 희망하다

[Archur의 낯선 여행] ④ '미얀마 양곤'
미얀마 정치와 이념의 구심점 슐레 파고다 ⓒGettyImagesBank
글 & 사진. 스페이스 도슨트 방승환  자료. Getty Images Bank

 

‘Archur’ 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도시와 공간을 안내하는 방승환 작가가 <브리크 brique>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시지만 그 안에 낯선 장소,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업들을 소개해 새로운 영감을 드리려 합니다.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와 공간에 대한 소개와, 현재에 이르게 된 이야기, 그리고 환경적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Archur와 함께 이색적인 세계 여행을 떠나보시죠.

 

이름은 때때로 희망을 담기도 한다. 2006년까지 미얀마의 수도였고 현재에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양곤Yangon’은 ‘갈등의 끝End of Strif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곤’이라는 이름을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꼰바웅 왕조Konbaung Dynasty(1752~1885)를 세운 알라웅파야Alaungpaya 왕이다. 그는 미얀마 전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11세기부터 몬족이 살고 있던 다곤Dagon을 함락시킨 뒤 이 이름을 썼다. 그러나 그가 희망한 갈등의 끝은 오지 않았다.

고대 도시국가 때부터 미얀마의 전쟁은 통일국가가 등장했을 때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거의 계속돼왔다. 그리고 그런 갈등의 밑바탕에는 다양한 민족이 있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민족을 기반으로 한 미얀마의 내전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얀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내전이 진행 중인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는 135개 민족이 1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때 동양의 가든시티로 불렸지만 지금은 퇴락한 양곤의 모습 ⓒGettyImagesBank

 

다른 개발도상국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양곤에서도 가장 현대화된 기반시설은 공항과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르는 간선도로Pyay rd.다. 공항에서 양곤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다. 구전에 따르면 2500년 전 상인이었던 형제가 인도에서 석가모니를 만나 꿀이 든 떡을 시주했는데,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8개의 머리카락을 받았다고 한다.

형제는 이를 다곤의 옥칼라파Okkalapa 왕에게 바쳤고 왕은 이를 모시기 위한 스투파stupa를 세웠다. 스투파는 출가한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곳에 종교적 구심점으로서 등장한 불교적 상징물이다. 처음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사리탑 또는 분묘를 상징했다. 쉐다곤 파고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투파로 당연히 양곤은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도심에서 살짝 북쪽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 시민들의 종교적 구심점이자 일과를 끝내고 기도와 함께 친한 사람들과 여가를 보내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인 ‘쉐다곤 파고다’ ⓒGettyImagesBank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 시민들의 종교적 구심점이자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 ⓒarchur

 

양곤에 현대적인 도시계획이 적용된 시기는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1852~1853)’ 이후다.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이 끝나고 1841년 대화재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제2차 전쟁 이후 영국은 양곤을 점령한 뒤 정치와 상업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모울메인Mawlamyine에 있던 식민지 수도를 이전했다.

새로운 도시계획은 스탬포드 래플스S. Raffles의 지도하에 윌리엄 몽고메리W. Montgomerie가 수립했다. 그리고 알렉산더 프레이저A. Fraser 중위가 실행에 옮겼다. 래플스와 프레이저는 싱가포르의 도시계획도 담당했다. 계획구역은 미얀마인들의 거주지였던 다곤이 아닌 그 아래 파준다웅 크릭Pazundaung Creek과 양곤강Yangon River으로 이루어진 삼각주로 이 일대는 두 차례 전쟁 당시 영국군의 주둔지였다.

 

미얀마 정치와 이념의 구심점 ‘슐레 파고다’ ⓒGettyImagesBank

 

영국인들이 만든 신시가지는 미얀마 정치와 이념의 구심점인 ‘슐레 파고다Sule Pagoda’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그래서 마치 양곤강을 등지고 내륙을 향해 총을 겨누며 ‘一’자로 도열한 영국군 같다. 동서 방향으로 난 5개 대로의 폭은 모두 160피트(49m)로 같다.

반면에 남북 방향의 길은 100피트(30m), 50피트(15m), 30피트(9.1m)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100피트-30피트-30피트-50피트-30피트-30피트-100피트 순서로 나란히 배치돼 있다. 7개의 길은 262m x 244m 크기의 블록을 남북으로 긴 6개의 블록으로 다시 나눈다. 블록 내에서 동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길의 기점과 종점만 막으면 그사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30피트 폭의 가로 풍경 ⓒGettyImagesBank
100피트 폭의 가로 Pansodan st.풍경 ⓒarchur

 

영국인들은 격자 블록의 새로운 가로체계 외에도 병원, 대학, 고등법원 같은 근대적인 공공서비스시설 그리고 호수를 활용한 넓은 공원과 골프장을 만들었다. 20세기 초반까지 양곤의 공공서비스와 기반시설의 수준은 런던과 비슷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양곤은 ‘동양의 가든시티the garden city of the East’로 불리기도 했다.

1996년 양곤시 도시개발위원회에서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문화유산 목록을 작성할 때 200여 개의 식민시대 건물이 지정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서양식 건축물이 지어졌다. 물론 식민시대 이후 거의 발전하지 않은 열악한 도시기반시설만큼 대부분의 역사적 건축물들도 방치된 상태에서 퇴락하고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버마 시절Burmese Days》에서 “버마에서 죽은 영국인은 쉽게 잊힌다”라고 썼다. 하지만 양곤 시내 곳곳에 있는 영국인들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식민 시대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혼합된 가로경관 ⓒarchur
1905년 준공된 총리관저 The Secretariat ⓒGettyImagesBank
도심에 묵직하게 남아 있는 영국인들의 흔적 ⓒarchur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양곤의 인구는 130만 명에 달했다. 영국인들이 양곤을 점령했을 때와 비교하면 8배나 늘어난 수였다. 신시가지가 양곤강에 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 위에 다리를 놓고 남쪽으로 시가지를 확장하는 계획이 필요했다.

하지만 1962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네 윈Ne Win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다. 양곤의 늘어난 인구는 도심 북쪽에 기반시설이 없는 교외 지역에 몰렸다. 도심이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도심과 교외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는 언제나 주차장이다. 꽉 막힌 차량 행렬 속에서 매연과 땀 그리고 흙먼지가 뒤엉킨 양곤 시민들의 삶이 녹진해 보였다.

 

영국인들이 만든 시가지 중심에 있는 슐레 파고다와 시청 ⓒGettyImagesBank
네덜란드 건축가 요셉 카이퍼스가 설계한 세인트매리 성당 ⓒGettyImagesBank

 

작년 초 미얀마에서 세 번째 쿠데타가 일어났다. 1948년 독립 이후 우리나라와 정치적으로 너무 유사한 과정을 겪었던 미얀마는 2015년 최초의 문민 대통령을 탄생시켰지만 이번 쿠데타로 ‘갈등의 끝’은 더 멀어졌다. 쿠데타 이후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과 민간인의 희생 소식이 들려왔다. 역사의 간격은 짧아질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면 쿠데타 이후 그들의 삶은 우리의 1987년 6.10 민주항쟁에 이르는 과정처럼 더 혼곤해질 것 같다.

 

“고귀함의 흔적이 없는 슬픔보다 쓰라린 슬픔은 없다.” – 조지 오웰

 

그렇기에 그들은 ‘8888 항쟁(1988)’, ‘샤프란 항쟁(2007)’ 그리고 작년의 수많은 시위와 같은 행동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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