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서 집, 그 열린 가능성에 관하여

[Interview] 조남호 건축가가 이야기하는 ‘문도방 주택’
에디터. 장경림, 김지아  자료.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사진. 이동웅, 윤준환

 

조남호 소장은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이하 솔토지빈)의 대표 건축가로,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이자 저자로서 오랜 시간 삶과 건축, 사회와의 관계를 고민해 왔다. 그가 이끄는 솔토지빈은 역사의 선례로부터 지혜를 얻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내며 공동의 지향점 아래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조직이다. 조남호 소장을 만나 문도방 주택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현대 사회의 도시와 건축을 고민하는 건축가로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조남호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문도방 주택은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집이죠. 세 가지 공간의 특성을 한 번에 담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세 공간을 한곳에 모은 사실 자체로 통합성을 갖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각 공간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분리되는지가 이 집에선 더 중요한 문제였죠. 이 집은 갤러리와 주택, 도예 공방까지 합친 건물이에요. 사실 근대 이전에 우리네 모습은 이 집처럼 생활 형태가 한 장소에 모여 있었죠. 근대 이후 산업이 발전하면서 일터가 분리된 겁니다. 이런 흐름을 거슬러 전혀 다른 공간이 한곳에 섞여 있다는 사실 자체로 통합이 자연스럽게 된 거라 봅니다. 문도방 주택에선 각 공간의 역할과 고유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더 주목했죠.

 

공간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니 예상 밖이네요.

일반적으로 주거 공간을 제1의 공간, 일터를 제2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제3의 공간은 카페나 펍pub을 일컫습니다. 이때 제3의 공간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곳이자 자아를 구현하는 공간,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공간입니다. 공방과 갤러리에 사람이 드나들고, 세 가지 기능이 통합되면서 여러 가능성이 생겨나기 마련이겠죠. 그렇지만 그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건축가는 세 공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람이고, 설계에서 공간을 분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Yoon, Joonhwan

 

도예가 건축주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사실 선수와 선수가 만난 상황 같았습니다. (웃음) 두 분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분명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죠. 두 분 모두 건축을 바라보는 안목이 남달랐고, 저희도 건축주가 공간을 잘 활용할 거라 예상했어요. 이 집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구성을 절제하고 비워진 공간을 잘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대지의 특성이나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전에 도예가의 작업실 겸 주택을 작업한 경험이 있어 ‘도예가’라는 직업적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어요. 작업의 크기가 다를 뿐 도예와 건축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어떤 점에서 닮아 있나요?

흔히 도예와 건축은 작품으로 인식되지만, 본질은 실용성에 있습니다. 경계 안쪽에 무언가를 담는 일이며 그 ‘무언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죠. 이 점에서 건축과 도예는 고민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릇을 만드는 이는 담길 음식이 나물인지, 샐러드인지에 따라 그릇의 깊이와 색상, 질감을 고민하겠지요. 그러나 나물 그릇이라고 해서 다른 음식이 담기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건축도 비슷합니다. 건축도 용도에 따라 사람들의 활동을 분석하고 그 안에 삶의 형상을 담기에 최적화된 공간을 만듭니다. 하지만 잘 지어진 창고가 먼 훗날에는 좋은 카페가 되기도 하죠. 그릇과 건축이 가져야 할 특수성과 보편성입니다.

 

ⓒBRIQUE Magazine

 

건축물의 역할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아요.

‹집짓기 바이블›이라는 책을 쓰며 ‘소유하는 집, 존재하는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라는 제목에서 인용했어요. 에리히 프롬의 책은 건축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의 물질 소유와 경쟁 구조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서로 연대하고 공유하는 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역설합니다. 여기서 ‘존재한다’는 의미는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유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건축에도 적합한 표현인데, 흔히 건축을 공공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공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현시점에 알맞은 건물은 사실 10년 후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건축가는 현재의 기준에서 최적화하는 방식을 찾지만, 세월이 흘러도 이 건축물이 주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가로나 동네와도 잘 어울려야 하고, 세월이 지나 주변이 바뀌어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겠죠.

 

목구조를 주로 선택한 이유도 변화에 쉽게 대응하기 위함일까요?

북촌의 한옥을 보면 주택으로 쓰던 건물이 레스토랑이나 치과로 사용되기도 하죠. 한옥은 벽식구조가 아닌 기둥보구조로 되어있어 평면의 구성이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근대 건축의 5원칙을 발표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이 ‘도미노 구조’로 설명되는 ‘자유로운 평면’이에요. 기둥보 구조의 한옥은 이미 현대 건축 요소인 자유로운 평면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평면이 적용된 건축은 주택이라 하더라도 벽을 제거하거나 위치를 변경해 용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죠.

 

ⓒYoon, Joonhwan

 

공방과 갤러리는 콘크리트구조지만, 주택은 경골목구조와 중목구조를 혼합했더라고요. 건축주는 훗날 주택을 갤러리로 사용할 의사도 있던 것 같던데요.

경골목구조 공법은 서양의 벽식구조가 목구조 형식으로 변형된 공법입니다. 기둥이 아닌 벽이 구조를 담당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주택 용도가 영구적이라면 벽의 위치가 변경될 가능성이 없어 벽식구조인 경골목구조만의 구성으로 충분하죠. 그렇지만 문도방 주택의 2층과 다락은 중목구조와 경골목구조의 혼합구조로 구현했습니다. 지붕과 외벽은 경골목구조, 내부 구조는 중목구조가 담당해 향후 벽을 제거하거나 위치를 변경할 수 있어 용도 변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에 갤러리가 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BRIQUE Magazine

 

외관이 주택 같지 않은 중성적인 이미지와 색채를 가졌다고 느꼈어요.

문도방 주택은 서로 다른 기능의 세 건물이 적층되어 각각의 경험을 제공하지만, 재료와 형태에서는 통합적인 인상을 만듭니다. 박공지붕은 그 자체로 집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작용하죠. 외벽은 흰색과 회색 벽돌 사이에서 건축주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결국 중성적이라 느껴지는 회색을 사용했고, 사선 면의 이형 쌓기를 통해 독특한 표면을 만들었습니다. 도예든 건축이든 보편과 기본에 충실해지려는 마음과 거칠더라도 도전적인 시도 사이,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리라 생각합니다. 문도방의 도자기를 보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는 게 느껴져요. 그 속에서 선과 면의 변형을 통해 약간의 새로운 시도를 하죠. 주택에서도 독특한 무언가를 추구하더라도 형태나 공간을 배열하는 방식에서 의미를 부여했고, 벽돌의 색깔에 특별한 의미를 담지는 않았습니다.

 

색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건축이 배경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인가요?

건축이 스스로 배경이 되고자 하는 태도는 선한 의지의 실천이지만 한편으로는 연약한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건축이 주로 작품성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사회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건축’의 시대입니다. 건축이 마을과 자연과의 관계와 연속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마치 건축이 주변 환경의 결과물처럼 인식되고, 관계라는 모호함 속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 따르기도 합니다. 문도방 주택의 건축은 맥락적인 성격과 오브젝트object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자 했습니다. 배경으로서 성격은 회색 벽돌과 박공지붕이 만드는 인상입니다. 반면에 오브젝트의 성격은 배경이 되기 쉬운 단순한 벽면, 조각적인 형태 그리고 돌출된 사선면이라 볼 수 있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맥락적인 오브젝트’라고 할까요. 맥락을 존중하면서도 고유성과 존재감을 분명히 느끼게 하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Yoon, Joonhwan

 

회색 벽돌과 매스가 수공간과 주변의 정온한 자연 풍경과도 잘 어울립니다. 수공간을 조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은하수 건너의 세계는 전통적으로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경당의 대문인 장락문 앞에는 인공으로 끌어들인 물길이 있고, 아치형의 돌다리를 건너 대문에 이릅니다. 이때 물을 건넌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전이를 상징하죠. 문도방 주택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수공간을 지나, 정원, 갤러리로 이어지는데 간단한 장치 같지만 특별한 장소로의 전이 과정을 형상화하고자 했습니다. 다락이 거실과 아이 방 양쪽에서 연결되는 동선이 특별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신나게 드나든 흔적도 보이고요.

건축을 이루는 요소는 형태와 공간, 그 안에 담기는 사람들의 활동, 즉 프로그램으로 구성됩니다. 주택만 본다면 큰 면적이 아니기 때문에 효율적인 구성을 위해 복도와 방이 나열된 단순한 평면을 기본으로 합니다. 펼쳐진 평면은 흥미롭지만 긴 동선으로 인해 면적 손실이 생겨나죠. 이러한 조건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 즉 동선의 변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집은 다락을 매개로 거실과 아이들의 방을 연결함으로써 순환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사무공간 ⓒBRIQUE Magazine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거시적 차원에서 도시 주거 공간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가요?

서울은 산과 물의 도시입니다. 해외의 많은 도시와 비교해 봐도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심 안에서도 평지와 언덕과 강이 어우러진 도시라는 특성은 서울의 정체성을 이루는 경관 요소입니다. 해방 이전 인구 100만 수준이었던 도시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꾸준히 이어져 1,000만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구릉지가 주거지로 변했죠. 허름한 달동네에서 다세대, 다가구로의 변화까지는 구릉지 경관 특성이 유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평지와 구릉지를 가리지 않는 고층 아파트로의 변모는 서울의 정체성을 훼손했습니다.

이것이 경관적 측면의 도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라면, 시민의 거주지에 대한 고민도 있겠지요. 도시 건축에서 주거지가 가지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서울에서 새로 지어지는 주거 유형의 70%는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의 대부분은 민간에 의해서 공급되고 있죠. 개발의 단위는 그대로 거대한 단지를 이루고, 단지마다 폐쇄적인 ‘빗장 동네(Gated Community)’로서의 특성을 갖게 됩니다. 일례로 단지가 연속된 강남의 주거지를 걸을 때 가로 상점들이 주는 활력이나 공원, 도서관 등을 만나기보다는 담이나 울타리 옆의 샛길을 지나는 빈약한 도시 공간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최근에는 이런 고민을 반영해 ‘중계본동 백사마을 공동주택’ 설계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백사마을은 불암산 자락에 입지하며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곳으로, 서울시에서 오래전부터 구릉지 풍경에 어울리는 경관 구성과 주민의 삶의 형상을 보전하기 위한 대안적 주거지 개발을 목표로 추진한 단지입니다.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는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자각이 우선입니다. 산과 강이 이루는 도시적 맥락 위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어떤 사회 구조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물리적 해답이 도시의 형태입니다. 그 위에 시간이 쌓인다면 좋은 도시의 풍경을 갖게 되겠지요.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의 주요 작업 모형 ⓒBRIQUE Magazine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현대 사회의 ‘집’은 무엇인가요?

집이란 본래 삶의 대부분을 영위하던 장소였습니다. 집에서 공부하고, 결혼도 하고, 병을 앓다가 궁극에는 집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일, 거주, 휴식의 분리는 근대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거주가 길로 나섰다’라고 말할 정도로 거주가 도시로 확장되면서 거주 행위의 많은 부분이 집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거주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우리는 도시에서 산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의 형식이 과거처럼 고정될 필요가 없어져 ‘도서관 같은 집’, ‘카페 같은 집’, 심지어 ‘놀이터 같은 집’도 가능해졌습니다.

집의 역할이 단순해졌지만 그렇다고해서 집의 의미마저 가벼워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개별성이 존중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갖는 집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겠죠. 집은 가족의 분화와 더불어 점차 소형화되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같은 상황이 늘어나면서 가족이 집으로 모이고, 그 안에서 많은 일이 이뤄지고 있어요. 이와 같은 현상은 가족의 귀환과 집의 복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도방 주택이 어떤 건축물로 남길 바라시나요?

빈 상자를 만들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건축가의 의도는 느슨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공간의 분위기는 건축주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변화할 것입니다. 미래에는 쓰임의 변화가 생길 수 있고, 더 먼 미래에는 소유자가 바뀔 수도 있겠지요. 크고 작은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동네의 풍경에 보탬이 되는 그러한 건축, 즉 ‘존재하는 집’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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