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Place_case (플레이스 케이스)
일상에 영감과 풍요를 더하는 공간을 찾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p.lace_case 운영자이자 <브리크 brique> 애독자인 플레이스 케이스 Place_case님을 전문 기고자로 초대했습니다.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 공간 디자인PM으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장소들을 큐레이션하여 주변 이들과 함께 향유하고 소통하고자 합니다. 그녀가 펼치는 공간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러분도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서울 신당역 뒤편의 오래된 싸전거리.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곡물상회들이 사라진 스산한 골목에 비밀스러운 공간 하나가 숨어있다. 아늑한 오두막 같기도 하고, 고요한 수도원 같기도 한 카페 ‘레레플레이rereplay’이다. 이곳은 당초 60여 년 된 낡은 여인숙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조악했던 건물이 그 존재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손길을 통해 소생蘇生의 현장으로 거듭났다.
명을 다한 건물, 그리고 무용한 것들을 아름답고 유용하게 바꾸는 재능을 타고난 윤이서 대표의 만남은 우연 같은 운명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한 그녀는 건물주의 의뢰에 따라 이곳을 원룸으로 변경하던 과정 중 건물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다시 만들고 회복한다’는 의미를 담은 re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반복적으로 재생한다’는 뜻의 replay를 붙여 진정한 친환경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레레플레이는 여느 상공간처럼 빠르게, 새것으로 지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버려질 것을 재활용하며 사람과 환경 모두 이로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고쳐졌다. 철거를 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를 꺼내놓는 노후화된 건물이었기에 마치 바둑경기처럼 건물이 두는 수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며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았다. 건물이 제시하는 틀에 윤 대표의 감각이 입혀져 비록 헌 재료들로 수선되었으나 전에 없던 새로움과 심미성을 지닌 곳으로 재탄생했다.
윤 대표가 이 공간을 구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층의 중정이다. 철거 과정에서 썩어 있던 2층 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며 보이드void가 드러났는데, 해가 비치는 복층의 공간을 바라보며 그녀는 나무가 있는 풍경을 떠올렸다. 이 찰나의 영감은 중정에 100년 된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를 구심점으로 나머지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 1층의 공간들은 어느 위치에서나 푸르른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개구부가 열려 있다.
중정을 가운데로 두고 다섯 개의 공간이 뻗어나간다. 출입구와 카운터가 있는 전실, 골목 쪽으로 창이 난 큰 홀, 보일러실을 수선한 작은 방과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큰 방, 그리고 바닥에 돌이 깔려있는 거실 같은 공간이다. 마지막 공간은 윤 대표가 유독 특별하게 여기는 곳이다. 숨겨져 있던 아름다움과 쓸모를 되찾은 레레플레이의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돌들은 건물의 유물이에요. 겹겹이 쌓여있던 오래된 바닥을 모두 덜어낸 뒤 발견한 구들돌이거든요. 빛을 보지 못한 채 건물을 받쳐주고만 있던 토대인 셈이죠. 기념하고 싶은 것이라 다시 덮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어요.” – 윤이서 디자이너
돌로 된 바닥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차가운 물성과 대비되는 안정감, 그리고 실내지만 실외같은 느낌이 생소하게 다가온다. 구들돌 위에 놓인 소파는 마주 보는 좌석 없이 나란히 앉게끔 되어있어 건물의 가장 깊숙한 위치에서 건물 밖 골목의 풍경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외벽에 난 키가 큰 창 또한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카페 출입구 왼쪽에는 작은 창이 난 벽이 있다. 여인숙의 카운터 역할을 했던 창구이다. 주인 할머니가 열쇠를 건네주고 돈을 받던 이 창의 뒤 벽에는 세입자들의 정보가 누적되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기록하던 벽에는 이제 빈티지 거울을 이어서 만든 오브제가 걸려있다. 과거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크고 작은 거울 조각들이 현재 이곳을 오가는 이들을 비춰주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래층에서 보았던 무화과나무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무성한 잎사귀와 열매의 싱그러움이 빛과 함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윤대표는 양쪽 벽에 있던 창들은 모두 막아 중정으로 시선을 유도했고, 그 뒤편 테라스에 작은 정원도 꾸며두었다. 조도가 낮고 아늑한 일층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이지만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중심으로 나머지 공간들이 둘러선 구조이다.
‘ㄱ’자로 나무를 감싸는 공간은 기존 목천장이 있던 곳과 새로운 천장이 있는 곳으로 구분이 된다. 새로운 천장은 기존의 것과 비슷하게 제작해 시각적 결속감을 높였다. 깔끔히 정돈된 흰 벽면은 단정한 갤러리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초창기에는 작품 전시가 열리기도 했으나 나무 앞 공간을 향유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많아짐에 따라 평상을 둔 카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곳은 자연이 주는 쉼을 일상에서 밀접하게 경험하고, 생태계를 보존하며 건물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 자연스럽게 적용된 사례이다.
레레플레이의 식음 메뉴 또한 ‘환경과 사람에게 이로운 먹거리’라는 철학을 담아 만든다. 대표적인 예로 이곳의 드립커피는 태우지 않고 로스팅한 최상급 원두와 청정지역 지하수인 삼다수로 만들어지며, 거름망은 삶고 말리고 다시 한번 행군 뒤 필터링에 사용한다. 물을 끓일 때도 스테인리스 성분이 없는 주전자를, 그리고 커피를 담아 낼 때에도 납 성분이 없는 잔 만을 고집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커피의 이름은 ‘레레 커피 맑음’이다. 여기에 깨끗한 환경에서 방목되어 자란 소에서 얻은 우유를 넣어 라떼를 만들면 ‘레레 커피 구름’이 된다.
바로 몸으로 흡수되는 먹거리와 마실거리이기에, 윤 대표는 재료의 성분뿐만 아니라 조리와 보관 과정에서도 인공물 첨가와 화학처리를 최소화 한다.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이것이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사람에게 유익한 길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며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진심과 정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재미난 것을 알려 줄게요. 여기 보이는 건물 외관의 자연석은 새로 붙인 거예요. 그런데 기존 외벽과 연결되는 창틀 부분을 자세히 보면,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화가를 고용해 돌처럼 보이도록 작업한 것이랍니다. 구들돌이 놓인 방의 천장보도 원래 금속인데 나무처럼 칠했고, 전체 공간의 오래된 벽면 느낌도 원래의 분위기에 맞춰 손을 본 작품들이에요.” – 윤이서 디자이너
모든 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곳. 레레플레이 공간은 타고 남은 장작 같았던 건물의 작디작은 불씨를 살려낸 끈기의 산물이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과 애정의 손길로 다듬은 낡은 것들은 이곳에서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다. 이 건물이 진정으로 소생蘇生된 데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지극히 작은 것(小生)들에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레레플레이.
서울 중구 퇴계로81길 14-6, 1-2층
월-토 12:00-21:00 (일요일 휴무)
http://instagram.com/r_e_r_e_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