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밑 오롯한 동네, 후암동에 산다는 것

[City] 후암동에 집 짓기
ⓒKyungsub Shin
에디터. 김윤선  자료. 경계없는작업실

 

후암동의 옛 이름은 두텁바위. 마을에 둥글고 두터운 큰 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오래된 도시조직이 만들어내는 친근하고 정겨운 골목의 분위기와 이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시원한 전망과 지척에 남산을 등진 풍부한 자연환경을 가진 후암동. 어느덧 사람들에게 후암동은 살고 싶은 동네, 찾아가고 싶은 동네로 주목받고 있다.

남산 밑 오롯한 동네, 후암동에 집을 지은 건축가와 함께 그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눠봤다.

 

후암동 골목길 ⓒKyungsub Shin

 

후암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후암동의 첫인상은 ‘아웃사이더 Outsider’같다는 느낌이었어요. 후암동 근처에 있는 곳들을 보면 지금 서울에서 도시개발 이슈가 있는 지역들이 다 붙어 있거든요. 바로 밑에 용산 미군 기지가 있고, 서울역이 있는 한강로 앞으로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요. 남산공원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늘 사람들로 붐비는 남대문시장도 있죠. 서울 한가운데 있는 섬 같기도 해요. 마치 어두운 등잔 밑처럼 잘 드러나진 않지만 복합적인 면모를 담아 자리 잡고 있었어요. 후암동에는 오래 살아온 원주민들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이 계세요. 오래된 시장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민낯 같은 느낌, 서울 사람들의 실제적인 생활의 모습들이 담겨 있는 동네랍니다.

 

소월길 아래, 두텁바위로 전경 ⓒKyungsub Shin

 

주류 속에 있지만 비주류 같은 느낌이랄까요?

지금은 완전히 주류가 됐죠. 2015년에 설계를 시작해 2017년에 완공했는데요. 그때만 해도 후암동이 지금과 같이 ‘뜨는 동네’는 아니었거든요. 알음알음 동네가 좋다는 걸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생겨나는 즈음이었어요. 저희 지도 교수님께서 후암동에 살고 계셔서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어요. 덕분에 저도 후암동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후암동을 탐구해보니까 정말 재미있는 지역이더라고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존재한 도시 가로 조직들이 그대로 살아남아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집들이 유지되고 있고, 이 오래된 도시조직이 그대로 살아있는 가로와 골목의 분위기가 아주 매력적이에요. 요즘 해방촌을 비롯해 이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동네의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계속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활기가 생겼어요.

 

새 건물과 옛 건물이 공존하면서 오래된 도시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Kyungsub Shin

 

일제 강점기에는 이 동네가 어떤 분위기였나요?

일본인들의 공동주거지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서울 중심에 있고, 용산 철도기지와 가까이 있잖아요. 그래서 중산층의 일본인들이 일제 강점기에 한국으로 넘어와서 생활하던 동네였다고 해요.

 

‘후암동 복합주거’는 건축주가 거주하면서 임대로 수익을 내는 집이죠. 후암동에서 부동산 수익 가치나 가능성을 발견하셨나요?

현재 가치를 측정해서 집 짓기를 결정했다기보다는 미래 가치를 내다봤어요. 남산이나 옛 골목의 분위기 등 물리적 조건 자체가 이 지역의 자산이고, 점점 이를 알아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데서 단초를 발견했죠. 그리고 여기에 저희가 좋은 공간을 만들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어요.

그걸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을 집의 저층부에 배치했어요. 후암동은 서울대 입구나 강남역처럼 원룸으로 대변되는 임대 주거 수요가 활발한 곳이 아니고, 특히 당시에는 임대 주거의 주 수요자인 1인 주거지로 부동산 시장에 오르내리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부동산 투자 측면에서 임대 주거는 ‘안정성’이고, 상가는 좀 더 적극적인 투자의 개념, 즉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위험 부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근린생활시설과 임대 주거를 복합해서 계획한 목적이 건물에서 잘 작동했어요.

 

상가가 사업적으로 위험 부담이 많나요?

이를테면 관악구와 강남구에 있는 원룸의 월세 차이는 두 배가 채 나지 않아요. 하지만 땅값은 3~4배 이상 차이가 나요. 특히 가로수길과 같은 대형 상권 지역은 땅값이 평당 1~2억을 호가하죠. 그러면 그 땅값의 차이는 저층부 상가 임대료에 반영되거든요. 상가 임대료 차이는 5~6배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땅값이 상승했을 때 이를 이용해서 건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상가예요. 상가가 잘되지 않는 지역은 지가가 상승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지구단위계획구역이 변경돼서 건물을 갑자기 많이 지을 수 있게 되지 않는한요.

그렇게 미래 가치를 보고 배팅을 했고, 그것과 별개로 후암동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동네라 배팅에 실패하더라도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니까 큰 위험요소가 있지는 않다고 판단했어요. 물리적으로 서울 시내 중심에 위치해있어서 강남이나 강북 어디든 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은 집이거든요.

 

강남에서 402번 버스 타면 소월길에 내리잖아요. 마을로 내려가려면 가파른 계단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전망 엘리베이터도 생겨서 편리하더라고요. 

남산타워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엘리베이터가 있죠. 남산타워를 모티브로 한 만큼 밤에도 똑같이 조명이 들어와요. 사실 이 엘리베이터 때문에 이 땅을 선택하기가 더 쉬웠어요. 건축주가 나이가 있으시니까 이런 요소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거든요. 저희가 땅을 알아볼 즈음에 완공됐더라고요.

 

남산타워를 본 따 만든 전망 엘리베이터. 소월길에서 두텁바위로로의 접근이 편리해졌다. ⒸBRIQUE Magazine

 

건축주는 어떤 분이었나요?

은퇴를 앞둔 60대 부부였고,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오래 살아오신 분들이에요. 통장 예금으로 모아둔 노후 자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셨는데, 같은 자본을 들여서 오히려 아파트보다 좋은 주거환경을 가지면서도, 어느 정도 노후 대비가 되는 그런 건물을 생각해보시면 어떻겠냐고 자문을 해드렸어요. 그러고 나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좋은 집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이 복합된 주택 신축을 제안했죠. 건축주가 정년 끝자락에 외국에 파견 중이셨거든요. 저희가 토지 검토를 해서 매입할 땅을 추천해드렸는데, 땅을 직접 보지도 않으시고 매입을 결정하셨어요.

 

후암동에 연고도 없었는데, 땅을 보지도 않고 결정하셨나요?

대신 정보를 많이 드렸어요. 부동산이나 집 짓기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던 분인데,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복합적인 조건과 좋은 주거환경, 그리고 여기에 행복한 노후를 위한 수익성 공간에 대해 말씀을 드렸죠.
저희가 건축주와 일을 진행할 때, 땅을 매입하는 것부터 시작할 때가 종종 있어요. 땅을 검토하면서 매입이나 개발 여부에 대해 결정을 돕는 팩트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려요. 주로 그런 프로젝트들은 강남에서 상업 건물을 개발하는 경우인데, 이 집은 그런 관점보다는 ‘좋은 집, 집 다운 집’을 짓겠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 땅 찾기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보통 은퇴 후에 교외로도 많이 나가시잖아요. 그런 생각은 없으셨나 봐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으셨어요. 요즘 은퇴 세대들도 도시를 선호해요. 오히려 그 세대들이 더 열정적으로 도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즐기고 싶어 하세요. 정말 시대가 변했어요. 노인이 된다고 해서 젊은 사람보다 즐기고 싶은 욕구가 적어진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 시대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은퇴하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까 평소 즐기지 못했던 도시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접할 기회도 많아지죠. 예전에는 저도 은퇴하면 서울 외곽으로 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주말주택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어요. 또 많은 기반 시설이 도시에 잘 갖춰져 있으니까요. 건강을 위해서 좋은 공기를 마시러 교외로 나간다고들 하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병원이 가까운 것도 도시죠. 그리고 평생 서울을 터전 삼아 생활하셨고, 친구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어서 많이 멀어지기는 힘드셨을 거예요. 특별히 전원생활의 꿈을 꾸시지 않는 이상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서 산다는 건 어렵지 않나 싶어요.

 

집에 관한 건축주의 특별한 요구 사항이 있었다면요?

옥상을 마당처럼 잘 쓰고 싶다는 거요. 외부공간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거든요. 옥상에서 꼭 바비큐 파티를 하고 싶어 하셨죠. (웃음) 또 햇빛이 잘 들고 따뜻한 집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수익 측면보다는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그런 면에서 후암동은 여러모로 적지였다고 생각해요.

 

후암동 복합주거 전경 ⓒKyungsub Shin
남산 밑 오롯한 동네, 후암동! ⓒKyungsub Shin

 

You might also like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

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의 이면

[정해욱의 건축잡담] ⑨ 건축가가 발견한 디자인 특이점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