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집은 없다 No House For Old Men

우리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전원주택과 실버타운
Senior Women Having Breakfast Near The Window In The Retirement Community

코엔 형제가 감독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2007년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시 브롤린 등이 출연한 미국의 범죄 스릴러였다.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1980년대 서부 텍사스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큰 행운을 손에 넣은 평범한 남자와 그를 죽이러 쫓아다니는 살인자, 그리고 어느 보안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제목만 보고, 코엔 형제의 냉소적인 유머를 떠올린다면 노인문제를 다룬 시니컬한 블랙코미디 영화겠구나 하는 단정을 짓기 쉽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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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선입견이 그리고 감독이 가진 위상이 관객을 배신하는 경우는 가끔 발생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교향곡, 모짜르트의 대하소설, 모차르트의 코믹북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결과물들이 존재하곤 한다.

“은퇴를 앞둔 K는 주말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교외의 별장으로 향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해변도로를 따라 한적한 마을 외곽에 위치한 별장에는 황금빛의 태양이 쏟아지고 있었고 바다 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별장의 현관문을 열자 마당 가득 녹색 잔디가 싱그러움을 뽐내며 반겨주고 있었고 실내로 들어서자, 잘 차려진 브런치와 갓 볶아내린 커피향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랜 운전의 피로를 풀어주는 해먹에 몸을 실은채 조금씩 변해가는 태양의 입사각과 바다의 움직임에 시선을 보내며 부부는 베네딕트를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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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현실적으로 바꿔봤다.

“은퇴를 앞둔 K는 주말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교외의 별장(정확하게는 은퇴를 위해 준비한 전원주택)을 향했으나 주말 교통 체증에 장장 세시간을 운전해 겨우 도착한다. 그동안 비워둔 마당의 잔디는 잡초로 뒤엉켜서 무릎까지 자라있고(정원사가 없기 때문에 교외에서 잡초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함),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동안 청소를 못한 실내는 먼지가 가득하고 청소거리가 산더미였다(집관리인 없음).
아내와 K는 운전하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우선 주방만이라도 대충 청소하고, 전날 장봐온 재료로(한적하기 때문에 집주위에 마땅한 식료품점 없음) 간단한 브런치(역시 없음)를 간신히 준비해서 먹으려고 하니 어느새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끼니를 때우고 숨을 돌리려고 하니 주변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다(교외는 가로등의 시설들이 도심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체감하는 부분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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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정원사와 집사와 요리사 등을 고용할 여력이 있다면 처음의 문장과 같은 삶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물론 매우 극단적인 예를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장 많이 생산해내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다. 쉽고 평이한 용어를 선택하려다보니 본의 아니게 의역되거나 오역되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가 확대 또는 과장되어 전달되거나 축소 또는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전원주택과 실버타운이라는 단어도 어쩌면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은발의 노년들이 안락하고, 편안하며, 행복하게 지낼수 있는 실버타운이라는 개념도 사실상은 불가능하며 이미 폐기처분되어야 할 용어일 수 있다.

점차 노년층의 인구는 증가하고, 청장년층의 인구는 여전히 감소하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집,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젊은 부부를 위한 집, 자녀 교육을 위한 집 등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지원 방안과 사례연구, 그리고 생각과 관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을 위한 집은 대체 무엇일까? 2020년 베이비무머 세대들이 대거 은퇴를 하는 그 시기에, 경제활동을 멈추게 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니 살게 되는게 현실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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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과 실버타운이라는 단어가 노인을 위한 집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하는지 강한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노인을 위한 집이란 노인들이 살아가기에 편한 집이면서 노인들의 생활패턴을 고려한 집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인을 위한 집은 존재하는 걸까?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 기준을 갖고 살펴보자.

첫째, 노인 혼자서 이동이 가능한 집이냐는 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행동은 조금씩 느려지고, 일어나고 앉고, 방과 방을 이동하고, 층과 층을 이동하는 일이 조금씩 불편해지거나 최악의 경우 거동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휠체어를 사용한다면 적어도 문턱은 다 없애야 한다. 계단 역시 단차를 없애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앞뒤로 열리는 문보다 옆으로 열리는 문이 더 사용이 용이할 것이고, 자동문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문 손잡이도 동그랗고 작은 일반 손잡이보다는 직각으로 위치해서 아래로 내리면 열리는, 즉 손에 힘이 없어서 돌리지 못하더라도 무게에 의지해 열릴 수 있는 손잡이가 더 사용하기 편할 것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에서 흔히보던 안전바가 설치돼 있거나 바닥재가 쿠션이 있어서 실족과 낙상에 대비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할 수도 있다.

둘째는 이웃이 노인의 안위를 인지할 수 있는 구조인가 하는 점이다. 타인과의 소통이 힘든 지금의 문화에서 소통을 강제하기도 힘들고, 사실 불가능한 일일수 있다. 하지만 노인이 사는 집의 창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구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뇌졸증과 뇌출혈, 또는 심장마비 갑작스런 의식불명이 찾아올수 있는 나이고, 대개의 경우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게 된다. 이 경우 바닥과 창이 이어져 있는 구조라면 방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외부의 누군가가 보고 119에 신고해줄 수도 있다. 집에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평소에 지병이 없어서 병원과의 응급상황 인지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모든 외부인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구경하라고 유리로 만든 집에서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구조와 그 구조가 작위적이지 않고 일반인들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에 대한 고민과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세째, 응급실이 갖춰진 병원이 집근처에 있어야 한다. 앞의 예를 보듯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지병이 있으면 지병이 있는대로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나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처럼 멋진 휴양지 같은 곳에 저택을 지어놓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분안에 자신에게 날아올 헬기를 보유한 병원의 VIP고객이 아니라면 맘 편하게 병원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이 맞다. 그리고 역시 큰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더 필요한 나이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며 의료시스템이 적절하게 운영되는 곳에서 거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째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날수 있는 동네에 존재하는 집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위 실버타운은 돈이 많은 중상류층의 사람들이 노후에 여생을 보내는 최적의 조건이 절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버타운에서의 새로운 소식은 모두 바로 어제까지 웃으며 얘기하던 사람의 사망소식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도, 쇼핑을 즐기는 청년들도, 출근하는 청장년들의 모습고, 한가로이 거니는 보통의 삶의 모습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안도감을 준다. 매일보는 사람들이 흰색가운을 입은 사람들이거나, 의사이거나, 환자이거나, 간병인이거나, 심리치료사이거나, 상담사인 상황에서 즐겁고 평안안 노후를 즐기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더라도 노인을 위한 집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점차 노인 인구는 많아지고 있고, 100세까지 사는 것이 특별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고민도, 논의도, 제도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MAGAZINE B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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