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주는 심미성

판교 다가구주택 : 건축 에스아이 '각설탕 White Cube Sugar'
ⓒNamgoong Sun
글. <브리크 briue>  자료. SIE건축사사무소

 

제가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습니다.
“That’s been one of my mantras focus and simplicity.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 Steve Jobs 스티브 잡스 –

 

위의 문구는 애플Apple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1998.5.12)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만일 당신이 디자이너를 괴롭히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상당히 괴팍한 부류의 인간이라면 그들에게 이렇게 요구하면 된다. “점과 선과 면만으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가져와!”라고.

 

ⓒGettyImagesBank

 

‘최소주의’라고 표현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해 대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시각예술 분야에서 나타났으며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최소의’라는 의미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의미의 ‘이즘ism’이 결합된 것으로 1960년대 중반 비평가 바바라 로즈Babara Rose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70년대 미국의 시각 및 음악 예술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모든 기교를 지양하고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최소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주거 건축물은 아파트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일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적화된 공간’을 ‘최대한의 효율’로 만들어내는 이 공동주택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경제적이며,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물을 도출해낸 주체가 사용자가 아닌 공급자라는 점이다. 물론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에 한정해서 사용되어야 하겠지만.

 

ⓒGettyImagesBank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할 것과 선택하지 않을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이 쉽지는 않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필요와 불필요는 개인의 취향 영역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사항들도 많다. 셋째, 맥락없는 단순화는 왜곡을 불러온다.

이 집, ‘각설탕 White Cube Sugar’은 가장 단순한 네모반듯한, 블록같은 주거 건축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흥미로웠던 점은 이 집이 다가구 주택이라는 사실이었다.

 

ⓒNamgoong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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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의 외벽에 포인트를 준 짙은 색의 문은 지중해 연안에 존재할 듯한 이국적인 인상이 지배적인데, 단순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상당히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복합적이란 말은 복잡하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두 가구가 사용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대지면적은 지하층과 지상2층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설계되었는데, 분할이라는 측면에서 독특함이 드러나는 점은 단순히 벽으로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벽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용도와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이 나눠지도록 한 점이다.

 

“1층 안방과 부속실(옷방/욕실)들을 호텔에서나  봄 직한 구조로 대체해 자칫 무료할 수 있는 50대 부부에게 신선한 감각을 연출한다거나, 거실-주방-식당을 일체화해 탁 트인 공간감을 기대함과 동시에 요즘 더 중요시되는 식당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또 다른 공간의 활용 방안이다.”
– 건축가 정수진 –

 

사실 우리는 통상 방房과 실室을 비슷한 개념으로 혼용하는데, 벽으로 막혀 있고 문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방이라면 벽이 있거나 없을 수도 있고 문이 있거나 없을 수도 있는, 조금은 느슨한 의미의 분리된 공간 또는 공간의 분할로 이뤄진 것을 실로 보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거실living room, 주방 겸 식당방dining room, 응접실sitting room 등의 개념은 닫혀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열린 공간이며 이어진 공간이다. 이 집은 중정(중정은 건물 안이나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을 말한다. -편집자 주)을 포함해 이러한 실의 개념들이 다채롭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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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것이 무조건 아름답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핵심에 접근해야 하고, 문제의 근본을 이해해야 하며, 그 결과물도 직관적이어야 한다. 그 반대로 복잡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만약 각설탕과 같은 집들이 빼곡하게 모여 사각형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면 수학자나 경제학자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이는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다른 것과의 조화, 균형 그리고 단순한 것에 대한 변주 같은 요소들이 동네와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가는 요소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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